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高手의 세계] 세계를 놀라게 한 다섯 예언가
‘신묘한 능력자’와 ‘운 좋은 점술가’ 그 사이
/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 “1999년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 내려온다” 9·11테러 예언? (노스트라다무스)
⊙ “미국 대통령, 사무실에서 사망”… 서류 검토 중 뇌출혈로 쓰러진 프랭클린 루스벨트 (에드가 케이시)
⊙ “삼한 통일의 주인이여, 창생들은 구제를 기다린다” 王才를 점지한 고승 (도선 국사)
⊙ “쿠르스크 몰락” 예언이 同名 핵잠수함 침몰로… 두 눈 잃고 얻은 神氣 (바바 반가)
⊙ “엘 고어, 노벨평화상 받을 것” 美 부통령 수상 맞힌 예언가의 ‘꿈꾸는 편지’ (주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즈)
‘문어·돼지에 고양이와 매까지…’
지난 7월 16일 끝난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인기스타 중에는 고양이도 있었다. 올해 월드컵 공식 예언 동물로 낙점된 흰색 고양이 ‘아킬레스’는 귀여운 외모와 함께 여러 경기의 승패를 맞히면서 화제가 됐다. 예언의 매 ‘파라’ 또한 한국과 멕시코 경기의 승패를 맞혔다. 검은 돼지 ‘미스틱 마커스’는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 브렉시트 투표 결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했다. 점쟁이 문어 ‘파울’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팀까지 총 여덟 경기의 승패를 맞혀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왜 예언에 놀랄까. 한두 번 결과를 맞히지 못해도 또 다시 주시하는 이유는 뭘까. 한 심리학 교수는 “예언을 지나치게 믿는 행위는 일종의 확증편향(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행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심리학 교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비하려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라고 말했다.
진실은 복잡하다. 확실한 건 누구도 예언을 낭설로만 흘려듣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미신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도 괜히 신경 쓰이고 한 번쯤 궁금해하는 게 예언이다. 수많은 사건 결과를 맞혀 온 예언자의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계를 놀라게 한 예언가들이 여기 있다. 신묘한 능력자로 볼 것인가, 운 좋은 점술가로 볼 것인가. 증명은 어렵고 주장은 난무한다.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다.
의술이 神占으로
노스트라다무스
프랑스의 의사 겸 점성술사로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는 유복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조부와 외조부에게 의학·점성학 지식과 고전·역사 등을 배웠다. 인문 교육을 받은 뒤 19세 때 의대에 입학, 졸업 후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의사로 일했다. 1534년 결혼하지만 3년 뒤 흑사병으로 배우자와 자식을 잃는다. 처가에서 사망한 아내의 지참금 반환 소송을 거는 등 악재는 이어졌다. 세상에 환멸을 느낀 그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유랑 의사로 활동했다. 프랑스의 도시 살롱 드 프로방스에 정착, 실용서와 역서(曆書)를 출간해 이름을 알렸다. 1555년 대표 예언서 《백시선》 초판본을 펴냈다. 운을 맞힌 4행시짜리 예언을 100편 단위로 모은 책이었다.
4년 뒤 국왕 앙리 2세가 마상경기에서 불의의 부상으로 숨졌다. 그의 예언서에 수록된 4행시와 그 결과가 일치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예언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564년 새 국왕 샤를 9세의 고문 겸 시의(侍醫)로 일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2년 뒤 통풍으로 사망했다. 앙리 2세의 죽음은 물론, 왕자들이 모두 왕위에 오르지만 요절할 것이라는 예언도 적중하면서 역사 속 예언가의 대명사가 됐다.
