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읽기 전에..
박범신은 유명한 소설가 중에 한명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이번에 읽은 촐라체.
나에게 있어 제목이 독특해서, 몇달 전에 검색해 본 적이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한 봉우리의 이름이란다.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란다.
형제의 촐라체 등반이야기란다.
먼저 읽은 이들의 평을 보니, 재미있다 하더라.
뭐, 대충 이정도의 사전지식을 가지고 책을 집어들었다.
1. 산을 오르기 전에...
이 책은 두 형제 상민과 영교가 촐라체를 오르기 전
베이스캠프에서 준비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서로 다르다.
이 두 형제가 촐라체를 오르게 된 사연이 궁금해진다.
이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이 살아온 지난 삶을 알게 되면서 해소된다.
...
그들의 모두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촐라체를 올라가기 시작한 그 순간에도 어두웠다.
어두운 과거 뿐만 아니라 어두운 현재를 지고 있었다.
...
가출한 여고생. 그 여고생은 화물트럭 운전사를 만난다.
그 여고생이 바로 박상민의 어머니이고, 화물트럭 운전사가 박상민의 아버지이다.
상민의 어머니는 아직 어린 상민을 버리고, 딴남자와 도망을 가게 된다.
그 남자가 바로 하영교의 아버지이다.
트럭운전사였던 상민의 아버지는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일찍 죽고 상민은 혼자가 되었다.
영교의 아버지는 사업이 번창하여 어느정도 살게 되었다.
상민의 어머니는 상민과 연락이 닿았고,
상민은 대학진학을 앞둔 1년여동안 영교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때 상민은 처음으로 11살 어린 영교를 만났다.
영교도 새로 생긴 형을 잘 따랐고, 그들은 친하게 지냈다.
상민이 대학에 붙고, 영교의 집을 떠나게 된다.
아무래도 새아버지와 생활이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그를 잘 따르던 영교가 맘에 걸리기는 하였다.
험난한 삶을 살던 상민과 영교의 어머니가 일찍 눈을 감는다.
어머니는 어린 상민을 버린 것에 죄책감을 보상하기라고 하듯,
틈틈히 모은 1억이 넘는 돈을 상민에게 남겨주었다.
이에, 상민은 조그마한 사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같이 사업을 한 동료의 배신으로
그는 사기죄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3개월동안 하게 된다.
하필, 그때 영교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영교의 아버지도 연이은 사업의 실패로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다가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혼자된 영교는 상민형을 찾았다.
하지만, 상민은 감옥에 억류된 몸이라 영교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 사연을 모르는 영교는 상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린 영교,
홧김에 사채업자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히고 도망을 친다.
수배자의 몸이 된 영교는 상민을 찾아간다.
영교가 찾아왔을 당시,
상민은 감옥에서 나와 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민은 전문 클라이머로써, 암벽 등반 및 세계의 높은 빙벽을 등반한 경험도 있었다.
상민이 자신이 따르던 선배가 등반사고로 죽은 후,
한동안 등반을 하지 않았다가 다시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민은 사업의 실패와 3개월의 감옥생활, 그로 이어진 사랑하는 부인과 이혼.
현실을 탈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에 가장 좋은 것은 등반이었다.
영교도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다.
상민이 같이 등반 갈 것을 제안하자, 영교는 이에 응했다.
하지만, 오해로 생긴 형에 대한 미움은 아직 그대로였다.
상민은 중학교 때 학생과 교생의 인연으로 알게된 정우진에게 연락한다.
정우진은 상민과 영교의 등반을 도움을 주고,
베이스캠프를 지키기로 약속한다.
...
정우진.
그 또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또하나의 슬픈 영혼의 소유자이다.
결혼을 얼마 앞둔 상황에서 나타난 아들 현우.
군대 말년 휴가의 불장난의 씨앗이었다.
그로 인해 정우진은 파혼을 하게 되고,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게 되었다.
그는 그의 꿈이었던 작가를 버리고,
아들의 생계를 위해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 아들은 17살이 되던 해,
스님이 되겠다고 산에 들어갔다.
우진은 말릴 수 없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우진은 현우가 출가한 뒤에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무작정 떠났다. 그 여행길에 상민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우진은 무조건 오케이였다.
그들은 촐라체가 바라다보이는 곳에 베이스캠프를 정하고,
촐라체 등반 준비를 하였다.
2. 촐라체 등반
상민과 영교는 촐라체 북벽 등반을 계획하였다.
촐라체 북벽은 난코스로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상민과 영교는 1박2일을 일정으로 12월 31일 촐라체 정상 정복을 위해 출발하였다.
하지만, 인생사 계획대로만 될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계획대로만 된다고해도 인생은 재미없을 것이다.
늦어진 일정, 아직 풀지못한 형제 사이의 오해.
반항아 기질이 있는 동생 영교는 형과 계속 대립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날씨와 예상치 못한 일들로 4일째 되어서야 정상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정상은 눈보라가 심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이트아웃이었다.
그들은 하행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영교가 크레바스에 빠지고 말았다.
크레바스는 빙하 위에 생긴 균열이다.
그 깊이는 수미터에서 수천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영교는 상민과 로프로 연결되어 있어 크레바스 안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이런 경우 위에 있는 한명이라도 살기 위해
로프를 끊어내는 것이 그들 사이의 모럴이라고 한다.
