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작성자 라피엘
“예에엣?”
선율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높은 언성으로 묻고 말았다. 자신들이 몬스터라니! 오해는 받아 보았어도 이런 괴상한 오해는 처음이다. 나머지 일행들도 만만치 않게 난감한 표정이었고, 루크는 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엘프에게 되물었다.
“이봐, 왜 우리가 몬스터라는거지?”
엘프는 당연하다는 듯 팔짱을 껴 보였고, 그녀는 검은 두건 아래 숨겨져 있을 눈으로 일행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원탁에 앉아 있었던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들의 마음을 표출해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클리어는 의아함을 심각한 표정으로 나타내고 있었고, 아르니안은 눈 대신 접시가 있듯 휘둥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카지는 언제나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얼굴이었고, 교주는 드러내놓고 의심스런 눈매를 하고 있었다.
“저, 반월도를 차고 있는 분. 방금 전에 엄청난 괴력으로 식탁을 내리치지 않았어요? 분명 인간에게 그런 무지막지한 힘은 없을 거라 믿어요. 오우거(ogre)나 있겠죠. 그리고 저기 백발머리 소년은 뱀파이어(vampire) 같군요? 검은 단발머리의 소녀는 머리가 검으니까 해그(hag)일 테고, 하늘색 머리 여자는 아마 씨 서펜트(sea serpent)가 폴리모프(polymorph)한 것….”
“푸하하핫!”
아르니안은 엘프의 말을 듣다고 폭소를 터트렸고, 테이블을 쿵쿵 두드렸다. 다른 사람들도 알아서 미친 듯이 웃었다. 세상에, 루크가 오우거라는건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뱀파이어에다가 해그, 씨 서펜트라니!
엘프는 영문을 모른 채 아르니안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당신도 오우거에요?”
“크하하핫! 푸후핫!”
교주는 아예 머리를 의자에 박아버리며 깔깔거렸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르니안을 가리켰고, 띄엄띄엄, 웃음 때문에 힘들게 한마디 한마디를 꺼냈다.
“아, 아르가… 풉! 오, 우우, 오우거래애애! 꺄하하하핫!”
자지러지는 교주를 보며 카지는 혀를 찼고, 그는 무미건조하게 엘프를 바라보았다.
“씨 서펜트는 폴리모프 안해.”
“카지냥냥이! 멋진 결정타야! 크하하, 푸하핫!”
루크는 카지의 엄숙한 말에 온 몸을 비틀어대며 찬사를 보냈고, 일행은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폴리모프 하는 씨 서펜트란 상상하기도 힘든건데!
“예, 예? 하, 하지만….”
이 무렵, 엘프는 매우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행은 배를 잡아가면 킬킬대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줄 여유는 없었던 듯하다.
그때, 허공에서 무언가가 반짝 빛났고, 매우 가녀린 목소리가 웃음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이 과대 망상증 엘프야! 아, 엘프들의 수호자 루미엔이시여, 어떻게 이런 무식한 생물을 보살피시고 있나이까?”
순간,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천장에서는 미세한 움직임과 함께 빛 망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파다닥거리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세도 없이 그것은 빠르게 좌지우를 오가며 날아다녔다. 아마 날개 달린 생물일 것 같았는데,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타앗.
식탁 한 가운데, 어떤 물체가 사뿐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니 주먹만한 흰빛이 뿜어나고 있었다.
“페어리(fairy)!”
라랑은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였다. 은은한 빛은 고정되어있지 않고, 계속해 파도처럼 일렁이며 정 중앙에 집합해 있었다. 일행의 시선은 벌레가 등불 근처에 아른거리듯이 페어리 라이트 (fairy light)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빛은 잦아 들어간다.
작아지는 라이트 속에서 서서히 조그만 인간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왠만한 성인의 손가락만한 체구, 그리고 등에서 돋아난 날개. 아직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날개라는 것은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이제껏 어느 생물에게서도 못 봐온 그것. 곤충의 날개와 흡사하다고? 역시 책이란 건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평범한 잠자리 날개와 차원이 다른 페어리 윙 (fairy wing). 잎사귀의 맥처럼 섬세하게 만들어진 그것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는데, 마치 투명한 햇살을 그대로 녹여낸 듯 신비롭게 반짝였다.
“정말 키는 멀대 같이 커서 머리는 비었어!”
