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세계는 넓다-7
여자들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조철봉은 물론이고 자리에 앉은 유문수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덮여졌다. 이제 문수는 조철봉에게 온몸을 맡긴 터라 대답도 제몫이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다.
정색한 조철봉이 차례로 여자들을 보았다. 그순간 조철봉의 가슴이 세 단계의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처럼 세번 진동했다. 차례로 자신의 시선을 받는 여자들이 풍기는 매력 때문이다. 요염하고, 화사하며 감미롭고 청순하다. 신비롭고 향기로우며 그윽하게 젖어있는 것이다.
“납니다. 내가 두 몫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철봉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쳤다.
“하지만 아직 유문수의 한 몫도 내 두 몫도 정해지지 않았지요. 그것은 모두 당신들이 풍기는 제각기의 독특한 매력때문입니다.”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탐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완전히 드러내며 세 여자를 보았다. 숨기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권은 당신들이 쥐고 있지요. 내 룸살롱의 미인들처럼 말입니다.”
“두 몫은 힘드시지 않겠어요?”
그렇게 물은 것이 지연이었으므로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연이 입을 뗀 순간부터 이제는 문수가 노골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조철봉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아니, 그건 내가 자청한 일이어서.”
조철봉은 문득 문수와 둘이서 작전을 짜는 동안 여자들도 분배에 대한 결정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를 갖기로 한 여자는 누구인가?
만일 그것이 서로 어긋날 경우에는 어떻게 수습해야 된단 말인가?
“자, 그럼 조건을 말해 봐요.”
역시 분위기를 띄워준 여자는 희영이었다. 희영이 화사한 얼굴로 조철봉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가 조사장님을 선택했을 경우의 조건을 말예요.”
회에 곁들여서 희영은 소주를 다섯잔 마셨다. 지연과 유경은 각각 석잔씩 마셨는데 오히려 얼굴이 더 빨갛다. 희영의 눈빛을 본 조철봉은 숨을 멈췄다. 그쪽도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전에 자신이 세 여자한테 보낸 시선과 비슷했다. 도전하는 시선이다. 함께 껍질을 벗자고 눈빛으로 외치고 있다.
“5박6일간의 발리 관광을 시켜드리죠.”
조철봉이 정색하고 세 여자를 보았다.
“물론 두 분이니까 가능한 조건이 되겠습니다. 왕복 비행기 요금에다 숙식비까지 일체 책임을 집니다.”
“어머나.”
먼저 탄성을 뱉은 여자는 짧은 머리의 유경이다. 유경이 유난히 검은 눈동자로 조철봉을 보면서 물었다.
“조건이 뭔데요? 그냥 조사장님을 찜해주면 되는건가요?”
“그럼요. 하지만.”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다시 뚱해져 있는 문수를 보았다.
“먼저 여기 있는 유사장의 조건을 들어보시죠.”
“야, 무슨” 했던 문수가 눈을 치켜떴다가 여자들의 열기 띤 시선을 받더니 긴장했다. 여자들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조철봉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어차피 즐기려고 모인 마당에 변죽만 울리면 서로 피곤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본론으로 들어가면 박살이 난다.
발리 여행은 금방 생각해 낸 상품이었지만 잘 되면 수유리의 발리 모텔에서 즐길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때 마침내 문수가 입을 열었다.
/ 글 이원호
(486)세계는 넓다-8
게재 일자 : 2003-07-31 10:13
“좋아, 그렇다면 나는 파리행 왕복 항공권이다. 그리고 일주일간 숙식비를 내기로 하지.”
“야아.”
하고 희영이 탄성을 뱉었지만 누가 봐도 접대용 멘트였다. 이미 조철봉의 선수로 인하여 김이 샜을 뿐만 아니라 혼자 파리행 비행기를 탈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분위기를 눈치챈 문수가 얼굴을 굳혔을 때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식사도 끝났으니 조용한 곳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십시다.”
“분위기 있는 곳으로 가요.”
희영이 금방 찬동을 했고 지연과 유경이 가만있었으므로 합의는 된 셈이었다.
“그렇다면 블루호텔로 가십시다.”
조철봉이 제의하자 여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좋아요.”
다시 희영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거기 클럽 말이죠?”
“그렇습니다.”
블루호텔의 클럽은 한강변에 세워져 있어서 경치도 좋을 뿐만 아니라 물도 좋은 곳이다. 거기에다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뜨내기가 걸러지고 노른자만 출입되는 일급 클럽인 것이다. 식당 앞에는 차 두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문수의 국산 최고급 승용차에다 여자들이 타고온 흰색 벤츠였다. 모두 대리 운전사가 대기하고 있는 터라 여자와 남자는 따로 타고 블루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저녁 9시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차가 강변도로로 진입했을 때 조철봉이 앞쪽을 본 채 정색하고 말했다.
“야, 임마.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들란 말이다. 기회는 오늘밖에 없어.”
문수가 머리를 돌려 조철봉의 옆모습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오늘 끝내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단 말이야.”
“글쎄, 그건 알지만.”
“박지연이한테 밀어붙여. 난 나머지 둘을 맡을테니까.”
“술이나 잔뜩 먹일까?”
“그런 네가 알아서 하고.”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블루호텔에는 이쪽 차가 먼저 도착했으므로 그들은 현관 앞에서 여자들을 기다렸다.
“나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까 넌 여자들 오면 클럽으로 데려와.”
조철봉이 문수에게 말했다.
“내 손님이라면 안내해 줄거다.”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놈을 꼽으라면 그 첫번째로 비싼 술에다가 비싼 이차값까지 내고서 아가씨하고 호텔방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다음날 아침 집에서 깨어나보니 어젯밤 아가씨하고의 기억이 마치 필름이 탁 끊긴 것처럼 생각나지 않는 경험을 가진 놈이 될 것이다.
그러고는 일장춘몽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돈이 아까워서 차라리 증명이라도 되도록 성병 증후가 보이는가를 기대하는 놈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한심한 놈이 친구한테 여자 데리고 와서 저 잘되기를 바라는 놈인데 바로 문수가 될 것이다. 조철봉이 클럽에서 기다린 지 15분쯤 지났을 때 문수가 여자들과 함께 들어섰다. 블루호텔의 클럽은 1백50평쯤 규모에 중앙에는 작은 플로어가 있고 벽쪽으로 테이블이 배치되었는데 좌석간의 간격이 넓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여서 손님의 반 정도는 외국인이었고 한국인 회원은 30대 후반의 사업가가 대부분이다.
“분위기가 좋아, 이곳은.”
조철봉의 왼쪽에 앉으며 희영이 말했다. 그때 지연이 오른쪽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