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0월 22일 수요일
[(녹)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죄의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며,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6,12-18
형제 여러분, 12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14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
15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좋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6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종으로 넘겨 순종하면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여러분은 죽음으로 이끄는 죄의 종이 되거나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전해 받은 표준 가르침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18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9-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전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은 편한 대로 살다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회개하고 제대로 살면 되잖아!’ ‘어차피 죽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안 오실 거니까, 지금은 그냥 살다가 죽기 직전에 성당에 가서 성사 보면 되잖아!’ 이런 생각은 우리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쓸 때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동안에는 제멋대로 살면서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회개하고 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도 알 수 없지만, 우리 삶의 마지막 또한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불충실한 종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옛날에 성인들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잘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자신도 부활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하루, 그리고 우리가 지금 눈 뜨고 생활하는 이 하루는 어제 밤사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하루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맙게 여겨집니까? 오늘 하루가 새롭게 주어짐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이찬우 다두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얼마 전 반 모임에서 ‘휴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가 10월 13일에 출발해서 11월 7일에 돌아온다고 하니, 한 형제님이 그날 딸이 한국으로 간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딸은 태권도 선수로 한국의 전국 체전에 참가한다고 했습니다. 가는 길이 같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자매님은 11월 7일에 어머니가 달라스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좌석을 확인해 보니 제 자리와 가까웠습니다. 따님이 이야기하기를 “손에 묵주 들고 기도하는 분이 저희 어머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사제복을 입고 있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4시간 넘는 긴 여정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가는 길과 오는 길에 동행할 수 있는 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고 은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장거리 비행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론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정리하다 보면, 같은 시간이지만 무료한 시간이 아니라 은혜로운 시간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은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제에 이어 다시 한번 “깨어 준비하는 종”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 깨어 있음은 단순히 일을 미리 하는 것,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원 버스를 피하려고 일찍 걷는 것도, 학교나 직장에서 과제를 남보다 빨리 끝내는 것도 세상에서는 칭찬받을 수 있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깨어 있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성과와 능률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를 바라보는 삶입니다. 도시 빈민 사목을 오래 해 온 제 친구 신부님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큰 성과를 내는 사목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이들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추운 겨울 광장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뜨거운 여름에도 복직을 호소하는 이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눈빛은 여전히 맑고, 가슴은 뜨겁습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깨어 있는 종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를 읽으면서 문득 한용운 시인의 시 〈복종〉이 떠올랐습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 시의 주어를 ‘하느님’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신앙인의 고백이 됩니다. 우리는 자유를 아는 사람들이지만, 그 자유를 하느님께 기꺼이 내어드릴 때 참된 자유가 됩니다. 억지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드리는 복종이기에, 그것은 더 달콤한 자유입니다.
순교성인들은 행동으로 깨어 있었습니다. 기도로 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해의 순간에도 담대할 수 있었고,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히 질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분들에게 천상의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고인이 되신 저의 부모님 역시 늘 감사하며, 기도하며, 기쁘게 사셨습니다. 신앙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서 지금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도 그분들처럼 깨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는 그리스도를 삶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각 시대와 문화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했듯이,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분을 드러내야 합니다. 등불을 들고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 곧 우리의 삶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라틴어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 내일은 너). 우리가 언제 주님 품에 갈지 모르니 늘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과보다 의미를, 능률보다 가치를 바라보는 사람, 그래서 주님 앞에 언제든 담대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깨어 있는 종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등불을 밝히며 예수님을 맞이하는 종이 되면 좋겠습니다.
<만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믿으시는
만큼
주시니
믿는
만큼
드립니다
희망하시는
만큼
주시니
희망하는
만큼
드립니다
사랑하시는
만큼
주시니
사랑하는
만큼
드립니다
오늘의 성인
성 요한 바오로 2세(Saint John Paul II)
신분 : 교황
활동지역 :다수의 지역
활동년도 : 1920-2005년
같은이름 :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파울로, 파울루스, 폴, 후안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바도비체 (Wadowice)에서 탄생한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Karol Josep Wojtyla)는 1978년 10월 16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아버지 카롤 보이티와와 어머니 에밀리아 카초로프스카의 둘째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1929년에 세상을 떠났고, 의사였던 그의 형 에드문트는 1932년에 사망하였다. 폴란드 육군 하사관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9살 때 첫 영성체를 하고 18살 때 견진성사를 받았다. 바도비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크라쿠프(Krakow)의 야기엘론스키(Jagiellonski)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39년 9월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세력이 대학을 폐쇄하자 젊은 카롤은 독일로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석회암 채석장과 솔웨이(Solway) 화학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제 성소를 발견한 카롤은 1942년부터 아담 사피에하(Adam Sapieha) 대주교가 운영하는 크라쿠프의 지하 신학교에서 비밀리에 사제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또한 카롤은 지하 극단인 '랩소디 극장'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종전 이후 카롤은 다시 열린 크라쿠프 신학교와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신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1946년 11월 1일 크라쿠프 교구장 아담 사피에하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사피에하 추기경은 그를 로마로 보냈고 그는 1948년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에 드러난 신앙을 주제로 쓴 논문으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에 그는 방학이 되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있는 폴란드 이민들을 대상으로 사목 활동을 하였다.
1948년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크라쿠프 근처의 니에고비치(Niegowice) 성당과 성 플로리아노(St. Florian) 성당에서 본당신부로 사목하였다. 1951년까지 그는 대학교 교목으로 있으면서 철학과 신학 연구를 계속하였다. 1953년 그는 루뱅 대학교에서 "막스 셸러(Max Scheler)의 윤리 체계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교 윤리학 성립 가능성에 관한 성찰"을 주제로 한 박사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 후 그는 크라쿠프 신학교에서 사회윤리학을 강의하고, 1956년에 루블린(Lublin) 가톨릭 대학교의 윤리학 교수가 되었다.
