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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백제를 치기 위하여 김춘추(金春秋)를 보내어 구원병을 청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았다 1-삼국사기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 고구려가 신라와 손을 잡아야하거나 신라와 백제 양다리 걸치기식으로 외교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있다.그러나 이건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바보같은 소리이다.
8월, 장군 윤충(允忠)을 보내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성주인 품석(品釋)이 처자를 데리고 나와 항복하였는데, 윤충이 그들을 모두 죽이고 품석의 목을 베어 왕도에 보냈다. 남녀 1천여 명을 사로잡아 서쪽 지방의 주와 현에 나누어 살게 하고 병사를 남겨 그 성을 지키게 하였다. 임금이 윤충의 공로를 표창하여 말 20필과 곡식 1천 섬을 주었디.2-삼국사기 |
그당시 신라는 백제에게 대야성이 함락당해 국가의 위기가 온 상태였다.그리고 고구려에게 지원을 요청한 김춘추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였다.
겨울, 임금이 장차 백제를 정벌하여 대야성의 패배를 보복하고자, 이찬 김춘추(金春秋)를 고구려에 보내 군대를 청하였다. 앞서 대야성이 패배하였을 때 도독 품석의 아내도 죽었는데, 그녀는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는 딸의 죽음을 듣고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자기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얼마가 지난 후에야 말하였다. |
자신의 딸의 죽음에 충격을 먹어 사람이 앞에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복수를 위해 고구려로 가서 지원군을 청하고 그리고 신라는 백제에게 밀리고있는데 과연 지원군을 보내줄것인가? 지원군을 안보내는게 당연하다.
그뒤 연개소문은 3차 고.당전쟁에서도 그의 뛰어난 외교술로 고구려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9월 개소문이 그의 아들 남생에게 수만명의 장병정병을 주어 압록강을 수비하게 하니, 당나라의 모든 부대가 건너오지 못하였다. 계필하력이 압록강에 도착하였을 때는 강에 얼음이 얼었다. 그는 무리를 이끌고 얼음 위로 강을 건너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며 공격해왔다. 우리의 군대가 싸움에 져서 달아났다. 계필하력이 수십 리를 추격하며 3만 명을 죽였다. 남은 무리는 모두 항복하였고, 남생은 간신히 자신의 몸만 피하여 달아났다. 이때 마침 당나라에서 군대를 철수하라는 조서가 있었으므로 그들은 곧 돌아갔다.4 -삼국사기 |
이 삼국사기에 나온 기록은 661년에 당나라의 계필하력이 연남생의 고구려군을 대 격파한 기록이다.
3만명을 죽이고 남은 병사들을 다 포로로 잡은 대승이다.당장이라도 계필하력은 평양성으로 공격을 해올수 있었다.기록애도 나온듯이 계필하력은 당나라로 철수한다.과연 그 이후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당나라를 철륵이 공격하였기 때문이다.철륵은 고구려와 동맹인 나라이니 당나라를 쳐서 당나라군을 흔들어서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고 계필하력이 후퇴하고 전쟁상황은 달라진다.
21년(서기 662) 봄 정월, 당나라의 좌효위장군백주자사옥저도총관(左驍衛將軍白州刺史沃沮道摠管) 방효태(龐孝泰)가 연개소문과 사수(蛇水)에서 싸웠다. 그의 군대가 전멸하였고, 방효태도 그의 아들 13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소정방은 평양을 포위했는데, 마침 큰 눈이 내렸으므로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이처럼 당나라는 앞뒤의 전쟁에서 매번 큰 성과 없이 물러갔다.5-삼국사기 |
사수에서 연개소문이 방효태가 이끄는 당나라대군을 전멸시켰다 그이후 당나라는 제3차 고당전쟁마져도 당나라의 패배로 끝났다
그당시 세계제국 당나라를 외교술로 흔들어놓고 당나라의 대군을 물리치고 신라의 김춘추의 동맹을 거절해 백제를 이용해 신라를 압박한 연개소문 이제 그를 고구려를 멸망으로 이끈 장본인이 아니라 고구려를 지키려한 대장부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 문헌
윤명철 저 고구려 해양사 연구
윤명철 저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김부식 저 삼국사기
결마로님의 글 당나라를 포위하라 연개소문과 대당포위외교전략
@노하라신노스케 그냥 중원의 통일제국이 서고 난 후 고구려가 멸망하거나 못 해도 2인자로 내려오는 것은 필연적인 운명이었죠. 늑대나 표범이 아무리 강해도 호랑이의 상대는 절대 못 됩니다
@노하라신노스케 고구려가 무슨 늑대 표범입니까 비유할 것을 비유하셔야지 그리고 당은 돌궐 토욕혼 고창국을 정복할때 일대일로 치루었습니다 신라 같은 동맹국의 도움도 받지 않고서 그런데 고구려 정벌할때에 신라와의 연합으로 성사시켰을 정도로 이전에 일대일로 돌궐과 고창을 병합시켰던 상황하고는 다르니까요
@공실불 늑대 표범입니다. 늑대 표범도 매우 강한 맹수들입니다. 하지만 호랑이 사자와는 일대 일로 절대 못 이깁니다. 체급이 원수거든요... 체급에서 밀리면 그냥 지는 겁니다. 다만 곱게 이인자 노릇하면서 실속을 챙길 거냐 찬란하게 질 거냐를 택해야죠. 고구려는 후자를 택한 거죠.
