세상이 참으로 빠르게 변한다.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압축된 시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1백년간의 세월이 필요했던 변화가 단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는 시대다. 오늘의 인사동은 지난 날 골동가게나 고서점, 화랑, 표구점 그리고 미술 재료를 파는 상점이 어깨를 맞대고 있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르다. 문화예술과 관련한 화랑 및 가게는 관광 상품을 비롯해 옷가지나 장신구 및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 그리고 음식점이나 카페 및 찻집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낭만적인 문화예술의 거리가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안식처에서 밀려난 신세가 된 문화예술인들에게 인사동이란 그저 한낱 추억의 거리가 되고 말았다. 20여 년 전의 인사동은 지금의 모습과는 완연히 달랐다. 그 때만 하더라도 인사동은 화랑을 중심으로 골동가게와 화구를 파는 가게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인사동 거리를 중심으로 나뭇가지처럼 뻗어있는 안쪽 골목길에는 한정식 및 술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러기에 인사동은 문화예술인들의 지상낙원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문화예술인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문화예술의 거리라고 말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관광 상품과 온갖 물건을 파는 상업적인 거리가 되고 말았다. 뒷골목 길은 음식점과 찻집 카페로 꽉 들어차 있다. 인사동에서 대대로 살아온 서울 토박이들은 혼잡하고 시끄러운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모두들 타지로 떠나고, 그저 기념품이나 사고 차를 마시며 식사하기에 적합한 관광객의 천국이 된 것이다. 관광객들에게는 그야말로 별천지인 셈이다. 이처럼 변하고 또 변하는 인사동을 마치 제집 드나들듯했던 양종석은 완전히 변하고만 인사동 이곳저곳을 추억하는 기분으로 펜과 붓을 들었다.
그는 마치 일기장을 채워나가듯 딴 동네처럼 변해버린 인사동 거리를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그의 서술법은 현실풍경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인데도 어쩐 일인지 복고풍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싶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의 인사동 그림은 옛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삽화형식을 취하고 있다. 선묘로 형태를 구체적으로 그린 뒤 채색을 가미하는 식이다. 이와 같은 기법의 수채화는 근래에 와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양한 표현기법을 개발하고 현대회화의 표현방법을 응용함으로써 사실상 선묘 중심의 수채화는 대학입시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유성펜이나 수성펜을 사용해서 밑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는 기록화로서의 성격을 부여하려는 의도에 기인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사동 그림은 회고적이며 복고적인 정서가 지배하고 있다. 비록 눈으로 감지하지는 못할지언정 지난 시절의 인사동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감득할 수 있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서는 단지 기법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거리로서의 역사를 지닌 인사동의 정서를 체득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회고적이고 복고적인 정서를 표현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림의 호소력이란 시각적인 이해와 더불어 그 안에 포진하는 정서가 큰 역할을 한다면, 시각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자리하는 내적인 정서야말로 감동 및 공감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다.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인사동 골목골목을 샅샅이 더듬으며 작업하는 동안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떠나버린 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같은 동질의 것은 아니었을까. 곁을 떠났으니 미워하는 마음과 함께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옛 임의 모습이 겹쳐졌던 것은 아닐까. 그만큼 그의 그림에는 복잡한 심정이 담겨 있는 듯싶다.
7080세대인 그의 인사동 나들이는 반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인사동 어느 추녀 밑에 앉아 스케치북을 채워나가는 나날의 일상은 인사동 방문자들에게 한 줄의 낭만적인 서정시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이미 때가 한참 늦었을지언정 인사동을 사랑했던, 그 구체적인 증표로서 남겨질 그의 그림은 단지 소박할 따름이다. 거기에는 회화적인 기교나 묘술이 첨가되지 않은 순수만이 담겨 있을 따름이다. 회고적인 정서가 짙게 깔린 인사동 그림 앞에 서서 우리는 잠시 속울음을 지울 수 없어 할지 모른다.
신항섭(미술평론가)
첫댓글 뭔가 깔끔하고 거짓이 없는 색체감이네요.^^
오래전 인사동은 고풍스럽고 고즈넉했는데...요즘은 넘 세속적인 분위기가 안쓰럽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수채화의 투명함이 그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있는 듯해요.^^
오... 이런 맑은 수채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