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인재는 만사다
어렵사리 인재를 구할 때 흔히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성어를 쓴다. 촉한의 유비가 은거하고 있던 제갈량의 초옥으로 세 번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보다 훨씬 오래되고 수사학적 아름다움을 지닌 고사성어가 '착발토포'이다. 사마천의 <사기>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편에 나온다.
주공은 머리 감거나 밥 먹을 때도
인재가 찾아오면 즉각 달려 나가
만고불변 진리 '인사가 만사'
인재의 바탕은 정직
새 정부 개혁·탕평 인사 신선
용두사미 되어선 안 돼
주공은 공자가 꿈속에서조차 만나고 싶어 한 정치적 롤 모델이다. 주공은 형인 무왕의 병사(病死) 이후 아들 성왕이 어려서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초기 주(周)나라를 안정시키고 문물을 정비하는 등 큰 업적을 남겼다. 주공은 건국의 공로로 노(魯)나라를 봉지로 받았지만 형을 보좌해야 했기에 대신 아들 백금(伯禽)을 책임자로 보냈다. 주공은 떠나는 아들에게 아래와 같은 말을 전한다. "나는 한 번 머리를 감을 때 세 번 머리카락을 쥐었고, 한 번 식사를 할 때 세 번 음식을 뱉고서 인재를 기다렸지만(我 一沐三捉髮 一飯三吐哺 氣以待士(아 일목삼착발 일반삼토포 기이대사)), 천하의 현인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일목삼착발 일반삼토포'에서 '착발토포'라는 성어가 나왔다. 인재가 찾아오면 기다리게 하지 않고 감던 머리카락을 쥐거나 넘기던 음식을 뱉은 채 맞이했다는 뜻이니, 얼마나 현인을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고사이다.
인재란 과연 뭘까?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따르겠습니까?" 공자의 대답. "곧은 사람을 들어 굽은 사람 위에 올려놓으면 백성들이 따를 것이며, 굽은 사람을 들어 곧은 사람 위에 올려 놓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직이 인재의 바탕이라는 메시지이다. 아무리 만사라지만 인재가 몰려들어야 좋은 재목을 고를 것이 아닌가. 당내 경선 캠프인 '더문캠'에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문 대통령의 싱크탱크 '국민성장'에만도 교수 1,100여 명이 참여했다. 지난 18대 대선 직후부터 다시 문 대통령을 도운 학자들이 주축을 이뤘다. 누군가 물었다. 그렇게 많으니 나중 이게 정권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아닙니까.? 이에 당시 문 후보는‘ 더 모여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7만 명도 넘었습니다.“ 라고 했다.
예전에 김대중시절 인사영입 고충을 보면. DB를 모으는 과정이 참으로 험난했다. 호남출신이거나 진보성향이거나 하는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김대중 쪽으로 넘어가면 배신자나 빨갱이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었다. 보수는 길게 집권하고 진보는 반짝 집권하는데 줄 잘못 섰다가 관직명줄이 끝장난다는 공포심리가 강했다. 이를 잘 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 구축 확대방안과 관련, “인재풀의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더욱 광범위한 인재발굴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전 정부 부처와 책임 있는 사회기구들이 관심을 갖고 인재추천에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시했었다.
이와 관련 정찬용 당시 인사보좌관은 “현재 중앙인사위원회 인재 DB에 7만2천 건의 인물정보가 수록돼 있으나, 경력과 학력 등 단순 정보 위주로서 적재적소의 인사를 판단하는 자료로 활용하기가 미흡하다”면서 “경력, 학력 등 단순 정보에서 가치관, 지향성, 열의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입체적인 정보를 담도록 개선하고 명망가와 경력자 중심에서 사회에 묻혀있는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 노력을 강화 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문대통령이 말한 7만명은 바로 노무현 정권의 데이터베이스를 두고 한 말이다.
지난 정권은 국무총리를 해임하기로 했다가 후임자를 고르느라 애를 썼지만, 두 후보자까지 중도에 사퇴하자 되돌려서 그만두겠다는 총리를 다시 일하도록 조치한 인사 참사로 세상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정부의 신뢰는 바닥에 주저앉고 만 것이다. 거기에 당시 정권은 국가 고위 공직자 서열 10위권에서 8위까지 경남·부산이 독차지해 다른 지역 8~9할은 버린 셈인데, 어디서 올바른 인재를 구할 수 있을까 말이다. 한마디로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좋은 인재를 찾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최순실이 너무 바빠 선택이 늦어진 것인 줄도 모른다.
문재인의 인재에 대해서 파악을 하려면 대선 그쯤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15년 2월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당선돼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지만 같은 해 12월 안철수 의원 등 비문(非문재인)계의 탈당 및 분당사태로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한다. 그 무렵 그는 '경제민주화' 아이콘으로 불리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영입,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극복을 했다. 그 무렵 그가 발굴한 정치 신인 인재들은 참신해서 그 무렵 총선에서부터 큰 기여를 했다. 당시 김종인이 신의 한 수라 한다면 그때 발굴한 신인들은 이번 대선을 위한 포석이라 할 것이었다.
