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란 시련의 바닥에서 영원 향한 푸른 꿈을 피우자
이명희2025. 1. 23. 00:39
[이명희의 그래도] <2> 정점에서 추락할 때
게티이미지뱅크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는 추사관이 있다. 우뚝 선 소나무 가운데 동그라미가 뻥 뚫린 집 한 채가 외로이 서 있다. 조선 후기 학자이자 서예가, 화가였던 김정희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를 재현하고 있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 세한도는 1840년 윤상도 사건에 연루돼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귀양 온 김정희가 두 차례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수묵화다. 논어 자한편에서 제목을 딴 세한도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푸르름을 지키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했다.
김정희가 제주 유배생활 중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 사본.
김정희는 규장각대교, 병조참판, 형조참판을 지내고 청나라 동지부사까지 올랐다가 54세에 제주도로 위리안치(圍籬安置)돼 8년 3개월간 유배 생활을 했다. 유배 기간 동안 초의선사 등 지인들과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외로움과 절절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해가 지났는데도 서로 갈라선 듯 아무 소식이 없으니 정토와 범계의 구분이 은하수와 같아서 다리를 놓아 만날 수 없는 것입니까… 저는 속세에서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바라보고 있으니 실로 그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미천한 몸은 목석과 다름없이 지낼 뿐입니다.”
세한도를 모티브로 제주 추사관을 디자인한 건축가 승효상은 “추사 김정희가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모든 것을 성취했으나 제주 유배를 가면서 느꼈을 분노와 욕망, 감정의 찌꺼기 등 모든 것을 비워내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과정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다 갑작스레 바닥으로 떨어진 김정희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는 제주 유배 기간 좌절과 세상에 대한 분노 고독 고통을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채우며 예술로 승화시켰다.
세한도를 모티브로 승효상이 건축한 제주도 서귀포의 추사관 전경.
동그란 창이 뚫린 집 주변으로 소나무들이 세찬 추위에도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세상적 욕망은 신기루 같은 것
권력의 정점에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 대중의 사랑과 인기를 한 몸에 받다가 무대 뒤로 잊힐 때, 평생 일했던 직장을 그만둘 때 밀려오는 공허함과 상실감은 견디기 힘들다.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은 허무함으로 바뀐다. 삶의 부력이 되고 추동력이 됐던 세상의 찬사들은 미련으로 남아 폐부를 찌른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3평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 최고 권력자가 느낄 감정도 이와 비슷할 터이다.
대중의 지지와 인기는 한순간에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지지자들과 팬들이 돌아서는 것은 순식간이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억울함은 오로지 자신만의 몫이다. 불 꺼진 무대 뒤에서 마주해야 하는 적막감은 삶의 지지대마저 위태롭게 한다.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나라를 위해, 조직을 위해 살아온 시간들이 무상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세상적 잣대로 보면 실패이고 낙오일지 몰라도 자아를 성숙시키고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돈 명예 권력 성공, 사회적 인정 등 이 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
팀 켈러 목사는 저서 ‘내가 만든 신’에서 “무엇이든 삶의 중심이자 필수여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가짜 신”이라며 “삶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의 우상이 위협받거나 제거될 때”라고 했다.
겉으로만 보이는 인생에서 일시적인 것, 헛된 것들을 움켜잡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우리는 더 영원한 것을 소망해야 한다. 영생을 약속받은 우리가 할 일은 더 소중하고 더 가치 있는 일들을 추구하고 그것들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세속적인 욕망 자만심 교만 이기심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참회의 시간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성경 속 인물들의 몰락
성경에도 정상에 올랐다가 몰락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돈이나 권력, 명예 등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교만이나 죄악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하는 이들이 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왕이 되기 전까지는 겸손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권력이 주어지자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체면과 백성들이 원하는 일들을 가까이했다. 사람 말을 중시하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다.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다윗도 용맹하고 지혜로운 왕이었지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보내 전사하게 했다. 그는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아들을 잃었다. 지혜로운 왕인 솔로몬은 후반기에 많은 아내를 두고 우상을 숭배하며 나라를 망하게 한다.
이들이 몰락한 것은 교만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과 지위를 과신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또한 물질에 대한 탐욕과 욕정이 그들을 죄로 이끌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뜻대로 살고, 신뢰를 저버리고 다른 사람을 배신하다가 파멸됐다.
권력과 명예를 잃게 됐을 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겸손해져야 한다. ‘내가 무조건 선이고 진리’라는 독선과 망상에 사로잡혀 남 탓만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연기처럼 사라질 권력과 물질, 세상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은 인생을 갉아먹는 일이다.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워야
켈러 목사는 “내가 만든 가짜 신을 하나님 아래로 ‘강등시키고’ 나면 그중 다수나 어쩌면 대부분이 우리 삶 속에 계속 남아있어도 괜찮다. 이제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거나 불안과 교만, 분노와 충동으로 괴롭히지 못한다”고 했다.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는 그의 책 ‘비움-하나님 나라로 가는 여덟 계단, 팔복’에서 “그 시간은 (버나드가 말한) 저수지에 물을 채우는 시간이요, 하나님이 자신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 인간으로 살아가며 영광의 자리에 오르기 원했던 사람들의 욕망을 비우시고, 자신의 것으로 채우신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중세의 위대한 크리스천 클레르보의 버나드(1090~1153)를 인용했다. 버나드는 세상에는 운하 같은 사람과 저수지 같은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운하 같은 사람은 은혜의 샘물이 내 마음에 다 차오르기 전에 담긴 샘물을 밖으로 쏟아내는 사람이다. 반면 저수지 같은 사람은 은혜를 안으로 지속적으로 담아내어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넘치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차고 넘쳐 밖으로 흘러나가게 하는 사람이다.
“현대인은 늘 갈증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끊임없이 세상 것들을 움켜쥐려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는 목마름은 찾을 수가 없다. 당연히 그 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할 자리가 없다. …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이상학 목사)
비워야 행복해진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과거이고 회한이다. 지나간 시간을 부여잡고 억울해하고 후회하면서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낭비한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다. 담쟁이 넝쿨처럼 칭칭 감고 있는 욕심을 내려놓고 남의 눈과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만족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하루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성공 지상주의와 속도전을 강요하는 세상에 신물이 난 때문이리라. 주인공이 아니면 어떠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값지고 소중하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요즘 ‘국민 위로곡’이란 애칭을 얻으며 인기를 얻고 있는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가사다.
뛰어난 재능이 없더라도,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하찮게 여겨지더라도, 쓸모없게 여겨지더라도 절망하지 말자고 자신을 토닥인다. 그래도 나는 빛나고 소중한 존재라고 쓰다듬는다.
성경은 우리의 가치를 일깨운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 43:4)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분이 원하는 대로 세상적인 것들을 비워내고 내 안을 채워가는 것, 나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서귀포=글·사진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
기사원문 : https://v.daum.net/v/20250123003904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