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라"(PHAEDRA)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죽어도 좋아"라는 다소 煽情的 제목으로 개봉했었는데, 어렴풋이니마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프랑스-그리스가 합작한 1962년도 영화인데, 멜로 팬들은 더할나위없이 만족할 것입니다.
'패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안물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한 항구에서 선박 '패드라號'성대한 출항식이 열립니다. 해운업계 재벌의 딸인 패드라는 30대의 젊고 매력적인 여성인데, 선박업계의 거물인 이혼남 '다노스'라는 사나이와 정략결혼합니다.
다노스에겐 전처 소생인 '알렉시스'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이버지는 자신의 뒤를 잇게하기 위해 그를 런던에 보내 경제학 공부를 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림공부에 만 몰입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이런 소식에 심기가 몹시 불편해진 다노스는 아내 페드라에게 여행 중에 런던에 들러 아들을 파리까지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의붓엄마와 의붓아들은 드디어 대영박물관 전시실에서 처음 만나게 되고, 24살의 젊고 유쾌한 남자를 마주한 페드라는 첫눈에 魅了돼 목숨을 건 지독한 사랑에 빠져듭니다.
果然 이들의 事緣은 어떻게 展開될까요?
모르고 봐야 더욱 흥미로을 것이기에 이후 이야기는 省略합니다.
悲戀의 終末은 豫見된 것이지요.
감독과 배우들 얘기도 흥미롭습니다.
감독은 즐스 다신, 1911년 생으로 97세까지 長壽했습니다.
알프래드 히치콕 감독 작품 '해외특파원'(1940)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습니다.
그런데 과거 공산당원이었다는 前歷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유럽으로 망명합니다.
그리고 생애 최고의 성공작이며, 주제가가 유명했던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1960)를 만들어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쥡니다.
역시 이 영화에서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패드라의 주인공 역으로 캐스팅된 멜리나 멜르쿠리는 줄스 닷신 감독과 실제 부부가 됩니다.
줄스 다신이 1981년 미국 國籍을 버리고 그리스 국적을 取得했을 땐 '그리스인 보다 더 그리스를 사랑하는 인물'이라는 評價를 받기도 했습니다.
女優 멜리나 메로쿠리는 1920년 아테네의 정치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30년 間 아테네시장을 역임했고, 아버지는 내무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냈지요. 17살 어린 나이에 어느 부잣집 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합니다. 얼마 못 가 離婚하고, 다른 남자와의 同居를 거쳐 1966년 줄스 다신과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1960년대 末 그리스 군사정권에 半旗를 들다가 국외로 追放돼 亡命生活을 하지요.
군사정권이 무너진 후엔 歸國해 문화부장관에 任命됩니다.
부부가 '일요일은 참으세요', '페드라' 等을 함께 만들면서 최고의 예술가로 稱頌받았습니다. 남편에 앞서 74세에 뉴욕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러면 '패드라'에서의 아들 역 배우는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안소니 퍼킨스입니다. 195,60년대에 '孤獨한 청춘의 象徵'으로서 여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았었지요.
1960년 '싸이코'에선 정신병자 역으로 출연해 대단한 脚光을 받았습니다.
4편까지 만들어진 이 시리즈 全篇에서 주연했는데, 제3편은 본인이 감독을 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월리암 와일러 감독작 '우정있는 설복'(1956)에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요.
결혼해 두 자녀를 두었으나, 이미 兩性愛者였던 그는 결국 에이즈합병증으로 6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아들에게 마누라
를 빼앗긴 悲運의 아버지 역의 인물입니다. 당시 프랑스 대표배우 중 한 명인데, 영화-연극 평론, 프로축구 생활, 법률사무소 근무 등 여러 길을 걷던 라프 벨로네인데, 굵직한 영화 여러 편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왔습니다. 아들 셋도 모두 배우였지요.
좀체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남자의 絶叫는 아직도 귓전을 맴돕니다.
"페드라~! 페드라~~!!"
2024년 6월 25일 화요일 낮에
壺然 김 주 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