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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 2: 29 남 종과 여 종 ( 1 )
욜 2: 29 남 종과 여 종 -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1]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웨감'(*)은 '또 더욱이'라는 강조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모든 인류가 성령을 받을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서는 앞 문장을 다시 확인해주는 역할을 한다(Calvin).
그러므로 앞 구절에서 제시한 '만민'이 단지 문자적으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조건이 없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남종과 여종에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하아바딤 웨알-하쉐파호트'(*)가 70인역(LXX)에서는 '나의'라는 의미의 헬라어 '무'(*)가 첨가되어 번역되었고, 누가도 이를 따르고 있다.
* 행 2: 18 -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이로써 성령을 받는 사람들의 범위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한시킨다.
필자는 남종과 여종을 종말의 두 증인으로 본다.
2] 청소년을 살립시다. ( 욜 2: 28-29 )
서론
청소년을 영어로 '틴에이저'(Teenager)라고 합니다.
13세(thirteen)에서 19세(nineteen)까지 모두 '틴'(teen)이라는 문자로 끝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10대를 가리켜 '틴에이저'라고 부릅니다.
이때는 신체뿐 아니라 생각의 변화가 급변하는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치관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자존감을 찾으려 하고 자기만이 갖는 가치관을 찾으려 합니다.
예전에는 부모의 가르침과 요구에 따라 살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결정하는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신앙적 가르침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국민일보에서 수도권 중고등부 신앙생활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것을 보면 86%가 스스로 하나님 자녀임을 확신하고, 87%가 기도하고 평안을 얻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우리 기성세대들보다 훨씬 신앙이 좋습니다. 어른은 가치관이 변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부모에 의존적입니다.
하지만 청소년은 자신이 가져야 할 가치관을 찾는 시기이기 때문에 바른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이때 형성된 가치관이 일평생 동안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청소년은 그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미래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주체입니다. 그들을 살리지 않는다면 가정은 파괴될 것이고 교회는 노인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는 피폐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해서는 투자해야 합니다. 때가 늦기 전에 말입니다.
본론
(1)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서울의 강남에 있는 모 교회에서 고등부 담임하는 ㅇㅇㅇ 목사는 수련회에서 카지노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교회 어른들이 무슨 교회 수련회에서 노름을 하느냐고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 벽을 허물기 위해 카지노를 하기로 했고, 이왕 결정했으니 3주에 걸쳐서 철저히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테이블도 페인트로 도장하면 만들었고 칩도 남대문 수입 상가에서 이틀에 걸쳐 찾아 구했다고 합니다.(반드시 이 방법이 옳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좋은 방법을 위해 미리 기도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소문을 내고 기대감을 가지더라는 것입니다. ㅇㅇㅇ 목사님은 카지노 게임을 할 때 적극적으로 동참했다고 합니다. 직접 블랙잭 딜러를 하고, 카드를 10세트를 섞어서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딜러를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다른 데서는 돈을 따도 목사님 한테는 잃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목사님에게 이기려고 계속 도전하더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칩을 다 잃게 되면 그냥 주지 않았습니다.
블랙잭을 해서 돈을 다 잃으면 다른 코너에 가서 성경 퀴즈를 풀어야 했고 답을 맞추면 칩을 다시 주었다고 합니다. 성경 한 번 안 읽던 아이들이 성경을 읽고 외우는 역사가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수련회에서 연속 이틀 카지노를 하면서 부딪히고 웃고 즐기고 나누는 동안 그들과 가로막혀 있던 벽이 무너지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웃고 재미있게 어울려 놀다 보면 스스로 마음 문이 열립니다. 마음이 닫힌 상태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음 문이 확 열리기만 하면 실컷 놀다가 단 한 번 예배를 드려도 건성으로 열 번을 드린 것보다 큰 효과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예배만 너무 경직되어 있고 노는 게 없습니다. 찬양도 중세나 18세기에 만들어진 찬송가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수련회가서도 그렇습니다.
기껏 교제를 위해 프로그램 마련한 것이 6~70년대에나 했음 직한 수건 돌리기 놀이나 하고 마지막 날에는 캠프 화이어를 합니다.
