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일찍 잠이 깼다. 초의 불꽃이 잘 올라오지 않아 은연중에 촛불 켜기가 불편했는데
초를 깎아내면서 불꽃이 좋아지니 얼른 촛불을 켜고 싶어졌다.
가장 큰 단위부터 기도를 시작하였다. 세계곳곳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잠재우고 평화를 주시라고 묵주 한단,
우리나라의 대통령에게도 하느님이 원하시는 평화의 길로 잘 가도록 안내해달라고 묵주 한단,
우리 성당의 각 단체장들도 수고스럽더라도 사랑의 마음을 담아 한 해 봉사하도록 힘을 주시라고 묵주 한단,
우리 신부님들 수녀님들, 우리반원들, 우리 아파트 사람들까지 줄줄이 축복기도를 하고나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나는 부엌수도원 소속이니까.
남편의 기상이다.
"여보, 우리 맞절을 하고 한 해를 시작합시다."
이리하여 둘이 정중하게 큰 절을 하고 조금 더 다가가 손을 맞잡고 주의기도를 한 다음
따뜻하게 포옹을 하였다.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덕담도 내려놓고.
그리고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불고기에 죽순과 버섯을 넣고 볶아 한 접시, 연한 핑크빛 도는 명란 젓 한 접시,
김치와 김, 깻잎절임으로 상을 차리고 대봉감으로 입가심을 하였다.
다음 차례는 신년하례미사에 간다.
나는 한복을 차려입고 남편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새다.
가면서 둘이서 감사 시리즈를 늘어놓는다.
"주님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시간을 허락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러자 하니 성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얼굴이 환해져서 만복을 다 받은 사람처럼 되었다.
신부님께 세배를 하고 텀블러 한 개하고 돈 천원을 복돈으로 받았다.
주기도 하고 받기도하니 참 좋다.
날아가는 참새에게도 축복을 빌었고 울타리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들고양이에게도 축복을 빌어주었다.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에게도 축복을 빌어주고 돌아오며 경비 아저씨에게도 덕담을 나누었다.
우주만물에게 새해에는 복 많이 받고 재앙 같은 것은 모른다고 그러라고 청했다.
골목길에서는 가정마다 웃음꽃이 봄벚꽃처럼 피게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웃음소리가 넘어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내 남편 의지맨이 첫날부터 운동을 거르면 안된다고 같이 나가자고 조른다.
못 이긴 척하고 나갔다. 걷고 돌아오니 이 또한 천국이다.
깔끔하게 스타트를 하였으니 작심삼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또 한 가지가 간절하다면 내 아들과 딸도 정감있게 출발하기를 바라는데
잔소리라고 할까봐 말은 건네지 않았다.
지금 저들이 세상의 중심에 선 세대라서 인정해주느라고 나는 수고가 많은 엄마다.
첫날이 기분좋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