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 시대를 떠나보내던 지난 여름이었다. 호주 내륙 깊숙한 ‘탬워스’의 시골 마을 ‘댐’ 위에 누워, 남반구 별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별들은 두 배씩 늘어났다. 머리 위 하늘은 높았고 땅끝은 하늘과 닿아 있어, 밤하늘은 둥근 구처럼 보였다. 이 세상이 3차원 공간이라는 사실을, 이처럼 시각적으로 느껴본 적이 또 있었을까. 어둠의 우주 공간을 긴 시간 달려온 별빛을 쫓아, 내 눈은 더 반짝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갔고, 내 가슴은 점점 더 쿵쾅거렸다. 아내와 난 할 말을 잃고 “와우” “어쩜” 등의 감탄사만 연거푸 쏟아낼 뿐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그날 밤하늘이 천장 위에 떠 올랐다. 별 바라기 상황은 밤하늘 별들을 방 안으로 옮겨 놓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천장에 구멍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니, 벽에 붙일 별 모양 야광 스티커를 찾아, 파티용품 가게를 찾아다녔다. 밤하늘 별이 찍힌 대형 사진을 찾아, 액자와 그림을 파는 가게도 뒤졌다. 호주에서 별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 인터넷을 헤맸다. 직접 찍는 것은 장비와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별 전문 사진작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시드니에서 멀리 떨어진, 깊숙한 대륙의 오지로 목적지를 정했다. 밤하늘 별들의 감동을 영접한 지 두 해가 지나가던 지난겨울, 별을 찾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호주의 수도 ‘퍼스’로 다섯 시간 날아간 후, 다시 북쪽으로 세 시간을 자동차로 달렸다. 전형적인 호주 대륙의 ‘아웃백’이었다. 끝없는 사막과 해안 사구가 있었다. ‘란셀린’ 사막의 언덕에서는 ‘아웃도어’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거센 모래바람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인도양의 파란 바다는 수평선에 닿아 있었고, 하얀 모래 세상은 지평선과 이어져 있었다. 해안 사구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사막에서 바다를 끼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별을 찾아 떠나는 우리의 마루지가 나타났다. 단 한 점의 그늘도 허락하지 않는 광활한 사막 위에, 수많은 돌기둥 ‘피너클스’가 솟아 있었다. 돌기둥들은 사막의 바람을 따라 여러 모습으로 조각되었고, 햇빛의 각도에 따라 또 다른 모양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며 빛이 잦아드는 시간에 낮게 내려앉은 석양빛은, 사막의 돌기둥들과 어우러져 신묘한 장관을 만들었다. 영겁의 시간을 한순간에 날려 버릴 만큼 주변을 압도했다. 우주의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나간 사막의 긴 시간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만들어졌다가 묻히고 다시 솟아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작은 것들은 더 작아져 소멸할 것이며, 어디선가는 또 모이고 뭉쳐져 새롭게 그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수 센티에서 수 미터에 이르는 수만 개의 돌기둥들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그들이 외계인이 되어 우리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 곁엔 아주 가까이 세 개의 별이 있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 이민을 왔다. 이십여 년 대기업을 미련 없이 뒤로 했다. 아내는 공무원 연금 자격을 몇 달 앞두고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이민 짐을 쌌다. 아이들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반에 감행된 자식들의 이민은, 언어와 사춘기라는 싸움터로 발가벗겨져 내보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어서, 과묵형 학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식들에겐 어떤 것이었을까. 너무도 다른 이방인의 세상에서, 희망과 꿈이 있기는 했을까. 자식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식들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지 않은 이민은, 자식들을 위한 이민이 될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다. 사막에 빛이 잦아들고,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의 잔광은, 돌기둥들의 그림자를 더욱 길고 짙게 만들어 모래 위에 드리웠다. 