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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테사 데 루
저자 테사 데 루(Tessa de loo)는 “클리셰에 굴복하지 않는 타고난 스토리텔러”라는 극찬을 받으며 네덜란드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로 꼽히는 테사 데 루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인 1946년, 부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네덜란드 문학을 전공하고 교사 생활을 하던 그녀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추리소설 잡지 <엘러리 퀸 미스테리 매거진(EQMM)>에 연재를 시작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의 소설들을 엮어 1983년에 발표한 데뷔작 《설탕 공장의 소녀들》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듬해 하우든 에절소르상과 안톤 와흐테르상을 수상하면서 흥행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1993년, 《안나와 로테》를 출간하며 데뷔 10년 만에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테사 데 루의 대표작인 《안나와 로테》는 독자들 사이에서 먼저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만 4백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여전히 소화시키지 못한 역사적 비극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조명한 인상적인 이야기”,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직면할 때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섬세하고 세련되게 담은 걸작”이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유럽 간의 우호적 관계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오토 폰 데르 가브렌츠상을 받으며 작품의 영향력을 공인받았다. 현재까지 모두 25개 언어로 번역, 32개국에 출간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002년에는 벤 솜보가르트 감독이 영화화해 2003년 네덜란드 최우수영화상 수상, 76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예를 안았다. 국내에는 2005년 EU 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되었다. “글쓰기는 내게 절대적인 쉼이다”라고 말하며 여전히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그녀는 현재 포르투갈 코임브라에서 지내면서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메안델》,《번제》,《아자벨레》,《스페인에서 온 아이》,《천국에서의 침대》등 모두 12권의 책을 출간했다.
역자 : 윤미연
역자 윤미연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캉 대학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홍당무》《구해줘》《피카소》《뒤피》《장미》《옥소도시》《자연은 살아 있다》《제2의 순수》《초록색 정원에서 보내온 편지》《불타는 세계》《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마지막 숨결》《라디오 쇼》《우리는 함께 늙어갈 것이다》《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기억술사》《Eeeee 사랑하고 싶다》《어떤 이는 갈색머리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외롭게 태어난다》 등이 있다.
1부 인테르벨룸
2부 전쟁
3부 평화 - 대홍수가 지나간 후에도, 다시 우리는
옮긴이의 말
“우리의 운명이 서로 바뀌었다면, 난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랬다면……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서로를 잊은 채 평생을 살아온 쌍둥이 자매의 마지막 조우!
그녀들이 68년 만에 다시 만난 날, 그리고 2주 동안의 이야기
올해 최고의 책이다! _<인디펜던트>
‘과거의 적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 책은
완전히 독창적인 이야기를 펼쳐 보이며 서서히 독자들의 숨을 멎게 만든다! _<선데이 타임스>
안나와 로테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역사의 진실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시간이 지나도 아물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드러난다. _<뉴욕 타임스>
짙은 시간의 안개 사이로 대화가 펼쳐지는 동안 묻혀 있던 그들의 과거가 소생된다.
커피처럼 쓴 기억을 나누며,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순간들이 감동적이다. _<가디언>
영원히 기억에 남을 작품. 작가가 혼신을 다해 쓴 걸작! _<커커스 리뷰>
“200년 동안의 베스트셀러 TOP 100”(<선데이 타임스>)에 꼽히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 테사 데 루의 장편소설 《안나와 로테》(원제: De Tweeling)가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출간 당시 “인류의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그려낸 감동적인 책”, “너무나 슬프면서도 완벽한 엔딩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라는 극찬 속에 독자들 사이에서 먼저 입소문이 퍼져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만 4백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또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책만을 끊임없이 내던 미국 도서 시장에 절망하고 있을 때 이 책이 다가왔다”라는 평을 들으며 유럽은 물론 미국, 아시아, 중동까지 세계 32개국에 소개되어 사랑받았다. 이 작품으로 저자는 데뷔 10년 만에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2002년에는 벤 솜보가르트 감독이 영화화해 2003년 네덜란드 최우수영화상 수상, 76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예를 안았으며, 국내에는 EU 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안나와 로테》는 여섯 살 때 부모의 죽음으로 독일과 네덜란드로 흩어져 살게 된 쌍둥이 자매가 침략국과 피해국이라는 차이만큼이나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겪는 혼란과 고통, 비극을 중대한 역사적 사실과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밀도 높게 그리고 있다. “여전히 소화시키지 못한 역사적 비극을 한 인간의 관점에서 조명한 인상적인 이야기”(<인디펜던트>),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직면할 때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섬세하고 세련되게 담은 걸작”(<뉴욕 타임스>)이라는 평단의 찬사와 함께 유럽 간의 우호적 관계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오토 폰 데르 가브렌츠상을 받으며 작품의 영향력을 공인받았다.
