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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 모현공원 운동과 은천사 의병장 이보선생 춘계대제 참석
자유인 조동화는 어제도 오늘도 모현공원에 나가 아침운동을 실천하였다.
나의 운동습관은 걷는일 1만보, 운동기구 있는곳 훌라후프 50분(5000회) 역기내리기 30회씩 2번으로 매일 실천에 옮긴다.
4/1 영정통에서 왕자표신발사업을 하시던 연안이씨 이영선사장님과 아침마다 모현근린공원에서 중학동창 이기태친구와 아침운동을 하면서 형님 동생으로 지내고 있는바, 연안이씨 판사공파 지평공 종중 2025년 종회에서 이영선사장이 종중 회장으로 추대되여 종친들과 가까운 지인들을 은기동 은천사에서 개최되는 연안이씨 판사공파 지평공종중 의병장 이보선생춘계대제일에 초청 받아 이기태친구와 참석하였다.
의병장 이보선생춘계대제일에 이기태친구는 두어살 많은 이리농림 황선생님도 같이 와서 참석하였다.
4/1 은천사 춘계대제는 익산지역향교 유림에서 주관하고 연안이씨판사공파 지평공 종중에서 후원하여 임진왜란 이치전투에서 순국한 이보(李寶), 이귀(李貴), 소행진(蘇行震)의 의로운 활동을 추모하고 봉행하였으며, 전북일보 금강방송에서 나와 취재하였다.
이보선생은 임진왜란때 형제들과 금마면 용순리에 살던 소행진과 함께 의병 400여명을 모집하여 고경병의병장이 왜적을 맞아 싸우고 있는 금산으로 가던중 대둔산의 이치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 전사하였다.
연안 이씨(延安李氏)는 황해남도 연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써 조선시대 정승 9명, 대제학 7명, 청백리 7명, 종묘배향공신 2명을 배출하였으며 문과 급제자는 255명을 배출한 이름있는 명문가문이다.
3월이 막을 내리고 4월이 시작 되었다.
"이또한 지나가리라." 유명한 격언이 생각난다.
세월은 흘러가리라. 자연의 순리이기에 받아들이며 사는것이 인생살이 아니던가.
좋은것도 슬픈것도 다 지나가리라. 이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일도 한순간에 지나가는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무엇이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아 이젠 "다 잘 될 거야"
내일은 내일데로 새로운 날이 밝아오겠지요.
이세상에 오고 싶어 온것도 아니고, 기왕지사 이세상에 왔으니 살아볼만한 세상, 즐겁고 행복을 꿈꾸며 살아야 하지요.
이리도 한세상 저리도 한세상 세월은 흘러갑니다.
정답없는 인생, 내가 하고자 하는것 하면서 행복 느끼며 살면 그것이 행복아닐까 생각해본다.
조동화의 벗님들!
건강합시다.
행복합시다.
감사합시다.
<자유인 조동화는 운동을 생활화하며
어느 목사님의 말처럼 범사에 감사하며, 그려려니 긍적 삶으로 스트레스 받지않고 즐거운 인생 항해 하도다.
스트레스가 뭐여.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으로
스트레스(stressor)는 인간의 마음의 평형상태를 위협하거나 깨려고 하는 모든 내적, 외적 자극을 말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암 발생 위험이 높다고 하니 그려려니 긍정적 생각이 좋은거여.
스트레스 예방법은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거지.
조동화의 스트레스 예방법은
1. 매일 감사 감사를 생활화한다.
2. 미워하지 말자
3.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4. 수시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자
5. 화를 내지 말고, 마음을 곱게 쓰자.
6. 나만의 명상과 휴식시간을 갖자.
7. 그려려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8. 지금컷 살아오며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추억을 찾자.
9. 두다리 만능자가용으로 걷는일 열심히 하고 몸을 움직여 천연보약으로 건강하자.>
<은천사 들어가는 입구 창의문앞에서 연안이씨 판사공파지평공종중 이영선회장님과 이기태, 황선생님, 조동화 기념사진을 남기었다.