광고
노스트라다무스는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등장, 런던 대화재, 중동에서 일어날 제3차 세계대전 등 수백 년 뒤의 사건들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중 “1999년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올 것”이라는 예언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9·11 테러를 예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포의 대왕이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것이다. 반면 1999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과 유고연방군 간 혈전을 벌인 ‘코소보 전쟁’, 같은 해 중국 정부가 파룬궁(불교·도교를 융합한 심신 수련법) 수련원들을 핍박한 ‘파룬궁 탄압’을 예언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세기말 사이비 종교의 휴거설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 밖에 “이탈리아 근처에서 황제가 나타나 제국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그들은 황제의 군대를 보고 왕자의 모습이 아닌 도살자로 기억하리라”는 내용의 4행시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출현을 예언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당시 나폴레옹은 프랑스령이었던 이탈리아 코르시카 출신이었고, 그의 병사들은 잔인한 살육을 일삼아 주민들에게는 도살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에는 ‘HISTER’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순서를 바꾸면 철자가 하나만 다른 ‘히틀러(Hitler)’가 된다. 여기에 “치욕스런 왕이 세워지면 황금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내용의 4행시를 결부시켜 ‘히틀러의 등장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돌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행한 추측이었다.
“혜성 떨어지면 지구 멸망”
노스트라다무스는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등장, 런던 대화재, 중동에서 일어날 제3차 세계대전 등 수백 년 뒤의 사건들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tvN 캡처
“20의 3배에 6을 더한 해에 런던은 불타 정의로운 자의 피를 요구하도다”라는 예언은 1666년(20×3+6=66) 영국 런던에서 대화재가 발생함으로써 적중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자동차의 출현을 맞혔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말 대신 새로 나타날 이동수단의 명칭을 ‘카로(Carro)’라고 불렀다. 카로는 그가 죽은 뒤 360년 후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청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존경을 받은 기독교 수도사가 후일 교황의 자리에 오르는 사건도 있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펠리체 페레티’라는 이름의 수도사에게 “교황 성하(聖下)께 무릎을 꿇사옵니다”라고 예를 표했다. 그 수도사는 1585년 교황으로 선출돼 종교개혁을 이끌게 되는 ‘식스토 5세’였다.
지구 멸망에 관한 예언도 있었다. 2008년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서 진행된 실험으로 검은 구멍(블랙홀)이 생겨 지구를 삼켜버린다는 예언부터, 혜성이 떨어질 때 마부스(Mabus)라는 권력자가 나타나 지구를 파괴한다는 예언도 있었다. ‘마부스는 곧 죽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 그 후 사람들과 짐승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있을 것이다. / 즉시 복수가 이어지고, 세기와 권력과 가뭄과 기근. / 혜성이 지나갈 때에.’ 한때 이 예언으로 이름이 비슷한 레이 메이버스 전 미국 해군장관이 주목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의 유럽 장악을 예언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영국 일간지 《더선》은 2015년 11월 18일(현지시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사실을 보도한 신문 기사가 페이스북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더선》이 전한 해당 기사를 보면, ‘노스트라다무스가 파괴된 유럽을 예견했다’며 ‘무슬림 군대가 유럽을 행진하고 런던에서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침략자들은 살인·강간·약탈을 일삼는다’는 등의 내용이 나와 있다. 이로 인해 제3차 세계대전이 촉발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기사의 원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다. IS의 파리 테러 직후, 이런 주장들이 난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백시선》 서문으로 알려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권위 있는 예언은 먼저 창조주 하느님에게서 유래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좋은 조건에서, 마지막으로 천성적인 소질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천재 예언가도 결국 신점에 의탁한 것일까.
불가사의 최면술사
에드가 케이시
미국 최고의 영매(靈媒)로 알려진 에드가 케이시(1877~1945)는 어릴 적부터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 혼자 놀 때면 죽은 할아버지의 영혼을 불러들였다. 투시력을 발휘해 공부를 하지 않고도 철자 시험에 합격했다. 생육이 부진한 꽃에게 영성(靈性)을 불어넣어 자라게 했다. 잠을 자면서 책의 페이지를 외우는 신기를 보이기도 했다. 본인은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모른 채 학교를 졸업, 농부와 서점·구둣방 직원으로 일했다. 개신교 신자로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성경을 탐독했다. 그때까지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케이시는 24세 때 실성증(失聲症)에 걸려 최면요법을 받으면서부터 본인의 초능력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후 최면상태에서 인류의 운명, 환생의 법칙, 불치병 치유법 등을 예언하곤 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예언을 할 때면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케이시는 깊은 명상 단계에 도달할 때 잠재의식을 끌어올려 여러 질문에 답했다. 하늘에 올라가 서고에서 예언이 적힌 글을 읽고 내려온다고 했다. 잠에서 깨면 자신의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초능력이 “남을 도울 때만 정확하다”고 했다.