@공실불 참고로 호랑이도 표범이나 늑대와 안 싸우려 합니다. 싸워봤자 자기 얻는게 없으니까. 하지만 독하게 달려들면 그냥 죽습니다. 고구려가 위세를 떨친 것도 중원의 통일 왕조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노하라신노스케 아전인수씩으로 우기시는군요 자기 주장을 무리하게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노하라신노스케 고구려가 영토확장으로 성장할 대무신왕 태조왕 당시에 중원에 한나라라는 통일 왕조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고구려는 중원의 통일 왕조인 한과 전쟁하여 성장해 나갔지요 통일 왕조가 없었기에 고구려가 위세 떨친 거라는건 근시안적인 생각입니다
@공실불 대무신왕 당시 고구려는 중앙집권도 안 된-중앙집권은 태조왕 때 시작되죠-작은 나라였습니다. 한나라도 정성을 들이지 않았고요. 정성을 들였다면 대무신왕 때 망했겠죠.
@노하라신노스케 대무신왕은 한의 낙랑을 공격하여 점령하여 한나라의 눈밖에 날짓을 벌써 하고도 남았지요 낙랑 점령으로 한나라 사람들이 죽었으니 완전 한나라 중앙정부에서 나서야할 판이기에 고구려가 한과 대적할 상황이 못되었다면 무사할수가 있었겠습니까?
@공실불 대무신왕이 정복한 것은 낙랑군이 아니라 낙랑국... 낙랑군 재건은 전후한 교체기 일시 독립한 걸 다시 복속시킨 것 뿐이지요. 대무신왕은 낙랑국이라는 소국을 정복한 것 뿐입니다.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오해한 것 같습니다
@공실불 저는 아전인수 안 합니다
@노하라신노스케 비유가 잘못되었습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늑대가 호랑이와 일대일로 싸워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수당과 일대일의 큰 전면전을 10번을 싸우고 마지막 한 번의 전쟁에서 지지 않았습니까? 특히 마지막 전쟁은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전쟁을 수행합니다. 이는 고구려가 수당에 비해 열세인 것은 분명하나, 웬만해서는 굴복시키기 어려운 만만치 않은 국력을 가졌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서영교 교수는 당시 당의 주변국에서 당과 이 정도로 맞짱을 뜰만한 국력을 가진 나라는 고구려 밖에 없다고 단언한 바 있지요.
중국은 출혈이 크고 무리가 심하게 가지만 하자면 못 할 것도 아니나 고구려는 온 전 재산을 더 갈아넣은 셈이지요. 그야말로 피로스의 승리요 상처뿐인 영광인 것이 수나라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입니다.
농경국가가 전쟁을 장시간 지속하면 대규모 반란과 민생난을 촉진시켜서 전쟁이 승패를 내기전에 자국은 내란으로 자멸하고야 말지요 수나라의 전철이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고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자신들보다 국력이 우세한 청과 러시아를 전쟁에서 이겨 동아시아의 최강대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것이지요
@공실불 이미 고구려에 그런 내분의 기질이 들어나 있었죠. 그리고 청일전쟁은 사실 청의 국력이 강했다고 보기도 힘들고 러일전쟁은 미국과 영국의 측면지원이 아니면 질 전쟁이죠. 일본은 영미의 대리인이었다 핻 과언이 아니고
@노하라신노스케 청일전쟁때 일본은 영토의 크기와 자원 수 병력수에서는 청에게 열세였습니다 전쟁 이전에 청의 북양함대가 아시아 최강의 함대로 군림하여 일본은 갑신정변때 청과 직접적인 대결을 회피한 것도 이런 전력 차이가 작용했기 때문이지요
@공실불 갑신 정변 때와는 10년이나 지났고 북양함대는 청의 방만한 운영으로 겉만 번지르했습니다
김춘추의 동맹 요구를 안 받아준 건 몰라도 김춘추를 죽이려 수군을 파견한 건 최악수입니다. 김춘추를 완벽히 적으로 돌려버린 셈이니까요. 사실 김춘추가 고구려에서 보여준 잔머리는 괜찮은 편이었고 그런 김춘추를 이용했어야 했죠
고구려의 대막리지로 자신의 후방을 안전시키기 위해 김춘추를 죽일려한겁니나만?