4/1 의병장 이보선생춘계대제일에는 익산향교가 주관하여 연안이씨종친회원과 지역유지 지인들을 초청하여 성대히 행사가 진행되었으며, 금강방송기자가 취재나와 비디오영상도 촬영하였다.
이기태친구는 황선생님이야기를 나에게 자주 해 왔는데 처음으로 직접 만나 보았제.
황선생님은 체육교사로서 명성을 날리었다 하는구먼.
기태친구 석양의 노을에 건강이 최고의 재산임을 명심하여 건강관리 잘하세.
황선생님은 모현동에 거주하며 기태친구보다 두어살 많은 이리농림 선배라 하였으며 기태친구가 아주 깍듯이 받드는 선배로 대우 해준다 했다.>
<연안이씨 의병장 이보선생춘계대제 행사가 끝난후 연안이씨 판사공파지평공종중에서는 참석한 사람들을 금마 오골계식당으로 이동하여 토종닭도리탕과 참게탕으로 대접 해주어 이영선회장님께 감사는 드리는 바이여.
이기태옆에서 식사하시는 수염을 기른분이 진주소씨 소병윤선생님이시다.
소병윤선생님은 독립운동가 의병장 소행진(蘇行震)의 후손으로 소행진은 연안이씨 의병장 이보와 함께 1492년 임진왜란시 이치전투에 왜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은기동에 있는 은천사(隱泉祠)에 이보와 함께 배향되었다. 금마면 서고도리 서계마을에 소행진충신각(蘇行震忠臣閣)이 남아 있다.
진주소씨 소병윤선생님을 이기태친구는 수십년만에 만나 반갑게 해후 하였는데, 기태친구는 한전에 정읍으로 출퇴근 할 당시 알았으며, 소선생님은 익산에서 정읍세무서에 열차로 출퇴근하며 소선생님과 모임을 같이한 사이라 하는구먼.
소선생님은 년세가 90세이시며 경기도에 사신다 하였다.
연안이씨판사공파 지평공 이영선종중회장님은 점심후 소선생님을 익산역까지 모시도록 말씀하여 조동화는 소선생님을 모시고 익산역까지 와서 하차하였는데, 차에서 이야기하는 도중 소선생님은 늦은나이 34세에 한전에 공채로 입사하였다고 하였으며 동중학교를 졸업한 고대곤세무사와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나 세무서에 비슷한시기에 입사하였다고 들려주었다.
익산역으로 가는 도중 소병윤선생님의 수염에 관한 이야기도 하였다.
소선생님의 수염은 위엄스럽게 보였으며 명품이었다.
소선생님의 왕성한 활동과 무궁한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연안이씨 판사공파 지평공 종중 제각 은천사
이곳이 연안이씨 이영선선생이 시제는 모시는 제각인데 은천사라 이름지어 현판을 부착해 놓았다.
들어가는 입구는 창의문이라 현판을 달았으며 주차장도 많은차량이 주차하게 넓게 조성해 놓았다.
은천사묘정비(隱泉祠廟庭碑)의 주요내용은
이영선종중 제각 은천사는 익산시 은기동 은원마을에 있으며 1989년에 제각을 설치하였으며 옛지명 익산시팔봉면은천리의 지명을 따와 은천사라 이름지었다.
지평선생의 위는 이보인데, 이보는 본관이 연안으로 인조반정공신인 연평부원군 이귀의 형이다.
그는 임진왜란때 형제들과 금마면 용순리에 살던 소행진과 함께 의병 400여명을 모집하여 고경병의병장이 왜적을 맞아 싸우고 있는 금산으로 가던중 대둔산의 이치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 전사하였다.
지평공의 묘갈명에 의하면 영조17년(신유년, 1741년)충신 정려각을 세우고 익산 유림들이 사당을 건립하여 향사하였다.
현 정려각은 1930년대 건립되였고 그간 개 보수를 거쳐 현재 모습을 하고 있다.