‘수면 예언자’로 이름을 알린 케이시는 미국인 수천 명의 병을 진단했고 미래의 사건을 예측했다. 1901년부터 1944년까지 43년 동안 1만4000여 명의 전생을 당사자들에게 알려줬다. 3만명의 환자들이 케이시의 진료·치료를 받았다. ‘우주의 비밀은 무엇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관절염 치료법은 무엇인가’ 등 다양한 화두에 몰입했다. 그의 통찰력과 예지력은 철학자·의학자·점성술사의 경계를 오갔다.
명성이 널리 퍼지자 그를 찾아온 유명 인사들도 있었다. 우드로 윌슨 전 미국 대통령,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작곡가 어빙 벌린 등이었다. 그는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케이시가 설파한 환생론은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갤럽 여론조사 결과, 미국에서 4명 중 1명은 환생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열도 침몰”
영화 〈일본 침몰〉의 한 장면. 케이시는 “일본의 대부분은 반드시 바닷속으로 침몰한다(The greater portion of Japan must go into the sea)”고 예언했다. 사진=영화 스틸컷 캡처
케이시는 “일본의 대부분은 반드시 바닷속으로 침몰한다(The greater portion of Japan must go into the sea)”고 예언했다. 그의 주장은 일본 침몰을 다룬 소설·영화에 영향을 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때 다시금 주목받았다. 이 밖에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한 주식 붕괴,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 와해 등을 예언했다.
2차 대전의 경우, 일본·독일·오스트리아가 규합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예언이 적중하기도 했다. ‘소련 해체설’은 당시 아무도 믿지 못할 수준의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그의 사후 반 세기 만에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케이시도 미래의 제3차 세계대전을 예고했다.
‘미국 대통령이 사무실에서 사망한다’는 예언도 맞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1945년 4월 웜스프링스에 위치한 별장 집무실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안락의자에 앉아 비서와 함께 테이블 위 서류를 검토하던 중 “뒷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말과 함께 쓰러졌던 것이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피살, 1975년 미국의 베트남전 패퇴,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을 적중시켰다.
아직 실현되지 않았거나 틀린 예언도 있다. 케이시는 미국 대륙 곳곳이 파괴될 것이라고 점쳤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 대부분이 몰락할 것이라고 했다. 남극과 북극의 위치가 뒤바뀌고 대지진이 일어나 캘리포니아가 물에 잠길 거라고 했다. 현재까지 미국 도시는 이상이 없다. 1968년 중국이 기독교 국가가 될 것이라는 예언도 빗나갔다. 궤변도 있다. 케이시의 추종자들은 그의 예언이 ‘보물찾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해안가의 모든 땅을 파내도 보물이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예전에 누가 숨겨진 보물을 파냈거나, 앞으로 이곳에 보물이 묻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케이시는 생전 “지상의 인간에게 신의 목적을 이해시키는 게 내 인생의 이유”라고 말했다. 세계의 대이변을 민초들에게 미리 알려주기 위해, 우주와 소통하는 초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주장과 능력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생명은 오늘 해야 할 일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명언은 들을 만하다.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고 평생 약자들을 위로해 준 선의만큼은 추종해도 괜찮을 것이다.
