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년 12월 24일, 거리마다 짤랑거리는 구세군 냄비를 뒤로 하면서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나와 마누라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지만 공항 리무진도, 공항도, 미국행 비행기마저도 빈자리가 많았다.
오후 6시 20분발 미국 샌 프란시스코 행 싱가포르 에어라인 비행기는 좌석이 반도 차지 않았고, 덕분에 10시간이나 걸리는 밤으로의 긴 여행은 그런대로 썩 편하게 한 셈이다.
샌 프란시스코에 도착은 같은 날 오전 10시였지만 수화물 하역기계가 고장 나는 바람에 정작 공항 밖으로 나온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아들 내외가 신혼살림 차린 것을 보러 먼 길을 날아 왔으니 마중도 당연히 아들 며느리가 함께 나와서 반겨주려니 잔뜩 기대를 하고 나왔는데 껑충하게 키만 큰 아들 녀석이 혼자서 반겨 맞는다.
50분쯤 달려 아들네 집에 도착하니 부엌에서 뭔가를 준비하던 며느리가 반색을 하며 맞이하는데 인사가 끝나자 마누라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얘, 나는 너희들 둘이 함께 공항에 나올 줄 알았는데 왜 혼자만 보냈니?”
“아유, 어머님 제가 오늘 5시에 일어나서 어머님, 아버님 오시면 잡숫게 하려고 음식을 준비하는데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거예요. 점심에 드실 갈비찜하고 버섯볶음을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려서 못 갔어요.”
대충 짐을 정리하고 씻은 다음 식탁에 앉으니 정말 갈비찜, 버섯요리, 몇 가지 나물무침이 나오는데 밥상이 꽉 찰 정도다.
그러나 긴 밤을 비행기 안에서 입에 안 맞는 음식 때문에 느글거리는 뱃속 탓에 갈비찜에는 영 젓가락이 가질 않는다.
그보다는 집에서 가져온 김장김치가 훨씬 속을 달래준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엄마가 담근 김치 맛이 그리워요.”하는 아들 녀석의 말 한마디에 감격한 마누라는 큰 통으로 두 개나 김치를 담아 짐을 꾸리는 바람에 돌덩이처럼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힘깨나 썼던 터였다.
두어 점 인사치레로 갈비찜을 먹고 점심을 끝내니 졸음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그러나 시차적응을 빨리 하기 위해서는 현지 시간에 맞추어 잠을 자야 하는 법, 억지로 잠을 참으며 얘기를 하자니 저녁메뉴는 쇠고기 바비큐인데 그러려고 새로 바비큐 기구도 장만하였고 숯불이며 벽난로에 땔 장작도 사다 두었단다.
술도 있느냐고 했더니 소주 한 병이 있단다.
“임마, 미국에 와서 양주를 먹어야지 소주 한 병가지고 되냐? 졸리기도 하고 그러니 술이나 사러가자.”
이윽고 저녁시간이 왔으며 아들은 베란다에 나가 바비큐 기구에 숯불을 피우고 며느리가 썰어준 고기를 은박지에 싸서 굽고 마누라는 고기 익히는 방법을 일러주느라 부산한데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얘, 나는 rare로 익힌 것이 좋다.”
고기는 두툼하게 썰어서 겉만 살짝 익히고 속은 붉은 색이 그대로인 채 약간의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익힌 것이 육즙의 맛도 살아있고 씹기에도 부드러우니라.
느글거리던 뱃속도 가라앉고 아들 며느리가 번갈아 따라주는 양주 반병에 기분은 하늘로 날아오를 듯하다.
아들이 이 집에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벽난로에 불을 지펴 보잔다.
은박지에 싼 장작하나를 꺼내 쇠 틀 위에 얹어 놓고 불을 붙이는데 기름에 절인 장작에 금방 불꽃이 피어나며 온 방안이 환하고 따뜻해진다.
이걸로 난방을 하는 것은 아니고 특별한 날에 분위기 조성용으로 만들어 파는 장작이란다. 오는 날까지 집에서 자는 날은 내내 이 장작 한 개비씩을 피웠다.
입맛에 맞게 익힌 고기에 양주로 얼큰해진 데다가 마누라와 며느리는 뭔가 열심히 도란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들이 벽난로에 불까지 때서 분위기를 잡아주니 예서 더 좋을 수는 없다.
소파에 편안하게 주저앉으며 노래가 나온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노래를 불러야지.
“From this valley they say you are going. We will miss your bright eyes and sweet smile..."
첫댓글 행복한 네식구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입니다.제2탄 기다려집니다.
또 읽어봐도 구수하고 가족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이제 구경 다닌 얘기도 좀 써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