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에서 마법사 간달프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삶이 무거워 절망에 빠질 때, 세상이 어지러울 때 마다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인하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끊임없이 묻는다.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악해도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하는 마음과 생각을 놓아 본 적이 없다.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 일꾼,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역할과 책임을 다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과 믿음으로 꿈을 꾸며 살아왔다.
지금 어둠이 빛인지 빛이 어둠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막장 드라마의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 구별하지 못하고 혼란과 혼돈(混沌)에 빠져 이리저리 흔들리며 표류하고 있다. 사람들이 사리사욕과 닫힌 관계 그리고 헛된 영광과 독선에 사로잡혀서이다. 두 달째 계속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악과 폭력, 거짓과 불의가 눈앞에서 번영과 발전, 안정과 평화, 애국애족이라는 말로 서로 서로를 흔들고 농락하며 이간질 시키고 있어도 아픔과 의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 무관심한 사람들, 향락에 젖은 사람들이다. 무관심으로 작금의 상황을 직시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기와 심리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역사의 흐름이 과거로 퇴행하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함께 모으는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 역사가 소용돌이에 빠져 불신과 참체의 늪에 잠기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반지의 제왕⌟은 악의 제국을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는 사우론의 악에 대항하는 소수의 선한 의지를 가진 존재들이 벌이는 악과의 힘겨운 전투이다. 승리의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마법사 간달프는 악과 싸울 동지들을 규합한다. 그는 요정왕 엘론드의 거처에 세상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프로도의 양 아버지 빌보 베긴스, 곤도르왕국의 후계자 아라고른, 난쟁이 대표 김리, 요정의 대표 레골라스, 나그네로서 리벤델을 방문한 곤도르 섭정 데네소르의 아들 보로미르와 샤이어 촌뜨기들인 지극히 평범한 프로도, 샘, 피핀 그리고 메리였다.
처음 일독을 시작하였을 때 악과 싸우는 지도자가 하필이면 마법사이고 등장인물이 요정족, 반인족, 난쟁이족, 오크, 티롤 등이라서 심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악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다루며 선의 승리를 만들어가는 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이 평범하면서 비범하다는 생각에 놀랐다. 그러면서 판타지소설에 담긴 그의 세상 악에 대한 비판과 풍자, 상징에 눈이 열렸다.
비상계엄령 사건을 계기로 하여 다시 책을 읽으면서 ⌜반지의 제왕⌟이 우리 시대에 대한 경고요 예언임을 깨달았다. 마법사는 바로 폭력의 악순환에 갇힌 우리 시대를 아파하고 치유하길 간절히 원하는 작가 톨킨 자신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이미 마왕 사우론이 보낸 어둠의 기사들에게 사로잡혔다. 크고 작은 세상 사람들은 살아 남기 위하여 앞을 다투어 굴복하며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심지어는 백색의 마술사인 사루만마저도 그에게 굴복하였다. 물론 그는 심중 깊숙한 곳에 ‘유일 반지’를 먼저 발견하여 사우론을 제거하고 모르도르의 지배자가 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세상의 기운은 사우론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까이에 있는 로한왕국과 곤도르왕국이 그에게 복종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사우론은 정복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자신의 제국인 모르도르와 서북으로 국경을 접한 로한왕국은 사루만의 간계로 세오덴왕의 총신인 뱀의 혓바닥‘을 이용하여 싸울 용기를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서남쪽에 있는 곤도르왕국은 데네소르 섭정(대리왕)이 팔란티르의 돌을 이용하여 세상의 정보를 얻는 것을 알고 그가 그 돌을 이용할 때 마다 마법을 걸었다. 사우론은 그에게 거대한 힘을 가진 자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 넣어 그로 하여금 자신의 도전에 폭력으로 맞대응하도록 유도하였다. 이에 조바심이 난 데네소르는 팔란티르의 돌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힘을 지배할 수 있는 ‘유일 반지’가 세상에 나온 것을 감지하고 사우론보다 그것을 먼저 탈취하려고 자기의 아들 보로미르를 리벤델의 엘론드 회의에 내보냈다. 데네소르는 ‘유일 반지’의 힘을 이용하여 마왕 사우론을 죽이고 모르도르제국 까지 자신의 영토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을 품었던 것이다.
헛된 망상을 꿈꾸며 초조해진 데네소르는 피핀과 간달프의 방문으로 아들의 죽음을 확인함(그는 팔란티르의 돌을 보고 이미 아들이 죽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과 동시에 기대하였던 ‘유일반지’가 사라져 그 힘을 빌릴 수가 없게 되어 곤도르제국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절망하였다. 그런 상황일 때 마법사 간달프는 데네소르에게 연합하여 사우론의 제국과 싸울 것을 제안하였다. 간달프는 데네소르에게 로한왕국과의 옛 조약을 상기시키며 연합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데네소르는 그의 말을 냉소에 부쳤다.
“곤도르의 성주는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 해도 다른 이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소. 게다가 곤도르의 성주에게는 곤도르 이익보다 더한 목적은 있을 수 없소.”
간달프는 데네소르 섭정의 말에 사악한 폭력의 시대에 자신이 원하는 것은 권력의 탈취가 아님을 데네소르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그는 자신을 위대한 혁명 투사로 여기거나 악에 대항하는 불세출의 지도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의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생략… 그러나 당신에게 이 말을 해둬야겠소. 어떤 왕국의 법도 나와는 상관이 없소. 곤도르건 아니면 크거나 작은 왕국이건 말이오. 하지만 세상이 존속하는 한 위험에 빠진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내 관심사 일 것이오. 그리고 설혹 곤도르가 멸망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 어둠을 지난 새로운 시대에 무럭무럭 자라나 열매를 맺고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라도 남아 있게 된다면 내 일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닐 것이오. 왜냐하면 나또한 청지기*(섭정, 위임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오. 그걸 아셨소?”
⌜반지의 제왕⌟ 5권 27쪽(황금가지, 2002년)
간달프는 세상의 악인을 깨끗이 제거하고 권력을 잡아 선한 정치를 하기 위하여 악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왕좌에 눈이 먼 데네소르에게 자기는 권좌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위험에 빠진 모든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시간과 마음을 바치고자 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는 어둠의 시대를 지나 새 시대에 다시 꽃 피울 수 있는 한 그루나무를 위해서 세상의 청지기로서 역할을 다하려는 순수하고 소박한 생명의 사람, 희망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간달프처럼 평화를 위하여, 새 시대를 위하여, 작은 생명을 위하여,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을 위하여 빈 마음, 순수한 눈으로 겸허히 폭력과 악과 맞서 싸우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강한 사람만큼 뜨겁게 희망하는 약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있는 지도자가 있어서 겸허히 시대의 아픔과 간극을 품고 치유해 가길 빈다.
간달프의 마음으로 크고 작은 어둠들이 서로 밀치며 왕 노릇하는 세상을 바라본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새 시대를 위하여 어둠과 혼란, 악과 폭력에 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간달프처럼 위대한 원정대를 꾸리는 큰 지도자의 역할은 아니지만 가치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기도하며 섬기며 살 수 있는 청지기 역할임을 감사하며 두 손을 모은다.
2025년 1월 25일 토요일 묘시
우담초라하니
미 주
*⌜반지의 제왕⌟ 5권 27쪽은 ‘청지기’가 아닌 ‘섭정’이라고 번역 되어있다. 그러나 그 문장을 인용한 ⌜신앙의 눈으로 본 생물학⌟159쪽에 ‘청지기’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청지기로 적었다.
그리고 청지기나 섭정이나 다 같이 ‘위임을 받은 자’, ‘대리인’ 이라는 뜻임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