이보 - 조선의 의병장이자 이귀의 형이며 소부감판사공파중의 지평공파 파조다. 이보는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마면 사람인 소행진과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고 가산을 정리하여 군량과 병기를 마련한 후 금산에 주둔한 왜진으로 향하였다. 당시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점령하여 군량미를 조달하려고 금산을 거쳐 배티재로 향하고 있었는데 왜군 1만 6,000여 명이 배티재를 넘으려 할 때 광주목사 권율이 이끄는 1,500여 명의 전라도 군사들과 소행진과 이보가 이끄는 부대를 비롯한 농민 의병군이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보와 소행진은 4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온종일 수적으로 우세한 왜병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 후에 사헌부지평으로 증직되었다.
☛연안이씨 의병장 이보
이보(李寶)[?~1592]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거(伯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이수장(李壽長)이고,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이기(李巙)이다. 아버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정화(李廷華)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동생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묵재(黙齋) 이귀(李貴)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보는 같은 금마면 사람인 소행진(蘇行震)과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고 가산(家資)을 정리하여 군량과 병기를 마련한 후 금산(錦山)에 주둔한 왜진(倭陣)으로 향하였다. 당시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점령하여 군량미를 조달하려고 금산을 거쳐 이치(梨峙)[배티재]로 향하고 있었다. 코바야카와[小早川秀秋]가 이끄는 왜군 제6군 1만 6000여 명이 이치를 넘으려 할 때, 이에 맞서 광주목사 권율(權慄) 등이 이끄는 1,500여 명의 전라도 군사들과 소행진의 부대를 비롯한 농민 의병군이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보와 소행진은 4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온종일 수적으로 우세한 왜병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보는 사망한 뒤 사헌부지평에 증직(贈職)되었고, 1754년(영조 30) 정려(旌閭)를 하사받았다. 1843년(헌종 9)에는 현 익산시 은기동에 있는 은천사(隱泉祠)에 소행진, 동생 이귀와 함께 배향되었다.
---향토문화전자대전---
연안이씨 의병장 이보의 동생 이귀(李貴 1557 ~ 1633)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옥여(玉汝), 호는 묵재(默齋). 세조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의 5대손으로, 대호군 이수장(李壽長)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기(李夔)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에 추증된 이정화(李廷華)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청송부사 권용(權鎔)의 딸이다.
연안 이씨 가문은 조선 전기에도 꾸준히 관리를 배출하기는 했지만 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권세 가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귀가 인조반정의 최고 주역이 되고, 그의 두 아들 시백(時白)과 시방(時昉) 역시 반정에 참여하여 부자가 함께 공신으로 책봉되면서 명문가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귀의 처가 또한 명문이었다. 부인 인동(仁同) 장씨는 장민(張旻)의 딸로, 장민은 이괄을 난을 진압하여 일등공신에 오른 장만(張晩, 1566~1629), 인조반정의 이등공신 장돈(張暾)과 사촌이었다. 장만의 사위 최명길도 이귀와 교분을 가지며 인조반정의 1등 공신에 오른 것을 보면, 이귀는 인조 정권의 서인 핵심 세력임을 알 수가 있다.
