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일을 하면 그 대가를 받는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으로 이 상식에 반대되는 경우는 강제노동이나 봉사활동 같은 경우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를 국가에 적용해보면 녹봉이 이에 해당되며 현재 대한민국의 경우 9급 공무원 1호봉이 177만 7천원입니다.
녹봉 문제는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모두가 고민하던 문제였습니다. 일찌기 제대로 된 관료제와 중앙집권제가 발달한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도대체 관료들이 일을 하는 대가로 무엇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였고 여기에는 크게 땅을 주는 것과 현물 혹은 금품을 주는 두가지 방식이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는 국가의 초기에는 땅이 선호되었습니다. 고려 초기의 전시과, 조선 초기의 과전법에서 보듯 초기에는 토지를 대가로 주는 경우가 많았으며 신라는 녹읍을 주었으며 극단적으로는 고대는 아얘 식읍이라 하여 일종의 영지를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땅을 준다는 것이 땅의 소유권을 준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 땅에서 징세할 권한을 주는 것으로 말하자면 징세를 해서 그 징세한 물건을 다시 주는 번거로운 방식보다는 네가 직접 징세해라 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과정이 번거롭지 않으니 편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소유권은 국가가 쥐고 있으니 누군가 국가 말도 제대로 안 듣는 영주화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이게 안되던 때는 소유권까지 주던 식읍을 줘야 했습니다.)
이는 병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병사 역시도 땅을 받든 급료를 받던 둘 중 하나로 마찬가지로 국가는 병사에게 땅을 주고 그 땅에서 나는 수확물로 병사들이 알아서 먹는 방식을 더 선호했습니다. 물론 조선 초기의 징병제 조선 후기의 오군영 체제에서 보듯(근데 이 월급도 제때 못줘서 군인들에게 장사하는걸 허용해줬습니다. 임오군란의 원인으로 '월급'을 지적하지만 월급 못 받는건 이전부터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고 진짜 문제는 월급으로 준 쌀에 있었습니다.) 오래가지는 못했지만요.(중국도 마찬가지라서 당나라 초기에는 땅을 대가로 하는 부병제가 중후반부에는 돈을 대가로 하는 모병제가 대세가 됩니다.)
그리고 땅을 지급 못할 때 급료를 줍니다. 그런데 국가가 재정이 넉넉한게 아닌지라 급료가 제때 나오거나 제대로 나오는건 적어서 모자라는 생활비는 관료들이 알아서 적당히 뇌물을 받건 횡령을 하건 해서 마련해야 했고 조선시대의 경우 그나마 제대로 된 관직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런게 지급되기라도 했지 아전들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어서 먹고 살려면 부정부패에 몸담아야 했습니다.
반대로 서양은 공직의 대가라는 개념이 좀 늦게 등장했습니다. 로마의 경우 공직은 공공에 대한 봉사라 여겼기에 당연히 월급이 없었고 아우구스투스 때에야 급료를 지급해주는 개념이 등장하고 로마 멸망 후 봉건제 시대에서는 '세금'이라는 개념도 나중에야 등장하니 체계적인 녹봉 지급 시스템 또한 늦게 출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대에 간혹 누군가는 공무원들은 밥벌레니 녹봉을 없애자/줄이자/늘려선 안된다 식의 주장을 하는데 엄밀히 말해 공무원이 밥벌레라는 지적도 그로 인해 녹봉에 손대자는 주장도 잘못되었습니다. 은영전에서 황 루이가 정치가는 사회생산에 기여하는 것이 없고 그저 시민이 납부한 세금을 공정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재분배한다는 임무를 위탁받아, 급료를 받으며 그에 종사하는 기생충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런 일을 하는게 정치인이며 포괄적으로 보면 공무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무원은 아무것도 생산하지도 벌어들이지도 못하지만 시민이 낸 세금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는, 더 나아가 국가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유지하는데 기여하며 그 일을 하는 이들은 이름만 다를 뿐 그러한 개념으로 존재하는 만큼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건 공무원 뿐입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정치가와 공무원은 농부, 상인, 노동자 등과 마찬가지로 형태만 다르지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 중 하나이지 일만 잘하면 밥벌레, 기생충이라 모욕할 일은 아닙니다.(아닌말로 어느 조직이든 월급루팡은 있기 마련)
그리고 공무원들도 자기 생계가 있는 만큼 그들 역시도 벌이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려고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직위를 남용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앞서 말했듯 조선의 경우 아전은 월급이 나오지도 않았고 정규 관료들도 공직 대가의 월급이 너무 짜서(재정이 엉망이라)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을 수가 없었고 현대에도 빈곤국,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공무원들이 제대로 월급을 받기 어려워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이런저런 뇌물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이며 반대로 세계에서 공무원 월급이 가장 높은 싱가포르는 청렴한 국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발상은 이미 한번 실패로 끝난 적이 있는 사안으로 한나라 시대는 전한과 후한으로 나뉘고 그 사이에 신나라라는 나라가 세워졌는데 신나라의 건국자이자 유일한 황제는 왕망으로 그는 황제가 된 후 여러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중 하나가 관료들에 대한 녹봉지급 중지로 왕망은 관리란 국민에게 봉사할 마음으로 해야지 돈 벌 목적으로 해먹으면 한나라 꼴 난다고 여겨 녹봉을 폐지한 것이었는데 당연히 관료들은 먹고 살 돈은 있어야 하는데 국가가 돈을 안 주니 뇌물 받아먹고 사는 지경에 이릅니다.(현대 행정학에서도 개인에게 바랄 수 있는 공명심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무원에게 적정 수준의 봉급과 노후보장을 제공하지 않으면 공무원은 필연적으로 뇌물을 받게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