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90년대 복고열풍과 ‘국민첫사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영화 <건축학개론>은 개인적으로는 애틋한 첫사랑과 90년대 대학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재미보다도 오히려 ‘건축’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쯤 가볍게 생각해보게 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영화였다.
예쁘장하기 그지없는 두 남녀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원인정도로 들어갈 줄 알았던 건축이야기가 의외로 건축의 본질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논하며 의외로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었다. 어떤 집을 짓는가? 그리고 집을 짓는 과정과 의미, 그리고 그 곳에 살아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 영화는 필자가 건축이라는 영역에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게 된 경험이기도 했다.
한편 몇 달 전 필자는 한 시민단체 대표와 차를 타고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건축’에 대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민단체 대표의 말에 따르면 대대로 서울의 관가는 불을 잡고 물을 잘 다스려야 흥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경기도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불을 잡아먹는 ‘해태’상을 세워놓는다는 것이다.
한편 물을 잘 다스려야 서울의 관가가 흥한다는 풍수지리설 때문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을 무리하게 시도했고 더 나아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건축을 시작한 지금의 새 서울시청 건물을 ‘파도’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결 또는 파도 모양을 하고 있는 새로운 서울시청 건물
물론 필자가 풍수지리를 알 리가 없고 마치 과거 전두환이 권력을 위해 십원짜리에 불상을 새겨놓았다는 수준의 이야기지만 웬지 그 이야기가 이상한 설득력(?)을 주는 이유는 다른데에 있었다.
십여년전 강남에 수백미터 높이의 ‘타워팰리스’가 처음 들어설 때 한 칼럼니스트가 우리사회에 만연한 남근중심주의, 가부장적 권력지향성이 드러난 사례라고 평했을 때 필자는 ‘뭐 건축을 그렇게까지 보아야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세상만사가 정치적이고 또 권력이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기에 오히려 건축도 정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시민단체 대표가 말한 파도모양의 서울시청 건축 이야기도 웬지 흥미로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축이라는 영역도 미술이나 음악처럼 그 구조물이 만들어지는 배경이나 역사, 또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정치, 권력과 같은 것들이 작동하게 마련이다.
관공서 건물만이 아니라 강남 테헤란로와 여의도 거리에 우뚝 서있는 저 마천루 빌딩들도 마찬가지이며 역사적인 문화유산이라 하는 건축물들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 건축물이 세워지는 역사와 배경 그것이 함의하는 정치적 의미들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 소개할 미드, 정확히는 독일과 미국, 캐나다의 합작 드라마라고 해야 할 이 작품 ‘대지의 기둥’은 바로 그 건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중세의 역사 속에서 권력과 정치,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매우 독특한 드라마다.
미국, 독일, 캐나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대지의 기둥’
한국의 케이블에서도 방영한 적이 있는 드라마 ‘대지의 기둥’은 미국과 독일 그리고 캐나다의 합작 드라마다.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거장 ‘리들리 스코트’이 제작에 참여하고 다양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는 상당히 탄탄한 내용과 작품성을 갖춘 드라마다.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를 보신 분이라면 당연히 그의 역사물에 대한 고증능력이나 스케일 등이 작품성 보증수표와 같은 것이고 최근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다 뒈지고 혼자만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를 연기하는 밉상(?) 청년 ‘마리우스’를 연기한 꽃미남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나 ‘도널드 서덜랜드’ 등의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이다.
원작은 세계적으로 1,400만부가 팔린 ‘켄 폴릿’의 베스트셀러인데 대체로 방대한 내용을 담은 원작을 8부작 드라마로 잘 재현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8부작 드라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건축’이다. 12세기 영국의 가상도시 ‘킹스브리지’를 배경으로 영국 최초의 고딕양식의 성당을 건축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수 십년의 시간동안 성당 건축을 둘러싼 왕권과 신권의 대립, 그리고 영주들의 반란과 같은 권력의 이해관계와 돌로 된 아치 천장을 올리기 위한 시도나 프랑스와 독일에서 먼저 시작된 고딕양식의 건축술이 어떻게 영국으로 이전되어 프랑스식과는 다른 독특한 영국 고딕양식을 창조해냈는지 등을 주인공들의 드라마틱한 삶과 민중들의 고단하면서도 끈질긴 생존의 과정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온갖 권력 간의 암투와 삶에서 닥쳐오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수 십년의 세월에 걸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대성당 건축과정과 그 과정에서 늘 고단한 삶을 지속하는 민초들의 삶은 암흑의 중세시대를 관통하는 장엄한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실제 영국 최초의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솔즈베리 대성당’을 모델로 하고 있는 드라마속의 ‘킹스브리지 대성당’이 드라마 말미에 완공되는 모습에서 현재 영국에 있는 ‘솔즈베리 대성당’의 모습을 함께 겹쳐서 보여주는데(이 장면은 마치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엔딩장면과도 흡사하다) 드라마를 마지막까지 시청한 사람들이라면 마치 자신이 건축에 참여한 사람인 마냥 묘한 감동을 준다.
<드라마속 킹스브리지 대성당의 실제 모델인 영국의 솔즈베리 대성당>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 전개 외에도 실제 이 작품은 아주 흥미로운 묘사들이 매우 많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수 십년이 걸리는 성당 건축을 지속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품을 교역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인 ‘시장’을 킹스브리지 마을에 유치해야하는 수도원장과 부의 원천이 되어가고 있던 ‘시장’을 자기 영지에 독점하려 하는 지방영주들이 당시 왕만이 가지고 있던 ‘시장 허가권’을 둘러싸고 온갖 음모와 암투를 벌이는 장면들이다.
이쯤에서는 ‘칼 폴라니’가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지적한대로 시장이 그 스스로 확장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시장을 확산시키거나 폐쇄했다는 주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편 당시에 건축기술이 진보하지 못해 성당의 지붕이 목조로 만들어져 끊임없이 성당의 지붕이 불타거나 무너져 내리는 과정은 어떤 역사적 진보에 대한 은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 스스로 지붕을 불태우고 때로는 외적의 침입에 허무하게 지붕이 불타 무너져 내린다.
불에 타서 무너지지 않는 지붕을 얹기 위해 석조로 된 지붕을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한 기술과 능력으로 무너져 내려 더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절망하는 실패를 반복한다. 결국 불에 타지 않는 성당의 지붕은 다음 세대가 기존의 관성과 양식을 깨고 새로운 건축기술과 정치적 힘을 갖출 때야 성공한다.
드라마 ‘대지의 기둥’은 결국 수 십년의 세월동안 실패와 고난을 거듭하는 대성당 건축과정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말한다. 그것은 그 성당이 건축과정에서 외적의 침입에서 맞서는 민초들의 피난처이자 요새였으며 때로는 가난한 삶의 안식처였고 새로운 미래와 공동체를 의미하는 상징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대를 이어가며 대성당을 건축해가는 그들의 끈기와 도전을 보며 나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당장의 이해관계에 급급해 무언가를 ‘건축’하기 보다 화려하게 포장하고 상품가치를 높이는 것에만 급급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