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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jZBHUg5oyKY?si=gBLtjGX6uaNjqMB2
요셉 자손의 경계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샘 동쪽 곧 여리고 곁 요단으로부터 광야로 들어가 여리고로부터 벧엘 산지로 올라가고
2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족속의 경계를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3 서쪽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족속의 경계와 아래 벧호론과 게셀에까지 이르고 그 끝은 바다라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
5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에 이르고
6 또 서쪽으로 나아가 북쪽 믹므다에 이르고 동쪽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쪽을 지나고
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를 만나서 요단으로 나아가고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쪽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도 있었더라
10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여호수아 16:1-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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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땅은 여리고 곁 요단에서 시작해 벧엘과 아다롯에 이르고 서쪽 끝은 바다입니다.
요셉 자손인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그들의 기업을 받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쫓아내지 않은 게셀의 가나안 족속은 종으로 노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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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자손에게 주어진 기업여호수아 16장 1~4절,
1 요셉 자손들이 제비 뽑아 얻은 땅은 여리고의 요단에서 시작해 동쪽의 여리고 샘물에 이르고 여리고에서 벧엘 산지로 올라가는 광야를 거쳐
2 벧엘에서 루스로 가서 아렉 사람들의 영토인 아다롯을 지나서
3 서쪽으로 야블렛 사람들의 영토까지 내려가 아래쪽 영토인 벧호론까지 이르고 다시 게셀까지 가서 바다에서 끝납니다.
4 요셉의 자손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그들의 유산을 받았습니다.
- 요셉의 자손,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특별한 기업을 받았습니다. 애굽에서 요셉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후손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본문은 그들의 경계를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한 집안과 한 세대를 넘어 대대로 이어지는 복의 흐름임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받았던 약속이 ‘경계가 있는 실제 땅’으로 변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루시는 분임을 증언합니다.
♣ 묵상 질문
요셉 자손이 분배받는 곳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름다운 기업에 대해 나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내 삶에 주신 ‘기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어떤 약속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고 계신다고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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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 지파의 경계여호수아 16장 5~10절,
5 에브라임 자손들이 그 가문에 따라 받은 영토는 이러합니다. 그 유산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벧호론 윗지방까지입니다.
6 그 경계는 바다 쪽으로 나가 북쪽의 믹므다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다아낫 실로를 돌아 그곳을 넘어 동쪽으로 야노아를 지납니다.
7 그다음 야노아에서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에 이르고 요단 강에서 끝납니다.
8 그 경계는 답부아에서 서쪽으로 가서 가나 시내에 이르고 바다에서 끝납니다. 이것은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 가문에 따라 받은 유산입니다.
9 그리고 에브라임 자손을 위해 따로 구별해 놓은 모든 성과 그 주변 마을은 므낫세 자손들의 가운데 있습니다.
10 그러나 그들이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으므로 오늘날까지도 가나안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노예가 돼 힘든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 에브라임의 경계도 명확하게 기록되었지만, 마지막 절은 중요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그들은 게셀 주민을 온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셨지만, 그들이 완전한 순종으로 나아가지 못해 땅의 일부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셔도, 그 약속을 끝까지 붙들어 ‘내 것’으로 삼는 일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남겨진 가나안 사람들은 훗날 지속적인 위협과 타협의 근원이 되었고 이는 반쪽 순종이 만들어 내는 영적 위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을 드리길 원하십니다.
♣ 묵상 질문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의 가나안 족속을 종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삶에서 말씀 순종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때는 언제인가요?
내 삶에 남아 있는 ‘게셀’과 같은 미정복 영역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끝까지 누리기 위해 어떤 순종을 걸어야 합니까?