처음부터 놀고 교제를 해야 마음을 여는데 처음에는 예배 프로그램과 성경 공부 프로그램만 하다가 맨 뒤에 노는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봅니다.
청소년 사역은 그들과 함께 뒹굴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낫습니다. 같이 놀기 싫다면 설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들과 같이 뒹굴며 놀던 목사가 단상에서 설교하면 아이들이 졸지 않습니다. 자기들과 같이 놀고 먹고 운동하던 목사가 나와서 설교하는데 의리가 있지 어떻게 졸겠습니까?
저 목사님이 날 위해 저렇게 노력하는데 내가 어떻게 여기서 졸랴? 생각하고 듣습니다. 기도라도 해주면 '저 인간이 나를 위해 저렇게 열심히 기도해 주는데 내가 변해야 하겠구나 하고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껴야 합니다.
ㅇㅇㅇ 목사가 수련회에서 참담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화장실 뒤에서 한 녀석이 망을 보고 다른 녀석은 담배를 빨리 피우려고 마구 빠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이 아끼는 아이들이 목사님의 눈을 피해 그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들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거짓으로 자기를 감추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태도를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담배를 오랫동안 많이 피운 사람이 담배를 못 피우게 되면 미칩니다.
그런 아이라 할지라도 수련회에 와야 하고 그런 아이일수록 교회를 더욱 다녀야 하겠기에 차라리 목사님이 담뱃불을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흡연을 했던 학생이나 일반 청소년은 물론이거니와 교회 나오는 청소년들도 상당히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한 두 시간 있다가 집에 가기 때문에 괜찮지만 수련회는 몇 일씩 진행하기에 담배 피우는 아이들에게는 여간 곤욕이 아닙니다.
그런 아이들은 따로 불러 모아 놓고 아예 담뱃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물론 자유롭게 피워도 된다는 것은 아니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식후에 한 번씩만 허락하고 목사님이 주는 담배만 피워야 하고 목사님 앞에서만 피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담뱃불을 붙여주는 자는 반드시 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수련회를 할 때는 수련회 장소에서는 절대 금연을 해놓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15인승 승합차에 태우고 수련회 장소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한 개비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담배 피우는 장소에 첫날에는 15명이 모였는데 그 다음날에는 10명 그 다음날에는 3명으로 줄어들더니 수련회가 끝날 때 쯤에는 아무도 안 나왔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여태껏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사람만 만나보았지 거꾸로 담배를 외딴곳에 데리고 가서 피우라고 주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담배를 피우라고 주는 이가 목사라는 것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담배를 얻어 피워야 하나?' 하면서 자신이 싫어진 것입니다. 또 목사가 이런 일로 어른 교인들에게 욕먹고 오해받는 것을 보면서 '저 목사님이 나 때문에 고난을 받는구나!' 생각하니 자연히 담배가 멀어지더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하루에 네 갑을 피우는 학생이 수련회를 따라왔다고 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따로 불러다가 담배를 주고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이 아이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다음날 식후에 담배 피우러 나오라 하는데도 안 나가겠다고 하더랍니다. 안 피우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웃으면서 "네가 어제 예수님을 만난 일은 좋은 일이야 하지만 하루에 네 갑씩 피우던 녀석이 단번에 끊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오늘은 피워라"
"안 피워요 목사님" 아이는 안 피운다고 하고 목사님은 피우라고 성화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나중에는 금단현상 때문에 얼굴이 하얗게 되고 손을 떨며 힘들어 했지만 끝까지 피우지 않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에서 금기시하는 것이라 해도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피우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다보니 그들과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정이 들게 되었고 그렇게 되자 그들은 목사님을 전적으로 믿게 되어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청소년들을 향해 '너는 이것이 잘못이다'라고 지적해서 그 아이가 변화되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변화는 그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감해 줄 때 일어납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외적인 모습에 촉각을 곤두세워서는 안 됩니다.