:: 10년간 유럽을 뒤흔든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작가, 테사 데 루
테사 데 루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추리소설 잡지 <엘러리 퀸 미스테리 매거진(EQMM)>에 연재를 시작하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의 소설들을 엮어 1983년에 발표한 데뷔작 《설탕 공장의 소녀들》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데 루는 이듬해 신인에게 단 한 번뿐인 영예인 아우든 에절소르상과 안톤 와흐테르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인 1946년, 네덜란드 부섬에서 태어난 데 루는 전후의 남루하고 처참한 생활과 날것의 욕망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때의 인상적인 경험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들에서 ‘어른 세계와 아이 세계, 개인과 집단의 갈등’이란 주제로 나타난다. 저자는 이런 갈등을 비현실적인 설정이나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보여주기보다 일상 속에 침투해 있는 폭력과 잔혹함에서 드러낸다. 때문에 《안나와 로테》의 주된 공포는 전쟁을 다룬 대부분의 소설처럼 수용소 생활의 참혹함이나 선악의 대립이라는 ‘예견된 비극’이 아닌 바로 옆집,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흔들리는 과정에서 파괴되는 인간성에서 기인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속에 불편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녹여낸 저자의 노련함이야말로 그녀가 “거장”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이유일 것이다.
:: 간략한 줄거리
1916년 독일,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쌍둥이 자매 안나와 로테가 태어난다. 둘은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게 된다. 그러고는 안나는 가난한 독일 할아버지 집으로, 로테는 부유한 네덜란드 삼촌 집으로 보내지게 되면서, 이후 둘의 삶은 완전히 극과 극으로 갈린다. 꼭두새벽부터 돼지 쉰 마리의 먹이를 챙겨야 했던 하녀 안나와 타고난 목소리를 갈고닦는 데만 전념할 수 있었던 수양딸 로테로, 끔찍한 학살을 자행하며 세계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 안나와 전쟁으로 인해 매순간 생사를 오가야 했던 나라의 국민 로테로, 유대인을 죽여야 하는 자의 아내 안나와 유대인이기에 죽어야 했던 남자의 연인 로테로, 사랑했던 남자와의 짧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을 영원히 추억하며 살아온 여자 안나와 전후 혼란의 도피처로 선택한 남자와의 결혼으로 평생 지독한 외로움을 느껴야 했던 여자 로테로! 그렇게 68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둘은 우연히 어느 온천 휴양원에서 하얀 백발의 노인으로 재회하게 되는데……. 한날한시에 함께 태어났지만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쌍둥이 자매의 운명적인 드라마가 펼쳐진다!
:: ‘이해해.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했던 이들을 보듬어줄 유일한 위로이자 마지막 구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더라면, 네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을까?
