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으로 남은 어린 시절 농삿일의 기억은
성서를 이해하는 목가적 정서를 더하였습니다.
포도농사는 짓지 않았지만
파종과 추수에 대한 말씀은 몸에 밴 어린 시절의 흔적입니다.
이맘때 즈음이면 늦가을에 파종한 보리를 추수하고
벼를 심어 이모작을 하였습니다.
보리를 심지 않을 때는 감자를 심었고
보리와 감자는 모내기를 하기 전에 추수를 하였습니다.
요즈음은 트렉터나 콤바인으로 농사를 짓지만
예전에는 경운기도 없을 때라 모내기를 할 때면 가래질을 하여 논바닥을 고르게 하였고
품앗이로 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었습니다.
중참으로 먹었던 삶은 감자맛은
일하고 배고플 때 먹은 맛이라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모내기를 하고 저녁때면 대청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20여명의 일꾼들 식사를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역시 어머니는 대단하였습니다.
닭장에 가득한 토종닭 몇 마리 잡고
모두 농사지은 식재료를 사용하여 그 많은 음식을 장만하였습니다.
요즘처럼 가스렌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땔감으로 밥하고 국끊이고 마당에 솥 걸어 놓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두부를 비롯하여 묵도 직접 만들었고
5일장 서면 갈치를 비롯하여 고등어와 오징어 등 항상 생선은 밥상에 올랐습니다.
식사 후 디저트는
오이와 참외와 수박 등 풍성하였습니다.
마을에서 농사를 가장 많이 지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농사에 대한 기억은 풍요롭기만 합니다.
할아버지 4형제와 그 후손이 함께 살았던 고향산천은
삶의 터전과 그 뿌리가 튼실한 집성촌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6,70년대의 보릿고개는
저희 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항상 나락을 말리고 아름드리 큰 두지에 넣는 것이 일이었고
매상을 댈 때면 가마니가 쌓였습니다.
저희 집을 거쳐간 머슴은 손재주가 좋아서
짚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밤이면 짚으로 새끼를 꼬아
가마니를 비롯하여 멍석과 삼태기 등 생활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비올 때 입는 우의 도룡이도
짚을 엮어 만들었습니다.
전기도 없던 시절이라
호롱불 아래서 농촌의 서정을 온 몸에 익혔습니다.
농삿일 중에 가장 즐거웠던 것은
보리와 밀과 콩을 도리깨로 타작할 때였습니다.
도리깨질은 원심력을 이용한 회전 운동으로
훗날 쌍절곤의 고수가 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벼는 탈곡기로 타작을 하였지만
밀과 보리는 탈곡기로 타작할 수 없고 오직 도리깨로 타작을 하였습니다.
보릿짚은 거름으로 사용할 수 없어
쌓아 놓았다가 겨울에 땔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도리깨와 함께 낫질하는 것이 좋아서
벼를 베거나 꼴을 뜯을 때 낫질의 고수가 느끼는 스릴을 만끽하였습니다.
농삿일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박 순치는 일과 외양간과 돼지 우리 치는 일이었습니다.
외양간과 돼지 우리의 퇴적물은
백구마당의 헛간에서 유기농 퇴비로 잘 숙성되었습니다.
논과 밭은 항상 이모작을 하였는데
논은 보리를 추수하고 벼를 심었고 벼를 추수하고는 늦가을에 보리를 파종하였습니다.
들의 밭은 봄에 수박 농사를 하였고
가을에는 무우와 배추를 심었습니다.
수박 밭에는 수박 뿐만 아니라
참외와 오이와 토마토 등을 심어 먹거리가 풍성하였습니다.
갱변 밭에는 고구마를 심었고 산간 밭에는 목화와 깨와 땅콩 등을 심었으며
집 앞 텃밭에는 상추와 우엉과 부추와 마늘 등을 심었습니다.
사랑방의 절반은 고구마와 땅콩이 차지하였고
화로에 구운 군고구마와 땅콩 맛은 긴 겨울 밤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훗날 산간 밭은 농사짓기 힘들다며
단감나무 단지를 조성하였습니다.
유기농으로 기른 텃밭의 상추 맛은
오늘날 하우스 상추의 아무맛도 나지 않는 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논두렁에 심은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토종 된장과 간장을 담았습니다.
콩나물 시루에는 항상 콩나물이 자랐고
언제든지 콩나물 반찬은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특히 가마솥에 콩을 삼아 두부를 만들 때면
두부로 만든 온갖 찬거리에 넋을 잃습니다.
요즘도 두부조림을 비롯하여 갈치조림과 함께 우엉 등을 좋아하는 것은
어린 시절 몸에 밴 고향의 맛이기 때문입니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에도
시골의 밥상은 항상 넉넉하고 풍성하였습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남은 몸에 밴 농삿일은
오늘날 카페의 글이 되어 목가적 향수를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풍성한 농삿일의 경험은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의 애절한 향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농사일에 대한 기억은 친환경 서정을 갖게 하였고
흙과 비와 햇빛의 조화로 말미암은 생태환경의 미학에 매료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서지대의 말씀을 깨닫는 정서적 이해를 하였고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 심은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말씀의 텃밭, 그 충만한 은혜를 사모하면서
마음에 새긴 그리스도의 편지, 그 말씀을 묵상하는 성서지대의 목가적 정서를 함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