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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롬 8:26-28)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충만하십시다.” 부활절 후 50일째되는 주일이 오순절인데 바로 이날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지난 주에는 “성령충만한 삶”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성령충만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은 그저 종교적인 체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성령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이 내안에 가득찼다. 성령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신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전적으로 나를 지배하면 당연하게 내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주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지혜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있는 자란 세월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간은 성도에게는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특별한 기회를 의미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악한 시대 속에서 살면서도 그 악한 세파에 물들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소중한 기회로 알고 선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2)성령이 충만하면 노래와 찬송하는 삶을 삽니다.찬송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이처럼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3)성령충만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삽니다. 20절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범사라는 말은 기쁜 때든 슬픈 때든 무은 일을 만나든지 먼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입만 열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때 행복합니다. 감사가 끊어지면 어둡습니다. 이렇게 성령충만하면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4)성령충만한 삶은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삽니다.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복종한다는 것은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먼저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합니다. 이전에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셔 들였는데 여전히 내가 주인이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하니까 주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섬깁니다. 섬김의 삶의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렇게 성령충만해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로운 삶, 찬송하는 삶, 감사하는 삶,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성령님이 누구십니까? 구약시대는 성부 하나님의 시대, 신약시대는 성자 예수님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시대는 바로 성령시대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다스리시고 교회가운데 역사하시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성령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르고서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설사 성령을 안다 할지라도 성령체험을 하지 못하면 신앙과 생활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의 저자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말씀을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의 원뜻을 깨닫지 못하면 올바른 신앙생활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던 것이 성령강림이십니다. (요 16:7)에서는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당신이 떠나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가면 너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너희안에 계셔서 너희를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26절)
26절 상반절에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돕기 위해 성령님을 우리 곁에 보내 주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인간으로서의 연약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우리 인간은 연약함과 죄성은 벗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인간의 이 연약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종종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환경과 죄의 유혹앞에 힘없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죄성이 불끈불끈 올라와서 영적 깨어 있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바울은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교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성령님이 내주해 계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다락방강화에서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러면 보혜사란 무슨 의미입니까? 조력자, 돕는 자, 위로자, 격려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도우십니까? 우리를 슈퍼맨이나 천사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서 우리의 연약함을 이길 수 있게 하실까요? 물론 강력한 능력을 주셔서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강한 자로 만들어서 연약함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을 그대로 놓아 둔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돕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함께 담당한다" "함께 맞잡아 준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그렇게 도우시되 "너는 저기 가서 가만히 앉아 있어 내가 다 해 줄게"이런 식으로 도우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함께 담당해 주심으로 함께 맞잡아 줌으로, 다시 말하면 감당할 수 있게 해 줌으로 연약함을 이기게 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두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따르려고 할 때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와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지 않다면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연약함을 탄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를 넘어트리기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애물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드는 비결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고후12:9)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진리를 깨닫고 나서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했다고 하였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주님앞에 엎드립니다. 약하기 때문에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때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새힘을 얻습니다. 온전함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교회는 엄청난 환란과 핍박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붙잡혀 옥에 갇히고 산헤드린공의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산헤드린공회에서 재판받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멀찌기 따라갔습니다. 구경꾼 사이에 숨어있다가 발각되는 순간에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모두다 은밀한 곳에 들어가 숨어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령충만을 체험하자 저들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루살렘거리에 아나가서 12명의 사도가 당당히 서서 복음을 전합니다. 베드로가 대표해서 저들에게 설교를 합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였다고 증거하였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군사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사형언도를 내렸던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습니다. 저들이 협박합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때 베드로의 발언은 이것이었습니다. (행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한치의 양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당당하게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저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왜 이렇게 당당해졌습니까? 보혜사 성령님이 곁에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믿음 생활을 잘 하려면 매 순간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친히 나를 도와주시고, 나를 깨닫게 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험하시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26-27절)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성령님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27절)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간구하실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하십니다.
