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등장한 아르헨티나의 팔라시오2005년 04월 11일
- FIFAworldcup.com
나무로 만든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몇 명 안 되는 응원단들 앞에서 경기를 하던 팔라시오는 지금은 봄보네라의 57,000명의 팬들이 자기 이름을 연호하는 것을 듣고 있다. 하위 리그의 보잘 것 없는 지방 팀 유니폼을 입었던 그가 지금은 자기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알베셀레스테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사실 지난 몇 년은 이 젊은 아르헨티나 선수에게 정말 파란만장한 기간이었다.
로드리고 팔라시오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연필처럼 마른 이 금발의 젊은이는 자기 고향인 바이아 블랑카의 운동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선수였으며, 사람들은 이 선수의 유망한 장래를 점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훌륭한 스트라이커 출신의 팔라시오의 아버지조차도 자신의 아들이 23살에 보카 주니어스와 입단 계약을 맺고 국가 대표팀에 소집되어 나라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젊은 선수들 중 한 명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완벽한 골잡이가 아니다"
2002년 중반에 팔라시오가 4부 리그 팀인 베야 비스타에서 2부 리그 팀인 우라칸으로 이적하면서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 그의 등급은 올라가기 시작했다.
2003년 7월에 우라칸에서 팔라시오가 보여준 눈부신 기량 덕분에 팔라시오와 그의 에이전트는 라싱 산타데르 및 알라베스와 협상하기 위해 스페인에 가게 되었는데, 그 동안 아르헨티나에서는 1부 리그의 반필드가 팔라시오와 계약을 체결하고 싶어 안달이라는 말이 전해졌다. 팔라시오의 에이전트는 “반필드가 부정적인 대답을 듣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이것은 팔라시오가 즉시 고국으로 돌아와 반필드와 계약을 맺겠다는 확답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를 기점으로 이 스타는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면 팔라시오가 그렇게 특별한 선수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전에 반필드에서 팔라시오의 팀 동료로 뛰었던 에두아르도 부스토스 몬토야는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달리면서 볼을 정확하게 다루는 능력은 팔라시오가 단연 최고다. 과거의 유명 선수들처럼 볼을 가지고 상대 선수의 옆구리 아래를 빠져 나가는 능력에서 있어 팔라시오에 맞설 만한 선수는 많지 않다. 로드리고가 이름을 얻은 것이 바로 그 기술 때문이다. 그는 오른쪽 또는 왼쪽 측면에서 갑자기 치고 들어오면서 상대 선수를 가볍게 따돌린다. 나는 가운데를 뚫고 들어가 그가 공을 패스해 주기만 기다리면 됐다. 그 친구는 뚫고 들어가는 것도 잘하고 크로스 패스도 잘 하고 골도 잘 넣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종합 선물 세트다."
2003-2004 시즌에, 팔라시오는 11번이나 네트를 가르면서 타고난 골잡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팔라시오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일부는 동의하면서도 스스로 본인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클럽 팀에 비축된 괜찮은 선수 정도이고, 그냥 최근에 꾸준히 골을 넣었다는 것 뿐이다. 나도 이런 컨디션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팔라시오는 겸손하게 말한다.
꿈이 이루어지다
2004년 6월에 팔라시오를 국가 대표팀에 넣으라는 요청이 점점 더 많아지자, 그가 곧 유럽으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다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팔라시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유럽에 가고 싶어 안달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서 축구를 하는 것으로도 행복하다." 국가 대표 선수로 뛰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팔라시오는 똑같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아니다. 국가 대표팀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건 아직 먼 얘기다. 지금 현재는 반필드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말 큰 팀에서 뛸 수 있는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그의 꿈은 예상보다 훨씬 일찍 실현되었다. 반필드는 그 다음 달에 보카 주니어스와 계약에 합의했다. 물론 팔라시오가 보카 주니어스에 최종 합류하게 되는 것은 12월이 될 것이다.
봄보네라에 도착한 팔라시오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챔피언십 초반 라운드가 진행되는 동안 보카의 신입 선수로서 벤치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보카는 마르틴 팔레르모, 기예르모 바로스 스첼로토, 마르셀로 델가도 등과 같은 유명 선수들로 가득찬 팀인데도, 열광적인 보카 응원단은 이 23살짜리 선수에게 스타팅 멤버로 뛸 기회를 줄 것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늘 좋은 대인 관계를 유지하던 팔라시오는 불만 없이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열 한 명의 스타팅 멤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까. 이곳에는 훨씬 더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많이 있고, 그 선수들이 잘 뛰고 있다."
팔라시오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기대는 여전히 크다. 보카의 회장 마우리시오 마크리는 "팔라시오는 틀림없이 지금껏 우리 클럽이 보유한 가장 위대한 선수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가 얼마간 그를 따라다니며 설득했던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내가 이 클럽에 있는 한 팔라시오도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보카에서 팔라시오를 지도하고 있는 호르헤 베니테스 감독은 팔라시오를 출전시키라는 응원단의 압력을 이미 받고 있었다.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보카 팬들이 팔라시오를 스타팅 멤버로 투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만 주어지면, 팔라시오는 분명히 이 클럽의 또 하나의 우상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디에고 마라도나도 이 선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휴대폰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유니폼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정한 위대함이란 적들에게서 어느 정도로 존경을 받느냐로 판단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카와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경쟁 팀인 리버 플레이트의 감독 레오나르도 아스트라다의 다음과 같은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르헨티나 축구계에서 리버의 유니폼에 어울리는 한 명의 선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팔라시오다."
예상치 못한 대표팀 소집
몇 달 뒤에 로드리고는 훨씬 더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성인 대표팀에 처음으로 소집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친선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된 팔라시오는 "데포르티보 쿠엔카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경기에서 비긴 후 에콰도르에서 돌아올 때 '엘 치노' 베니테스가 내게 그 소식을 전해 주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치른 이 친선 경기는 1-1로 끝났고 팔라시오는 어시스트를 하나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정식 경기에 처음으로 뛴 것은 3월 26일 라 파스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에서 볼리비아를 물리친 호세 페케르만의 대표팀에서였다. 팔라시오는 볼리비아의 수도에서 거둔 역사적인 승리의 마지막 4분을 장식했고, 주니어 대표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아르헨티나의 성인 대표팀으로 출전한 선수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팔라시오는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과 기대의 한복판에 서 있지만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누군가가 작년에 내 이름이 봄보네라에서 연호될 것이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데뷔전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나는 그에게 혹시 취했느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막 대표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뿐이며 모든 것이 새롭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뛸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