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신안군의 어느 작은 섬에 있는 성당을 찾아갔다 그곳에 오래전부터 알던 신부님을 만나러 간것이다
안산에서 무작정 목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갔다 어떻게 그섬으로 들어갈지는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그리고 목포터미날에서 내려서 식사로 요기를 한다음에 가까운 버스정류장에 나가서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분은 그곳에 봉고차를 세워두고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야기는 여러차례 했는지 모를일이지만 저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에 오늘도 또 묵상해봅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봉사차를 몰고 온 사람은 섬으로 일하러 갈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까 덩치가 우리와는 다른 중년정도의 외국 아줌마들이 타려고 온 것이다 봉고차를 몰고 오신분은 제가 그섬으로 간다는 것을 아시고 마침 자신의 사무실이 그 근처이니 걱정말고 타시면 그곳까지 모셔다 준다고 하셨다
다행히 안전하게 신부님을 만날수가 있었다 아주 아담한 성당이다 자은도성당 그곳에서 신부님이 홀로 사목을 하시고 수녀님도 계시지 않으신다고 했다 신안군에는 수없이 많은 섬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때당시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있는 섬과 그나머지의 여러섬은 두구역으로 나누어서 신안군에서 목포가까이에 있는 지역은 3개의 성당에서 여러공소와 더불어서 사목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가까운 공소에도 가셔서 미사를 드리시고 있었다 그 섬의 신안군에서는 큰 규모인것 같았지만 상주인구가 2000여명이었지만 신자수는 정확히 몰라도 미사참례하는 신자수는 단 몇십명에 불과했다. 신부님은 주보등 모든것을 다 직접하셨다 주일 미사후에는 그 섬이 다른 섬들과 달리 산이나 언덕이 없는 넓은 평야여서 바다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신자들과 1~2시간정도 돌레길을 다니신다고 하셨다
그이후에 문경으로 귀농해서 문경읍에 있는 문경성당을 다니게되었다 제가 살던 곳은 문경읍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큰길가에 있었기에 성당까지는 걸어서 2KM남짓해서 가서 평일 저녁미사와 레지오 그리고 기도모임에 참여하고 주일미사에도 참여했다 성당에서 대략 2~3KM 떨어진곳에 교우들이 사시기에 성당까지는 봉고차가 운행되었다 처음에는 한시간전에 집에서 나와서 걸어서 갔는데 차츰 얼굴이 알려져서 봉고차에 빈자리에는 주일미사후 집으로 돌아갈떄에 이용하였다
평일은 문경세재에 사시는 레지오단장의 승용차를 타고 다닐수가 있었다
문경성당은 2군데의 공소가 있었다 주일미사에 오는 신자들중에는 가까운 문경읍내에 사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저보다 더 먼 3KM떨어진 곳에 사시는 분도 계셨다 성당관할지역에서는 여러곳에 흩어진 교우촌들이 있었던 자리가 남아있었기에 그곳에 대형십자가와 십자가의 길 성물과 미사를 드릴수 있는 제대가 있을정도로 열악하였는데 그것도 성당의 헌신적인 몇분들이 이곳을 관리하면서 본당내에 시설을 운영했다
가을이면 이런 교우촌의 흔적이 남아있는 성지를 찾아다니는 순례객이 많아서 본당식구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와서 성당에는 주말에 그들 순례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한다
농촌특성상 본당에 나오는 분이나 공소에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이었다 저와 비슷한 연령이나 조금 적은 형제들이 대부분의 일을 하고 계시면서 본당이나 공소운영이 참으로 기적같이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문경은 도농복합도시여서 문경군과 점촌시가 합쳐서 문경시가 된 것이다 다른지역으로 나가는 시외버스는 문경읍이나 점촌에도 있지만 큰 정류장은 점촌시였고 문경읍에서 40KM떨어진 거리였지요 다른곳에 나가거나 들어올떄에 점촌시외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오게 되는데 그곳에서 문경읍까지 대략 30분정도 버스를 타고 왔다가 다행히 문경새재로 가는 버스가 있으면 타고 그렇지 않으면 2KM정도 걸어서 돌아갔다 점촌시에서 오는 버스는 대략 30분남짓걸리지만 때로는 그사이의 자연부락을 다 돌아서 가는 경우에는 1시간 남짓 걸리게 된다 그곳은 인구수에 비해서 자연부락의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하는 신앙생활이 너무 어렵기도 하지만 아마도 저에게는 초대교회같은 정다움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구역사람들끼리 간혹 구역모임을 하게되는데 이또한 2~3KM떨어진곳에서 하기에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참여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면에서 볼때에 읍내에 가까이에 살면서 읍내에 있는 성당에 나오는 사람보다는 각지역에 떨어져 봉사하는 공소사람들이 더 헌신적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본당에서는 매달 한차례는 신부님은 공소에 가셔서 미사를 드리고 또 한번은 공소사람들이 본당에 오셔서 미사를 드리고 나머지는 공소분들이 사제없이 공소예절을 드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들 공소라하면 지방이나 낙후된지역에서 본당이되기전에 잠시 모이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요 점차 인구수에 비해서 교우수가 줄어들게 되면 대도시에서도 공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구역모임과 공소의 중간단계로 발전시켜서 구역장을 공소회장수준으로 양성시킨다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더 활성화될것입니다
저도 지금 잘 걷지 못해서 성당입구 언덕을 오르는데 몇번식이나 쉬어가면서 올라갑니다 대략 100M거리인데 말입니다 팔순의 할머니는 성당에서 대략 300미터 떨어진곳에 아파트단지에 사시는데 지팡이를 짓고 몇번이나 쉬었다가 가시곤했지요 그거마저 할수없는 이는 버스를 탈수도 없고 해서 그만다닌다고 합니다
공소에 대한 중요성과 이를 잘 알려서 활용하였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과거 호남지역에 오래된 공소들이 많았지요 오래전에 대전교구내에 어느 시골 폐교된 학교에서 머물면서 주일학교 여름캠프에 봉사자로 함께 했는데요 그곳에 오래된 공소건물이 있어서 건물안이 비가 새는데 그곳에 있는 긴의자와 천정에 페인트작업을 했지요 기아자동차 도장전문가가 배합해주면 긴막대기에 솔을 달아서 천장에 칠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페인트는 유성과 수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점차 농촌의 인구수는 줄아들고 그곳으로 파견될 사제수도 줄어들고 점차 열악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차량편이 없어서 떨어져있는 교우촌을 다니면서 하는 미사 그런 기록과 서술등을 지난 전주교구 잡지에 소개된글을 읽고 그리고 지금 소식지에 쓰인 사비오형제님의 글을 읽고 마음을 다시 잡아 봅니다
특히 오늘 6월 3쨰주 복음 묵상자료를 준비하면서 하늘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새겨봅니다 작고 소박한 일로 시작하는데 그일이 아주 놀라울 정도로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암흑의 박해속에서도 산간지역에서 사는 교우들이 품는 희망도 우리도 가져야 할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