앙칼진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렸다. 빛은 한번 깜박임과 동시에 사라졌고, 나타난 것은 매우 짜증난 듯한 인상의 페어리 한 명 이었다. 그녀는 찰랑찰랑 자란 금발머리를 흔들며, 엘프의 눈 앞으로 날아올랐고,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들어먹어! 저건 선량한 인간 여행자들이야, 인간! 아카드에서 대체 뭘 듣고 살은 거야? 상상은 자유라지만 제발 그런 식으로 부풀리지 말라고오!”
페어리는 재잘재잘 잘도 외쳐댔고, 엘프는 그녀를 한 손에 담으며 웃었다.
“아, 그래요? 미안해요, 키진.”
아무런 사심 없이 대답하는 엘프가 심히 답답했는지, 키진이라 불린 페어리는 가슴을 쾅쾅 치며 소리를 빽 내질렀다.
“미안해가 뭐야! 맨날 입에 풀칠하고 다니는 게 미안해야? 그런 말 말고, 뭐 ‘페어리 퀸 아이비스의 어린 딸이여, 그대의 고뇌는 다 내가 바보라서 일어납니다’, 라던지, ‘이젠 염려 마세요, 키진. 사실 난 슬라임의 저주를 받아 이런 무뇌가 되어버린 거에요. 그러나 이제 당신 덕에 점차 마법이 풀리고 있어요. 부디 함께 축복 받은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봐요’ 는 안되냐고!!”
라피엘은 묘한 얼굴이 되어 키진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저 황당무계하고 어지러운 말보다는 미안해, 라는 말이 훨씬 간단한 것 같은데 말이다.
엘프는 다시 밝게 웃으며, 키진에게 대답했다.
“내가 키진 때문에 저주에서 벗어났나요? 뭔진 모르지만 고마워요.”
“으아악!”
키진은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고, 엘프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얼굴을 저었다. 두건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리둥절할 것이다.
“저… 여긴 여관의 식당인데, 소란을 피우면 안 좋잖아요?”
조심스럽게 선율은 빼꼼 속삭였다. 안 그래도 여관 주인과 몇 안 되는 손님들은 모두 그들을 놀라서인지 입을 헤 벌레 벌리고 있었다. 관심을 사봐야 좋을 건 없는데 말이다.
“그래, 선율 말이 맞아. 나가자.”
루크는 낮게 말했고, 모두 얼굴을 끄덕였다. 그들은 서둘러 짐을 챙겼고, 루크는 멈칫멈칫 다가오는 여관 주인에게 금화 하나를 퉁겼다.
“숙박비, 식비, 그리고 떠들어대서 팁. 100 유르트면 충분하지?”
주인은 금화를 넙죽 받아 들였고, 그것을 본 엘프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언뜻 녹색의 둥그런 물체가 보였다.
“감사해요. 인간들의 화폐 대신 엘프스톤(elfstone)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엘프스톤? 엘프스톤?
귀가 고장 난 것을 바라며 아르니안은 고개를 돌렸다. 엘프스톤이라면, 흥정가가 4 유르셀 (1 유르셀= 10000 유르트) 남짓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사기다, 사기!
일행이 모두 경악하는 동안 엘프는 우아하게 보석을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주인과 앉아있는 여행객들은 그것의 가치를 잘 모르는 듯,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하긴 엘프스톤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까.
그 순간, 교주가 라랑의 허리를 쿡쿡 손가락으로 찔러대었다.
“라랑, 왜 모두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저기 주인이랑 손님들은 안 그러잖아.”
“엘프스톤은 보통 4 유르셀 정도 하는 보석이야.”
껌벅, 껌벅.
교주는 입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다가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래졌다.
“자, 자자자잠깐만!”
교주가 소리지르다시피 말한 덕분에, 시선은 모두 그녀에게 쏠리게 되었다. 그녀는 시뻘개진 얼굴로 할 수 없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저, 저 보석….”
말을 시작하니 할말이 없어졌다. 저 보석은 4 유르셀이나 하니 내놓아라, 라고 하면 왠지 저 엘프에게 모두 아우성치며 달려 들을 것 같다. 게다가 옛말 중에서도 엘프가 주는 선물은 뿌리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 제 말은 그러니까! 아하핫! 보석을 받으면 보석상한테 돈을 받아오면 되겠네요! 아, 그럼 여관비가 딱 나오겠네! 아하하핫!”
일행을 포함해서 주인까지도 교주를 정신 나간 여자 보듯 쳐다보았고, 라랑은 소리를 죽여가며 킥킥 웃었다. 저 빨개진 얼굴에다가 횡설수설하는 행동이란….