삶을 노래하다 : 가나안 족속을 남겨둔 것은 정치적·군사적 위협도 되었다. 그들은 반란의 불씨를 남겨두는 존재였고, 주변 민족들과 결탁할 수 있는 위험 요소였다. 혼합결혼을 통해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희미해졌고, 신앙은 타협되고 약화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겨둔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 내부에서 자라나는 죄의 씨앗처럼 작게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큰 문제와 타락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겪었던 영적 붕괴의 시작은 거대한 죄가 아니라, 순종을 미루고 작은 타협을 허용했던 그 순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조금도 남기지 말라”고 하셨다. 완전한 순종 없이는 약속의 땅도 온전히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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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충성된 신앙인의 삶
우리 신앙의 최대 유혹과 시험은 믿음을 내세로 미루어 버리는 일입니다. 죽으면 천국에 가니, 현실에서는 세상과 맞서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우신 위치에서 하나님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세상의 죄악과 맞서십시오. 정직하게 살고, 신실하게 살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리를 지켜서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여러분을 지나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게 안합니다.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과 구별되지 않고, 세상을 거스르지 않고, 성령을 좇지 않습니다. 그냥 육체를 좇아 살다가 우리끼리 모일 때만 성령을 따른다는 표시만 냅니다. 이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은 확보되겠지만, 그런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살아 생전에 나'라는 존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내 삶을 통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역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따라 목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충성된 증인으로 서야합니다
♧ 한 절 묵상
16장 4절 | 요셉의 두 아들은 므낫세(장남)와 에브라임(차남)입니다. 요셉의 후손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로 나뉘어 두 배의 땅을 분배받습니다. 그것도 가나안 중부의 비옥한 토지를 할당받습니다. 이는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며'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는다'고 한 예언의 성취입니다(창 49:22).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에서 보여 준 믿음과 헌신을 기억하시고 풍부한 복을 그의 후손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에게 은혜의 잔을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각 사람에게 가장 합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찬양합니다. 저를 위해 교훈하신 생명의 말씀을 저버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좇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진정한 풍요로움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기억하고 말씀에 충실한 삶을 이어가게 하소서
여호수아 16장 1~10절 말씀 명언
믿음은 능력을 인도한다 - 조지 뮬러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비로소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 찰스 스펄전
미완성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 마틴 로이드존스
믿음은 안개를 뚫고 먼 곳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 코리 텐 붐
말씀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힘까지도 공급하는 등불이다. - 존 칼빈
완전한 승리는 완전한 순종에서 온다. - 삶을 노래하다
하나님은 풍성히 주시지만, 철저히 순종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 삶을 노래하다
하나님의 약속은 넓고 풍성하지만, 그 땅을 밟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 삶을 노래하다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가나안 족속을 열심히 쫓아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영적 긴장감도 사라져 갔다. 전쟁의 열기가 식고 현실적 안정이 찾아오자,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앞의 편익과 계산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고 부역자로 삼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순종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부분적 순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그대로 두신 데에 또 다른 목적도 가지고 계셨다. 사사기 2장은 하나님께서 일부 민족을 남겨두신 이유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계속 순종하는지 시험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그 민족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신앙과 순종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계속되는 삶의 태도인지를 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남겨둔 가나안 족속은 결국 이스라엘에게 큰 위험이 되었다. 먼저, 그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같은 우상숭배 문화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강력한 유혹이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반복해서 경고하셨다. “그들이 너희의 올무가 될 것이다”, “너희 옆구리의 가시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함께 살게 되면 그들의 문화와 신앙이 이스라엘 안에 스며들어 결국 우상숭배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고는 실제로 사사기 시대에 그대로 성취되었다. 가나안 문화를 남겨둔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길로 빠져갔다.
“그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수아 16장 10
하나님은 요셉의 자손에게 넓고 풍성한 기업을 주셨지만, 그들이 온전히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주민 때문에 그 땅을 완전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순종의 걸음이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와 약속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습관, 타협, 미루는 순종 때문에 약속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남겨두지 말아라. 온전히 순종하여라.” 온전한 순종은 약속을 완전히 누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받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 은혜를 끝까지 누리는 삶’으로 나아갑시다.
