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공자 없는 공자의 제자들
자장편은 공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제자 자장, 자하, 자유, 증자, 자공이 책에 등장할 뿐이다. 다른 편들에 비해 가장 특이한 점이다. 하지만 내가 더욱 당황했던 것은 제자들끼리 서로를 비평하고 다투며 거친 논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법가의 <한비자>에 따르면 공자가 죽은 후 전국시대에 접어들며 공자의 문하가 크게 여덟개의 파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이 편은 그 분열상을 잘 보여준다.
“자하께서는 ’좋은 사람은 사귀고 좋지 않은 사람은 상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장이 말하였다.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되 일반인들도 포용하며, 선한 사람을 칭찬하되 능력이 없는 사람도 동정한다. 내가 크게 현명한 사람이라면 사람들을 어찌 포용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만일 현명하지 못하다면 남들이 나를 거부할 것이니, 어찌 남을 거부하겠느냐?‘”(19.3)
자하와 자장의 분열이다. ’사람과의 교제’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거친 논전이 벌어진다. 자하는 좋은 사람하고만 교제하라고 말하는 반면, 자장은 공자가 가르친 것은 그게 아니라며 군자는 현명하고 큰 사람으로써 모두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내가 현명한 사람이기만 하면 사귐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법, 굳이 내가 골라 사귀고 자시고 할게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자하의 말은 편협해 보이는 반면에 자장은 꽤나 번듯해 보인다. 하지만 자장의 마음 속에는 자하의 의견을 낮추어 드려는 마음이 들어가 있다. 현명하면 사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항상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현명한들 사람에게 다가가는 나의 발걸음이 없으면 사귐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을 정하는데엔 나의 사심과 편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자면 자장의 말 또한 겉은 번듯하고 거대하지만 사실 속은 알차진 못한 것 같다. 이러한 자장의 겉멋을 자유와 증자가 비평한다.
“자유가 말하였다.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하는 데는 능하지만 아직 인하다고는 할 수 없다.’“(19.15)
”증자가 말하였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겠구나.’“(19.16)
인을 향해 달려가는 공자의 가르침 속에서 인하지 못하다는 말은 가장 큰 비평이다. 물론 자장의 겉멋에 일리있는 말이지만 이쯤되면 단지 비평이 아닌 사심 섞인 비난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유가 말하였다. ‘자하의 제자들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일이나, 손님 응대하는 일,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 등은 잘하지만, 그런 것은 말단이다. 근본적인 것을 따져보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하려는 것인가?’
자하가 이를 듣고서 말하였다. ‘아! 자유의 말이 지나치구나! 군자의 도에서 어느 것을 먼저 전하고 어느 것을 뒤에 미루어 두고 개을리 하겠는가? 이를 풀과 나무에 비유하자면, 종류에 따라 가르침을 달리하는 것이다. 군자의 도에서 어느 것을 함부로 하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갖추고 있는 것은 오직 성인뿐이로다!’“(19.12)
이 부분은 자유와 자하의 분열이다. 내가 보았을 때 자유가 먼저 시비를 건 듯하다. 자유는 자하가 사소하고 말단 같은 일만 잘하고 정작 근본은 없다며 비난한다. 이를 들은 자하는 화를 내며 군자의 도 중에 먼저, 나중은 없다며 사람의 유형에 맞게 가르침을 달리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의견이야 다를 수 있다만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 날카롭고 거칠다. 마치 일부러 날카롭게 간 듯이 들린다.
공자가 있을 때는 충돌하지 않았던 제자들이 공자가 사라지고 바로 갈라지고 흩어진다. 마치 제각기 다른 종류의 꽃이 모인 꽃다발이 공자라는 묶음으로 인해 모여있다가 공자가 사라지고 나니 흐트러지는 것 같다. 공자의 학교의 모든 가치는 공자에게만 달려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리보면 뭔가 허무하다.
한 스승에게서 함께 배운 제자들이었지만 각각 받아드린 것은 달랐나 보다. 어쩌면 이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각 사람마다 성질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다. 한 스승의 아래에서 배웠다 한들 그들의 색깔이 어디 가겠는가? 만약 모두가 소름돋게 일치하다면 그것이 더 무서운일이다. 그것은 배우고 익히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저 세뇌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의 의견이 각기 다른 것이 당연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저리 다툼을 빚는 것은 공자의 제자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조화를 강조하던 공자였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은 조화보단 다툼을 먼저 한다. 서로 존중하며 이해했다면 좀 더 공자의 제자답지 않았을까?
반면, 이번 편 뒷부분이 나오는 자공은 누군가와 다투지 않는다. 그가 무언가에 반박하는 이유는 오직 공자였다. 누군가 공자를 무시할 때만 부드럽고 화려한 말솜씨로 상대방을 반박하는 것이다. 정말 공자의 제자다운 행동이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같은 성경을 읽지만 각자 신앙의 색깔이 다 다르다. 천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명의 하나님이 있다. 각 교파마다 다른 색깔을 띄며 중심적으로 두는 메세지가 다르다. 가끔은 이러한 차이 때문에 설교 중 시험에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자꾸 그것을 배제시키고 항의하려는 마음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논어를 읽는 공자의 제자로서 자공답게 행동하고 싶다. 모두 예배하려는 큰 틀 안에서 모인 것인데 작은 틀만 중요시하다가 큰 틀을 놓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다른 이의 의견에 좀 더 귀 기울여 공자가 말한 조화를 경험할 수 있길, 앞으로 모든 상황에도 이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