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고정관념에는
나라마다 견고히 사용하는 규칙적 형식의 언어가 있고
또 종교 따위들도 그렇습니다.
미국인의 인종 및 국적의 고정관념에 대해서 뉴욕 타임스가 조사했는데요.
욕심의 유대인, 비열한 중국인, 바보인 영국인,
게으른 흑인 등을 우선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네요.
동양인 전체에 대한 고정관념은
수학에 밝은 안경쓴 왜소한 사람 이라고 합니다.
나역시도 고정관념이 없을 수는 없는데
남자가 먼저 사랑을 고백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보다 약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이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어려서부터 신앙과 기도 안에서
삶을 꾸리려 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철학책의 인식론을 읽어보고 나중에서야 알게 된
’나는 내 방식대로 한다‘는 고정적인 관념-방식이
철저한 자기 함정이자 인간의 진성을 가로막는 가면이고
우리를 노예로 가두면서
완전한 자유와 현명한 길을 방해한다로 이해해 보긴 했습니다만
퀴퀴하게 칠판 냄새나는 얘기를 길게도 하였네요.
부모님의 기도생활에서 형성되었던
내 학생 때의 고정관념 하나를 말해 보려고요.
학생 때 여름 방학동안 매일-과제로 주어진 그날의 숙제를 끝내놓고
매미 소리 더욱 가까워지는 집 뒤에 갔습니다.
조상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토토리 나무의 키는 까마득히 높고요.
큰 가지에 긴 밧줄로 그네가 달려 있는데
내가 어려서 엄마와 함께 앉으면
아버지께서 밀어주시던 그 것이 가족의 추억물로 늘 거기에 있습니다.
그네에 앉아서 살살 움직여 보다가
더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라가 두 다리로 그네를 흔들었습니다.
점점 각도가 가파라지고
바람 소리가 앞으로 뒤로 움직일수록 더 새로운 기분이 들어요.
신 나고 있었는데
약간 아랫쪽 옆집에 사는 1년 선배 규아가 “그네 타고 싶다“
정원 나무 사이에서 나를 부릅니다.
대문을 열어주고 그녀가 그네-초보라서 듀엣으로 타기로 하였습니다.
그네가 가파러질 수록 그녀의 하이-톤 비명은
매미들을 날리기 전에 내 귀를 먼저 찢습니다.
재밌어요. 나는 그네를 더 쎄게 했습니다.
규아가 그만 그만. 부탁하여서 오케이.
속도를 그만했지만 그네는 저절로 오고 가고 합니다.
가만히 있는 그녀의 눈을 나는 쳐다 보고 있습니다.
달 같이 깨 점 있고 밝은 그녀의 얼굴에서 온기가 느껴졌고
두눈은 빠르게 깜빡이며 내 눈을 보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내가 자란 경복궁 뒤 산동네의 성북동에는 맑은 시냇물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날 그 골짜기에 가서 물 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혼자 가기엔 심심한 곳이라서 내일 아침에 가자.
그녀를 불렀더니 알았어. 김밥만들께. 그랬지요.
다음날 냉장고에서 큰 아이스크림 한 통을 꺼내서 백에 담았습니다.
왜냐면 뒷산에 더 올라가면 지키고 있는 군인형님들에게 내가 주려고요.
아이스크림하고 김밥을 초소군인 형님들에게 드렸는데.
저기로. 좋은 곳은. 저기로. 군인형님들이 가르쳐 주는 그 곳에 갔더니
넓고 잔잔한 물과 동그란 돌들이 선녀님들의 커다란 정원 같았습니다.
반바지 티셔츠가 수영복이고
물에서 멱감고 김밥도 먹고 나뭇잎 게임도 하고 꽃잎도 따서 먹어보고
장난치다가 함께 쓰러졌는데
갑자기 그녀가 위에서 나를 쎄게 눌렀습니다.
나는 레슬링 게임한다고 생각해서 져 주는 척 했거든요.
그런데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은 그녀가
키스를 하려고 내 얼굴로 천천히 진짜 진심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초정도 나는 가만 있다가 그만 얼른 피했습니다.
그리고 마구 일어나며 규아야 미안미안. 내가 발 씻겨줄게. 하면서
그녀를 데려다 물에 앉혀놓고 두 발을 문질렀습니다.
어머니 화 나시면 아버지는 나중에 어머니 발을 씻겨 드렸거든요.
나를 낮추는 형식이래나.
그 당시 그것이 내가 여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고정적인 관념이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계속 그 생각했었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규아는 얼마나 자존심이 망가졌을까요.
아직도 그 생각은 심장이 쪼그라들 정도로 미안한 일입니다.
지금은 4차원 인간이 된 나에게 고정관념이라는 가면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그녀의 기대치에 못미쳐서 창피하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요.