‘난 이해해’라는 그 한마디 말을.” _로테
“서로를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의 상처가 부드럽게 치유되던” 안나와 로테가 68년 만에 만난 날. 떠들썩하게 기뻐하며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안나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며 차라리 수증기로 증발해버리고 싶어 하는 로테는 딱 그만큼의 간극을 두고 “결코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행성”인 듯 서로간의 밀고 당기기를 시작한다. 이미 오랫동안 각각의 편견을 가진 채 살아온 그녀들의 응어리는 깊고도 단단하다. 당시의 정세는 전혀 모른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피난 다녀야 했던 안나는 독일인을 향한 로테의 분노와 적개심에 대해 “우리 둘 다 그 상황의 피해자”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로테는 결국 너도 다를 바 없는 가해자라며 안나의 간절한 화해의 손길을 계속해서 뿌리친다. 이처럼 참혹한 전쟁보다도 두려운 건 체념하고 묻어두었던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고 믿고 있었던 사실들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다. 그렇기에 로테는 “기적 같은 만남”에 도리어 불안해하며 혼자만의 “방어벽” 뒤로 숨어 눈을 감아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안나는 로테를 포기하지 못한다. 폭탄 비보다도, 굶주림보다도 더 끔찍한 것이 서로를 오해하면서 평생을 미워하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2주가 지난 어느 오후, 안나는 갑자기 세상을 먼저 떠난다.
저자는 대의나 명분이라는 이념으로 포장된 전쟁은 권력자들의 체스 게임일 뿐이라는 것을, 무력하게 그들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이들의 68년의 삶과 2주간의 대화, 그리고 로테의 뒤늦은 후회를 통해 보여준다. 안나와 로테와 같은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남겨진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원론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나 물질적인 보상보다 더욱 필요한 건 남겨진 사람들 간의 이해와 용서라는 것을 쌍둥이 자매의 마지막 만남을 통해 알 수 있다. ‘너를 이해한다’라는 한마디 말이야말로 삶이 송두리째 뽑히는 전쟁이라는 비극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했던 이들을 보듬어줄 유일한 위로이자 마지막 구원인 것이다.
:: 피 튀기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을
과연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나와 무관하게 세상은 혼란에 빠졌고, 나는 그저 오늘을 살아야 했다.” _안나
작품 속에서는 환등기의 슬라이드가 하나둘씩 넘어가는 방식으로 처참했던 20세기의 시간들이 펼쳐진다. 전시라는 비상시국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도 아닌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숙명일지 모른다. 살아 있기에 희망이 있다는 낙관조차 사치인 시기, 남겨진 사람들은 피비린내 나는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생존자’라는 이름의 또 다른 형벌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힘없는 유대인 할머니를 괄시하는 이웃들, 걷지 못하는 부상자들을 그대로 두고 도망가는 의사들, 모두가 굶주리는 동안 아픈 아내를 위한 배급 음식을 숨겨놓고 몰래 혼자 먹는 남편……. 극도의 고립감과 불안감, 외로움 때문에 생존을 위한 본능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인간의 숲. 권력을 가진 자들의 총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평범한 사람들은 원초적인 절망과 맞서 싸우며 그들만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렇듯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망과 일상적 폭력이 혼재하는 상황 속, 그곳에 안나와 로테도 있었다. 안나는 나치 통치 아래에서도 부정한 상황들을 직면하며 용감하게 돌파해나갔지만, 반면 로테는 독일군의 침공으로 사방에서 숨통이 조이는 상황에서 보다 안정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런 안나를 용기 있다고 여기고 로테를 비겁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안이한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안나가 로테의 상황이었더라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로테가 안나의 상황이었다면 방어적으로만 대응했을까. 나아가 누가 피 튀기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인간에게 이기적이라거나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안나와 로테뿐만 아니라 작품 속 모든 사람들의 태도를 놓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편견에 반기를 든다. 사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그들은 단지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말, 생존을 위해 각자 자신의 환경에 맞게 분투하는 인간인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환경에 따라 인간의 태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순히 인간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눠 판단하는 이들을 향해 무겁고도 아픈 질문들을 던진다.
