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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하면 돈뭉치는 휴지조각이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종전 후 사라질 초인플레이션 위기 / 4/25(화) / 환동사 골드 온라인
세계의 장래를 살피는데 있어서, 가능한 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수치나 데이터, 페어한 시점에서, 생각해 가는 자세를 가지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자원 가격의 급등이 멈추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또 다른 큰 변화의 서장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금융시장은 이러한 복잡한 세계정세가 수치로 나타나는 세계입니다. 금융 분석가 도다 유다이가 금융 시장을 해설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
먼저 간단하게 이번 화제의 중심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 소련의 대부분을 이어받는 형태로 탄생한 것이 러시아 연방입니다(이후 러시아라고 줄임).
세계 최대의 국토 면적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국가,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 South Africa 등 5개국의 영어 앞글자를 나열한 것. 향후, 현저한 경제성장의 발전이 전망되는 신흥국)의 일원으로서도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도 원래 옛 소련 국가 중 하나로 1991년 소련 해체 직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부터 '우크라이나'로 독립했습니다.
러시아 남서부에 위치하여 기후도 온난하고 비옥한 평원이 많아 지내기 편해서인지 인구밀도는 러시아보다 높습니다.
저도 2019년에 이 나라를 방문했는데 서구와 비교하면 어딘가 느긋하고 경제적으로 다소 개발도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1인당 GDP는 3,727달러, 세계 평균 1인당 GDP 1만 916달러에 비해 낮은 수치입니다.
구소련 양국으로 민족적 유대가 깊고 우크라이나에는 약 17.7%의 러시아계 주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우크라이나 동부, 즉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러시아계 주민이 더 많이 살고 언어를 포함하여 러시아의 영향이 강한 지역입니다.
이처럼 유라시아 대륙의 국경을 따라 다른 민족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륙에서 벗어나 일본이라는 섬나라에 살다 보면 그다지 감이 오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무역 파트너 1, 2위 러시아와 중국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분쟁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제가 방문한 2019년에는 이미 적십자 의료부대가 끊임없이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적어도 2014년 3월 러시아에 의한 크림 병합 무렵부터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충돌이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무역은 적어도 이번 침공 이전에는 활발했고 우크라이나 수출입에서 러시아의 비중은 각각 10% 정도로 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농작물 등을 수출하고 러시아에서 천연자원과 기호품 등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일대 일로'라고 불리는 중국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경제권을 확대시키는 중국의 경제정책의 영향도 있어 우크라이나와 중국의 무역 연결고리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수출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10% 정도로 러시아와 비슷하고 중국과 러시아 양국이 우크라이나 무역 파트너 중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EU의 경제발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으로
조금만 이야기를 돌려보면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여기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크게 분기하게 됩니다. 원래 언어, 민족, 종교도 가까운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어 간 배경에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중국이나 EU의 눈부신 발전의 영향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2년에는 중국이 개혁개방(경제특별구 설치, 해외자본의 적극적인 도입이 이루어져 시장경제로의 이행이 추진된 정책)을 강화해 자본주의 경제의 도입을 가속화시켰습니다. 또 1993년에는 EU가 설립해 유럽역내에서의 사람·물건·돈의 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중국과 EU, 이 두 경제권이 크게 발전해 나갔고, 그 흐름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EU 및 중국과의 유대가 심화되면서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이 조금씩 약화되었을 것입니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는 대개혁 "시장경제" 도입
구소련은 사회주의 경제를 목표로 이른바 '계획경제'라고 불리는 정책모델을 시도했지만 국가가 권한을 갖고 경영자원을 분배한 결과 성과형 보수를 얻기 어려워져 노동자들의 노동 의욕이 상실되고 서방국가들과 비교해 경제는 발전하지 못했고 이것이 냉전의 하나의 큰 패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1년 소련 해체 후인 1992년부터 러시아는 '시장경제'를 도입합니다. 원래 소련은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계획경제'를 이상으로 했기 때문에 통화·자본·시장 등과 대극의 정책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는 것은 러시아에게 매우 큰 개혁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러시아 중앙은행이 설립되고 또 민간 은행이 증가하면서 조금씩 현재의 러시아 금융 형태가 만들어져 갑니다. 참고로 중앙은행은 국가 지폐를 발행하여 물가와 경제, 통화가치의 안정을 도모하는 중요한 국가기관입니다.
