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국가(규모가 극히 작은 국가)들은 주로 유럽, 아메리카, 태평양 등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중 태평양과 아메리카의 경우에는 작은 섬나라들이 대부분이지만 유럽의 경우 정치적 사유로 탄생한 국가가, 혹은 그 옛날에 소국으로 시작한 나라가 어찌저찌하여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경우에 속합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미니국가들은 특이한 정치구조를 가진(사실상 옛날부터 존재해오던 정치체제)를 가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의 경우 1719년에 건국된 나라로 본디 신성 로마 제국의 직할 영지였으나 현 공가인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매입하여 세운 나라로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은 신성 로마 제국의 봉국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후로 신성 로마 제국-멸망 후 라인 동맹-해체 후 독일 연방 등 이리저리 종주권이 바뀌다가 1866년에 완전히 독립하지만 여전히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가문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과 엮여 있어서 오스트리아의 화폐를 사용하거나 각료에 오스트리아인이 임명되거나 공작이 오스트리아의 빈에 거주하는 등 오스트리아의 제후국 비슷한 신세였다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제국이 멸망하자 리히텐슈타인은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고 오스트리아 대신 스위스로 갈아타게 됩니다. 이후로도 한동안 공가는 빈에서 살았지만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을 때 독일의 마수를 피해 비로소 리히텐슈타인으로 가게 됩니다.(그러니까 리히텐슈타인은 공가 입장에서는 별 중요한 땅은 아니지만 남은 땅이 이거뿐이다 보니 여기서 살게 된 것)
이러한 독특한(이라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는 평범한) 역사를 가진 리히텐슈타인은 정치면에서도 특이한데 여기도 시대 트랜드를 따라(?) 입헌군주제이긴 하지만 군주인 대공의 힘이 막강해 대공에게는 법률 거부권, 의회 해산권이 있으며 말뿐만 있는게 아니라 대공들은 실제로도 이를 행하기도 해서 예시를 들어 낙태 허용 법률이 의회를 통과하자 공세자가 이거 취소 안 하면 나라를 빌게이츠에게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하자(낙태를 금지하는 가톨릭교도인지라) 쫄아버린 의회가 태세를 바꿔 법안을 거부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는 리히텐슈타인은 2003년에는 왕권강화 개헌안이 통과해 대공의 권력은 더 강해졌으며 공위 계승도 살리카법(여계 계승 금지)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은 왕권 제한을 더 하려고 들고 양성평등에 따라 여성, 여계 계승도 문제삼지 않는 쪽으로 나가는 것과 반대되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보에 유럽연합 쪽에서 뭐라 하지만 왕권강화 문제는 국민들도 지지를 해서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고 살리카법 문제는 공가에 남자만 50명이라 굳이 바꿔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유럽연합이 뭐라 하든 마이웨이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어차피 또 워낙 작은 나라에 그렇다고 폭압 통치를 펴는 전제군주국도 아니니)
이러한 행보에는 국민들의 지지가 배경으로 깔려있는데 사실 리히텐슈타인은 공가가 국민들을 먹여살려주고 있는 셈인지라 국민들은 공가에 대해서 지지가 높고 아얘 국가의 운영 자체도 거의 공가가 다 하는지라 국민들은 세금 때문에 고생할 일도 없고(세금이 없다는건 아니지만) 잘 먹고 잘 사니 공가가 마이웨이로 나가도 그러려니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가의 권력이 센 것과 별개로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의 영향을 받았는지 직접민주주의를 택한 몇 안 되는 나라로 때문에 국민투표가 일년에 두어번 정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모나코의 경우 국가 자체가 프랑스에 둘러쌓인 것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현 모나코를 지배하고 있는 그리말디 가문이 공작위를 인정받은 것이 프랑스 왕이 하사했던 것 때문인지 프랑스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1차 세계대전 시기에 모나코 내에서 계승 논란이 벌어졌을 때 프랑스는 계승자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사생아(서얼)에게 물려주라고 압박을 했고(유럽은 사생아에게는 웬만하면 계승권 자체가 없습니다.) 모나코의 총리도 실질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임명하며(프랑스가 추천하면 모나코 공이 승인) 심지어 2002년까지만 해도 모나코 총리는 프랑스인만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05년까지만 해도 모나코와 프랑스간에는 모나코 공가의 대가 끊기면 모나코는 프랑스에 흡수된다는 조약이 유효했습니다.(지금은 갱신으로 삭제)
몰타의 경우 유럽의 미니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공화제 국가인데 사실 몰타의 경우 현 공화국 체제는 오래 되지 않아서 1974년에야 공화국이 되었고 그 이전까지는 160년 가까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공화국이 된 현재도 독특하게도 단원제(몰타 외엔 영국 구성국들 정도)에 양당제 국가(심지어 진짜 당이 두 개 밖에 없음)라는 점도 여타 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점이지만 영국 이전에는 '구호기사단' 이라는 기사단 세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는데(이 당시 명칭은 몰타 기사단이고 구호기사단은 몰타 기사단에서 변경한 이름) 십자군 전쟁 시기에 결성되어 로도스 섬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지만(로도스 기사단) 오스만 제국에게 밀려난 뒤 당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에 의해 몰타 섬을 양도받게 됩니다.