“너희 아버지가,” 일곱 자매 중 한 사람이 속옷을 입히면서 말한다. “ 간밤에 돌아가셨단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안나가 부츠의 끈을 힘들게 묶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럼 아버진 더 이상 기침을 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가슴 통증도 느끼지 않을 거야.” 로테가 거든다. _p.32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안나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독특한 장소에서…… 이건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게 분명해.” 로테는 종이컵을 꽉 움켜잡았다. 그녀는 심오한 뜻 같은 건 믿지 않았다. 그저 우연의 일치를 믿을 뿐. 지금, 그 우연의 일치가 그녀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고 있었다. _p.37
어느 날 로테는 아버지가 커다란 깃발을 달기 위해 그 탑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꼭대기 위에서 펼쳐진 돛처럼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옆에 서 있는 아주 작은 형체를 보았을 때, 그녀는 숨이 막혀왔다.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날려가는 게 모든 아버지들의 운명인 것일까? _p.44
로테는 약간 어지러웠다. 그 기이한 가족사가 자신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쉬잇, 그런 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마. 그런 일은 일어난 적 없어. 하지만 그렇게 그녀가 아주 오래전에 밀봉해놓았던 쓰라린 수수께끼의 봉인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느닷없이 깨어지고 있었다. _p.45
“독일 놈들은 절대로 믿지 마, 한 번 독일 놈은 영원히 독일 놈이야.” 로테의 네덜란드 아버지는 말했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신뢰를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전쟁 중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신중하게 구분해야 했다. 그건, 그래야만 했다. 그런 확고한 구분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나치 협력자냐 아니냐.’ 그 구분은 전쟁이 끝나자 갑자기 사라졌고, 단지 시제만 달라졌다. ‘나치 협력자였느냐 아니었느냐.’ _p.186
로테는 독일인들에 대해 투덜대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더 독일인들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다. 그가 내뱉는 부정적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녀에게 다시 안나와 만나고 싶다는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아버지가 독일인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녀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_p.198
“아버지는 안 계세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일을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순 없습니다.” 그녀는 문을 붙잡은 채 서 있었다. 아무도 더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회피하듯 쳐다보았다. 지칠 대로 지쳐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서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 그 노인은 어떤 재앙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같아 보였다. 너무 왜소하고 너무 가벼워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라앉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처럼.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침묵이 부끄러워졌다. _p.337
그녀 귀에 들어오는 거라고는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녀 주위에는 절대적인 정적만 가득했다.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에이셀 다리 위에서도, 철로 공습 때도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두려움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_p.434
상황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고 긴장은 점점 더해갔다. 에른스트는 그런 상황에 영향을 받아 서투른 청혼을 했다. 어색해하며 힘들게 말을 꺼내는 그의 태도에 감동받은 로테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청혼을 받아들였다. 남자답지 못한 나약함과 상처받기 쉬운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점 때문에 그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의 삶이 과연 정상적인 사이클을 되찾을 수 있을까, 라는 은밀한 두려움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결혼은 그 엄청난 대가족, 어떤 의미에서 너무도 소중한 하나의 소우주가 뿔뿔이 흩어지는 과정에서 그녀가 개입하지 않아도 되게끔 해줄 것이었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 남겨질 공허감에서 달아날 수 있기를 바랐다. _p.479
해방. 그것은 적군으로부터의 해방일 뿐만 아니라,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했다. 그 극명한 대비는 밤낮으로 계속되는 새로운 불안을 낳았다. 하나의 불안이 사라진 순간, 거의 피부로 느껴지는 또 다른 현실적인 불안감. 그들이 맛본 희열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이 때때로 마지막 봇물을 쏟아내곤 했기 때문이었다. _p.500
로테는 흥분 때문에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일단 그때의 기억이 나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너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가 깁스 한 팔을 붕대로 목에 맨 채 돌아왔어. 나는 샘이 났지……. 난 네가 가진 건 뭐든 똑같이 갖고 싶었어. 너의 아픔, 너의 ?
첫댓글 테사 데 루 지음 / 역자 윤미연 옮김 / 역자평점 7.8 / 출판사 푸른숲 | 2012.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