김춘추의 동맹 회담이 무산되면서 이미 적으로 돌아버린 상태입니다 고구려는 김춘추를 투옥시키고 백제와의 동맹관계를 추구했으니까요 그리고 김춘추는 자신의 적과 당과 내통하였기에 고구려로서는 제거해야될 존재이지요 적과 내통하는 자를 어떻게 내버려 두겠습니까? 그리고 여제동맹의 확실한 공고를 위해서는 김춘추 살해가 정답이지요 결과는 실패했지만
@최영 그게 미련한 거죠. 신라가 당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못하게 적당히 미끼를 주고 했었어야죠.
@공실불 그게 근시안입니다. 연개소문은 위험부담이 큰 최선책보다 안전한 차선책을 쓴 거죠. 그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단 거부당한 쪽에서 원한을 품지 않도록 적당히 노력해야 합니다.
@노하라신노스케 결과론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그러나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김춘추를 제거해야 나당동맹의 끈이 사라질수가 있지요 김춘추의 죽음으로 신라에서 나당동맹 체결을 주도할 인사가 전무하니까요
@공실불 전쟁은 결과로 말해야 합니다. 연개소문은 결국 실패했죠. 실패했으니 실패 원인을 찾아야죠. 그 실패 원인 중 하나가 외교술-하나는 자식 문제-이니 외교술의 문제가 뭔지 봐야죠. 김춘추를 죽일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김춘추가 고구려에 미련을 갖도록 해야 했었어야죠
@노하라신노스케 신라는 백제에게 발리는 상황이니 백제와 손을 잡아 신라를 압박한거입니다
@노하라신노스케 결과로 말하자면서 이세민이나 김춘추도 실패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이세민은 자신이 추구하던 고구려를 병합시키지 못하고 그 아들대에 와서 간신히 성사시켰지만 그러나 안동도호부의 평양 철수로 고구려 점령지배는 오래가지 못하고 발해 건국으로 끝내는 실패했으니까요 김춘추도 나당동맹으로 삼국통일을 이룰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러나 당의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 설치로 인한 백제 고구려 직할 지배로 김춘추의 구상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를바 없지요
@노하라신노스케 살고자, 고구려의 요구를 수용하는 척 하며 약속을 지키지 않은 쪽은 김춘추입니다. 거부한 것은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입니다. 김춘추의 행동으로 신라 역시 고구려의 원한을 산 것이지요. 억지에 가까운 요구를 한 고구려나, 고구려를 기만한 신라 서로가 모두 원한을 산 것입니다. 연개소문은 약속을 이행않는 신라를 직접 공격하고 645년 신라는 당을 도우면서 이미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고구려가 김춘추를 굳이 구슬려야 할 이유는 없지요, 오히려 당과의 외교의 핵심에 된 김춘추를 죽여 싹을 끊는 것이 최선입니다.
@최영 그럴양이면 신라에게 미련을 주는 듯 한 메시지를 풍겨 신라가 쉽사리 당에 못 붙게 하거나 당에 붙어도 고구려에 악감정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연개소문은 그걸 안 했죠
@공실불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죠
@노하라신노스케 백제와 연합해 신라를 압박한거라니까요
@노하라신노스케 신라가 당에 붙어도 백제가 견제하고 있는 이상 고구려로서는 백제에 시달릴 신라가 자신들의 배후를 칠 능력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악감정 품어봐야 현실적으로 힘이 없으니
@노하라신노스케 나라는 망할 뻔하였고 토번과 고구려 부흥군의 당나라 배후 견제가 없었다면 신라는 살아남을수가 없지요
@공실불 글세요.. 당은 신라와 크게 싸울 의사가 없었다고 봅니다.
@노하라신노스케 네?? 도호부설치한걸 보면 모르세요?
영토는 한번 빼앗기면, 다시 찾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힘으로 땅은 정복하여도,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교화 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민족 공동체인 삼한의 땅에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반에 반에 반 토막으로 만들어 놓은 신라를 용서 할 수가 없네요.
아직도 이 땅에 신라의 기득권들이 국가보다는 개인의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고 있는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정말 우리나라 불쌍합니다.
중국:민간인 / 일본:민간인으로 싸우는 우리의 현실 언제쯤 정신 차릴까요?
애초에 당시 신라 입장에서는 고구려나 백제나 다 당나라, 왜국과 같은 타국일 뿐이었습니다.
고대에 현대적 민족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설사 민족의식이 있었다 쳐도 국제외교에서 그런 건 오히려 전쟁명분으로나 쓰일 뿐. 당장 남북한이 가장 대표적인 예죠.)
게다가 고구려와 백제의 연이은 압박으로 신라는 나라 거덜나기 직전인데 당연히 발 등의 불부터 얼른 꺼야죠. 무엇보다 중국의 힘을 빌어 같은 민족?(적국)을 멸하려고 노력한 것은 백제가 훨씬 더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