제왕을 알린 祕記
도선 국사
신라 말 선승(禪僧)이자 풍수가 도선(道詵·827~898) 국사는 신라 헌강왕이 궁궐로 초빙해 법문을 들을 만큼 당대의 이름난 승려였다. 속성(俗姓)은 김(金)이고 자는 옥룡(玉龍)이다. 정복 군주 태종 무열왕의 서손(庶孫)이라는 설이 있다. 모친이 빛나는 구슬을 삼키는 태몽을 꾸고 그를 임신했다고 전해진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은 15세 되던 해에 구례의 월유산 화엄사로 출가, 불가에 귀의했다. 5년 뒤 곡성 태안사의 고승 혜철(惠哲) 문하에서 선불교를 배웠다. 23세에 계(戒)를 받고 15년 동안 전국 산천을 주유했다. 야사에는 지리산 산신에게 풍수지리를 배웠다는 설, 당나라 상인에게 풍수 서적을 구해 독학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도선은 고려 태조 왕건의 출현을 예언한 인물로 유명하다. 《태조실록》에는 왕건의 아비 용건(왕륭)이 가정을 꾸린 송악산(개경) 남쪽 기슭으로 도선이 찾아와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어찌 기장을 심을 터에 삼을 심었는가?” 도선의 비범함을 알고 용건이 그 뒤를 쫓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러주는 대로 집을 지으면 천지의 대수(大數)에 부합해 내년에는 필히 지혜로운 아들을 얻을 것이다. 이름을 건으로 지어라.” 도선은 봉투 겉장에 간단한 글귀를 써 용건에게 주고는 “미래에 삼한을 통합할 주인 대원군자를 당신에게 드리노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집을 지으니 그달부터 아내가 아이를 품었다. 열 달 뒤에 낳으니 그가 바로 태조다.
고려 사서 《편년강목》에 따르면 도선은 십 수 년 뒤 태조와 만난다. 도선은 태조가 17세 되던 해 송악산을 찾아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혼란한 때 하늘이 정한 명당에 태어났으니, 삼국 말세의 창생들은 당신이 구제해 주길 기다린다.” 도선은 그때부터 태조의 스승이 됐다. 군대를 지휘하는 일과 진법(陣法), 지리를 읽는 법 등 병법과 풍수를 가르쳤다.
훗날 삼한을 통일한 태조는 〈훈요십조〉를 제정하면서, 도선의 가르침을 받들어 “산천의 좋고 나쁨을 가려서 사원을 지어야 한다”고 명했다. 도선의 풍수비법을 국가 정책에 반영한 것이다. 이하 《고려사절요》 제1권에 나오는 태조의 말이다. 태조가 도선의 예언을 얼마나 신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선이 말하기를 ‘내가 정한 것 외에 망령되이 함부로 (사원을) 더 창건하면 지덕(地德)을 손상시켜 고려의 왕조가 장구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 뒤를 잇는 국왕·공후·후비·조정 신료들이 각자 원당(願堂)을 세워 소원을 빈다고 하면서, 혹 사찰을 더 창건할까 크게 근심스럽다. 신라 말기에도 부도(浮圖・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를 경쟁적으로 짓다가 지덕을 쇠하고 손상시켜 망하게 되었으니 이를 경계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계림 황엽, 송악 청송”
KBS 대하사극 ‘태조왕건’에서 극중 도선 국사로 열연한 배우 이대로씨. 《도선비기》의 대표적인 예언이 신라의 몰락과 고려의 개국을 점친 “계림(鷄林, 신라)은 황엽(黃葉)이요, 송악(개경)은 청송(靑松)이라”는 주문이다. 사진=CNTV 캡처
도선은 풍수에 따라 땅의 좋고 나쁨을 인지·보완하는 ‘비보설(裨補說)’을 주창했다. 그는 “지리(地理)는 곳에 따라 쇠왕(衰旺)과 순역(順逆)이 있으므로” 골라서 머물고 떠나야 한다고 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국도(國都)로 정할 때도 풍수지리설을 참고했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로 알려진 풍수서이자 한시집(漢詩集)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는 명당의 지세를 이렇게 표현했다. “꼭대기 완만한 주작이 북소리처럼 일어나고, 현무의 드리운 머리가 두 물줄기 사이에 있네…. 청룡이 머리를 높이 일으키고, 백호는 천천히 가니 해치려 하지 않네.”
