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발리에(chevalier)
그들은 신의 가호를 이어받은 기사인가,
혹은
악마보다도 더 잔인한 저주받은 기사들인가
제1화
악몽(惡夢, nightmare): 수면중에 꾸는 아주 무서운 꿈.
어둠으로 둘러싸인 공허한 공간에서 한 인영(人影)이 보였다. 찬란한 은빛머리칼을 가진 여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작고 여려 보이는 소녀였다. 그녀는 어둡고 깜깜한 공간에서 홀로 끙끙 신음을 흘리며 웅크린 채 괴롭다는 듯 발버둥치고 있었다. 가녀린 몸으로 두려움에 벌벌 떠는 그녀는 너무나 안쓰럽고 안타까워보였다. 고요하던 공간속에서 조금씩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마디씩 희미하게 들려오던 소리들은 주변에 점점 크게 퍼져나갔다. 그 소리들은 괴로움에 떨고 있는 소녀를 어르고 달래주는 말들이 아닌 온갖 저주와 모진 독설(毒舌)들이었다. 감히 입에 담기도 두려운 독설(毒舌)들은 아무리 발버둥 치지만 사라지지 않고 소녀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거짓말쟁이들!”
“잔인한 것들!”
“어서 저년의 목을 베어버려, 죽어버려!”
“인간의 탈을 쓴 살인병기!”
“신의 기사라고? 큭, 차라리 도둑놈을 믿겠어!”
그만해! 제발, 제발... 그만해!
흐윽... 가슴이... 가슴이 너무 아파! 더 이상 들었다간 머리가 깨져버릴 것만 같아...!
그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들은 소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소녀는 처음엔 아니라며 발버둥 쳤지만 들려오는 소리라곤 메아리처럼 끊이지 않는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에 이내 자신이 정말로 그런 존재인가? 하며 의구심(疑懼心)마저 들게 하였다.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속은 소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온갖 의심과 의혹들로 산산이 깨져버렸다.
아침이 다가 왔나보다. 창문 새로 밝고 환한 쨍쨍한 빛들이 가득 찼다. 그 빛들은 창문을 넘어 침대에 누워있는 너무나 맑고 깨끗해 보이는 작은 소녀에게로 비춰졌다. 그 소녀는 안 좋은 일이라도 경험했는지 안색(顔色)이 매우 안 좋아 보였다. 아름다운 은빛 머리칼도 식은땀에 젖어 몸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덕지덕지 달라붙어있었다. 소녀는 찡그리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뜨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큰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로 비친 소녀의 앳된 얼굴은 실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나이는 어려 보였지만 다른 또래와 다른 신비로움이 묻어나왔다. 그녀의 은발은 너무나도 희고 윤기가 흘렀고, 맑고 빛나는 은회색 눈동자는 쳐다보기만 해도 빠져 들만큼 매혹(魅惑)적이었다. 그녀는 말라버린 눈물자국 들을 씻어내고는 다급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방을 나와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후한 멋을 풍기는 남자의 품에 와락 안기었다. 안기자마자 소녀는 긴장이 풀어졌던지 참고 있던 눈물들을 모조리 다 흘려버리며 남자에게 애원하듯 말하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애절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흑... 흡, 아버지…”
“아가야, 왜, 그러느냐? 갑자기 눈물까지 흘리고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던지 일단 그녀를 달래주었다. 조금 진정이 됐을까… 그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차근히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을 그치기는커녕 더욱 그에게 매달렸다. 그는 평소엔 이러지 않던 그녀의 모습에 그는 적잖게 당황하였다. 그러다 그녀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였다.
“아, 아버지... 흑...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해주셔야 합니다. 약속해주세요!”