영화 같은 데서도 많이 본 장면이다.
하지만, 상민은 모럴을 지키지 않는다.
소설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의 촐라체 등반 장면의 모티브가 실화였다면 어떨까.
두 형제의 촐라체 등반 장면은
실제 우리나라 두 산악인이 촐라체를 정복한 것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두 산안인 중 한명이 크레바스에 빠졌고,
나머지 한 명은 로프를 끊지 않고, 동료를 구해내어 안전하게 하산하였다고 한다.
이는 소설 속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암튼, 상민은 로프를 끊지 않고 영교를 구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로프는 오래된 로프라서, 힘없이 끊어지고 말았다.
밑에 있던 영교는 당연히 형이 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형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게 되었다.
그 증오의 힘이 영교를 살 수 있게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크레바스는 크게 깊지 않았다.
하지만, 추락의 영향으로 한쪽 발목을 심하게 다치고 말았다.
상민은 영교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는데,
얼마뒤 크레바스 안에서 불빛을 보았다.
영교가 살아있는 것이다.
상민은 앞뒤 안가리고, 크레바스 안으로 내려갔다.
상민은 영교를 다시 만났지만, 영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영교의 부러진 다리는 부목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주위에 눈밖에 없는데, 부목이 있을리 있나.
상민은 자신의 첫사랑의 상징인 차랑고라는 악기를 늘 지니고 다녔다.
이혼했지만,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첫사랑이자 아내였던 신혜로부터 받은 첫선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민은 늘 차랑고를 가지고 다녔다.
그 고귀한 차랑고, 영교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 차랑고를 부러뜨려 이를 이용하여 영교의 부목에 사용하였다.
아참, 그리고 영교는 로프가 저절로 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힘겹게 크레바스를 탈출하였고, 또다시 빙산에서 비박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히말라야의 장엄한 일출을 보게 된다.
실제 촐라체 정상에서 보지 못한 일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지연된 일정 때문에, 그들은 평생 간직하게 될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는 얻는 법인가.
지금 안좋은 일이 있다고 툴툴거리지 말지어다.
지금의 이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하여 내 앞에 나타날 지 모르는 일이다.
...
하지만, 상민과 영교, 그들은 아직 안전지대가 아니다.
아직도 하산해야 할 길이 많고,
그들에게는 남아있는 식량도 없고, 전등의 불도 없고, 무전기의 배터리도 이미 다 떨어진 상태이다.
거기에 영교는 다리가 완전히 부러진 상태이고,
상민은 계속해서 고소장애로 환각을 보고, 설맹까지 생겨 한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다.
언제 다시 크레바스에 빠질 지 모른다.
그들은 서로를 믿고, 협심해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마치 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의 아버지와 아들을 보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의 그런 부상은 하루에 갈 수 있는 길이 얼마 못되게 하였다.
극한 상황에서 그들은 서로를 더욱 각별히 생각하게 되면서,
촐라체를 등반하기 전에 있었던 서로의 갈등이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었던 그들의 현실이 사소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이 비록 동상을 입고, 등반의 후유증을 겪게 되지만,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들에게 있어 등반은 무엇이었을까.
비록 그들은 현실을 도피하지 못하고, 등반이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등반 전후의 마음만은 크게 변해 있었다.
지은이는 그런 것도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소설의 뒷부분 나를 일깨우는 글이 있어 발췌한다.
"길은 결국 두 갈래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길은 경쟁에 가위눌리면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허겁지겁 쫓아가는 길일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안락한 일상을 버릴지라도
불멸에의 영성을 따라 이상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일 것이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나는 두번째 길을 꿈꾸지만,
아직 용기가 없어 첫번째 길을 가고 있다.
알면서도 못가는 두번째 길. 나는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씁쓸하다.
3. 등산
나는 암벽등박이나 빙벽등반같은 것은 무섭다고 생각한다.
가끔 북한산을 가보면,
인수봉 암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을 보면 왜 저길 올라가나 싶었다.
가끔 인사사고가 뉴스에서 들리기도 하는데도 그들은 그곳을 간다.
하기야, 침대에서 죽은 사람이 가장 많다고 침대에 가지 않는다고 대꾸하면 할말은 없다.
나는 그런 위험한 암벽등반은 NO지만, 산은 YES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촐라체를 찾은 비슷한 이유로 나도 가끔 산을 찾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들, 고민거리들...
힘든 산행을 하다 보면, 그 걱정거리들이 생각나고 않는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넓고 시원한 세상을 보면, 고민거리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흩어졌다 모이고,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을 보면
우리의 걱정거리들도 생겼다 사라졌다함을 알게 된다.
모두 사소한 걱정거리다.
산의 정기를 한껏 들이키고 집으로 돌아온다.
한동한 생활을 하다보면 산의 정기를 모두 잃어버리고,
또다시 사소한 걱정거리가 이내 몸을 휘감는다.
또다시 산을 찾는다.
...
마지막으로 산을 간 지가 무척 오래되었다.
나의 뒷골에는 사소한 걱정거리가 잔뜩 쌓여 있다.
책제목 : 촐라체
지은이 : 박범신
펴낸곳 : 푸른숲
펴낸날 : 2008년 03월 05일
정가 : 9,800 원
독서기간: 2008.09.08 - 2008.09.11
페이지: 363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