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9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여호와의 날
옵 1:15~16
<잔 盞 이야기>
오늘 본문에서 은혜받으려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잔에 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잔’ 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술잔을 높이 들어라~ 건배!”
이런 노래 가사가 떠오르지요?
사람들은 ‘잔’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술잔’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술잔’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누구는 기뻐서, 신이 나서 술잔을 듭니다. “쨍”하고 부딪히면서 “건배” “위하여” 합니다.
어떤 사람은 속상해서, 스트레스받아서 ‘술잔’을 기울입니다.
술잔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습니다.
승리의 술잔은 기쁨의 잔입니다. 패배의 술잔은 슬픔의 잔입니다.
기뻐도 잔을 들고, 슬퍼도 잔을 듭니다.
‘술잔’에는 이렇게 이중성이 있습니다.
‘잔’을 영어로 하면 어떻게 되지요?
cup, 컵입니다. ‘컵’하면 어떤 것을 연상합니까?
잔과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컵’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물컵’ ‘맥주 컵’
여기서 나아가 조금 고급스런 ‘컵’을 연상해보세요!
그렇습니다. 컵 할 때 가장 고상한 것은 ‘우승컵’입니다.
각종 운동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승리를 인증하는 컵이 있습니다. ‘우승컵’입니다.
‘우승컵’을 영어로 하면 어떻게 되지요? ~ 그렇습니다. ‘트로피 trophy’입니다.
잔은 곧 우승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패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 잔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극과 극, 승리와 패배를 모두 잔에 비유합니다.
<성산에서 잔을 기울이다>
잔은 사람이 물이나 술, 음식을 따라 마실 때 쓰는 그릇입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잔’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6절 때문입니다.
(16절)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continually)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 그의 후손들은 야곱 족속이 망하는 것을 고소하게 여겼습니다.
야곱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했습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은 어쩌면 에돔 족속들이 맨 처음 한 말이 아닐까요?’
이스라엘이 불행을 당할 때면 에돔 족속은 술잔을 부딪쳤습니다.
“술잔을 부딪치며, 찬찬찬”
이 사람들이 술잔을 어디로 가서 부딪쳤을까요?
“모이자!” “어디로?” “어디긴, 오늘 같은 날, 남산 꼭대기로 모여야지!”
서울 사람들은 남산, 관악산, 인왕산 등등, 상징성 있는 곳으로 모입니다.
전주 사람들은 “모악산으로 모이자!”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으로 모이자!”
부산 사람들은 “용두산으로 모이자!”
사람들은 행복할 때, 승리했을 때, 이렇게 거룩한 곳을 찾습니다.
거룩한 산, 어떤 산입니까? ~ ‘성산 聖山’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성스러운 곳을 찾습니다!
기쁨을 나누고자 할 때, 승리했을 때, 환호할 때, 아무 데서나 잔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행복과 승리의 도취감을 더 거룩하게 치장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본능 속에 그런 것을 심어두었어요!’
하나님이 사람들의 행동에 ‘거룩함’을 찾도록 하셨는데, 왜 그랬을까요?
거룩함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인정하는 거룩함이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거룩함이 있습니다.
<사람의 성산 vs 하나님의 성산>
사람들은 저마다 거룩한 곳을 찾아갑니다.
충청도 계룡산에 가면 볼만합니다.
바위 밑에는 어김없이 촛불 켜놓던 흔적이 있습니다.
큰 나무 밑에도 빌고 간 흔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안목에 신성하게 보이는 곳이면 으레 치성을 올린 흔적이 있습니다.
에돔 족속도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나름대로 ‘거룩한 산’으로 정해놓고 그리로 갔을 겁니다.
그 산을 성산으로 불렀습니다.
성산에 올라가서 기쁨의 잔을 들었습니다. 축배를 들었습니다.
☞ “여러분들에게 성산은 어디입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조상의 묘를 성산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묘소에 갑니다. 술 한 병 들고 따라놓고 주변을 가다듬고 옵니다.
평소에 못 가면, 설날, 추석날에 갑니다.
이러한 성산은 사람의 성산입니다.
사람의 성산이 있고, 하나님의 성산이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성산은 어디일까요?
우리 예수 믿는 이들의 성산은 어디일까요?
하나님이 계신 곳, 예수님이 계신 곳, 성령님이 계신 곳이 성산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주님 계신 곳 성산은 어디입니까?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수요예배로 모였습니다.
지금 여기에 주님이 계십니다. 지금 여기가 성산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로 모이기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산의 의미 추가>
지금까지 성산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① 사람들은 기쁠 때, 슬플 때 잔을 부딪치고 마신다.
② 마시는 장소로서 거룩한 곳을 찾는다. 성산이다.
③ 성산에는 사람이 생각하는 성산과 하나님의 성산이 있다.
성산의 의미는 여기에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④ 하나님의 ‘심판의 잔’을 마시는 곳이 성산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의 성산에서 마시는 잔’으로 비유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 잔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 15절입니다.
(15절)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오늘 설교 제목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정했습니다.
바로 이 날입니다.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
여호와의 날은 최후 심판의 날입니다.
이날에 15절 말씀이 고스란히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 입니다.
16절로 이어집니다.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참으로 무시무시한 날입니다.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창조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시간도 없어지고, 공간도 없어집니다. 오직 전능자 하나님만이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십니다!
여기서 구제받는 것이 진짜 구원입니다.
☞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님이 마셔 주신 잔>
오늘 ‘잔’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잔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잔으로 해결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기도하십니다. 겟세마네 동산 기도입니다.
땀방울이 핏 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면서 “이 잔을”이라고 합니다.
이 잔이 무엇입니까?
낼모레,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되는 십자가 사형!
이것을 “잔”으로 표현하면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왜 ‘잔’으로 표현합니까?
여호와의 날! 최종 심판 날!
모든 사람은 잔을 마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15~16절)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죄 없이 산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행한 대로 받게 됩니다.
모두 자기의 죄를 자기가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살아남을 자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아남을 자가 있습니다.
구원받는 자가 있습니다.
남은 자가 있습니다.
☞ 예수님이 이 잔을 대신 마셔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대속 代贖>
성산에서 마신 잔, 사람의 성산,
사람들은 저마다 기쁘다고, 슬프다고, 억울하다고, 성산을 찾았습니다.
나름대로 최고의 성산이라고 찾아가서 마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
하나님의 심판의 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은 죄에 따라, 죄 만큼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과연 살아남을 자가 있을까요?
구원받을 자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마셔야 할 최후 심판의 잔을 예수님이 대신 마셨다는 진리를 믿는 자마다!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여호와의 날>
성산에 양면성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의 성산 vs 하나님의 성산
잔에 양면성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쁨의 잔 vs 슬픔과 비통의 잔
여호와의 날에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대속 받지 못한 자는 멸망의 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대속 받은 이들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은 이렇게 오묘합니다.
그 진리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기쁨을 우리는 마음껏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삽니다. 구원받은 기쁨은 잊어버리고 삽니다.
구원의 기쁨보다 세상의 고통, 슬픔, 고난을, 더 크게 여깁니다.
오늘, 우리, 구원받은 기쁨이 얼마나 큰지 되새깁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