구호기사단은 로도스 기사단 시절부터 숙적인 이슬람권을 상대로 해적질을 해온 만큼 몰타 섬에서도 해적질을 일삼았고(사실 카를 5세가 몰타 섬을 준 것도 여기서 짱박으면서 오스만 제국 좀 괴롭히라는 의도) 나폴레옹 이전까지 해적질을 이어왔기에 몰타 섬은 사실상 해적 국가나 다름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등장한 후 구호기사단은 몰타 섬에서 나가게 되고 나폴레옹 몰락 후 영국 식민지가 됩니다.
바티칸은 무려 8세기에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이 교황에게 로마와 인근 땅을 '교황령' 이라는 이름으로 선물한 것에서 기원하는데 이는 1870년 이탈리아 통일 당시에 모두 몰수되고 교황은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로 자처하며 이렇게 교황령이 완전 소멸한 시기를 '바티칸 유수'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무솔리니가 교황과 협상을 통해 바티칸 인근 땅을 다시 교황령으로 복원하는 1929년에야 끝나게 되며 이 시기부터 지금의 바티칸이 정착되게 됩니다. 기원에서부터 알 수 있듯 여기는 순도 100% 종교 국가로 바티칸의 수장인 교황은 바티칸이라는 국가의 국가원수이자 가톨릭교의 수장이며 그런 것 답게 바티칸의 국민은 오로지 가톨릭 교도만이 될 수 있습니다.(바티칸에 있는 모두가 성직자이므로) 그리고 교황은 추기경단에 의한 선거(콘클라베)로 선출됩니다.(선거군주제)
산마리노는 미니국가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 로마 제국이 멀쩡하던(...?) 시기인 301년에 처음 세워졌고 이후 교황령이 세워질 때 꼽사리로 껴서 교황령의 일부가 되지만 1241년에 공화국으로 독립하였고 1631년에 교황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고 1815년 빈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독립을 승인받게 되며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심지어 이탈리아 통일 당시에도 살아남음)
이렇게 단일 정체로오래된 역사를 가진 만큼 산마리노는 주변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면도 있는데 우선 과거의 정식 국호는 '가장 고귀한 산 마리노 공화국'으로 '가장 고귀한' 이라는 수식어는 중세 이탈리아 공화국들이 사용하던 수식어로 그만큼 산마리노의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는 수식어입니다.
국가원수 역시도 남들이 대통령/총리/수상 등을 사용할 때 산마리노만 홀로 집정관이라는 이름이며 심지어 동시에 2명을 선출하며 임기는 6개월에 지나지 않으며(워낙 임기가 짧아서 산마리노의 집정관은 대수를 매기지 않습니다.) 국가원수인 동시에 국회의장이라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데 이는 고대 로마 공화국의 집정관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안도라는 좀 복잡하게 공동통치를 받는 국가인데 독특하게도 그 주체가 프랑스의 국가원수와 우르헬교구의 교구장이라는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본디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우르헬 교구에서 무력을 얻기 위해 카보 가문에게 통치권을 나눠갖기로 한 것에서 기원하는데 우르헬 교구는 계속해서 유지되었지만 카보 가문의 통치권은 푸아 가문-나바르 왕국-프랑스 왕국으로 옮겨져 결국에는 프랑스 왕이 우르헬 교구와 함께 안도라의 공동통치를 맡게 된 것인데 이것이 기원이 되어 오늘날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의 대통령과 안도라 대공을 겸하고 있습니다.(어찌보면 혼란스러웠던 유럽 정세의 흔적) 이런 식이다 보니 입헌공동군주제가 세워지기 전까지 안도라는 우르헬 교구와 프랑스에 매년 '조공'을 바쳤다고 합니다.
첫댓글 시대를 역행하는(?) 리히텐슈타인
프랑스의 영향력이 센 모나코
기사단+해적국가였던 몰타
제정일치 종교국가 바티칸
로마의 후예 산마리노
세속/종교 공동군주 안도라
언뜻보기엔 이상해보이지만 사실 다들 유럽사의 흔적들입니다.
카이져님 항상 보면서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알고 계시는지…ㅎ
좋은 하루 되십시요!
큰 부분은 아는걸로 때우고 세부적인 것은 다른 곳에서 자료를 모아서 올리는 겁니다. 저도 이렇게 세세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산마리노에 대해서는 '로마시대부터 있었고 임기가 짧은 집정관 두 명이 통치한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