나아가 이른바 《도선비기》는 조선시대 도참(圖讖・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술법) 사상에도 영향을 줬다. 대표적인 예언이 신라의 몰락과 고려의 개국을 점친 “계림(鷄林·신라)은 황엽(黃葉)이요, 송악(개경)은 청송(靑松)이라”는 주문이다. 송악 대신 곡령(鵠嶺·개경의 고개)이 쓰이기도 한다. 현재 원본이 사라진 《도선비기》는 도선의 저술인지, 후세의 조작인지 설이 분분하다.
도선은 말년까지 명산을 떠돌아다니며 석굴과 움막에서 수행을 지속했다. 그는 898년 전라도의 한 절에서 열반 직전 제자들을 불러 말했다. “내가 이제 가야겠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떠나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이니 무엇 하러 더 여기 있을 것인가?” 말을 마치고 눈을 감으니 이때가 그의 나이 72세, 신라 효공왕 2년이었다. 사후 효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고려 숙종은 그를 왕사(王師)로, 인종은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증했다. 의종은 비를 세웠다.
야사에는 지리산 산신이 도선에게 예언 비기를 전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아니면 이 학문을 전하지 말라. 오직 금전의 이익을 위해 혹세무민(惑世誣民)해서는 안 된다.”
천리를 꿰뚫어 본 心眼
바바 반가
시각장애인 예언가 바바 반가(1911~1996)는 불가리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친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부친은 마케도니아 혁명군(IMRO) 일원으로 활동하다 세르비아 군에 체포돼 재산을 압수당했다. 고아가 된 소녀는 이웃과 친구들의 보살핌으로 살아가던 중 또 하나의 비극을 겪게 된다. 12세 때 토네이도에 휩쓸려 눈에 모래가 들어갔다. 혼수상태로 4년을 보낸 후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그때부터 예언 능력을 갖게 됐다. 환영(幻影)을 통해 과거와 미래의 일들을 보게 됐다. 시력을 잃은 지 얼마 후, 마을에서 양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의 환영을 보게 된 반가는 “입가에 점이 있고, 가죽 목걸이를 한 사람이 범인”이라며 “그 집에 가면 아직 양을 숨겨 뒀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반가의 말은 적중했다.
1996년 85세로 사망하기까지 수백 개의 예언을 했는데 적중률이 85%에 달해 ‘발칸반도의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렸다. 예언가와 약초 치료사로 명성을 얻은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도 많았다. 토도르 지프코프 불가리아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공산주의자들까지 그녀의 예언과 조언을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언론도 조명에 나섰다. 덕분에 불편한 몸으로도 말년까지 주목받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젤류 미테프 젤레프 불가리아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했고 고향에 동상이 세워졌다.
반가는 앞서 케이시와 같이 2차 세계대전 발발, 체르노빌 원전 사고, 9·11 테러 등을 예언했다. 9·11 테러의 경우, 1989년 “미국 형제들이 철로 만들어진 새에게 공격당할 것”이라며 “수풀 안에서 늑대들이 울부짖고 무고한 피가 분출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테러 발생 후 ‘철로 만들어진 새’는 비행기로, ‘수풀’은 당시 아들 부시 대통령으로, ‘미국 형제’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으로 해석됐다. 이 밖에 1944년 소련의 불가리아 침공, 1968년 체코 침공, 1985년 불가리아 대지진 등을 예언했다. 사후에는 다이애나 스펜서 영국 왕세자빈의 사망 예언까지 적중했다. “흑인이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그녀의 예언에 한때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주목받기도 했다.
“2043년 이슬람교도 유럽 지배”
미국 9·11 테러 당시 상황. 1989년 바바 반가가 “미국 형제들이 철로 만들어진 새에게 공격당할 것”이라며 “수풀 안에서 늑대들이 울부짖고 무고한 피가 분출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을 두고, 후세 사람들은 9·11 테러를 지칭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진=조선DB
1979년 ‘경이로운 사람’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반가는 또 다시 의미심장한 예언을 내놓는다. “2000년 8월 쿠르스크가 물속에 가라앉고 전 세계가 이를 애도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쿠르스크는 소련의 도시로, 해당 방송은 소련과 불가리아 전역에 송출된 상황이었다. 당시 쿠르스크 주민들은 반가의 예언을 믿고 “홍수로 도시가 잠길 것”이라며 불안해했다. 세월이 지나고 예언 시기가 가까워지자 일부 주민들이 쿠르스크를 떠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그해 8월 말까지도 도시에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예언은 틀렸던 것일까.