알던 모르던 아주 작은 고정관념이래도
그게 두 사람의 일생에 질 다른 영향을 주는 것이더랍니다.
그때 그 키스만 내가 받았어도 규아랑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지금 부부싸움에 작전 짜느라 머리 굴리는 관계에 51% 를 줍니다.
오랫동안 혼자만 생각하던 것을 드러내고 내 기억이 치료가 되기 바라며 썼네요.
규아가 그 기억할 때마다
나를 후지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서
아이고. 이 도깨비는 평생 쪽이 팔려서 가끔 식사하다가
스푼을 내려 놓기도 한답니다.
첫댓글 흐흐흐~~~아이고나....찌릿찌릿 뿡~~~고것이 을메나 좋은긴데요.ㅎㅎ ^^
ㅋㅋㅋㅋ
찌릿뿡? ㅋㅋ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경복궁 뒤에도 개울이 있었다니...
시골에서 자랄 때
서울은 산도 없고 천도 없는 줄 알았어요.
아직 경복궁도 못 가봤는데...
어릴 때 이웃 아주머니 따라서 도토리 따러 야산을 헤멨었는데 달라스는 가로수도 정원수도 큰 도토리 나무였고
우수수 떨어 지는 도토리는 쓰레기여서 깜 놀랐어요.
성북동에 큰 시내가 있습니다.
대사관 많고 산도 높구요.
북악산
@도깨비불 길상사도 성북동이라고 하던데
단풍이 흐드러진
어느 가을
혼자서 길상사에 가 보았지요. ㅎ
@별이. 그 땐 길상사는 없었어요.
@도깨비불 대원각이라는
간판으로 있었지요.
울 집 입구에도
접시모양의 큰 소나무가 있어서 굵은 밧줄로
그네가 메어 져 있었지요
동네 아이들이 다 타서
우리 것인 줄도 몰랐어요
샘도 동네 사람들이 다 퍼로 와서 우리 샘인 줄도 모르고... ㅎ
울집은 아주 오래된 몇 조상을 산 집이라서 그런 우물도 있었습니다.
@도깨비불 경복궁에 가면
깨비님 옛집에도 가 봐야겠어요.
옜 집엔 야릇한 향수를 느끼지요.
팝송에도 옜 집이란 노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길러지고 길 들여져서, 내 방식대로 생각하는~~
아, 싫은데.
길들여지고 또 그런 방식으로 사는 것.
규아의 달띄같은 얼굴에 깨알같은 점을 헤아리는 본문은 묘한 에로티즘을 유발하니 깨비님 독자 펜들은 좋아라 하시겠구만
고색창연한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으로 시작되는 서문부터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분 들이 쫄았지 싶습니다 여지것 그래왔듯이 가볍게 갑시다
오~칸트여~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달띄? ㅋㅋㅋㅋ
규아 얼굴에 깨 점
네. 칸트니 뭐니 그런 어렵은 얘기 저는 정말로 안하는 편입니다. ㅋ
오늘 살짝 그 이름만 들썩이는 것을 꼬집으시고 데게 아픕니다. ㅜㅜ
규아. 아 라는건 음차문이고요. 한자로는 아 를 발음하게 되는 다른건데 실명이 될까봐 음차명을 썼습니다.
@도깨비불 루쉰 선생의 소설속 아Q 라는 인물명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음차명 음차문은 잘 모르겠네요
도불님의 여자를 대하는 고정관념. 나쁘지 않은데요.
여자에게는 저주는 것,
나를 낮추는 것.
부모님께서 사랑스럽게 본보기를 보여주셨네요.
어쨋거나 어릴적 소꼽장난 하듯이 놀았던 이쁜 추억일 뿐,창피하고 미안한 건 아니지요.
규아는 아쉬웠겠지만 나라면 발을 씻겨 준 것도 너무 좋았을 것 같거든요.아니 뽀뽀 보단 더 달콤하지 않을까 싶네요.
입술 만큼 발도 아주 민감한 감각들이 존재하니까요.
그때 키스를 해다면 지금 부부의 연이 맺어 젔을까요?ㅎ
아마 규아도 그 기억을 가끔 소환해서 발 씻겨 준 그 소년을 추억하며 미소지을 것 같습니다.
경복궁 뒤는 청와대가 있는데 성북동은 그 옆쪽 동네이구.뒤편산은 북악산.
대충 어디인지는 짐작이 가네요.
어릴적 이쁜 추억일 뿐 창피하고 미안한 건 아니라는 말씀에 안심이 생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ㅋ
이래서 속을 털어놔야 해결이 나게되요. 제가 괜시리 과민하고 있었나봐요?
