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 때 아이들 여름방학을 기다려
유럽여행을 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갔다.
도버해협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좁은 수로로
직선거리가 34km에 불과하다.
부산과 대마도 직선거리가 49km정도이니 그 보다 훨씬 가깝다.
그래서 웬만한 장정이면 수영으로 건너기도 한다.
해협을 건너려면 페리를 타든지, 해저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영국쪽 깎아지른듯한 절벽위에 도버 성이 있고 그곳에서 쳐다보면
바다 건너 칼레의 산들이 보인다.
페리를 타면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페리에서 내리면 바로 여권검사를 하고 나오는데
프랑스에서는 자동차가 우리나라처럼 운전대가 자동차의 왼쪽에 있고
우측통행을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영국의 좌측통행에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차로가 우측통행으로 바뀌게 되면 처음에는 약간 어리둥절해진다.
우리는 칼레에서 다시 벨지움의 부루헤를 거쳐 브루셀,독일 하이델베르그와 뮌헨
으로 갔다가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 로마와 나폴리 폼페이까지 내려갔다 왔다.
몇 년전 서울에 로댕의 조각전시회를 보러 갔었다.
미술책에서나 보아왔던 '생각하는 사람'과 '지옥 문'
'칼레의 시민'을 보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작품주위를 빙빙 돌아가면서
몇번이나 살펴 보았다. 거장의 작품이라고 생각되니 손과 다리에 난 실핏줄 하나 털 하나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칼레의 시민'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뭐가 그리 대단했기에
로댕이 그들을 모델로 작품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때까지 나는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칼레의 시민들은 영국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1347년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3세는 결국 칼레를 점령했고
칼레시민들을 모아놓고는 지도자급 6명만 처형하고 나머지는 살려주겠다고 했다.
세상에 자기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자진해서 일어섰다. 자기 한 사람의 희생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생명을 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였다.
다시 또 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하여 6명이 모두 시민의 대표로서 교수형을 자처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드위드 3세의 임신중인 왕비가 간곡히 처형을 말렸다.
사랑과 선거와 전쟁에서는 꼭 이기라는 말이 있다.
전쟁에서 지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임신한 왕비의 간청으로 6명의 시민대표도 목숨을 건졌고 칼레시민들도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벌레쥬'란 말이 헛되이 나온 것은 아니다.
위기 때 가진 자가 먼저 내놓을 수 있는 자세가 돼 있어야 존경을 받는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작품은 이들 6명의 용감한 시민대표를 모델로 하고 있다.
지난 13일 저녁때 파리 중심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가 발생하여 최소 129명이 숨지고 35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IS 대원이 콘서트홀에 침입하여, 국적과 종교를 물어보고는 15초만에 1명씩 사살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와 독일 대표팀간의 축구경기를 보던 시민들도 테러사실을 접하고는 끝까지 경기장을 지키고 있다가
질서정연하게 경기장을 빠져 나가면서 누군가의 선창에 의해 프랑스 국가인 '라마르세예즈'를 부르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무법천지의 서울 하고는 천양지차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진은 네이버에서 스크랩한 것이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