이귀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충청도 쪽으로 내려갔다가 14살이 되어서야 서울에 올라왔다. 이후 이이와 성혼, 윤우신 등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이덕형(李德馨, 1561~1613)과 친분을 유지했다. 이항복은 이귀가 서울로 올라온 후 이웃으로 친해져서 ‘밤새워 놀다가 이별을 아쉬워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덕형과는 윤우신의 문하에서 같이 공부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이항복과 이덕형은 선조대에 이귀가 스승인 이이와 성혼을 변론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동인들의 공격을 받자 이귀를 옹호하였고, 이귀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도 녹봉을 덜어서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귀는 1582년(선조15) 생원시를 거쳐, 1603년(선조36) 문과에 합격하였다. 장성현감, 김제군수 및 이조와 병조의 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김제군수 시절에는 부안의 명기 매창(梅窓, 계생이라고도 함, 1573~1610)의 연인이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허균의 문집에는 ‘매창은 이귀의 정인(情人)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립운동가 의병장 소행진(蘇行震)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행진은 같은 금마면 출신인 이보(李寶)와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고 가산(家資)을 정리하여 군량과 병기를 마련한 후 금산(錦山)에 주둔한 왜진(倭陣)으로 향하였다. 당시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점령하여 군량미를 조달하려고 금산을 거쳐 이치(梨峙)[배티재]로 향하고 있었다. 코바야카와[小早川秀秋]가 이끄는 왜군 제6군 1만 6000여 명이 이치를 넘으려 할 때, 이에 맞서 광주목사 권율(權慄) 등이 이끄는 1,500여 명의 전라도 군사들과 소행진의 부대를 비롯한 농민 의병군이 전투에 참여하였다. 소행진과 이보는 4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온종일 수적으로 우세한 왜병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 당시 소행진은 아버지의 상(喪)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상복을 입고 전투에 출전하였다고 한다. 소행진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아들인 소계와 소동 또한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당시 친정인 강화에 머물고 있던 소동의 아내 여흥민씨(麗興閔氏)도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조정으로부터 열녀 정려가 내렸다. [상훈과 추모] 1783년(정조 7) 소행진은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증직되고 정려(旌閭)를 하사받았으며, 1843년(헌종 9)에는 현 익산시 은기동에 있는 은천사(隱泉祠)에 이보와 함께 배향되었다. 금마면 서고도리 서계마을에 소행진충신각(蘇行震忠臣閣)이 남아 있다.
→소행진은 본관이 진주(晉州). 소세득(蘇世得)의 증손. 임진왜란에 같은 고향 사람인 이보(李 寶)와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 왜진(倭陣)으로 싸우려 나아가다가 진산 배재(梨峴)에서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큰아들 계(繼)가 발상 3일 후에 진산으로 달려가 또한 전사하니 차자 동(同)이 형의 전사 소식을 듣고 적진에 달려가 또한 전사하므로서 3부자가 모두 순국하였다. 이 때 차자의 부인 민씨는 강화의 친가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절사(節死)하였다. 이같이 온 가족이 절사하여 자손이 끊어져 그의 공적이 잊혀져 오다가 정조 7년에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증직하고 정려(旌閭)가 내렸다. 익산군 팔봉면 은기리 은천사(隱泉祠)에 배향되었다.
---향토문화전자대전---
☞물과 건강
(관동의대 제일병원 가정의학과 오한진)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물과 공기인데, 특히 물은 모든 생명 탄생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물은 체중의 55~60%를 차지하며 하나의 영양소로 인체의 가장 중요한 물질이다. 사람은 몸의 지방과 단백질의 절반이 사라져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체내 수분의 10%가 감소하면 위험한 상태를 초래하고, 20~22%가 부족해지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즉 60kg의 성인은 약 36리터(60%)의 물이 우리 몸에 있으며, 0.6리터만 없어져도 갈증을 느끼고, 5~6리터가 없어지면 혼수상태, 10~12리터 정도를 잃으면 사망한다. 따라서 우리 몸은 수분의 섭취와 배설이 균형을 이루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성인은 하루에 호흡, 땀, 소변, 대변을 통해 약 2,500cc의 물을 배출하므로 이만큼의 수분을 매일 섭취해야 한다.
즉 물의 하루 필요량을 살펴보면 우리 신체가 하루에 배출하는 수분 양만큼 물을 보충해 주면 된다. 성인은 하루 종일 호흡으로 0.5리터, 땀으로 0.5리터,피부로 0.5리터, 그리고 대소변으로 약 1.6리터가 배출된다. 모두 합해서 약 3.1리터 정도가 빠져나간다.
또한 우리는 매일 음식을 통해서 1~1.5리터의 수분을 섭취하고, 몸에서의 수분 재활용(세포 대사 중에 생긴물)을 통해 약 0.1리터 정도 이용한다. 따라서 이 외의 부족한 1.4~2리터의 물이 더 필요하다. 물을 얼만큼 마셔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하루 활동량이나, 체중, 날씨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또한 당연한 이야기지만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물도 더 많이 필요하다.