별들이 검푸른 하늘에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적막함과 엄숙함에 우리는 말을 잃고 움직임을 멈춘 채, 그저 바라다볼 수밖에 없었다. ‘피너클스’사막의 별빛은 희미한 내 마음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은하수 물결은 밤하늘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기 위해서는 넘어야 했다던 동화 속의 은하수. 한라산 정상에 올라야 비로소 잡을 수 있다고 외로운 섬사람들이 믿었던 은하수. 뿌옇게 풀어진 내 마음은 은하수를 따라 흐르지도 건너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우주의 분진으로 만들어진 지구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은, 같은 원소들로 구성된 별의 가족이라고 했다. 시작도 지금도 앞으로도 별과 함께 별들에 의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며 푸른 별 지구의 생명체들로 살아갈 것이다. 우주의 먼지와 같은 인간들은 더욱 겸손하게 더 무르익어야 한다고, ‘피너클스’ 사막의 별들은 말하고 있었다. 낯선 세상에서 사춘기를 지나던 아이들은 마음을 닫았다. 아이들의 무언은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보겠다는 아우성과 다르지 않았음을, 그때는 몰랐다. 아픔은 덧나고 다시 굳으며 세월과 함께 아물어갔다. 포기하고 받아들이기를 버릇처럼 반복하며 길든 우리에게, 낯선 땅에서의 상처는 서로 누구도 꺼내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녹록지 않은 이국 생활에서, 세상의 주파수와는 좀처럼 맞지 않았다. 미로와 같은 현실 속에서, 수없이 포기하고 주저앉으려 했다. 저만치 떨어진 밤하늘 별들처럼, 가족 모두는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로가 있어서 겨우 버틸 수 있었음을, 지금은 안다. 부모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낯선 땅에 떨어졌던 아이들은, 켜켜이 쌓인 상처를 그대로 안은 채 자신들의 우주를 만들어 떠났다. 언젠가 내 별은 소멸할 테고, 그 별의 유전자를 싣고 새롭게 만들어진 아이들의 별은 빛나리라. 이미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내 영혼은 수많은 별 어딘가에 올라가 있었다. 별은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어두울수록 더욱 선명하게 그 자태를 보여준다. 가족의 존재를 빛내기 위해서, 스스로는 주저 없이 어두워질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이었다. 별을 직접 보지 않고 그 옆의 허공을 바라보면, 더 많은 별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렇듯 정면 돌파를 피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곁길로 돌아왔기에, 이국땅에서 가족 모두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반평생 이상을 같이 살아온 아내와, 어느 날 동시에 별에 꽂히고 별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태평양 건너 이국땅에서 이십여 년을, 경계인으로 담담하게 버텨온 부부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별을 사랑하게 된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함께 바라본 밤하늘은 어제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별들은 무엇인지 온전히 알 수 없는, 소중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세상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다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그러니 이젠 마음 놓고 그냥 살기만 해도 된다고. 오랜 시간 숨죽인 감각들을 건드리고 있었다. 해안사구의 하얀 세상. 석양빛에 물든 모래 위의 돌기둥. 검푸른 사막의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 깊은 상처를 에워싸고 붉은 생살이 돋아나듯 밤하늘 가운데를 가로지른 빛의 길, 은하수. 그 안의 너와 나. 이 모든 것들을 전문가의 사진에 담아 남길 수 있었음은 다행이었다. 시드니로 돌아와 ‘A1’ 크기로 인쇄해서 ‘라미네이팅’한 다음, 벽과 천장에 걸었다. ‘피너클스’ 사막의 별들은 잠자리에 들 때도 눈을 뜰 때도 곁에 있다. 담담하게 황혼을 버티는 초로의 이방인 부부와 사막의 별들은, 같은 곳에서 함께 숨을 쉬며 함께 산다. 인생의 날머리에는 ‘탬워스’와 ‘피너클스’ 밤하늘의 별들이 어떤 존재로 남아 있을까. 눈을 감았다. 숨이 턱 멎다가 급기야 울컥 목젖이 막혔다. 사는 동안 더 열심히 더 잘 살라고, 어두운 사막을 훑고 지나온 인도양 편서풍이 지친 어깨를 툭 치며 무심히 스쳐 갔다. 이민자의 걱정과 염려를 담은 무수한 별빛이 오늘도 낯선 대륙 위로 쏟아져 내린다. 무한한 시공간 속에서 그저 작고 보잘것없는 나는, 또 우주의 티끌이 된다. 가볍고 헐거워진 몸과 마음은 별이 되어 밤하늘로 올라간다. 낯선 땅에서의 어설펐던 시간도 부끄러웠던 기억도 모두 모아, 밤마다 모국의 산하 속으로 스며든다. 검푸른 밤하늘의 별은 오늘도 나를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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