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소 : 무등산 약사암
일 시 : 2022.10.27(목) 10시,
참 가 : 강공수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장휘부 등 9명
불 참 : 김상문(실습 중) 김영부(병원 치료) 정원길(수업 중) 최문수(당분간 쉼)
회 비 : 90,000원
식 대 : 72,000원(애호박찌개 6, 청국장 2, 김치찌개 1)
잔 액 : 18,000원
이월 잔액 : 285,000원
총 잔액 : 303,000원
부곡정에는 이용환과 김재일이 먼저 와 있었다. 이어서 나종만 박남용 윤정남 강공수 윤상윤등이 도착하였다. 나까지 8명이 되었다.
나종만이 산행을 하기 전에 먼저 발표할 것이 있다하여, 그에게 발표할 시간을 주었더니, 그간에 우리 동창생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였던 남도기원을 운영하던 정은채가 서울로 떠나가게 된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까지 우리 동창생들의 사랑방으로 애용되던 남도기원을 운영하던 정은채가, 전립선 이상으로 치료를 위해 광주를 떠나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가서 치료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불가피 남도 기원을 정리 하게 되었으며, 남도 기원을 살려 보려고 바둑을 취미로 하는 일부 친구들이 백방으로 살려보려고 모금(募金)하여 장소 임대 등의 방법을 모색하였으나, 항상 기원에 상주하며 운영해 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원을 폐쇄(閉鎖)하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稅)로 얻은 기원을 원상 복구(생활가구와 바둑판 정리 등)해 놓는데 드는 비용만도 60~70만원이 들어서 그런 절차를 10월 21일(金)까지 모두 마쳤다고 합니다. 22일(土) 나종만이 정은채가 있는 텅 빈 기원을 방문하여, 남도기원을 출입했던 친구들끼리 십시일반으로 모금한 송별금 30여만 원을 정은채에게 전달하였는데, 마침 홍석소가 와서 점심을 사면서 조촐한 송별회로 석별을 정을 나누었답니다. 그날 오후에 정은채는 딸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향하는 것을 보고 나종만도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23일(日) 나종만이 서울로 올라간 정은채와 통화하였는데 수술을 할지 약물치료를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없어져버린 십오야 사랑방을 되살리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숙고하여 최선의 방책을 강구할 것이라 합니다.
10시 10분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그간에 3주 동안이나 결석했던 윤상윤이 부인의 병세를, 대장내시경검사부터 입원하여 용종제거 수술을 거쳐 퇴원하기까지를 상세히 보고하였습니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아내의 소중함을 못 느끼다가 늙어가면서 아내에 대한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는 것처럼, 그가 하는 말 속에서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저절로 풍겨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의 나이 대(帶)에는 건강검진을 반드시 대형병원에서 받아야 혹시라도 병이 나타났을 경우에는 대형병원의 장점을 살린 병의 진료 및 치료비용의 절감 혜택 받을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검사기관과 진료기관이 다르면 비용혜택을 받을 수 없음)
졸졸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지나가는데,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산행객들의 복장에서 먼저 가을이 왔음을 그냥 알 수 있었습니다. 올라갈수록 오색 물결로 치장을 시작한 증심골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한국의 가을하늘은 하느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 미주 중국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가을하늘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목구비 등 오감(五感)으로 느껴지는 우리나라만의 정취(情趣, 분위기와 감정)를 우리는 이 무등산 증심골에서 느끼면서 약사암까지 올라갔습니다. <은단풍나무 숲 그늘>에 쉬면서도 증심골의 정취는 느껴졌습니다. 숲 그늘 벤치에 삼삼오오 짝지어 앉아 도란거리는 산행객들의 모습이 한결 정다워 보였습니다. 약사암의 단풍도 이제 완연한 가을 모습을 자랑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암자 앞으로 바라보이는 새인봉(璽印峰)도 가을이 왔음을 색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봄철의 연록색에서 여름철의 진녹색을 거쳐 이제는 어느덧 황록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11시 20분에 하산하여 우리가 금주의 노래를 부를 정자에 도착하였습니다. 먼저 기습곡(이태선작사 박태준작곡 <가을밤>)을 불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강공수가 오늘 부를 <여수(旅愁)>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였습니다. 여수(旅愁)의 원곡은 미국민요 <Dreaming of Home and Mother>이고, 작사 작곡을 한 <존 오드웨이(John Pond Ordway, 1824~1880)는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의사로 작곡활동도 활발히 하였으며, 1851년에 작곡된 이 노래는 가사에서 풍기는 느낌 때문에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병사들에게서 많이 불리었으며,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지금은 미국에서 거의 잊혀져있는 노래라고 합니다.
이 노래는 일본(제목, 여수旅愁)을 거쳐 우리나라(제목, 여수旅愁)와 중국(제목, 송별送別)에서, 각 나라의 노래 제목과 같은 번안곡(飜案曲)으로 각국의 교과서에 실려서 많이 불리고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이연실이 가요풍으로 불렀고,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화순 국화향연을 구경하기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