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나라 조돈(趙盾)이 한궐(韓厥)을 천거하자, 진나라 임금이 그를 중군위(中軍尉)로 삼았다.
한편 조돈이 죽자, 그의 아들 조삭(趙朔)이 그의 경(卿) 벼슬을 이어받았다.
그러다가 경공(景公) 삼년에 조삭은 진나라 장수가 되었고, 그는 성공(成公)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이때 대부인 도안가(屠岸賈)가 조씨를 죽이려 하였다.
처음에 일찍이 조돈은 꿈속에 숙대(叔帶)가 거북의 허리를 잡고 매우 슬피 울다가 다시 손뼉을 치며 웃고,
다시 노래를 부르는 등 이상한 모습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조돈이 이상하여 점을 쳐 한 괘(卦)를 얻었는데, 그 뜻은 집안이 끊겼다가 다시 좋아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조나라 태사가 그 점괘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점괘는 심히 나쁩니다. 군(君)의 신상에 화가 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손에게 미치게 되었으니!
그러나 이는 또한 군의 잘못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조삭(趙朔)에 이르러 조씨는 더욱 쇠약해 졌다.
한편 도안가는 처음에 영공의 총애를 입었다가 뒤에 경공 때에 이르러서는 사구(司寇)에 까지 올라 있었다.
그는 장차 난을 일으키려 하면서 그 명분을 영공을 죽인 무리를 소탕하되,
그 후손인 조돈에게까지 이를 덮어씌울 셈이었다.
그리하여 도안가는 두루 여러 장군들에게 이렇게 포고하였다.
“조천(趙穿)이 영공을 죽일 때 조돈은 비록 그것이 큰 죄 인줄 몰랐다고 하나, 그가 오히려 우두머리였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였는데도, 그 자손이 벼슬을 하고 있으니 과연 어떤 징벌을 받아야겠는가?
청컨대 그를 주살해야 할 것이다.”
이를 들은 한궐이 만류하였다.
“영공이 피살 될 때 조돈은 밖에 있었다. 선군께서도 이 때문에 그를 무죄라 여겨서 주살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러 사람들이 그 후손을 죽이는 것은 선군의 뜻을 어기고도 제멋대로 그 후손을 죽이는 셈이 된다.
마구 사람을 죽이는 것을 난신(亂臣)이라 한다. 또 그런 큰일에 임금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은
임금이 없는 무군(無君)의 불법 천지이다.”
그러나 도안가는 이 한궐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한궐은 조삭에게 급히 도망가라고 권하였다.
조삭은 이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정말로 이 조씨의 후사를 끊지만 않으신다면 나는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한궐이 힘써 주겠다고 하며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도안가는 더 이상 한궐에게 어떤 요청도 없이 여러 장수들과 권력을 농단하여 하궁(下宮)에서 조씨를 공격,
조삭· 조괄(趙括)· 조영제(趙嬰齊)를 죽여 그 씨족을 멸살해 버렸다.
그런데 조삭의 아내인 성공의 누이는 마침 임신 중이었는데,
이때 궁중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가 뒤에 아들을 낳게 되었다.
조삭의 식객이었던 정영(程嬰)이라는 자가 이를 알고 그 아이를 몰래 거두어 산속으로 숨어 버렸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궁중의 경공이 병이 들어 점을 쳐 보았더니 그 점괘가 이러하였다.
‘대업의 후손으로 대가 끊어진 자가 있어 그 뒤를 잘 처리하지 않은 것이 빌미로다.’
경공은 한궐을 불러 급히 물었다. 한궐은 조씨의 후손이 살아있음을 아는지라 짐짓 이렇게 일러 주었다.
“대업의 후손 중에 이 진나라에서 제사가 끊어진 집안이라면 이는 바로 조씨 가문입니다.
무릇 중연(中衍)은 모두가 영씨(嬴氏)성을 얻었고, 그는 얼굴이 까마귀 부리처럼 생겼으나,
옛 은나라의 태무(太戊)로부터 주나라 천자에 이르기까지 영명한 덕을 밝혔습니다.
그 뒤에 주나라가 쇠하여 유왕(幽王), 여왕(厲王)에 이르러 무도하게 되자,
숙대는 그 주나라를 버리고 우리 진나라에 와서 선군이신 문후(文侯)를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성공에 이르도록 대대로 공을 세워 그 후사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대에 이르러 홀로 그 조씨 집안만 멸족되어 나라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북의 그 점괘에 나타나 보인 것이니 오직 임금 하시기에 달렸습니다.”
경공이 다시 물었다.
“지금 조씨 가문에 후손이 살아 있소?”
그제 서야 한궐은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에 경공은 한궐과 더불어 그 후손을 찾아 먼저 그 아이를 데려다가 궁중에 숨겨놓았다.
여러 장수들이 경공의 병문안을 위해 들어오자 경공은 한궐의 무리를 이용하여 여러 장수들을 위협,
그 어린아이를 보여주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무(조무)였다.
이에 장수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를 만나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옛 하궁의 난(亂)은 도안가의 짓입니다.
임금의 명령이라고 거짓으로 나서서 여러 군신을 부추겨 저지른 짓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그런 난을 일으켰겠습니까?
임금께서 병이 나지 않으셨다면, 마침 모두들 조씨의 후손을 세워주자고 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마침 임금께서 먼저 명령을 하시니 이는 바로 여러 신하들의 소원이었습니다.”
이에 임금은 조무와 정영을 불러 여러 장군들에게 두루 인사를 시켰다.
여러 장군들은 드디어 정영, 조무와 더불어 도안가를 공격하여
그 일족을 멸살하고 조무에게 옛 조씨 전읍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어찌 남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 있으리오?
무릇 은혜란 베풀기는 이곳에 해도, 그 보답은 다른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즉 정영이 아니었더라면 조씨의 후손은 결국 끊어지고 말았을 것이며
한궐이 아니었더라면 조씨의 후손은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한궐은 가히 은혜를 잊지 않은 자라 이를 수 있겠다.
✼ 조돈(趙盾): 춘추시대 진나라 육경의 하나. 조선자. 盾은 돈으로 읽는다.
✼ 한궐(韓厥): 韓獻子라고도 부르며, 韓萬의 玄孫.
✼ 조삭(趙朔): 조돈의 아들. 趙莊子로도 불린다. 조무의 아버지.
✼ 성공(成公): 춘추시대 진나라의 군주. 재위 7년(BC. 606∼600).
✼ 도안가(屠岸賈): 진나라의 대부.
✼ 숙대(叔帶): 조씨의 선대. 周나라에서 晉나라로 옮겨왔다.
✼ 사구(司寇): 재판을 맡은 관리.
-《설원(說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