“그래, 아리아. 어서 말해 보거라.”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친자식이 아닌가요? 아니죠? 흑... 흡... 아버지… 전 누구죠? 누구인거에요? 흑... 끄윽... 제, 제가... 인간이 아닌가요? 그런가요? 인간이 아니죠? 하, 하하하! 하하하...흑!... 부정하시려 하지 마세요. 제 몸은 누구보다도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인간이 아닌 슈발리에(chevalier)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가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결국엔 이런 일이 터질 것 이라고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생각과는 달리 더욱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모조리 다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이 아이는 너무나도 힘들어 할 걸 알기 때문이다.
제발, 이 상황이 꿈이길 바랄 뿐이다.
“아리아... 무슨 소리냐! 어디서,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은 게야!”
“역시, 결국 제 말이 거짓이 아니군요... 제가 아버지 딸이 아니라는 것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하! 하하, 애초에 이상했습니다. 아버지와 머리색도, 눈동자색도, 얼굴도! 전혀 닮은 구석이 없으니 말입니다! 으, 흡... 아버지도 아시겠죠. 저와 아버지는 여태 30년 동안 같이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몸은 30년 전과 그대로군요. 마치 저만 시간을 비껴가는 것 마냥…….
아버지는 이리도 나이가 드셨는데 말입니다!”
“...”
“아버지껜 말씀 안 드렸지만... 요새 계속 매일 같은 꿈만 꾸고 있어요. 무서워요...!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해요! 내가 저주받은 기사라면서… 아버지! 흐윽... 슈발리에(chevalier)라는 건 뭐죠? 도대체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제가 이렇게 두려워해야해요? 고통스러워요! 요샌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도 수도 없이 찾아와요. 아버지!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흐윽...”
“오, 아리아! 이런!”
그녀의 말을 듣게 되자 그는 상심(傷心)에 빠졌다. 평생 그녀가 몰라주기를 바라던 건 그저 자신의 헛된 희망이었을까… 저주받은 기사. 그녀, 내 딸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찮은 인간들이 건드릴만한 그런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그저, 그저 지난 30년간처럼 그저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둘이 살면 그만이다. 그녀가 내게 있는 한…….
설마… 과거의 기억이 생각났을까? 아니야. 아리아는 안젤라(Angela) 그녀가 아니야!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차근히 말하였다.
“아리아. 넌 누가 뭐라 해도 내 딸이고, 베네치아家의 장녀란다. 이 사실을 명심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넌 그저 예전의 아리아처럼, 그렇게 살아가면 된단다. 네가 슈발리에(chevalier)라 고해서 달라지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어. 알겠느냐?”
“하지만...!”
“아리아! 후... 괜찮단다. 널 해하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안토니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안심하렴. 이렇게 울면 이 아비 마음이 더 아프단다. 알겠느냐? 어서 방으로 돌아가거라.”
“네...”
그녀가 힘없이 돌아서 방을 나가고는 그는 책상에 턱을 괴곤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요새 들어 악몽(惡夢)을 자주 꾼다는 건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는 앨린을 통해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였다.
악몽과 투통…
그는 제발 그녀가 다른 평범한 여성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기만을 바랄뿐인데,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건가… 그 아이가 짊어 가야할 가혹한 운명(運命)이… 그녀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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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발리에, 즉 프랑스어로 기사라는 뜻인데요.
아직 남자주인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선 다른 판타지에서와 다른 슈발리에(기사)를 접목시켜 봤으여
그녀의 엄청난 과거와 뭐 인물들간의 스토리를 쓰려면 아직도 먼산이군요 ㅜㅜ
그래도 힘내라는 말한마디 주시구가세요 그럼 즐거운하루되시길^^
첫댓글 재밌어보여요 기대하겠습니다 ㅋ
흐악 감사합니다..ㅜㅜ 열심히해야겠군요~~
........와아........필체가 진짜 읽기 편해요.....;ㅁ;...! 으엑! 글 되게 잘 쓰세요 ㅠ_ㅠ!!
아 감사드려요 ㅜㅜ 여주가 너무 흐느껴서 읽는데 불편하시진 않으셨을까 덜덜덜 떨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