물이 우리 몸에서 하는 작용은?
1) 체내 영양소의 공급과 노폐물 제거에 관여한다. 물은 용매로서 작용한다. 즉 여러 영양소를 물에 녹여 체내에서 운반하고 또 조직으로부터 노폐물을 제거한다. 수분은 피부와 호흡기로부터 증발되어 체온조절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람의 신장은 수분조절 기능이 있어 물의 섭취량이 부족하면 소변량이 크게 줄고, 반대로 물의 섭취량이 많으면 소변량이 늘어남으로써 자체 조절을 한다. 체내 수분이 조금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는 것은 신진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노폐물, 즉 암모니아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암모니아는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간에서 독성이 약한 요소(urea)로 전환시켜 소변으로 배설한다.
2) 체온조절을 한다.
영양소(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대사 과정에서 우리 몸에 열이 만들어 진다. 이 열을 낮추기 위해 피부에서 수분을 발산시켜 체온 조절을 한다. 물은 체내 화학 반응에 관여하는 효소 작용의 최적 온도인 36.5℃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루에 약 1㎏의 수분이 증발한다.
3) 신체 조직의 구성성분이 된다.
각 세포와 조직 및 혈액 임파액의 구성성분으로 물이 포함된다. 지방은 20∼25%, 골격에는 10∼25%, 근육에는 75%가 포함된다. 또한 사용하고 남은 에너지를 지방, 또는 글리코겐으로 지방이나 간 조직에 저장할 때 반드시 수분이 포함된다.
4) 식욕과 음식 섭취에 영향을 준다.
우리 몸에 있는 수분은 독성물질 배출을 위한 희석제 역할을 한다. 또한 체내 수분이 조금만 부족해도 혈액의 염분 농도가 높아져 갈증이 난다. 즉 체내 수분량이 약 10% 감소하면(또는 음식을 짜게 먹은 경우)갈증을 느끼면서 입이 마르고 뇌에 있는 갈증 센터(hypothalamic thirst center)를 자극한다. 혈액 속의 수분이 부족해지면 농도가 높아져 다른 조직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되고, 이에 따라 침의 생성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갈증이 심해지면 식욕 감퇴로 이어져 영양 섭취에도 영향을 준다.
5) 소화액과 여러 분비물의 주요 구성성분이 된다.
위의 분비물과 타액, 췌장에서 분비하는 소화액은 98%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절 액과 양수를 구성하며, 이는 외부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위와 장의 음식물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여 변비를 예방한다.
나이에 따른 체내 수분의 변화는?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수정이 되었을 때의 수정란의 97%는 수분으로 구성된다. 이후 임신 초기 태아로 성장하면서 80%, 임신 중기 70%, 아기로 태어나면서 약 65%, 청소년기 60%를 거쳐 50대의 나이가 되면 50% 정도의 수분이 우리 몸을 구성한다.
즉 사람이 노화하면서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수분의 량이 감소한다. 따라서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다면 우리 신체는 노화가 빨리 올 수 있다.
탈수, 즉 수분 부족은 어떤 현상을 유발할까?
신체 내에 물이 부족한 경우를 탈수라고 하며 주로, 설사나 구토, 발한, 수분 섭취가 부족한 경우에 나타난다. 탈수상태가 되면 처음에는 수분이 주로 혈액에서 감소하고, 점점 심해지면 세포를 구성하는 수분까지도 부족하게 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 성분이 2~5% 감소되면 뇌에 존재하는 갈증센터가 즉각 확인하여 먼저 갈증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우리 몸은 이미 수분 부족으로 인해 입술이 마르고 기운이 없고 맥박이 빨라지고 체온이 올라간다.