뒷날 러시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해 8월 12일 군사훈련 중이었던 러시아 해군 소속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 승무원 118명 전원이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반가는 자신의 사후 1년 뒤부터 5079년까지의 앞날을 밝힌 예언서를 남겼다. 2023년 지구 궤도 변화, 2043년 IS 득세 및 이슬람교도의 유럽 지배, 2100년 인공 태양으로 ‘밤이 없는 지구’ 완성, 2164년 반인반수(半人半獸) 종족 탄생, 3005년 화성에서의 전쟁, 3010년 혜성과 달의 충돌, 3803년 새 행성에 인류 정착, 5079년 지구 멸망 등이 대표적인 예언이다. 그녀는 본인이 1996년 8월 11일 죽을 것이라 예언, 실제로 이날 세상을 떠났다.
철두철미 서신 예언가
주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즈
남미의 초능력자로 불리는 주세리노 노부레가 다 루즈는 1960년 브라질 파라나주 마링가 마을에서 태어나 현존하고 있다. 9세 때 마을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꿈을 꾸면서 예언 능력을 갖게 됐다. “예지몽(豫知夢)으로 미래를 본다”며 자신의 예언을 국가와 당사자에게 서신으로 전달해 왔다. 그는 하루 세 번에서 아홉 번까지 예지몽을 꾼다고 한다.
1995년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했던 이른바 ‘옴진리교 사태’를 16년 전 예측해 당시 일본 황궁에 편지를 보냈다.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쓰촨성 대지진도 미리 알아채고,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편지를 보냈다. 1989년 10월 26일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답신을 증거로 보관하고 있다. 1988년 5월 15일 앨 고어 당시 미국 부통령에게 “2004년 수마트라에 지진이, 2005년 미국 남부에 허리케인이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 예언을 적중시켰다. 고어 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는 실제 2007년 환경 관련 저술 《불편한 진실》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1997년 3월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꿈을 꾼 뒤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5개월 뒤 그녀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주세리노의 예언은 특히 일본에 집중됐다. 고베·오사카 대지진, 일본 경제 몰락, 흰줄숲모기 전염병 창궐 등을 경고했다. 특히 ‘일본의 도카이(東海) 지방에서 대지진이 날 것’이라던 그의 예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 밖에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공중 폭발 사건, 2009년 마이클 잭슨 사망 등을 예언했다.
주세리노는 2014년 브라질 항공사 TAM 항공기가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부근 건물에 충돌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는 자신의 꿈 내용을 적어 TAM 항공에 편지를 보냈고, 해당 항로 항공편의 모든 기종은 전격 교체됐다. 같은 해 중국 영화배우 성룡에게 “약물과 비행기 사고를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과 2017년 5~12월 사이, 비행기 사고와 약물 사용으로 인한 콩팥·심장 질환 발생을 주의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힐러리 우세 때도 트럼프 당선 예측
주세리노는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병세 악화를 예언하기도 했다. 사진=MBC 캡처
주세리노는 9·11 테러 직후 신문 《마이애미 헤럴드》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예언하고 사담 후세인의 피신처를 알려주기도 했다. 신문은 국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주세리노의 예언을 싣지 못했다. 그는 신문사 편집국장의 사과 편지를 뒤늦게 받았다고 밝혔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병세 악화를 예언하기도 했다. 주세리노는 당시 “2005년 2월 1일 교황이 위독해 병원에 입원하는 꿈을 꿨다”고 밝혔는데 실제 요한 바오로 2세는 그해 4월 2일 별세했다. 그는 세계적 이변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도 맞혔다. 2015년 9월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76%로 우세한 상황에서도 트럼프를 택했다. 현재 주세리노는 2026년 진도 10.8도 지진으로 인한 샌프란시스코 파괴, 2036년 지구와 혜성의 충돌 위기, 2043년 인구 80% 소멸 등 앞날을 예언한 상태다.
