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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 사는 큰아들네가 추수감사절이라 모두 올라 와 오랜만의 우리 식구 12명이 다 모였지만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3살, 5살 된 손주들 3명의 재롱이 한몫을 한다.
큰아들네 6명이 떠난 후 작은아들이 자주 와서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고 있을 때
Dr. Metkas office에서 전화가 11월 28일? 왔다.
"12월 10일 수술 할 수 있냐? 누가 그날 예약을 취소해서 당신을 돌볼 수가 있다."
아~하늘이 돕는구나. 한 사람은 취소하고 원하던 의사가 수술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 내 사랑은 살았다.
12월 10일 3시 수술 대기실에 수술용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작은 아들 내외가 있는데
남자 마취과 의사 들어와 누워 있는 환자를 내려다보며 무슨 알레르기가 있느냐? 등을 묻는다.
잠시 후 웃음을 지으며 첫 대면의 Dr.Metkas 들어 오더니 "이분은 아들이고 여긴 며느님이신가?" 하며
악수를 청하더니 "참, 보기 좋아요. 아름다운 가족입니다." 하더니 쭈그려 앉으며 누워 있는
아내와 눈높이를 같이 하고 아내의 손을 감싸 잡으며 "걱정하지 말아요. 날 믿어요. 내가 책임지고 잘하겠어요."
마취과 의사와는 다르게 쭈그릴 때 "아~ 이 女의사는 정말 다르다." 믿음이 갔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날 믿어요." 그 순간 여태 날 억누르고 있던 불안감이 사라진다.
보호자 대기실 모니터에 수술 3시 반 시작, 4시 20분 완료 예정...
며눌아기는 회사 일로 나가고 아들과 아무 말 없이 모니터만 본다.
4시 20분! 완료란 글자가 안 보이고 수술 진행 중이란다.
아들이 내 손을 꽉 잡고, 나도 불안감이 다시 오고, 이럴 때 찾을 神이라도 있었으면?
하지만 솔직히 진심으로 믿어 본 신이 없었다.
그냥 "제발 보살펴 주십시오." 특별히 정해진 신 없이 마음으로 빌었다.
그저 이 세상 모든 신들에게 빌었으리라.
4시 35분쯤 수술 완료 사인이 뜬다.
무슨 일로 늦어 젔을까???? 하는 불안감은 웃으며 나오는 의사를 보는 순간 사라지면서
벌떡 일어서니 우리에게 앉으라며
아까 그랬듯이 하느님과 같으신 偉大한 의사 선생님이 쭈그려 앉더니
"아주 잘 되었어요. 마취에서 깨어나면 집으로 退院하세요. 그게 환자한테 더 좋아요."
다시 돌아온 며눌아기는 여의사를 눈물을 흘리면서 抱擁하며 감사함을 전한다.
시간 반쯤 지난 후 휠체어를 타고 웃으며 나오는 아내를 보니 그리 반가을 수가 없다.
간호사가 "Dr. Metkas is the best surgeon in the west U.S."라며 그녀를 만나서 행운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우니 더욱 믿음이 간다.
밖은 가뭄을 해소하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우리의 걱정을 말끔히 씻겨 주기에 충분했다.
"나 배고파~. 中國 집에서 죽을 시켜 줘." 얼마나 좋은 徵兆인가?
생명이 왔다 갔다하는 대수술 끝나고 아픈 줄 모르고!!! 배가 고프다니,
저녁 7시경이지만 한 사람만 빼고 배고픈 줄 모르고 있다가 모두 웃었다.
걱정하기 커녕 무슨 큰 영광스러운 상을 받은 기분들이다.
그래 이보다 더 큰 상은 없지요. 부상은 중국 죽이였다.
다음 날 아침 8시 반경에 동부에서 친정 다닐려 온 큰집 조카들이 공항에 가기 전에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은 어머니를 慰勞 차 꽃다발을 안겨 주고 간 후 또 다른 조카내외가 다녀 갔다.
또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거리를 고교동창부부가 미역국을 끓여 가지고 오고,,,
수술하고 14~15시간이 지난 후인데 여러 사람을 만났으나 피로한 기색은 하나도 없고
기쁘기만 한 모습을 보니 이리 좋을 수가, 미역국 주고 귀가하다가 하늘에
너무나 멋진 무지개가 뜬 것을 보고 "야~ 순영씨 살았다!"고 부부가 동시에 느겼다는
반가운 전화를 받으니 일곱 빛 찬란한 무지개 타고 나르는 희망의 여신이 된다.
미역국으로 점심을 하고 평상시처럼 집 앞 둑길을 걷고 들어 오는데 고종 사촌 여동생 내외가
저녁을 사 오면서 "뭐~ 이래! 어제 수술한 사람 맞아? 이렇게 걸어 다녀도 돼?"
처음부터"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해!" 이런 마음을 먹지 않았고 "이길 수 있고 이겨야 해"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했기에 수술 다음 날부터 실천에 옮겼다.