12월9일 전도
여호수아16:1-10절
본문은 요셉 자손이 제비 뽑는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2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보상이 따릅니다 요셉자손의 경계를 소개한 후
4절에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기업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두 아들중 본문은 에브라임이 받은 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기업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요셉 때문에 두 아들이 기업을 받았다고 할수 있는데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말할수 없는 고난을 받았음에도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가족을 살렸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기업을 받은 것은 모두 요셉이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떄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반드시 보상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셉처럼 우리 앞에 고난이 있었도 하나님의 신뢰할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당대와 자녀들에게 다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큰 유산이라 할수 있습니다
둘째, 10절에 에브라임은 가나안을 내쫓아야 하는데
게셀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유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노역하는 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노역하는 종으로 삼았다는 것은게셀 족속을 노예처럼 부려서 공물을 받은것을 말합니다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실리를 쫓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실리를 쫓은 것을 보면 처음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보다 실리를 더 많이 묵상하였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흰늑대, 검은늑대 이야기가 있듯이 어느쪽에 밥을 주느냐 둘 중 하나가 이깁니다
마찬가지로 실리를 묵상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장식으로 생각하면 역시 실리를 쫓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진정한 실리,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오게 됩니다
이 둘 사이에서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수 16:10)
오늘 말씀을 읽으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이미 은혜로 받은 땅보다 더 넓은 땅, 더 좋은 조건을 먼저 바라보던 모습이 어쩐지 내 삶의 습관과 너무 닮아 있어서입니다.
하나님이 둘러주신 은혜의 울타리가 분명 있는데도
나는 그 안에서 말씀을 결실하는 일보다 “조금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경계 밖의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손에 있는 것만 세어봐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참 큽니다.
가정도, 일터도, 맡겨진 자리도 처음 내게 주셨을 땐 감사로 받았던 곳인데 시간이 지나자 비교와 욕심이 감사를 잠식한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말씀 앞에서 마음이 조금 낮아졌습니다.
“어떤 자리에 앉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말씀이 오늘 내 마음에 파고듭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리 안에서 백 배의 결실을 맺는 땅을 가꾸는 일, 그게 내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때로 잊고 살았습니다. 돌아보니 하나님의 끄덕이심이 아니라 내 욕심이 고개를 끄덕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자리를 다시 정돈해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줄로 재어 주신 그 경계가 가장 안전하고 가장 아름다운 곳임을
분명히 다시 고백해 봅니다.
요셉의 자손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기업으로 분배받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경계
장자권을 승계받게 된 요셉 자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몫을 받았고
유다 지파에 이어 가나안 중부지역 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비뽑기에 의해 정해진 땅에서 대대로 살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그곳을 정해 주셨다는 믿음과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파나 가족이 살고 있는 땅이 더 좋아보인다며
불평하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삶을 주님이 정해주신 기업으로 인식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나안 정복 당시 에브라임보다 므낫세 지파의 인구가 더 많았지만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기업 분배 내용이 먼저 나오는 것은 에브라임
지파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앞에 두고 축복할 때 두 손을 어긋나게 얹고
기도한 내용이 이렇게 역사 속에서 현실화 된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로 성도는 일이 잘 안풀려도
하나님을 소망하며 좌절하지 않고 형통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깨달아 교만해지지 않아야 합니다.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에브라임은 자기들의 땅에 사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종으로 부렸습니다.
쫓아내지 못한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힘이 부족해서 여부스를 쫓아내지 못했지만 에브라임은 능력이
있음에도 쫓아내지 않은 것은 노동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에브라임은 북쪽 세력의 주도적 위치에 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자기들의 위세만 자랑하며 지도자에게 반기를 드는 일에
앞섰는데 성경은 그들이 속이는 활과 같다고 평가합니다.