국정원 출신의 김병기도 의외지만,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도 생각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1987년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 들어갔으며, 2013년 퇴직할 때까지 주로 인사 관련 업무를 맡았다. 문대통령이 왜 그를 택했는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사실 국정원은 생리상 민주당과는 거리가 있으며 댓글 사건으로 더욱 더 개혁이 필요한 때로 속사정을 훤히 꿰는 우군이 아마 절실했을 것이다. 경찰하면 떠오르는 표창원의원도 그렇고 게임갑부 김병관도 그러하다. 인터넷 게임왕국인 대한민국으로서는 바로 그가 문대통령으로서는 절실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아는 조응천도 놀랄만하다. 그의 일화는 재미있다. 청와대에서 공직 비서관 하다가 쫓겨나 횟집을 하는데 자꾸 장사하는 집에 와서 아무 말도 안하고 먹고 매상을 올려주고 돌아갔다고 한다. 조응천은 문재인이 '뭐 시켜 줄 테니 같이 하자'라고 말하면 됐으니 그만두라고 단칼에 거절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두 눈 껌뻑껌뻑 거리면서 '도와 주십시오' 만 했다는 것이다. 조응천 왈, 그냥 거지가 와서 구걸을 해도 며칠 계속 오면 미안해서라도 돈 좀 쥐여서 돌려보낼 텐데, 제 1 야당 대표인 문재인이 와서 그러고 있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문대통령의 사슴 같은 눈망울을 껌뻑거리는걸 보고 있으면 죄를 짓는 기분이라 도저히 거절이 안 되었고 그래서 마지못해 수락을 했는데, 집에 얘기하니 부인은 노발대발 했고 이혼하자 어쩌자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라 부득 조응천은 집사람이 반대를 하니 직접 설득하시라며 문재인에게 공을 넘겼다는데 결국 문재인이 조응천 부인을 직접 설득을 했다는. 그런데 부인마저 첫인상에 압도당하더니 역시 눈망울에 설득당했다 하는. 알다시피 조응천은 대구출신 전형적인 키 맨이다.
그 무렵 더불어 민주당 후보들이 참신하다는 말을 들은 인재는 양향자를 영입할 때 부터였다. 당시 양향자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 개발실 상무로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 민주당 입당을 전격 선언했다. 양향자 상무는 삼성전자 최초의 호남출신 고졸여성 임원을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양향자 상무의 영입에 대해 “학력/지역/성별의 차별을 극복한 시대의 아이콘이며, 최첨단산업을 이끌던 기술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면서 “첨단기술 정책/경제정책/학력차별 해소정책/호남발전 정책 수립에 전 방위적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문재인의 영입 인사 대다수가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양 최고위원은 광주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그녀가 이번 대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녀는 대선기간 광주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호남지역 반문정서와 노무현 정부 호남홀대론 극복에 온몸을 던지며 가장 괴롭혔던 악재 중 악재였던 반문 감정을 막아낸 일등공신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통령 선거운동 내내 문 후보를 괴롭힌 반문정서와 호남홀대론을 지역의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닦아내기 시작한 사람은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양향자 최고위원의 고군분투였다.
이밖에 대선 기간에 합류한 인사도 주목할 만하다.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를 비롯해 유웅환 전 인텔 수석매니저,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예종석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등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전분야가 총 망라됐다. 경찰쪽의 표창원, 국정원쪽의 김병기에 이어 이번엔 특전사 장군인 전임범까지 영입을 완료 했다. 경찰, 국정원, 외교, 검찰출신 군까지. 문재인이 이처럼, 인재영입을 대선레이스의 1순위에 두고 전방위적 삼고초려로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다. 그는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그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가 참여정부의 구성원이었고 청와대의 실무 책임자로 임하며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는지 핵심을 잡아 낸 것이라도 사람들은 말한다.
약 15년 전, 참여정부가 시작되며 모두가 세상이 바뀔 거라 여겼지만, 세상은 그리 바뀐 게 없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진보에 인재가 없더라는 거였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얘기인데....진보세력에 교수, 학자는 많았으나 내각을 비롯 각재 적소에서 실무를 책임질.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인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검찰, 경찰, 군, 외교라인까지 반세기 이상을 보수가 이끌어 온 나라였다. 진보 측에서는 능력 있는 실무자가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문재인은 바로 그 첫 단추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내며 준비해 두지 않으면, 진보세력에서 제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나오더라도. 그 어떤 좋은 정책과 이상으로도 모든 게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아마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노무현의 고뇌와 좌절을 함께 했던 문재인 이었기에 가능한 추론이다 싶다. 생각해보자면 김대중 - 노무현 10년의 시대 덜 익은 인재들이 지금은 노련한 전문가들로 다 변신했다. 수많은 비판이 따르고 시행착오도 많았으나, 진보가 경험과 실무를 쌓고 인재를 키워내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는 것. 그로 문재인은 어느 면 행복한 비명을 내질러야 할 판인지도 모른다. 바로 두 거목이 큰 밑그림을 그렸으니 이제는 수확을 할 때가 도래한 것이 아닐까. 인재는 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