또 같은 시기에는 국유 자산의 민영화도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를 쌓아간 러시아 부자를 올리가르히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부와 러시아 국내외에서 강한 발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역시 시장경제 시스템으로의 이전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조치 대학 교수. 아다치 유코 저 『현대 러시아 경제』(나고야 대학 출판회)에 의하면 구소련에서의 공급망 분단이나 통화 루블 경제권의 붕괴에 의해 러시아 연방 설립 초기부터 수년간의 GDP는 크게 침체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실제 통계 데이터를 통해서도 1991년부터 1999년까지는 GDP의 다운 트렌드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상 패전국의 통화가치는 크게 하락하는 추세에
화폐에서도 구 통화인 소비에트 루블에서 러시아 루블로 이행하는 가운데 통화 가치의 큰 폭의 하락이 발생했습니다.
1992년 러시아 루블(통화코드 "RUR")로 전환했을 때의 루블은 1달러 125루블 전후로, 이것이 1998년에 1달러 6,000루블까지 대폭 감가했습니다. 1998년에 화폐개혁이라고 불리는 통화단위를 변경하여 1,000RUR=1RUB가 되었고, 이 "RUB"가 현재의 러시아 루블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통화의 감가는 국내 경제의 혼란을 통화 가치가 순순히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에 패한 것과 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비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지만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통화가치도 크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시 중의 큰 부채와 전후 배상금을 갚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해 지폐의 증쇄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통화당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는 '초인플레이션(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기재)'이라고 불리는 지폐가 급속히 가치를 잃어 결과적으로 물가가 급상승하는 혼란 상태에 있었습니다.
또, 1998년에는 아시아 외환 위기의 여파로 러시아 국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집니다. 이는 '러시아 위기'로 불리며 배경에는 글로벌 경기 악화와 자원 가격 침체가 있었다고 하지만 소련 시대부터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아직 개혁 단계에서 큰 외부 충격을 받을 체제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14년 러시아 루블은 변동환율제로 이행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주가에도 상승의 기운이 보였던 2004년에는 외환법을 개정해 자본 이외의 거래(경상거래)에 관해 원칙적으로 거래 제한을 없앴다.(JETRO가 정리한 러시아 외환관리제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외환제한은 2007년 1월 1일 폐지)
더욱이 최근에는 2014년 말에 러시아 루블은 관리환율제(일정한 변동폭을 마련해 시세변동을 허용하는 제도)에서 변동환율제(수요와 공급에 근거해 자유롭게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예를 들어,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려고 했던 중국의 외환 관리 제도와 비교해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만큼 금융에 관해서는 개방 노선이라고 할까요, 비교적 개방적인 체제가 조기에 구축되어 있습니다. 추측이지만, 정부나 중앙은행은 풍부한 자원을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확대함으로써 통화 가치와 주가를 안정시킬 자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토다유우다이
