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4년 제 4호(Vol. 04, 2024년 4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 후보가 압승을 거둔 의미를 집중 분석했다. 김소연씨(박사 과정,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푸틴을 위한 2024대선:승리 의미와 동인'이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aa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이변 없는 푸틴의 재선 성공
러시아연방 헌법에 따라 2024년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에 걸쳐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대선은 2022년 2월 '특수 군사작전' 이후 러시아가 자국 영토로 편입한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공화국, 루간스크공화국, 자포로제(자포리자)주, 헤르손주를 포함해 총 89개 연방 주체에서 실시됐다. 영토가 넓어 15일 동쪽 끝 캄차카에서 시작된 대선 투표는 사흘째인 17일 서쪽의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를 끝으로 종료됐다.
선거 결과, 역시 이변은 없었고, 적수가 없는 '푸틴 대세론'은 재확인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대선(2018년)보다 10% 이상 높은 87.28%의 득표율로 집권 5기 출범을 확정했다. 선거 참여도를 나타내는 투표율도 77.44%로, 소련 붕괴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장기 집권과 부정투표 논란에도 러시아인들의 민심은 압도적으로 푸틴을 선택했다.
◇ 푸틴을 위한 선거
2024러시아 대선은 푸틴을 제외하고 ‘새로운 사람들’ 소속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민족주의 성향의 보수주의자이자 러시아 자유민주당 소속 레오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공산당 소속 니콜라이 하리토노프가 입후보했지만, 각 후보자의 득표율은 3~4%대로 미미했다. 세 후보 모두 푸틴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사실상 대선의 흥행을 위해 나선 '들러리'에 불과했다.
주지하듯, 푸틴의 실질적 경쟁자였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대선 몇 주 전인 지난 2월 북극권의 한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 등록을 불허한 출마자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를 주장한 보리스 나데즈딘은 유권자 서명 부정행위를 이유로 출마를 거부당했다. 종합하면 이번 대선은 푸틴의 재선을 위한 형식적 절차, 즉 기정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요식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푸틴의 대선 승리 의미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푸틴의 승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2020년 헌법 개정이 적용된 첫 대권 쟁취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지난 2020년 국민 투표를 통해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2회 이상 못하게 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대통령과 과거에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사람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특별 조항을 만들었다.
그 결과, 푸틴 대통령은 2024년 대선 출마가 가능해졌고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그는 오는 2030년까지 6년 임기의 다섯 번째 크렘린 권좌를 예약했고, '연임이 가능한' 헌법에 따라 6선에 도전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 연장이 가능하다.
둘째, 집권 5기(2024년~2030년) 종료 시, 푸틴 대통령은 소비에트 러시아(소련)와 현대 러시아 역사를 통틀어 최장기 집권자가 된다는 점이다. 그는 1999년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퇴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지금까지 24년째 최고 권력을 행사 중인데(※2008~2012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집권기에 푸틴은 총리로 재직했으나, 국방과 대외정책을 독자적으로 관장하는 등 사실상 ‘최고권’을 행사했다), 이번 대선 승리로 6년 임기를 끝내면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29년 집권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셋째, 우크라이나를 향한 ‘특수 군사작전’에 대한 정치적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은 '전쟁' 중에 치러지는 선거이기에 그에 따른 국민 지지율이 관건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전쟁 발발 직전인 2022년 2월 20일에는 67.2%였지만 2년 후 2024년 2월 2일에는 76.2%로 상승했다.
나아가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된 도네츠크공화국, 루간스크공화국, 자포로제주, 헤르손주에서 푸틴의 득표율은 각각 95.23%, 94.12%, 92.83%, 88.12%를 기록해 연방 주체별 평균 득표율을 웃돌았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역대 최대 대선 투표율(77.44%)과 기록적인 득표율(87.28%)은 특수 군사작전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해 주기에 충분했다.
크렘린에서 전자투표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 대선 승리의 동인과 정책 전망
푸틴 대통령은 2024년 대선에서 장기 집권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피로감을 '전쟁의 승리'라는 애국주의 물결로 상쇄시켰다. 그는 서방의 위협에 대한 민초들의 집단적 히스테리를 자극하는 가운데, ‘포위당한 성채’ 러시아의 방어를 위해 전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고, 조국 수호의 유일한 지도자로서의 상징 조작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의 정치적 안정과 더불어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재건을 겨냥한 민초들의 열망, 즉 ‘제국 증후군’을 충족시켜준 점도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동인으로 작용했다. 푸틴의 대선 승리는 러시아가 여전히 2000년 체제에 갇혀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동시에, 푸틴5.0 시대에도 과도하게 집권화·사인화한 권력구조 아래서 통치체제와 사회경제적 제도의 큰 변화 없이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 공산이 크다는 점을 예고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확인된 특수 군사작전의 정당성을 토대로, 우크라이나에서의 유리한 협상 입지 구축을 위한 작전을 지속하고 서방의 제재에도 더욱 강력히 대응하면서 나토(NATO)와의 충돌도 불사하는 공격적인 안보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