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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신효정
포지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Project Coordinator)
파견 국가: 키르기스스탄
활동 지역: 바트켄
활동 기간: 2023년 9월 – 2023년 12월
키르기스스탄 바트켄 현장 사무소 앞에서 동료 직원들과 함께한 신효정 활동가 ©신효정/MSF
‘국경없는의사회’라고 하면 의료계 인력들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현장에는 의료인력과 비의료인력 비율이 반반쯤 됩니다. 이 중 비의료인력으로서 프로젝트 현장의 총괄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자리에 한국사무소를 통해 현장에 나가서 활동한 분은 2012년 한국사무소 설립 이후 사실상 이번이 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직책 설명을 먼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일반적으로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현장국가 내 총괄 수장으로 “헤드오브미션(Head of Mission,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소식에서 ‘현장 책임자’로 표기)”이라는 직책이 있고, 그 아래 개별 프로젝트가 운영되는 현장의 총괄 책임은 “프로젝트 코디네이터(Project Coordinator)”가 맡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해당 지역에서 운영되는 긴급의료구호 프로젝트의 수장으로서 각각의 책임 부서(의료, 인사, 재무, 운송, 물자 등) 담당자들과 함께 현장 사무소를 운영합니다. 따라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국가 내 ‘현장 책임자’에게 보고하면서 해당 프로젝트 관련 모든 실무 결정권과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물론 의료분야 지원에 특화된 조직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분쟁이나 재해가 발발한 곳에 의료 인력이 도착한다고 해서 갑자기 병원 시설이 생겨나거나 수술대가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타국 출신 활동가들이 긴급 현장에 도착할 때는 기본적인 의식주나 활동 현장의 안전보장은 물론 필수적 의료 관련 물품도 준비되어 있어야 활동이 가능하고, 프로젝트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현지 의료· 행정· 보건· 교육 등 관계 당국과 협력 체계 역시 제대로 구축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쨌든 모두가 사람이 조직을 이뤄 하는 일이다 보니 이에 보편적으로 필요한 업무 기반은 물론, 특수한 상황에 맞는 부가적 요구사항이 항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그런 프로젝트의 전체적 진행과 현장 사무소 운영 부문을 총괄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현장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과거에 십수 년간 타 기관의 구호현장에서 비슷한 직무를 수행한 경력을 인정받아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키르기스스탄 활동 현장에 한국사무소에서 활동가를 파견한 것도 사상 최초입니다.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궁금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키르기스스탄 2022년 활동 지역 ©MSF
제가 담당했던 프로젝트는 키르기스스탄의 바트켄 주 안에 있었습니다. 해당 현장은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구소련 붕괴 후 불명확한 영토 관계로 인해 계속 소요사태와 국가간 분쟁이 발발하던 곳입니다. 사실상 ‘국경없는’ 지대였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2021년에 이어 2022년 9월에는 수백 명 사상자와 십여만 명의 실향민이 발생할 정도로 큰 유혈 분쟁이 발생한 겁니다.
다행히 키르기스스탄의 다른 지역에서 의료구호활동을 하고 있던 국경없는의사회가 사태가 발생한 직후 바로 바트켄 주에 인력을 투입해 긴급대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3개월 긴급대응 구호활동이 시작되었고, 해당 지역의 수요를 자세히 파악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바트켄 주 국경분쟁 대응 프로젝트가 가동되었습니다.