트레저리 파트너스 주식회사 대표이사
https://news.yahoo.co.jp/articles/9e0f6615dddaa369e81aa5344b1ddb7272fc993c?page=1
「敗戦すれば、札束は紙クズと化す」ロシアのウクライナ侵攻、終戦後におとずれるハイパーインフレの危機【金融アナリストが解説】
4/25(火) 8:02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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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写真はイメージです/PIXTA)
世界の先行きを探るうえで、できるだけ先入観をもたずに、数値やデータ、フェアな視点で、考えていく姿勢をもちたいものです。昨今は資源価格の高騰が止まらず世界中でインフレが起こっていますが、さらなる大きな変化の序章に過ぎないのかもしれません。金融マーケットはこのような複雑な世界情勢が数値で現れる世界です。金融アナリスト戸田裕大が金融市場を解説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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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クライナとロシアの関係
図表1
まず簡単に今回の話題の中心である、ロシアとウクライナについて見ていきます。
1991年にソビエト連邦が解体したあと、ソビエトの大部分を引き継ぐ形で誕生したのがロシア連邦です(以後、「ロシア」と略す)。
世界最大の国土面積と、豊富な天然資源を有し、近年の急成長を遂げている国家、BRICS(Brazil、Russia、India、China、South Africaの5か国の英語の頭文字を並べたもの。今後、著しい経済成長の発展が見込まれる新興国)の一員としても存在感が高まっています。
またウクライナも元は旧ソ連諸国の一つで、1991年のソビエト連邦解体直後にウクライナ.ソビエト社会主義共和国から「ウクライナ」として独立しました。
ロシアの南西部に位置し、気候も温暖で肥沃な平原が多く過ごしやすいためか、人口密度はロシアよりも高いです。
私も2019年に同国を訪れましたが、西欧と比べると、どこかのんびりとしていて、経済的にやや発展途上な印象を受けました。実際、ウクライナの一人当たりGDPは3,727ドル、世界の平均的な一人当たりGDP1万916ドルと比べて低い数値となっています。
旧ソ連の両国ということで、民族的につながりが深く、ウクライナには約17.7%のロシア系住民が居住しています。今回の戦争で広く知ら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が、ウクライナの東部、つまりロシア国境に近い地域ではロシア系住民がより多く住んでおり、言語も含めてロシアの影響が強い地域です。
このようにユーラシア大陸の国境沿いには異なる民族が混在していることが多いのですが、大陸から離れ日本という島国に住んでいるとあまりピンとこないところでもあります。
ウクライナの貿易パートナーの1、2位がロシアと中国
ウクライナ東部における紛争はずいぶん前から行われており、私が訪れた2019年には既に赤十字の医療部隊が絶えず支援を続けている状況でした。少なくとも2014年3月のロシアによるクリミア併合あたりからはウクライナ東部での衝突が断続的に続いていました。
一方でウクライナとロシア両国の貿易は、少なくも今回の侵攻以前は盛んで、ウクライナの輸出入に占めるロシアの割合はそれぞれ10%程度と上位を占めています。ロシアに農作物などを輸出し、ロシアから天然資源や嗜好品などを輸入しています。
ただ近年は「一帯一路」と呼ばれる、中国を起点として西へと経済圏を拡大させる中国の経済政策の影響もあり、ウクライナと中国の貿易のつながりが深くなっています。輸出入に占める中国の割合もそれぞれ10%程度とロシアとほぼ同程度、中国とロシアの両国がウクライナの貿易パートナーの1、2位を占めている。
これが現在のウクライナの状況といえます。
中国やEUの経済発展が、ロシアとウクライナの関係に影を落とすことに
少し話を戻すと1991年にソビエト連邦が解体となり、ここからロシアとウクライナの歴史は大きく分岐していくことになります。もともと言語、民族、宗教も近い両国の関係が悪化していった背景には、経済的な視点でいえば中国やEUの目覚ましい発展の影響も関係し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