이러한 증상은 물을 보충하면 사라진다. 만약 수분 감소와 함께 나트륨, 칼륨과 같은 전해질이 감소한 경우엔 물과 함께 전해질도 보충해야 한다. 갑작스런 체액의 감소와 함께 나트륨의 감소가 발생한 경우에는 혈액과 세포 사이의 균형이 깨져 혈액 순환을 구성하는 혈액의 양이 감소한다. 따라서 혈압이 떨어지고, 허약감, 무감각, 근육 경련, 근육 부종, 어지러움 등이 발생하고 심한 경우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증상부터 혼수상태까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무더운 여름철심한 노동이나 운동으로 인한 갑작스런 땀의 증가는 수분과 염분의 손실로 인한 문제 발생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보충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은 어떻게 마시는 것이 좋을까?
날씨가 무덥거나 많은 신체 활동량으로 인해서 땀을 흘렸다면 물은 평상시보다 많이 마셔야 하는데,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소변 횟수가 줄어들고 소변 색깔이 짙어지면 몸의 수분이 부족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 신장 기능이 정상일 경우는 물을 많이 마시더라도 2시간쯤 후에는 소변을 통해서 대부분이 배출이 되지만 한꺼번에 많은 물을 마시게 되면 저나트륨 혈증이 발생하여, 뇌가 붓는 뇌부종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저나트륨 혈증이 발생이 되면 구역질, 현기증, 두통, 근육경련등이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의 부종이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갈증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0.5리터 이상의 물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는 것은 이미 늦은 때라고 한다. 미리 자주 물 마시는 습관이 필요하다. 변비가 있다면 아침 시작을 물로 하면 좋겠다. 물을 마시면 장운동이 활발해 지기 때문이다. 식사 30분 전쯤 물 마시기는 공복감을 줄여줘 과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출출할 때, 피곤할 때, 졸릴 때도 바로 수분 섭취가 필요한 경우이다. 하지만 취침 전에는 수분을 많이 섭취하면 소변 때문에 잠을 설칠 수 있으니 가볍게 반잔 정도의 물이 좋다.
생물학적으로 사람에게 하루에 필요한 물의 양은 체중 1kg당 30ml라고 한다. 체중이 60kg인 사람이라면 1일에 약 1.8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여기에 운동이나 신체적인 활동에 필요한 물의 양을 200cc 정도 더해주면 1일에 필요한 물의 총량은 약 2리터가 된다. 그래서 하루에 열 잔 정도의 물을 마셔야 되는 것이다.
사람은 체내의 물 중 1/3을 잃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체중이 60kg인 사람의 몸에는 체중의 2/3가 물이다. 즉 40리터가 물인데 이중의 1/3이라면 약 13.3리터가 된다. 인체는 매일 약 800~1리터의 물이 소변이나 땀 등으로 배출되므로 사람이 물 없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약 15일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 정도의 단계에 이르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할지라도 장기에 손상을 입을 수 있고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즉 건강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은 사람의 생명활동을 위해서 꼭 필요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물은 우리 몸의 모든 기능에 관여한다. 인체의 모든 장기와 세포의 주된 구성원은 바로 물이기 때문이다. 뇌세포의 85%, 혈액의 82%, 근육의 75%, 뼈의 25%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인체의 수분이 극도로 부족해지면 생명을 잃게 되고 부족하기만 해도 노화현상이 일어난다. 사람의 피부 또한 물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촉촉하고 건강한 피부를 위해서는 물을 자주 마셔주어야 한다.
땀과 건강
땀을 보면 건강이 보인다.
조물주는 인체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고 체내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땀’을 선물해주었다. 그래서 땀이 어떻게 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 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다.
땀이 잘 나야 건강하다.
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체온조절이지만 노폐물 배출이라는 다른 기능도 있다. 그래서 땀이 잘 난다는 것은 피부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피부과 의사들에 따르면 아토피나 건선 같은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평소 땀이 잘 안 난다고 한다. 땀과 함께 모세혈관 속 노폐물들이 빠져나가는데 이와 같은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우나나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피부가 매끈매끈해진 느낌이 들지 않던가. 땀을 적당히 흘려야 전신의 노폐물도 잘 배출되고 피부 표면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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