왜소한 동양인이라...
울 손자는 또래보다 훨 크고 잘 먹어서
무척 클 것 같은데
전 너무 클가봐
은근히 걱정이 되네요.
전체적으로의 고정관념이라고요. ㅋㅋ
제 아들도 외국애들보다 커요. ㅋ
그네도 태워주고 발도 씻어주고 규아에겐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을까나?
아쉬움은 조끔
남았을려나?
작년 경복궁 청와대 둘러보고 뒤산 올라보니 너무 좋은동네 드만요~~
강남쪽에 사시는 분들은 느낄 수 없는 한양의 진짜스러운 품격을 가진 동네라고하죠.
미스였던 시절..
그때 나이가 30대 초반
설악산 십이선녀탕길 내려오는데
함께했던 남자사람친구가
느닷없이 개울가로 끌고 가더니
양말 훌러덩 벗겨서 피곤 풀리라고 발꼬락 까지 꼼꼼히 씻겨 주었는데 저는 저항도
못한채 멍하고 얼떨떨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의
간접적인 사랑고백 이었는데
그땐 왜 눈치를 못 챘을까요ㅎ
님의 글 읽고 저도 잠시
소환해 봤습니다
어릴때의 기억들은 특히나
잊혀지지 않습니다 ㅎ
그래서 피곤이 풀렸나요? ㅋㅋ
눈치 빠른 아우님이 왜 그걸 몰랐을까요. ㅜㅜ
이별하기 전에 발 씻겨주는 것도 있든데.
@도깨비불 30대 까지
지영이칼라풀은 순진한 영혼
이었습니다
철부지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처럼 살았었죠 : (
@칼라풀
하긴 그렇네요. 젊은이들이 그 이상 대발아지면 세상은 아마 개판될거에요. ㅋ
경복궁 뒤~~~
깊숙히 속살로 들어가면
옛 감성을 자극하는 작은 건물들과 골목 골목에서 나는
옛 향기가 기분을 좋게 하지요
또 인왕산과 북악산을 연계해서
타도 되고요
북악산은 주민증 없이는 출입을
못합니다
이젠 군인아저씨가 아니라
군인아들들 이라 해야 겠네요 ㅋ
특히나 부암동에 위치한
백사실계곡을 좋아하는데
깊은 숲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과 크고 작은 계곡엔
도룡농 개구리 버들치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습니다
2년전 까지만 해도 인왕산 바로
아랫녁에 살았었지요~
옛날엔 경비가 쎗어요. 부암동 추억. ㅜㅜ
창경원 옛날 궁 건물에 들어가 놀기도 하고.
인왕산 쪽에도 계곡이 좋았어요.
청소년기의 아련한 추억 한토막이군요.
그걸 뒤집어보려 해도 뒤집을수 없기에 더 아리기도 할테고요.
인식이 우리를 가두게 마련인데
그 인식이란게 원죄의식이기도 하겠지요.
아련합니다. ㅜㅜ
추억을 더듬어 눈 뒤에서 그려만 봐도 좋네요.
원죄의식의 고정관념도 지구인구 반 이상이 편견 취급을 하는게 현실이더라고요. ㅋㅋ
석촌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깨비는 어째 그리 여인네 마음만 아프게 했능가 구비구비 들춰봐도 사랑의 화살촉을 빼버린건 깨비이니 말야 어쩔까~그 죄를? ♡♡♡
그러게 말입니다 누님. ㅠㅠ
황진이 집 앞에서 상여가 움직이질 않았다고 하던데
내 집 앞에서 그런일나면 누님이 도와주셔. ㅋㅋㅋ
네 도깨비 현실 있네요
네. 그렇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아고
나는 왜 그때까지도 빨강머리 앤. 만 찾느라
추억하나 못맹글었을까
억울해
지금이라도 계곡에 발씻으러 가야할지..
빨강머리?
빨강머리 앤. 그것이 뭐레요?
@도깨비불 지금 저의 그림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몽고베리 작가가 쓴
빨강머리앤 이라는 동화책이요
상상력이 풍부해서 자작나무 숲에 들어가면 오만가지 동식물에 이름을 지어주는...도불님과 비슷하네..현재까지도 내 작품의 모델이 되고 있답니다
도,불 님
우연히 들렷다가
발목잡혀서
주욱
몇편 읽다가,
문득
이분이 작명가???
그것도
여자이름만?
ㅎ
제가
평생 연구해보던
이름이여~
세희
규아
어디서 조로코롬
귀티나는 이름들을 ㅎㅎ
칸트 인식론
까지
갈거없이
ㅎ
저 이름들은 제가 작명한게 아니라
실제 저 사람들이 가진 실명인데요.
성씨까지는 말 할 수 없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