한 달 후부터 키모라는 치료를 12주간 일주일에 한 번씩 3시간 정도 팔뚝에 주사를 맞을 때면
옆에서 법정 스님이 쓴 "맑고 향기롭게"란 산문과 그 방에 비치된 암 환자를 위하여란 책을 읽어 주었다.
그 책에 Long Lunch를 가저라. 즉 식사하면서 대화를 많이 하라는 것이다.
주로 내가 말을 하면 듣기를 좋아하고 옛 추억 속에서 지금의 행복감을 찾는듯했다.
또 이런 충고도 있다. "성생활을 평상시 처럼 해라." 환자가 불안감에서 벗어난다.
식후에는 가까이 위치한 대저댁 Filoli 연중 회원권을 구입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며 해맑은
마음과 꽃 향기로 암을 다스리며 몇 달 동안 헤매던 迷路 Labyrinth에서 벗어난다.
키모를 시작한 지 1주일 후 샤워를 하더니 "여보 이것 좀 봐!" 하면 머리카락을
한 웅큼 들고 있다.
머리카락이 빼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예비지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
뭐라고 慰勞를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Yosemite Hotel을 3泊4日 豫約하고 다음 날 갔다.
우린 항상 yosemite속에서 행복을 느끼기에 200번 정도를 다닌 곳이다.
아침마다 머리맡, 화장대에 흩어진 수 많은 머리카락을 치워준다
영하인 날씨지만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걸으면 추위와 不安感은
스스로 물러 갔다..
작은아들 내외가 엄마 머리를 줄자로 재고 가발을 색상, 스타일을 정하고 주문을 했다.
머리사이즈를 재던 아들의 손이 그렇게 多感 할 수가 없었다고 지금도 말한다.
수술 후 음식 냄새를 못 맡는다. 자연 집에선 내가 食事를 준비를 하는데...
어떤 때는 만들어 놓고 먹자하면 나오다가 "아휴~ 냄새"라면서 돌아 들어간다.
이럴 때 정말 화도 나지만 난감하다. 먹어야 기운이 나고 암을 이길 것 아닌가!
사실 이런 경우는 많지가 않았다. 냄새를 참아서 그랬나? 그랬다면 힘들었겠구나.
성탄절, 설날을 위해서 올라 온 큰아들내와 작은 공원으로 가서 손주들과 작은 공으로 蹴球를 신나게 하는데
어느 母女가 구경을 하고 있다.
땀을 식히기 위해서 쉬는데 "보기 좋아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귀에 익은 목소리. 쳐다보니 아니 글쎄 Dr.Metkas가 10살 정도 된 딸과 웃고 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큰아들 내외에게 "이분이 바로 엄마를 살린 그 醫師이시다."
온가족이 반기고 좋아하니 그분도 좋아하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미역국 친구는 고교시절부터 산을 좋아하기에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캠핑을 같이
다녔는데 수술하고 7~8개월 후부터 다시 요세미티로 다니기 시작 했다.
이렇게 5년이 지냈다. 암 환자에겐 5년 生存說이 있다.
수술하고 5년을 살았으면 암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希望的인 말이다.
그런데 별안간 복통을 호소한다. 급히 주치의를 찾아가니 몰핀주사로 통증을 없애고
쓸개(gall bladder)에 이상이 있다면 외과 의사를 手配를 한다.
"Dr.Metkas!, Dr.Metkas!!!"를 외쳤다.
그날 밤 8시가 넘어 수술실에 나타난 Dr.Metkas.
그날의 예정된 수술을 다 끝냈는데 급한 환자 이름이 Soon Young Hong!이라 달려 왔단다.
이렇게 눈물 나게 고마울 수가 있단 말인가?
人命在天이라 했던가? 알지도 못하던 스쳐 지나던 여인이 알려 준 외과 의사가 두 번이나 수술을 해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알려준 여인의 이름, 나이가 집사람과 같다.
1947년생, 이름 순영(김씨) 하여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가 보다.
평일에는 YMCA 체육관을 다니며 다이 찌, 요가, 줌바를 다니더니 새로 온 줌바선생에
함빡 빠지고 열심히 다닌다. 요즘 covid-19으로 YMCA는 닫았지만 줌바선생이 따로 가르치는 곳을
왕복 40마일을 운전하고 매 목요일 다닌다.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긴다.
우린 동심일체라는 부부가 아닌가?
당신의 몸이 아프면 난 마음이 아프고 당신 마음이 아프면 나도 마음이 아프다.
당신이 건강을 돼 찿아 죽음에서 벗어났으니 나도 살았기에 감사하고 고맙기 그지 없다.
* 미역국 끓여 준 친구는 서정완, 김관길.
*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롭게" 책은 김광혜가 선물로 준것이다.
*이곳 친구들의 따스한 위로 등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 쓸개 없는 여자가 되여서인지 항상 저에게 감사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