우리는 자기 유익을 위해 말씀을 왜곡하고 불순종하거나 공동체 안에서
맡겨진 직분과 은사로 주인행세하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충실하게 살아 다음 세대에 복을 전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요셉 자손이 제비 뽑아 받은 기업들입니다(수16:1~9) 그러나 요셉 자손은 우리가 수가 많은데 왜 한 제비만 주느냐 불평했습니다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수17:14)
그러나 한 제비만 뽑았다고 해서 그 받은 기업도 한 제비 분이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네게브 외에 비옥한 토지만 보고 따지면, 이스라엘 전체 영토의 1/12 이 아니라, 거의 1/2 에 가깝고, 세겜 땅도 더 받았습니다(창48:22)
유다가 왕권의 축복, 레위가 제사장권의 축복을 받았다면, 요셉은 장자권의 축복, 무성한 가지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창49:22~26)
사실 우리 주님은 왕권을 가지셔서 유다 지파의 사자로 오셨고,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계5:5) 제사장권을 가지셔서 대제사장으로 오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히9:11) 장자권을 가지셔서 요셉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주 안에 있는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장자의 축복 요셉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요셉 자손처럼 기업을 많이 받으면 좋은 걸까요?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남겨야 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눅12:48~49) 그러나 요셉 자손은 주께서 얼마나 사랑하셔서 얼마나 많은 복을 주셨는지 잊었고, 가나안 사람들을 멸하지 않았습니다(수16:10)
왜 멸하지 않았을까요? 요셉 자손이 받은 광활한 그 기업을 효율적으로 생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노예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현명한 결정이었을까요? 요셉 자손이 남긴 가나안 족속이 우상의 씨앗이 되었고, 그래서 큰 부자가 되었지만 큰 진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하거니와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주께서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호12:8~14)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많은 기업만 바랄 것이 아니라, 한 달란트 받았어도 감사하기 원하며, 적게 받았어도 갑절로 남기며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열매 맺기 원합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마13:23)
그래서 의의 열매가 가득한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주의 날에 칭찬과 명성을 얻는 자 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11)
오늘의 말씀해설
요셉 자손의 기업(16:1~4)
선조의 올바른 믿음 생활은 자손에게 풍성한 복을 선물합니다.
요셉 자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곳은 요단 강 서편의 중앙 지대로 매우 비옥하고
광활한 땅이었습니다. 므낫세 지파는 요단 동편과 서편에서 상당히 넓은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요셉 자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와 더불어 초기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도할 강력한 지파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는 요셉을 축복한 야곱의 유언이 성취된 것입니다(창 49:22~26).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 가 고초를 겪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해 죄의 자리에 있지 않았고
애굽으로 이주한 형제들을 성심껏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순종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자자손손 누리게 하는 토대가 됩니다.
- 묵상 질문: 요셉의 삶과 그 자손이 누리는 복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적용 질문: 요셉처럼 자손에게 복된 인생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16:5~10)
성도는 영원한 상급을 위해 순간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자였지만 하나님 뜻에 따른 야곱의 축복 기도로 장자의 축복을 받아(창 48:8~20),
기업 분배에서 므낫세 지파보다 먼저 언급됩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에서 기업 일부를 양도받는데,
이는 에브라임 지파가 먼저 기업을 분배받았으나 므낫세 지파가 받은 기업이 너무 많아서 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강력한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의 가나안 거주민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그들을 노역하는 종으로
부리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는 결국 미래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우세한 환경에서 출발했을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순간의 이익을 좇는다면, 미래는 불안하고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말씀과 눈앞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게 될 때는 어떤 경우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교만과 시기와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눈앞의 이익보다 신앙의 길을 선택하며,
진정한 복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 요셉의 자손에게 기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게도 은혜와 약속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직 쫓아내지 못한 영역들, 순종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 그곳을 직면할 용기를 주시고,
온전히 순종할 힘을 허락해 주옵소서.
주신 기업을 끝까지 누리는 믿음의 걸음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제 마음이 소유의 자극에 쉽게 흔들리는 것을 아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제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이 둘러주신 은혜의 경계 안에서 말씀을 결실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은밀하게 남겨두었던 게셀의 조각들도 주님의 승리 안에서 온전히 정복하게 하시고,
제 삶 전부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승리자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