신앙생활의 제일 어려운 부분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아니 자기 중심으로 자기 욕심을 따라 구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자기 욕심을 따라 구하면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약 4:2하-3)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구하면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는 기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기도는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뜻대로 믿게 하시고 그 뜻대로 순종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성령님은 직접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시기도 하시지만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주심으로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도하면서 먼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성령님이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뜻을 구하게 하소서.”라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부모입니까? 남편입니까? 친구입니까? 직장의 상사입니까? 물질입니까? 그것은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진정한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도울 힘이 없는 연약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도와주시려고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이 험한 세상 나그네길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살기를 원한다면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분은 기도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렘 33: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의 약함 앞에서 좌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약함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의 약함을 발견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약함을 도리어 자랑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약함을 인하여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겸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약함이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끌어안고 탄식하지 말고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성령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면 기도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땀방울을 흘리십시오.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가끔 제가 하는 기도나, 제가 섬기는 목회 사역 중에 몇 %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하는 기도나, 여러분들이 하는 일들 중에 몇 %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100%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저를 비롯해서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 후에 찾아오는 시험으로 인해 낙심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이 탄식할 때 우리는 깨닫고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던 것들을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래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마 6:33)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 하시고, 성령님께서 우리가 실수했을 때, 기도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탄식하며 기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28절)
28절의 말씀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가운데 하나입니다.(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우리가 알거니와.” 이 말은 세속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사람은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계심을 압니다.
무엇을 압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말은 성도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대하시는 모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택하신 자를 결코 버리시거나 떠나시는 법이 없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말은 성도의 별명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과 비교됩니다.
요한 1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야고보서에는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의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복종하는 새 생활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께 헌신하며 복종하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모든 것,’ 그러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더구나 세상의 불안정과 인간의 범한 죄의 결과로 일어나는 모든 고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성도로 하여금 모든 과정을 거쳐서 결과적으로 선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가령, 요셉의 생애를 생각해 보세요.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꿈만 꾸는 아이라고 싫어했습니다. 더구나 장래 자기들이 요셉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아버지 때문에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꿈 이야기라고 해도 그냥 듣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을 찾아온 동생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해서 그를 죽여 버릴 생각에서 물 없는 웅덩이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가는 대상을 보고 그냥 죽여 버린다는 것보다 돈 얼마를 받고 팔아 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따라서 동생인 요셉을 돈 받고 팔아 버렸고 요셉은 억울하게 팔려 애굽에 노예신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요셉은 애굽의 시위 대장 집으로 팔려가게 되었고 거기에서도 충성되게 일을 잘 보았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신용을 얻어 그의 집 전체를 책임지고 돌보는 총무의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 장군의 젊은 아내는 요셉이 탐이 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눈짓을 하며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수가 있나?’ 하는 자세로 사람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가 옷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을 물리치고 붙들린 옷을 벗어 던지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상금이 아니라 감옥에 수감되어 누명을 쓰고 고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요셉은 모든 죄수의 모범이 되었고 그들의 상담역을 맡아 보는 덕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술 맡은 장관의 배신으로 마음이 섭섭한 일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된 일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악한 것들을 선으로 바꾸겠다고 하셨습니다. 요셉이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13년간이란 긴 세월을 문자 그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요셉에게 합력해서 유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원수를 갚을 것 같아 벌벌 떠는 형들에게 한 말은 너무 유명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인간의 욕심을 이깁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인간의 모략을 이깁니다. 인간의 모든 죄악도 초월하십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는 억울하게 오랫동안 로마 감옥에서 죄수의 몸으로 고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로 하여금 이 기회를 이용해서 불멸의 옥중서신을 기록하게 하셔서 지금까지 수많은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인간의 죄악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도우시는 성령의 은혜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도와주시면 어떤 역경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입으려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도우시는 보혜사이십니다. 그 성령이 여러분의 중심안에 임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심령속에 감동감화를 하십니다.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놓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날마다 받으며 성령님과 함께 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이 탄식하며 기도로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기적을 체험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