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뉴웨이브(American New Wave) 시네마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미국의 영화적 사조. 1967년 개봉된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시작점으로 알려져있다. 로빈 우드는 펜이 이전에 만든 《체이스》(The Chase)를 꼽기도 하지만, 대중적 파급력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강하다.
기존 영화의 관습적 형태에 대해 정면으로 부딪힌 미국의 영화운동. 비슷한 시기의 뉴욕을 중심으로 한 뉴 아메리칸 시네마와는 전혀 별개이다. 당대의 미국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친 이후이며, 베트남 전쟁 강행이라는 혼란의 시기였다. 젊은 영화 감독들은 이전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꿈과 희망을 주는 영화들 보다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그러한 의식들이 영화에 반영되게 되었다. 이는 당대에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인권운동, 히피적 의식, 반베트남 전쟁 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가 영화계에 영향을 준 것으로 읽힌다.
이들은 존 카사베츠나 시드니 루멧, 로버트 올트먼, 샘 페킨파, 오슨 웰스처럼 뉴웨이브 이전 비타협적인 자세로 활동하면서 현실을 반영한 미국 영화감독들을 숭상했으며, 이들이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기에 내놓은 영화들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심 스튜디오로는 감독 밥 레이펄슨과 제작자 버트 슈나이더가 설립한 제작사 BBS가 있다.
1970년대 뉴욕 중심으로 발전한 실험 영화들을 통칭하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와는 다르다.
영화적 특징으로는 냉철한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해피엔딩을 지양했다. 또한 다큐멘터리적인 건조한 촬영방식들이 영화에 깊숙히 도입되기도 했다. 반사회적이며 반영웅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경향이 잦았고, 그들이 가진 염세적 세계관이 그대로 영화에 투영되어 비관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영화들이 다반사. 덤으로 상당히 폭력적이거나 거친 감성의 영화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화적 특성들은 이전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꿈과 희망을 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던 미국 영화에 사실주의적 관점을 불어넣어 주어, 미국 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힌 새로운 풍조로 읽히게 되었다.
또한 로드 무비라는 장르를 발명하기도 했다. 당시 비트 문학과 히피로 방랑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었는데 이게 존 포드 같은 서부극 전통과 네오 리얼리즘, 누벨바그과 결합하면서 장르로 탄생했다.
전체적으로 동부 뉴욕과 유럽 영화의 영향력이 강했던 시기로도 평가된다. 특히 장 뤽 고다르의 영향력이 강했으며, 자크 드미와 아녜스 바르다 부부처럼 아예 잠시 할리우드에서 일하던 누벨바그 감독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고 미국 각지에서 벌어졌던 반체제 운동이 저절로 시들면서, 점점 뉴웨이브 영화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뉴웨이브 영화들은 보통 개인이 사회에 대해서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초점이 맞추어졌다. 마침 록키 시리즈처럼 개인이 사회에 대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타워즈》가 유례없는 대히트를 치면서 다시 아메리칸 드림, 영웅주의적인 영화가 부흥하게 되었다. 즉, 전쟁으로 인한 허무감이 끝나고 다시 밝고 희망을 주는 작품들이 다시 인기를 이끌게 된 것이다.
예외적으로 끝자락에 등장한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우디 앨런 등 현재까지도 왕성히 활동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의 역사 중심에 서있다.
하지만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미국 인디 영화 조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로도 블록버스터식 영화와 대항되는 미국 영화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