담배 피우는 모습, 술 마시는 모습, 머리에 물들인 모습, 귀고리 한 모습, 코나 입술이나 혀에 피어씽 한 모습 자체를 보면 그들의 중심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우리와 사이는 더욱 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올 가능성이 더욱 없어집니다.
교회에서 그런 아이들까지도 수용해야 합니다. 대개 교회 다니는 어른 교인들은 그런 아이들이 와서 물을 흐릴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구태여 교회까지 와서 물을 흐릴 애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세상에서 놀지 교회까지 오지 않습니다. 교회에 온다는 것은 무언가 변화하고픈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도와 상충된 교회의 분위기 때문에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돌아갑니다.
다니는 교회에 안 오려 할 것입니다. 교회는 어려움에 빠져 찾아오는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청소년은 힘듭니다.
정신적으로 갈등합니다. 방황합니다. 가보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길을 홀로 가면서 고통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바른 가치관을 제시해줄 멘토(mentor)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시해줄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모델이 없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은 인터넷, 영화, 연극, 심지어는 TV 속의 드라마 속에서 고민의 해답을 찾습니다.
여러분 청소년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대상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친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친구는 4위입니다. 3위가 교사와 목사입니다. 2위가 놀랍게도 친척 어른입니다. 1위는 부모입니다.
진정으로 청소년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도와 주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있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그들의 고민을 들으십시오.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십시오. 그들이 결정할 수 있는 배려를 하십시오.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모델이 되어 주십시오.
(3)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문화의 장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한국 부모들의 가치관은 이원론적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교회 밖에서는 예수 안 믿는 사람과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자녀 교육에서도 공부 제일주의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잘 나오던 아이가 안 나오기에 심방을 갔답니다. 그 부모는 집사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 아들이 주일에 빠져서 걱정이 되어 왔다고 하니까 어머니 되는 여집사님이 "목사님 제 아들이요 이제야 정신차렸어요. 오늘 학원에 갔어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여집사님은 학원가는 것이 정신 차린 겁니다.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 예수 안 믿는 사람과 같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공부 잘하라는 말밖에 않습니다. 조금 믿음이 좋다 싶으면 '주 안에서 공부 잘해라'입니다. 교회 목사와 교사들은 '신앙생활을 잘해야 공부 잘한다'고 속입니다. 온통 '공부' 잘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상숭배입니다.
이제 쉴 틈을 좀 주십시오.
1시간 내내 공부하다가 10분쯤 쉴려고 할 때 "야 또 TV냐?" 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집에 가서 공부 좀 할려고 결심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들어서자 마자 "야 공부 좀 해라" 하지 마십시오.
대화가 온통 공부 밖에 없다. "학교 갔다 왔니?" "예" "공부 열심히 했어?" "예" "학원 가야지?" "예" "공부 열심히 해라" "예" "학원 갔다 왔어?" "예" "공부 좀 하고 자야지?" "예" 부모는 온통 공부이고 아이는 생각없이 대답한다.
조금이라도 생각있는 대답을 하면 또 이야기가 길어질까 봐 그냥 "예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마침 무슨 축구나 야구 경기를 하는 날이면 경기 좀 보고 공부하라고 한다. 그러다가 잘하는 선수가 나오고 해설자가 그 선수 어디 출신이라고 하면 "야 역시 좋은 대학 가고 봐야 돼!" 아주 쉴 틈이 없도록 스트레스를 줍니다.
한국 부모가 미국 가서도 얼마나 공부에 열을 올리는지 다른 영어는 못해도 '하버드' '예일' '프린스톤은 발음까지도 정확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실제 가고 싶어하는 학교는 그런 학교가 아니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입니다. 부모가 지겨워서...
어떤 부모는 자녀가 교회에 가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교회 안 온다고 공부하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하는 것이 재미가 없는 아이는 교회에서 놀지 못하게 하면 나쁜 곳에 가서 놀 수 밖에 없습니다.
공부는 못해도 신앙생활 잘해서 건전하게 자라는 것이 좋지, 공부도 못하고 나쁜 길로 빠지면 좋겠습니까?