홍당무가 된 교주는 황급히 얼굴을 숙이고, 총총 문으로 달려갔다.
“조, 좋은 아침!”
“푸핫!”
교주는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도망가다시피 여관을 빠져나 왔고, 라랑은 웃음을 참으려 입을 움켜잡았다. 끅끅 거리는 그를 카지는 한번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엘프는 주인에게 예의 바른 인사를 한번 하고 일행을 뒤따라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페어리가 앉아있었다.
“이이이봐아아아앗!”
여관에서 나오자마자 날카로운 외침을 들은 엘프는 잠시 흠칫 했으나, 다시 길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그런 그녀를 본 교주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나머지 일행은 교주의 뒤에서 흥미롭게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엘프! 서라앗!”
엘프는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비스듬히 섰다. 그녀는 굉장히 한가로운 자세로 눈앞의 상대를 내려다 보았다.
“저요?”
“그래! 여기 엘프가 너밖에 없잖아!”
뒤에서 루크가 웃어 젖히는 것을 들은 교주는 화가 부채질 되어 버려, 목소리를 좀더 높였다.
“왜, 왜 그 보석을 준거야? 그건 4 유르셀이나 한다고! 기껏 해봐야 100 유르트나 하는 여관비 대신에 4 유르셀짜리 엘프스톤이라니! 맙소사!”
엘프는 교주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고, 대신 손가락 위에 벌렁 누워 있던 키진이 키득키득 웃었다.
“이 바보는 그런 거 몰라. 그렇지, 다나?”
아직 두건을 쓴 채로 엘프는 고요히 얼굴을 기울였다.
“내가 돈 대신 보석을 낸 것이 어째서 당신과 관련 있죠?”
언뜻 보면 무례하다 싶은 어조였지만, 엘프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는 듯했다. 실제로 궁금한 목소리였고, 그래서 교주도 화들짝 놀라버렸다. 정말, 왜 자신이 관련 있지?
“에, 에… 난….”
“이것이 인간들의 ‘동질감’이란 것인가요?”
엘프는 매끄럽게 물었고, 교주는 아니라는 의사로 손을 마구 흔들어 댔다.
“전혀! 동질감이란 건, 친하거나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끼리… 나도 몰라! 그런 게 있어!”
“그럼 그것을 뭐라 부르지요? 여관의 주인은 당신과 친하지 않은가요?”
“당연히 안 친하지!”
키진과 일행은 잠자코 엘프와 교주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확실히 엘프는 인간과 다른 걸까. 난생 처음 만나는 종족이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짐작 못했다.
엘프는 다시 반박해왔다.
“어째서요? 친한 것과 안 친한 것의 차이가 무엇이죠?”
“아그그그아! 난 그런 거 몰라! 그저, 난 네가 값진 보석을 주는 것을 보고 정당치 못하다는 기분이 들었을 뿐이야!”
“정당치 못하다…?”
엘프는 혼잣말 하듯 조용히 중얼였고, 그제서야 키진은 입을 열었다.
“그런 건 루미엔과 사피엔이 생각해도 괜찮아. 그들의 어린 자식인 엘프와 인간이 고뇌해 봤자 나오는 건 별로 없지. 그래서 말인데, 서로 소개는 어떨까? 난 키진 데쉴리. 페어리 퀸 아이비스의 수하에 있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엘프랑 여행하는 불운한 페어리지. 이쪽은 다나고, 아까 말했듯이 바보 엘프야. 너희들은?”
BGM- the land song - music for Artelligent City/one winter day mix
안녕하세요, 라피엘입니다!
으랏차차...! 힘내고 싶지만 감기 때문에 맨날 킁킁거리고만 있군요. 하핫;
네, 42편입니다. 다나양한테는 미안하게 느껴지는 군요.
하지만 바보란 순수하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ㄲ..[탕]
별로 할말은 없군요.
다시 오리지날에 약간 버닝하게 되었다는 것 밖에... [...]
후훗... 아직 시작도 안했죠.
그럼, 모두 좋은 주말!
|
Lapielle。
|
첫댓글 으음.. 여튼 잘봣고, 건필하길 바래;;[쿨럭;;]
글도 재미있게 잘 봤고, 음악도 좋군요 ㅇㅅㅇ/ 그럼 MPL씨 계속 건필하셔요~
잘보고있어요'-'
잘봤습니다! 음악도 좋네요-!! 건필하세요~
.. 다나 간바레 =_=;; 잘봤어! >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