1992年には中国が改革開放(経済特別区の設置、海外資本の積極的な導入が行われ、市場経済への移行が推進された政策)を強化し資本主義経済の導入を加速させました。また1993年にはEUが設立し欧州域内におけるヒト・モノ・カネの移動が活発になりました。
中国とEU、この2つの経済圏が大きく発展を遂げていき、その流れの中でウクライナはEUや中国との結びつきが深まり、結果としてロシアのウクライナに対する影響力が少しずつ弱まっていったのでしょう。
ソ連解体後、ロシアは大改革「市場経済」を導入
図表7
旧ソ連は社会主義経済を目指し、いわゆる「計画経済」と呼ばれる政策モデルを試みましたが、国家が権限をもって経営資源を分配した結果として、成果型の報酬を得ることが困難となり、労働者の労働意欲が失われ、西側諸国と比べて経済は発展せず、これが冷戦の一つの大きな敗因となりました。
そこで1991年ソ連解体後の、翌1992年からロシアは「市場経済」を導入します。そもそもソ連は社会主義が掲げる「計画経済」を理想としていましたから、通貨・資本・市場などと対極の政策を採り行っていたわけで、資本主義経済を取り入れることは、ロシアにとって非常に大きな改革でした。
この時期にロシア中央銀行が設立され、また民間の銀行が増加し、少しずつ現在のロシア金融の形が作られていきます。ちなみに、中央銀行とは国家の紙幣を発行し、物価や経済、通貨価値の安定を図る重要な国家機関のことです。
また同時期には国有資産の民営化も進められました。この過程で富を築いていったロシア人富豪のことを「オリガルヒ」と呼びます。彼らは現在に至るまで非常に多くの富と、ロシア国内外における強い発言力を持っています。
ただ、やはり市場経済システムへの移転の道のりは決して平坦ではなかったようです。上智大学教授.安達祐子著『現代ロシア経済』(名古屋大学出版会)によれば旧ソ連におけるサプライチェーンの分断や、通貨ルーブル経済圏の崩壊により、ロシア連邦設立当初から数年間のGDPは大きく落ちん込んだとされています。
また実際の統計データからも1991年から1999年まではGDPのダウントレンドが続いていたことがわかります。
歴史上、敗戦国の通貨価値は大きく下落する傾向に
貨幣においても旧通貨のソビエト・ルーブルからロシアルーブルへと移行するなかで、通貨価値の大幅な下落が発生しました。
1992年にロシアルーブル(通貨コード“RUR”)へ転換した際のルーブルは1ドル125ルーブル前後で、これが1998年に1ドル6,000ルーブルまで大幅に減価しました。さらに1998年にデノミネーションと呼ばれる通貨単位の変更を行い1,000RUR=1RUBとなり、この“RUB”が現在のロシアルーブルになっています。
こういった通貨の減価は、国内経済の混乱を通貨価値が素直に反映した結果といえます。冷戦に敗れたことと、戦争で敗れたことを比較するのは正確ではないですが、たとえば第一次世界大戦後のドイツや、第二次世界大戦後の日本の通貨価値も大きく下落しています。これは戦時中の大きな負債と戦後の賠償金を返済するためにより多くの資金が必要となり、紙幣の増刷へとつながり、結果として1通貨あたりの価値が大きく低下したからです。
こういった状況のなかでソ連解体直後のロシアは「ハイパーインフレーション(以降はハイパーインフレと記載)」と呼ばれる、紙幣が急速に価値をなくし、結果として物価が急上昇する混乱状態にありました。
また、1998年にはアジア通貨危機のあおりを受けてロシア国債がデフォルト(債務不履行)状態に陥ります。これは「ロシア危機」と呼ばれ、背景にはグローバルな景気悪化や資源価格の低迷があったとされますが、ソ連時代からの大きな流れで捉えてみると、まだまだ改革段階で大きな外部ショックを受けとめる体制が十分ではなかったと見ることもできます。
2014年ロシアルーブルは変動相場制に移行
為替レートが落ち着いて推移するようになり、株価にも上昇の機運が見られた2004年には外為法を改正し資本以外の取引(経常取引)に関して、原則、取引の制限をなくしています。(JETROがまとめたロシアの為替管理制度によれば、ほとんどの外為制限は2007年1月1日に廃止)
さらに近年では2014年末に、ロシアルーブルは管理相場制(一定の変動幅を設けて相場変動を許容する制度)から変動相場制(需要と供給に基づいて自由に価格を決定する制度)に移行しています。
こうした動きはたとえば、同じく資本主義経済を取り入れようとした中国の為替管理制度と比べても速いペースで進められてきました。それだけ金融に関しては開放路線といいますか、比較的オープンな体制が早期に構築されています。推測ですが、政府や中央銀行は豊富な資源を輸出するビジネスを拡大することで通貨価値や株価を安定させる自信があったのでしょう。
戸田 裕大
株式会社トレジャリー.パートナーズ 代表取締役
戸田 裕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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