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싸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락스를 뿌렸다면 어떤 혐의가 적용될까요?
서울북부지법은 특수폭행죄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A씨는 지난해 술에 취한 상태로 부인과 부부싸움을 벌였는데요. 결국 112신고를 받은 경찰이 A씨의 집으로 출동했고, A씨는 경찰을 보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경찰이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자 A씨는 "저것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며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문틈으로 락스를 경찰관들에게 뿌렸습니다. 당시 출동한 경찰관 2명은 락스를 눈에 맞고 말았습니다. 재판부는 "폭행의 부위와 위험성 등에 비춰볼 때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고, 벌금형을 초과한 처벌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는데요.
◇락스는 위험한 물건?
형법은 폭행죄뿐 아니라 특수폭행죄도 별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채 사람의 신체에 대해 폭행을 가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행위 방법의 위험성 때문에 불법이 가중되어 형량이 높아지는 범죄인데요. (형법 제261조)
특수폭행의 요건은 △다수가 폭행에 가담한 때 △위험한 물건으로 폭행한 때의 두 가지인데요. 여기서의 위험한 물건이란 본래 흉기는 아니지만, 특수한 상황에서의 성질과 사용 방법에 따라서는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물건을 말합니다. 상처가 나지 않았어도 위험한 물건을 통해 타인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했다면 특수폭행죄가 됩니다.
원래 사용 목적과 무관하게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됐다면 모두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입니다. 고기 굽는 석쇠, 휴대폰, 신용카드 등도 타인을 폭행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데에 사용됐다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본 판례가 있습니다.
가위나 라이터처럼 물리적으로 작동되는 물건 외에 화학물질이나 동물도 위험한 물건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물체가 아닌 사람의 주먹이나 발은 위험한 물건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폭행에 사용됐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물건이 되는 것은 아닌데요. 쇠파이프로 머리를 구타당하면서 이에 대항하고자 각목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구타했다면 각목은 위험한 물건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 81도1046) 다른 사건에서는 위험한 물건일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그 여부가 달라집니다.
락스는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주성분으로 하는 살균·세척액으로 유기물을 산화시키는 성질이 있어 몸에 닿으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물질입니다. 사람에게 락스를 뿌렸다면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히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특수폭행죄가 성립할 수 있는데요.
우발적으로 락스를 뿌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상처를 입히고자 하는 고의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피해자에게 병원치료가 요할 정도의 상해가 발생했을 경우 특수상해죄가 되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공연단에서 일하던 B씨는 2018년 공연 중인 내연남의 머리에 락스를 뿌려 전치 3주의 화상을 입혔는데요. 단원들이 자신을 따돌리고 무시해 화가 난 상태에서 내연남도 전화를 받지 않아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합니다. 울산지방법원은 B씨의 특수상해죄를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결국 경찰관에게 락스를 뿌린 A씨도 특수폭행죄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싸움 말리던 아들도 때렸다는데, 공소 기각?
A씨는 당시 부부싸움을 말리던 아들을 때려 폭행 혐의로도 기소됐는데요. 아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혀 공소가 기각됐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반의사불벌죄라고 합니다. △폭행 △협박 △과실치상 △명예훼손 등이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합니다.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의 기소로 처벌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표명하면 처벌이 불가합니다. 이미 공소가 진행 중인데 피해자의 의사표시가 있다면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327조 6호).
그러나 폭행 중에서도 존속폭행을 포함한 단순폭행만 반의사불벌죄일뿐 락스를 뿌리는 행위 같은 특수폭행은 해당되지 않아 처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상해죄는 합의 여부나 처벌불원 의사 표시와 무관하게 가해자를 처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