바트켄에서 인근 대도시 라자코프(예전 명칭 이스파나)로 가는 길목 자유로이 도로 경계를 넘나드는 동물 무리 ©신효정/MSF
해당 지역은 키르기스스탄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에 속하며(2021년 기준 키르기스스탄 국가 전체 빈곤율은 33%, 바트켄 주의 경우 약 40%를 기록했다. *출처: 키르기스스탄 통계청) 기본적 국가 인프라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하는 열악한 생활환경입니다.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초기부터 이동진료소 운영도 많이 하고, 실향민들을 위해 현지 호스트 커뮤니티(host community) 지원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국경지대 작은 진료소들에 이런 사태 대응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훈련도 실시하게 됐고요. 예를 들면 응급의학과 활동가를 배치해 현지 관계 인력에 해당 역량강화 프로그램 참여 기회를 주는 거죠. 특별히 너무나 열악한 현지 의료인프라 수준과 일촉즉발의 국경지대 긴장상황을 고려해 유혈분쟁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대량재난사태(Mass Casualty Incident) 대응 역량 강화, 그리고 병원과 보건소 재건 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국경지대 보건소와 병원 인력 대상 대량 재난사태 대응 역량 강화 ©MSF 키르기스스탄 바트켄 팀
본격 분쟁 당시 국경지대에서는 학교들마저 폭격 대상이 되기도 해서 주민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했기에 정신건강 지원 역시 프로젝트 후반부로 갈수록 중요한 프로젝트 구성요소가 되었습니다. 낙후된 산악 지역의 의료보건 상황 개선을 위해 정부·학교 인력을 포함하여 한국으로 치면 보건소 단위 지역 공동체 자원봉사자들의 역량강화를 지원, 공동체 차원 회복력 강화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12월 말일자로 바트켄 프로젝트는 종료되어 제가 현장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폭격 피해가 있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 대상 심리사회적 교육을 실시하는 모습 ©MSF 키르기스스탄 바트켄 팀
프로젝트가 종료됐군요? 국경없는의사회는 여러 종합적 판단 근거에 기반헤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거나 종료(*관련글 읽어보기)하는데, 실제적 종료 과정에 대해 한국어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처음입니다.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한 긴급 대응을 정체성으로 가지는 단체로써 국경없는의사회는 지금 제일 필요한 곳에 자원을 쓰고자 노력합니다. 투명한 프로젝트 운영과 재정 집행 결과보고도 후원해 주시는 분들에 대한 당연한 의무이고요. 흔히들 프로젝트 하나가 가동되는 전체 사이클 중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가 바로 프로젝트 종료라고들 합니다. 특히 이번 바트켄 프로젝트의 경우 조기종료 결정이 되고 나서 현지 직원들의 정신적 충격은 물론 철수 완료까지 시간적 제약이 있어 더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함께 일하는 다국적 동료들이 세계 곳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종료 과정을 먼저 경험하고 온 베테랑들이라 여러 귀중한 조언을 들으며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프로젝트 철수는 많은 사람과 기관들이 얽혀 있는 과정이다 보니 여러가지 돌발 변수나 긴장 상황이 생기고 신경써야 할 일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프로젝트를 새로 열 때와 마찬가지로 현지 프로젝트 유관기관 및 정부 행정기관들과 협의나 승인 절차가 마치 줄다리기처럼 오래도록 이어지기도 합니다. 현장 현지 직원들의 경우 새 일자리를 찾도록 지원하기도 하고요.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종료할 때 활동 내역 관련해서는 대부분 추후 현지 사정에 문제가 없도록 관계기관에 충분히 소통을 하고 필요 활동을 인계합니다. 의약품, 의료기기, 사무 집기 등 자산의 경우 지역에서 협력한 병원과 학교, 지역사회에 기부하고요. 사무소와 직원 숙소의 물품들은 제비뽑기로 현지 직원들에게 배분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사람들이 ‘톰볼라’라고 부르는 절차도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바트켄 현장 사무소 모습 ©신효정/MSF
현장 활동 중 대체적인 생활 환경은 어떠셨는지요?
원래 국경없는의사회는 중립성 유지를 위해 군 주둔지 인접 지역에 활동 근거지를 두지 않으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현장 사무소 근처가 군부대 주둔지로 결정되어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소, 군부대, 병원이 나란히 위치하게 된 특수한 상황이었습니다.
숙소는 사무실과 약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7시에 일어나면 7시 반에는 사무소로 출근했습니다. 사무실 옆에 아침마다 빵을 구워 파는 분이 있어서 거기서 빵 하나를 사서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신선한 카이막을 발라 먹으며 아침식사 삼고요. 점심, 저녁 식사는 숙소로 다시 돌아와 공용 부엌에서 직접 요리해 해결했습니다. 이슬람 문화 국가라 돼지고기는 볼 수 없었고 현지 요리가 소고기가 주가 되는데 맛이 짜다고 느껴져 저는 주로 직접 한국 요리를 해먹는 편이었습니다. 사무소에서 주로 요리 일을 하시던 분이 전직 간호사 출신 어르신이었는데, 한국에서 온 저를 위해 유튜브로 보시고 직접 김치를 만들어 주셨던 기억을 잊을 수 없네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밖에도 멀리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직원들을 위해 마치 가족같은 마음으로 살뜰히 챙겨 준 직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저녁 식사나 주말의 경우에는 활동가들이 모여 서로 그날그날의 현장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솜씨를 발휘하여 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기도 했고요.
