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래 위에 발자국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의 인생의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 위에 난두 사람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 온 길에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결단코 버리지 않는단다.
너의 시련과 고난의 때에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간 때이기 때문이란다.” 메리 스티븐슨(1922-1999)
낭독 한 “모래위에 발자국” 시는 읽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주님과의 동행하심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시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살다보면 두려움과 불안심리가 다가옵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멈추고 다시 일상생활을 해도 뒤돌아서면 또다시 두렵고 불안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소나기가 오기 전 천둥 번개 치는 소리를 누가나 듣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가 경험했던 천둥소리는 일생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했던 소리였습니다. 제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운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잠까지 설친 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부르며 살면서도 인간인지라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갖는 것입니다.
조금 전 우리가 시를 낭독했지만 시인의 고백처럼 “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고백은 누구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공통분모입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관계가 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자기 백성과 맺은 3가지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께서 부르고 계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백성과의 관계를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의 주인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종은 주인의 것입니다. 절대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너는 내 거야” 이런 말입니다. 종은 생명․재산․능력․지식 할 것 없이 다 주인의 소유 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에게 절대순종입니다. 주인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합니다.
다음 나의 택한 야곱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선택된 사람임을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너를 택했다 너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너를 싫어버리지 않았다 너는 내가 진주처럼 보석처럼 가장 아끼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라고 관계를 설정해 주셨습니다.
다음 세 번째는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벗처럼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얼마나 친밀하십니까? ’하나님은 자기백성 이스라엘을 이런 관계의 대상으로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과의 이런 관계가 없으면 절대 부르시지 않습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이런 관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면 “아멘” 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께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왜 오라고 하시겠습니까? 관계가 있으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9절에 보면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한 너는 아브라함을 말합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택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싫어버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밀한 관계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책임져 주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 관계가 깨어져서 불안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사야를 부르시고 저들을 향해 회복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영적장애물로 인하여 고난이 깊고 고통이 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그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다시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어떤 멧세지로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0절....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3절....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절....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짧은 본문 속에 3번씩이나 강조하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4절에는 버러지 같은 야곱아 하면서 책망하시듯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 그 다음 10절 13절 14절 속에 김승권의 하나님 000 하나님 됨을 강하게 부딛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0절..... 내가 너와 함께한다. 13절...... 내가 너를 도우리라 14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이런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이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앞에 두려움을 겪으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걱정하지 마라 나는 여기 있고 내가 네 하나님이다 김승권의 하나님이다. 000 하나님이다. 이 한절 말씀이 우리의 심령가운데 꼬치고 심어지면 내 앞에 고난과 고통이 파도처럼 몰려와도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 말년에 실감나게 노래한 말씀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시편23:4..... “ 내가 사망의 음찜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다윗이 목동의 삶을 살 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도시락을 준비하시면서 전쟁터에 나간 형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과 싸움입니다. 다윗이 싸움 현장에서 느낀 것은 3m에 가까운 블레셋 골리앗 장수앞에서 사울왕부터 모든병사들이 떨떨메고 있어요
이런 모습을 지켜본 양치기 목동 다윗이 거인 골리앗앞에 섰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게임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을 향한 힘 있는 한마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b) 외쳤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은 다윗이 삶속에서 늘 주님을 부르며 믿고 의지하고 살았기에 거인 골리앗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외친 것입니다.
저녁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리고 새아침 깨어날 때 하나님 아버지 흥얼거리며 습관적으로 부르게 됩니다. 지난주 동문 수련회 휴양림에 머물렀는데 잠자리가 바꿔니까 그런지 새벽에 깨어 일어났다 누웠다 하는데 그냥 입술에 나온 것이 아버지 했더니 누워 자고 있는 친구목사가 무슨 아버지야! 그러는 거예요 그냥 입술로 나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매순간 무엇을 하든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아버지가 곁에 계심을 믿고 살기에 불러지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단에서 설교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으로 습득하면 지식으로만 남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하나가 있습니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 명언이지요 그런데 영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아는 것이 힘이 됩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지 알면 고민이 많아 집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확신하는 것이 힘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네가 믿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예배당 안에 앉아 있습니다 만약 건물이 언제 주저앉을지 불안해 한다면 이곳에 어떻게 앉아있겠습니까?
이제는 지식으로 믿는 하나님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두려움 불안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사라진 그 자리에서 찬송이 불러 질 것입니다 기쁨이 나올 것입니다.......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저와 여러분을 두렵게 만드는 것들이 있는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1-12절....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네게 노하던 자들입니다...... 다투는 자들입니다..... 싸우던 자들입니다..... 이런 부류들을 정리해보면 두렵게 하는 것이 어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먼저가 아닙니다.
전쟁 천재지변도 무서운 것이 사실입니다. 북한이 미국과 우리나라 우방이 두려워 만들고자 하는 것이 핵무기입니다. 저들은 핵무기야 말로 자국을 보호하고 살아 갈 수 있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만들어야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 두려운 것은 핵무기가 아닙니다. 진정 두려움의 대상은 사람입니다. 나를 향하여 대적하는 사람이 화를 내고 으르렁대며 싸우자고 덤벼듭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나에게 와서 덤벼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겨낼 제 간이 없어요 그래서 이런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두렵게 만드는 사람 때문에 결국 약해져서 자살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두려움 앞에 우리를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너무나 실감나게 피부에 와 닿게 말씀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10절 하반절 보세요.....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3절입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 말씀을 자세히 묵상하면 얼마나 심감이 나는지 모릅니다. 10절 나의 의로운 오른손은 누구의 손입니까? 하나님의 손입니다. 그러나 13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의로운 손이 네 오른손을 붙잡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십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붙잡았다면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있으면 내가 힘으로 빠져 나갈려고 해도 하나님이 절대로 놓지 않으십니다. 이미 하나님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전쟁도 내 인생의 삶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우리 대신 싸워주십니다.
주님은 영원한 전사이십니다........ 어떤 적도 무너뜨리시고 어떤 악한 세력도 무너뜨리는 분이십니다.
내 모든 삶이 다 주님의 의로운 손에 있습니다. 지금 그 무엇 때문에 두렵습니까? 아니면 불안해 하십니까?
나의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굳세게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의 손을 붙잡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