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다라이[김인자]
숱한 상처로 무늬 새긴 불그죽죽한 고무다라이를 보고 있으면 왜 나는 아주 짝에도 쓸모 없는 늙은 창녀를 떠올리는 것일까? 임자를 못 만나 그렇지 세상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한세월 채이고 채였으니 까칠해진 몸뚱이 이젠 쉬어도 좋으련만 쉬면 채이고 채이면 끝장이라고 여전히 그는 낡은 가게를 지키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힘들다 죽을 상 하다가도 뜨내기 된서방 하나 만나면 왕년의 실력 고스란히 발동하는 그는 관록 있는 작부 온갖 풍상 다 겪었으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여전히 산적 같은 사내 앞에선 만만치 않은 저 무식 당당함 세월 달라져 아무리 번드레한 스텐이니 양은이니 해도 묵은 헛간에 고무다라이 모셔두는 건 그 때문이다 그래서 헌것 있어야 새 것 있다는 말은 진리인지
* 폐플라스틱을 모아 고무다라이를 찍어 낸다.
요즘은 플라스틱과 고무의 경계가 사라졌다. 화학구조가 서로 비슷한 까닭이다.
그래서 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다라이를 고무다라이라고 하는가 보다.
늙은 창녀 같아도 김장할 때나 수돗물 안나올 때 아주 요긴하게 쓰는 물건이다.
스텐(녹슬지 않는 쇠, 스테인레스 스틸을 우리는 줄여서 스텐 또는 스뎅이라고 한다. 녹이라고 번역되 는......)이나 양은처럼 번듯하진 않아도 우리는 자라면서 여기서 목욕도 하고 물장난도 치고 빨래도 하고 김장도 담가먹고 만만치 않은 왕년의 실력이 있었나 보다.
첫댓글 고무다라이 늙은 창녀 산적같은 사내앞에서 무식 담담함 고무다라이의 진면목 아니 늙은 창녀가 고무다라이 만큼이나 요긴하게 쓰여졌을 그시절을 생각하며 / 감상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