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찬란하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 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넘친다.
한가로운 땅에.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의 꽃이 공기의 향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와 댄스로 나를 몰고
간다.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 5월의 노래 /
괴테
오월~~ 오월은 1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달이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광주라는 가장 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1980년 5월은 캠퍼스가 가장 아름다운 때이기도 했지만 최루탄가스와 화염병이 날라다니던 참 맵고
뜨거운 달이기도 했지요. 데모로 하루가 시작되고 저물고, 데모 때문에 수시로 휴강되던 수업같은 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던
시절~~
그때 우리의 젊은이들은 책임의식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식인이라는 자부심과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위해
무언가 해야한다는 책임감~~ 남들보다 조금 더 손해보고 순수하고 희생적이어야 한다는 도덕심~~ 모두가 오고 싶어했던
대학이란 곳에 왔다는 오지 못한 자들에 대한 미안함~~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있던
게 사실이었고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그때를 그토록 뜨겁게 살아가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에 나와 이것저것 지킬게 많아지고
가진 게 하나둘씩 생기는 동안 이렇게 저렇게 변해서 여기까지 흘러왔지만 당시에 학생운동을 했든 않했든 지금 변했든 변하지
않았든 지금보다는 확실히 필요이상으로 느꼈던 세상에 대한 책임감은 이제 부채의식으로 남아 우리 안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최루탄도~~ 화염병도~~ 영화속 다큐멘타리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되고 그때 거리를 뛰어다니던
혈기방장하던 청년들은 속절없이 중년으로 늙어가는데 오월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다시 돌아와서 그때 빚을 갚으라는
듯 그 특유의 초롱초롱한 햇살로 우리를 빤히 쬐여줍니다. 어쩐지 하늘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냥 눈이 부신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부셔 차마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는 오월이~~ 그 오월이 다시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질곡의 현대사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우리에겐 '광주항쟁' 혹은 '광주사태'로 귀에 익숙한 그 사건이 올해로 어느덧 26주년을
맞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전두환 등 당시 광주항쟁과 이래저래 얽힌 주역 대부분이 건재한 '살아있는
현대사'의 한부분 이지만 여전히 못다푼 숙제가 남아있는 '미완의 사건'이기에 산 자의 고민은 깊이를 더합니다. 그래서일까요?
80년대 초반 오월의 라일락 향기가 퍼지던 쯤이면 어김없이 피끓는 절규처럼 불리웠던 노래가 있습니다. 오월, 그날이 오면
다시 떠오르는 노래~~ 눈시울을 붉히며 점점 아련해지는 당시의 그 노래 '오월의 노래'를 다시
들어봅니다.
오월~~ 그 날이 오고 다시 가도 그 날은 언제나 그 날로 우리 가슴에 남아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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