1958년 7월 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그를 옴비(Ombi)의 명의주교 겸 크라쿠프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1958년 9월 28일 크라쿠프의 파펠 대성당에서 유게니우스 바지아크(Eu geniusz Baziak) 대주교에게서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38세로 폴란드에서 가장 젊은 주교가 되었다. 바오로 6세(Paulus VI) 교황은 1963년 12월 30일 그를 크라쿠프의 대주교로 임명하였고 1967년 6월 26일에는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보이티와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참석하여 사목헌장의 마련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교황직에 오르기 전까지 보이티와는 주교대의원회의의 다섯 번 회의 중 네 번을 참석하였다.
그는 1978년 10월 16일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 이래 456년 만의 비(非)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이 되었다. 1978년 10월 22일에 교황으로 즉위하여 보편 교회의 목자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교황은 이탈리아에서 146 차례의 사목방문을 하고 로마 교구장으로서 로마의 332개 본당 중 317개의 본당을 방문하였다. 그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모든 교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104 차례의 해외 순방을 하였다.
그의 주요 문헌으로는 14개의 회칙, 15개의 교황 권고, 11개의 교황령과 45개의 교황 교서가 있다. 그는 또한 여러 책도 저술하였다. 여기에는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Crossing the Threshold of Hope, 1994년 10월), “은총과 신비 :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이하여”(Gift and Mystery : on the Fiftieth Anniversary of My Priesthood, 1996년 11월), “로마 삼부작 - 명상”(Roman Triptych - Meditations, 2003년 3월), “일어나 가자”(Rise, Let Us Be On Our Way, 2004년 5월), “기억과 신원”(Memory and Identity, 2005년 2월)이 포함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47차례의 시복식을 주재하여 1,338명을 시복하고 51차례의 시성식을 주재하여 총 482명을 시성하였다. 또한 9차례의 추기경 회의를 소집하여 231명(1명의 비밀 추기경 제외)의 추기경을 임명하고 6차례의 추기경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는 1978년부터 주교대의원회의를 15회 소집하였다. 여기에는 정기총회 6회(1980, 1983, 1987, 1990, 1994, 2001), 임시총회 1회(1985), 특별총회 8회(1980, 1991, 1994, 1995, 1997, 1998[2회], 1999)가 있다.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성모님의 자애로운 손길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오랜 회복기를 거친 다음 그는 그 괴한을 용서하였다. 새 삶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는 영웅적인 아량을 발휘하며 사목 활동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는 목자의 배려로 많은 교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라틴 가톨릭 교회와 동방 가톨릭 교회를 위한 교회법전도 공표하였다. 그는 하느님 백성을 격려하는 특별한 영적 의미가 있는 구원의 해, 마리아의 해, 성체성사의 해, 2000년 대희년 등을 제정하였다. 그는 또한 세계청년대회를 제정하여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만큼 사람들을 많이 만난 교황은 없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일반 알현(1,160회 이상) 때 1천 7백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교황을 만났다. 여기에 특별 알현이나 예식(2000년 대희년에만 800만 명), 이탈리아를 포함 전 세계의 사도 방문에서 만난 수백만의 신자들이 추가된다. 38회의 공식 방문을 통하여 많은 정부 관리도 교황을 알현하였다. 그리고 738차례의 알현과 모임을 통해 국가 원수들을, 246회의 알현과 모임을 통해 총리들을 만났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교황궁에서 2000년에 그가 제정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부활 제2주일, 사백주일) 전야인 2005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9시 37분에 선종하였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선종한 그는 4월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장례미사 뒤에 바티칸 대성전의 지하 무덤에 묻혔다. 그리고 2011년 5월 1일, 생전에 그가 제정하고 그 전야에 선종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단 기간에 복자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교황 즉위 기념일인 10월 22일로 정해졌다. 그리고 2014년 4월 27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23세(Joannes XXIII) 교황과 함께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과 시성은 한국 가톨릭교회에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1984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미사와 한국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거행했다. 1989년 10월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맞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했고, 5.18 광주 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한국 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성녀 누닐로 (Nunilo)
활동년도 : +851년
신분 : 동정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성녀 알로디아 (Alodia)
활동년도 : +851년
신분 : 동정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에스파냐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박해는 무어인 왕인 압둘 라흐만 1세(Abdur Rahman I) 때부터 시작되었다. 우에스카(Huesca)에 살던 성녀 누닐로와 성녀 알로디아(Alodia) 두 자매의 부친은 이슬람 교인이고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었다. 부친이 사망한 뒤 어머니는 이슬람 교인인 남자와 재혼을 했다. 이 두 번째 남편이 의붓딸들의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기 시작하자 두 자매는 같은 그리스도인 사촌의 집으로 피신했는데, 이때 그들은 의붓아버지의 고발에 따라 체포되었다. 결국 두 성녀는 압둘 라흐만 2세 때 우에스카에서 참수치명 했는데, 로마 순교록에도 그들의 순교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성녀 마리아 살로메
신분 : 거룩한부인,
연대 : 1세기경
제베대오의 아내이며, 사도 요한(Saint John the Apostle)과 야고보(Saint James the Greater)의 어머니인 살로메는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하고 부탁하였다. (마태 20,21),
이때 예수께서는 그형제들에게 "내가 마실 잔을 너희들이 마시기는 하겠지만 내 왼편이나 오른편에 앉는 것은 나의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았다고 하셨다."(마태20,20-23)
또한 살로메는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 현장에도 있었고(마태27,56: 마르15,40), 빈무덤을 발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마르 16,1 이하).
살로메는 가끔, 마리아 살로메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