주말에는 근교로 나들이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저로서는 주에 한 번 현지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는데요, 현지 주민들이 본인들과 외모가 비슷하다고 느껴서인지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특별히 더 정감있게 대해줬습니다. 특히 키르기스스탄에서도 한국드라마와 K팝이 인기가 많아서 확실히 그 영향도 컸고요. 사무소가 있던 라자코프뿐만 아니라 바트켄 주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기관은 국경없는의사회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의 다국적 직원들이 거의 유일한 외국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해서 지역민들이 더 잘 알고 있었죠.
현장 사무소 근처 아침마다 빵을 구워 파는 가게 전경 ©신효정/MSF
활동하면서 느끼셨던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이 프로젝트를 위해 현지 행정 및 치안 담당자들과 직접 교섭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신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현지 치안 기관 담당자를 만나 프로젝트 인력 안전 담보를 확인받는 일입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우리로 치면 시장이랄까 역내 행정 담당자는 물론 보건부나 교육부 등의 유관 기관 담당자들과 해당 병원장 등을 주기적으로 만납니다. 그동안 우리가 무슨 활동을 하고 있다는 등의 정보를 공유하고, 앞으로 어떤 활동이 예정돼 있다고도 알리고, 필요한 허가와 협조를 요청해두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한 애로사항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국제구호기관으로써 국경없는의사회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를 존중하고 좋아해줘서 역시 감사했습니다.
바트켄 지역 마을에서 보건증진과 스트레스 관리 교육을 진행하는 국경없는의사회@Guliza Urustambek kyzy
그렇다면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장 프로젝트 책임자 역할에서 느낄 수 있던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이었나요?
함께 일한 팀원들과 같은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저희가 사실 프로젝트 종료 준비를 하느라고 12월은 주말에도 계속 나와서 일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아침 8시부터 저녁 7-8시까지요. 그럼에도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는 활동가가 없었습니다. 각자가 스트레스 받는 걸 아니까 다들 서로 좀더 이해하려고 하고, 힘든 상황이 발생해도 웃으려고 노력하며 지냈습니다. 모두가 여러 급박한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페셔널한 인도주의 활동가들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장 사무소 직원들이 모두 34명이었는데,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저를 신뢰하고 지휘를 잘 따라주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해도 큰 차질없이 오히려 일정을 당겨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가 긴급 대응과 의료인력 역량강화에 특화된 국제 구호 조직으로써 정신건강 측면을 중요하게 다뤘다는 점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항상 활동지역 환자 및 주민들의 정신건강을 주요 프로젝트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점도 다른 단체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지 수요에 기반한 유연한 프로젝트 운영도 그렇고요.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해당 지역에 또다시 긴급대응 수요가 발생한다면 국경없는의사회는 다시 그곳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될 겁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종료한다고 해서 무책임하게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라도 국경없는의사회 철수 이후에 발생할 긴급사태를 대비하여 1,000여 명 대상 응급 대응이 가능한 의료키트와 긴급구호물자, 의료 텐트, 컨테이너 등을 배치해 두고 나왔습니다. 바로 긴급대응팀이 연락할 수 있는 현지 정부, 병원, 경찰 등 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준비해두고 온 것도 당연합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바로 긴급 상황에서 대응 활동을 할 수 있게 대비하는 부분(Emergency Preparedness)이야말로 바로 오랜 세월 전 세계 긴급 구호현장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 축적된 국경없는의사회의 강점입니다.
활동가님의 다음 계획은 무엇입니까?
우선 한국에서 재충전을 하고, 다음 현장은 우크라이나로 결정되어 있기에 곧바로 다시 출국합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특수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간다는 국경없는의사회 철학에 기반한 우크라이나 현장에서의 의료구호활동 역시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3년 7월 11일 약 30여 명의 바트켄 지역 마을 자원봉사자들이 국경없는의사회의 비상사태 아동을 위한 심리적 응급처치와 지원 등에 관한 훈련에 참여했다. @Guliza Urustambek kyz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