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재구성 / 한복용
로터리를 돌 무렵이었다. 속도를 줄이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려는 찰나, 하얀 개 한 마리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때 내가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는지 핸들 잡은 손에 얼마만큼 힘을 주었는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반사적으로 비상등 버튼을 눌렀고 차를 세운 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언가에 부딪친 느낌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낑낑거리는 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사이드미러를 통해 살핀 도로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달리는 어떤 차도 없었다. 초가을 저녁 8시쯤이었다.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서두르기는 했으나 속도를 낼 정도로 급한 길은 아니었다. 가로등이 없어도 칠흑같이 캄캄하지는 않았다. 분명 하얀색 중간 크기의 개였는데 도로에도 길가에도, 그 어디에도 개는 보이지 않았다.
쿵쾅대는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다시 차를 움직여 속도를 내는데 바깥공기가 들어오면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즉시 나는 외부공기차단버튼을 눌렀다. 속이 메스꺼웠다. 내려서 자동차 밑을 확인해야 했을까. 그런데 자동차 아래로 그 개가 들어가기에는 차체가 너무 낮다. 또 요철을 지나간 것 같은 느낌도 없었다. 그렇다면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건 뭔가.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두려움이 치고 올라왔다. 차를 다시 돌려서 가봐야 하나. 그냥 약속을 취소해야 할까.
속이 울렁거렸다. 양쪽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두통이 몰려왔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환기를 시키고 싶었지만 창문을 내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에 받힌 개가 어딘가에서 나를 공격해올 것 같은 생각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정황상 공격자는 나인데 두려워하는 쪽도 내가 되었다. 아무리 의도치 않은 사고라고는 하나, 피해를 당한 쪽은 개인데, 자꾸만 나는 그 개가 원망스러웠다. 녀석은 무언가에 쫓기다가 미처 내 자동차를 발견하지 못한 걸까. 그렇더라도 헤드라이트 불빛은 봤을 텐데. 조심할 일이지. 개도 나도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나저나 어째서 하필, 왜 내 차인가.
내가 대학입시 준비로 한창일 때, 막내오빠에게는 이런저런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중 도로에 누워있는 사람을 친 일이 있었다. 고향집에 왔다가 밤늦게 수원 자기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가로등이 없는 도로를 달리다가 무언가에 덜컹하는 느낌을 받았으나 별거 아니려니 했단다. 집에 도착했을 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뒤에 오던 택시기사가 오빠 차를 신고했고 오빠가 넘고 온 것은 도로에 누워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오래된 사고로, 또 끔찍했던 일로 나의 기억은 토막토막 사라져버렸지만 조사결과 거기 누워있던 사람은 술에 취한 채였고 최초 피의자는 다른 사람이었다. 오빠는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트라우마에 의한 불면과 악몽으로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어도 금방 차에서 내릴 수 없었다. 그때까지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가방을 챙겨 내렸다. 주차장 불빛에 비친 자동차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너무도 멀쩡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불안했다. 혹시 피 자국이라도 보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두려움에 가슴은 조여 왔지만 불안한 상태로 누구를 만나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그곳으로 가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단순한 접촉사고였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확인시켜주고 안도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끝내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 신경은 온통 사고지점에 가 있었다. 퍽, 하는 소리와 낑낑, 들렸던 개 울음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가슴은 두근거렸다. 혹시라도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 개를 생각하면 미안해졌다. 튕겨져 나간 걸 내가 미처 발견 못했을 수도 있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서인지 카페 안은 심하게 냉기가 돌았다. 카디건을 걸쳤지만 무척 써늘했다. 아니, 오한이 느껴졌다. 영업마감시간이 다 돼 가는지 커피집 직원은 우리가 앉아 있는데도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게 마감 청소를 했다. 생각도 대화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조용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얼굴을 살피던 친구는 별일 아닐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했다. 오히려 자신이 당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며칠 전 미군부대 앞에서 신호대기 중인 자신의 차를 미군차가 치고 부대 안으로 도망쳐 수습하기가 곤란하다는 이야기였다. 경찰조차 비협조적이어서 골치가 아프다며 그녀는 뺑소니차량의 불량함을 비난했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자리가 갑자기 불편해져 청소하던 직원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다.
다음날 아침 주차장에 세워진 차를 자세히 살폈다. 앞쪽 그릴 부분이 한 군데 밀려나있었다. 아마도 그곳에 녀석이 부딪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녀석이 내 차에 치인 것이 맞다. 나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차에 친 하얀 개를 생각했다. 그리고 조각을 맞추듯 기억을 더듬었다.
그날 저녁, 나는 그 사고를 없었던 일처럼 가장한 채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예기치 않은 일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더구나 사람이 아닌 짐승이었다. 달려드는 짐승을 피하려다 사람이 다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경험자들은 그럴 경우 더 큰 사고를 피해 차라리 짐승을 치고 가라고 한다. 그 시간, 주변은 컴컴했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었다. 흔한 CCTV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는 전날 사고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도로는 가끔가다 자동차만 한두 대씩 지나다닐 뿐이었다. 너무나도 깨끗한 도로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만이 진실의 진실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