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9.
09;30
쏴아!~빗줄기가 거세게 사무실 창문을 두드린다.
세찬 빗줄기가 인간세상을 숨기며 창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일기예보에 오늘 비 소식은 분명히 없었는데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다니 우산도 없는데 참 난감하다.
이럴 때 기상청에 대고 뭐라고 욕을 하여야 하나?
그러잖아도 요즘 욕이 많이 늘었다고 친구들이 말하던데 입을
닫을 수도 없어 기상 중계도 못하는 기상청을 '오보청'이라
해야겠다.
10;30
거칠게 쏟아지던 폭우는 거짓말처럼 그치고 여러 곳에 구름을
뚫고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다시 인터넷을 열어 기상을 체크하지만 여전히 맑음이다.
차도를 넘치는 빗물이 작은 도랑을 만들었고, 우수관 쪽으로
흐르는 물의 양을 보니 시간당 50mm는 족히 왔겠다.
오후에 다시 체크하니 우습게도 강수량이 0으로 나온다.
담당자들이 직무태만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다.
< 붉은 상사화 >
11;10
강동역에서 바깥으로 나오는데 할머니 한분이 쓰러져 있다.
119 구급신고를 하고자 서둘러 폰을 꺼내는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량이 도착한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신고를 한 모양이다.
달려온 대원들은 버스정류장 긴 의자에 할머니를 눕혀 구조활동에
매진(邁進)하고,
나는 폰카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119 센터에 감사의 인사와 함께
전송을 한다.
하남시청 근처는 폭우가 쏟아졌는데 강동역 주변은 바닥에 물기가
없으니 여긴 소나기가 내리지 않았나 보다.
한쪽에선 119 대원들이 땀을 흘리며 할머니를 살리려 온 힘을
다 쏟는데,
바로 옆 큰 우산으로 그늘막을 만든 곳에서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이 앞가슴과 등판에 '예수를 믿으라'라고 쓴 얼룩진 골판지를
걸었다.
그 노인네는 샌드위치맨이 되어
"예수 불신 지옥, 예수 믿고 천국"이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소리를 친다.
100m 아래 성심병원 4거리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나이가 비슷한 노인네가 연신 "예수 불신~"하며 중얼거리지만
지나가는 사람 누구 하나도 그 노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 더위에 미쳐도 한참 미쳤다.
저런 사람들의 말을 믿고 누가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온통 궤변(詭辯)으로 혹세무민(或世誣民)을 하더라도 그럴듯하게
꾸며야 하는데 말이다.
바로 그 옆에는 정장 차림의 두 여자가 가판대에 종교 홍보물을
담고 부동자세로 서있다.
아마도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인 모양이다.
코로나 팬더믹이 시작되기 전 강동역엔 신천지예수교 신도들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그 사람들 첫마디는 "인상이 참 좋습니다" 또는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라며 따라다녔다.
대구지역에서 집단으로 코로나를 퍼뜨리며 세상의 질타를
받은 후 최근엔 나타나지 않기에 강동역은 조금 차분해졌다.
부박(浮薄)스런 거리의 풍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사람의 마음에 악귀(惡鬼)가 들어가서 나쁜 사람이 되는 건가?
아니면 나쁜 사람을 골라 악귀가 들어가는 건지 이럴 때 참
궁금하다.
어느 게 맞는 건지 죽을 때까지 답을 찾지는 못하겠지만 세상
사는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이 부박한 거리를 사랑하련다.
11;20
어제 오후 3시 40분 경이다.
난 5호선 전철을 탈 때 제일 앞칸 아니면 맨 뒤칸을 선호한다.
8량짜리 5호선 맨 뒷칸 8-4 앞쪽에 벤치가 하나 있는데 젊은
여자가 누워서 미동(微動)을 하지 않고,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심장마비가 왔는가,
느낌이 이상해서 친구랑 119 신고와 함께 CPR을 하려 가까이
다가가고, 불과 5초도 안돼서 전철이 들어오는데, 전철이 서자
잽싸게 일어나 뛰어서 전철을 타는 거다.
아마도 낮술에 취해 다중(多衆)이 이용하는 전철역 의자에 누워
잤던 모양인데 그것도 모르고 CPR을 시도했더라면 성추행범으로
몰려 괜한 곤혹을 치를 번했다.
때로는 세상일에 오지랖을 부리지 말고 무관심해야 하는 모양이다.
2022. 8. 19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