일부 분석가들에 따르면 주세리노의 예언 적중률은 90%에 달한다고 한다. 그는 예지몽을 꾸고 나서 서신을 보내 주의를 주고, 항상 답신을 받아 놓는 작업을 통해 본인의 예언 신빙성을 확보해 왔다. 기존 예언들의 표현이 은유적이고 내용이 모호한 데 비해 비교적 정교하다는 분석이다. 우연의 결과일까, 필연의 계시일까. 예언가들의 심오한 세계는 때로 의심이 들면서도 경이롭게 느껴진다.
인터뷰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이동귀
“예언 추종은 불확실성 없애려는 인간의 생존 본능… 근거의 합리성·타당성 확보가 중요”
우리나라도 한때 예언서가 유행했다. 1990년대 북한 김일성의 사망을 예언했다는 책을 필두로 무속인들의 저작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당시 《출판저널》의 한 기사는 “독서를 통해 주변부적 삶을 살아온 그들의 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과, 그들의 예언에만 주목해 ‘맞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가벼운 호기심은 엄연히 다르다”며 우려할 정도였다.
예언에는 상징·비유·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담겨 있다. 일부 능력자들은 명쾌한 예언을 내놓기도 하지만, 노스트라다무스가 지은 4행시처럼 문학적 예언도 있다. 사람들은 왜 수수께끼 같은 예언을 믿을까. 예언을 믿는 심리는 무엇일까.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 사람들이 예언을 흥미롭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요.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있죠. 복권의 경우 당첨 확률이 대단히 낮은데도 본인은 맞을 거라고 상상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주식에서 ‘언제 오르면 얼마를 팔아야 한다’는 이론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앞날의 결과를 빨리 알고 싶어합니다. 특히 그 결과가 나에게 플러스로 작용할 때 본능은 더 강해집니다.”
— 예언을 믿는 게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는 말인가요.
“인간의 생존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에요. 일기예보도 일종의 예언이죠. 언제 비가 올지 알아야 농사를 짓듯이, 예언이 잘못되면 낭패를 보잖아요. 우리가 사람을 처음 만나면 기본적으로 ‘저 사람 어떨거야’라고 추측하잖아요. 우리의 삶 자체가 실존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에요. 불확실성도 많고, 변수가 너무 많은 거예요. 인간은 변수를 상수화(常數化)하고 싶어해요. 불확실성이 너무 많은 사회에서는 생존 확률도 떨어지고 미신도 횡행하게 되죠.”
— 일각에서는 예언에 기대는 행위를 일종의 확증편향이라고 합니다.
“타당한 근거가 없는 예언 또는 예언을 근거 없이 믿으면 확증편향이 되는 거죠. 과학도 예측·가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정을 통해서 몰랐던 걸 알게 되잖아요. 다만 과학은 근거의 타당성을 확보하고 객관적·경험적 토대 위에서 추론하는 거죠. 논리적이고 타당한 방법으로 예측하는 건 과학의 영역이고, 감에 의존하거나 근거를 제시할 수 없으면 미신적 예언이 됩니다. 미신은 자기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니까 자기 충족적 예언, 확증편향으로 흐를 수 있죠.”
— 그러고 보면, 예언에 집착하는 것과 도박 중독도 유사한 점이 있네요.
“도박은 자기가 맞는 쪽을 믿고 싶어하는 거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예요. 카드게임을 하더라도 이기고 지는 건 확률인데, 자기가 이긴 그 느낌만 기억하는 거죠. 동전을 일곱 번 뒤집었는데 다 앞면이 나왔다면, 다음에는 뒷면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확률은 반반인데 여태까지 앞면이 많이 나왔으니까 이번에는 반대쪽이 나올 거라고 예측하죠. ‘도박사의 오류’가 예언에서의 오류와 같은 이유입니다. 과거 사건과 미래 사건은 독립적인데 무리한 추론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언에서도 직관이 아닌 근거의 타당성·합리성 확보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