설사 공부는 못해도 건전하게 자라며 행복하게 살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혹 공부를 잘한다 해도 청소년기에 가치관이 건강하게 되지 못하면 뒤에 그 인생이 행복하겠습니까? 부모를 기쁘게 해줄 것 같습니까? 부모를 순종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각 사람을 낸 때에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란트(재능)를 주셨습니다. 그 재능은 공부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미술일 수도 있고 운동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다양합니다.
인생의 행복과 성공은 그 하나님이 부여한 달란트를 잘 활용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꼭 학과 과목 성적이 좋아야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껏 신앙 좋다고 해 봐야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교회에서는 신앙생활 잘해야 공부도 잘한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보기엔 신앙하고 공부 잘하는 것이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 없어도 공부 잘할 수 있고 신앙이 있어도 공부를 못할 수 있습니다. 공부 잘한 아이도 신앙이 좋으면 하나님이 쓰시고 공부 못한 아이도 신앙이 좋으면 하나님이 쓰십니다.
반대로 공부를 잘해도 신앙이 없으면 불행하게 되고 공부 못해도 신앙이 없으면 불행하게 됩니다. 공부를 잘하면 잘 한대로 못하면 못 한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행복해야 합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권이 하나님께 달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청소년 때에는 신체의 변화도 있지만 생각의 변화도 심할 때입니다. 대부분 이때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그런데 항상 공부만 하라고 한다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가치관의 혼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생각처럼 못하게 되면 불만과 반항과 포기 상태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 굳어진 가치관은 평생가게 될지도 모르고 그 자녀에게까지 되물림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여유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달란트를 확인하고 개발하고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거의 장년을 위한 교회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투자는 거의 안 합니다. 기껏 소예배실 하나 마련해준 것이 다입니다.
왜 그럴까요? 헌금이 안 나오기 때문일까요? 이제 그들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그들이 마음껏 달란트를 펼질 문화의 장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타락한 아이들처럼 살지 않기 위해 교회를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하지 말라고만 하지 청소년기에 발산해야 할 즐거움을 건전하게 풀 장이 없습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경험하지 않는 것을 하면 변화가 두렵기 때문에 곧 정죄하고 못하게 합니다.
전에 어떤 분은 어렸을 때 보수적인 교회에 다녔는데 교회 본당에서 기타를 치다가 장로님에게 뺨을 맞았다고 합니다. 본당에서 기타를 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청소년의 뺨을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은 모르는 세대입니다.
지금도 CCM이나 랩이나 힙합을 하면 마귀 보듯 합니다. 이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이 교회를 통해 자유롭게 생각과 행동이 성장하도록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제 교회에서 운동회나 영화관람, 연극, 콘써트 등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런 환경이 못 될 땐 다른 곳에 데리고 다니면서라도 접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더라도 어른들이 헌금해서라도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도 투자해야 합니다. 좀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가 작지만 매년 필리핀 단기선교를 데리고 갑니다. 사실은 미션트립의 의미도 있지만 비젼트립의 성격이 강합니다. 좀 더 성장하면 캐나다에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벤쿠버를 보게 하므로 UN에서 지목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것이 어떤 개념인가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 긴 록키 산맥을 넘어 캘거리까지 가면서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의 세계가 얼마나 웅장한지 보여 주고 싶습니다.
캘거리 루이스 호수를 보여 주면서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곳 관광지를 돌면서 선진국의 문화와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갑니다. 세계관이 세워질 청소년기에 어른들이 투자해서라도 넓은 시야를 갖게 해야 합니다.
결론
청소년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때입니다. 이때 예수를 만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성령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말씀의 가치관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잠 22:6). 청소년 한 영혼을 변화시키면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가정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학교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고 성령께서 그들을 감동시키고 성령께서 그들을 헌신케 할 것입니다 (욜2: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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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청소년들을 사무엘처럼 온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사무엘처럼 길러야 합니다. 비록 여자이고 부모를 일찍 잃었지만 포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한 에스더처럼 길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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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잠 30:32).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꿀 수 없는 어제보다 기대할 수 없는 내일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오늘이 가장 좋은 하루입니다.
평생 단 한번 오는 오늘 보람 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