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崗李康年 紀念館 운강 이강년 선생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 樂寅), 호는 운강(雲崗), 아버지는 기태(起台)로 1880년(고종 17) 무과에 급제해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折衝將軍行龍衛副司果)로서 선전관(宣傳官)이 됐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인 문경으로 돌아왔다. 운강 선생은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일제 앞잡이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 김인담(金仁覃) 등 3명을 체포해 농암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처단하며 초반 의기(義氣)를 높인 가운데 의병을 일으켰다. 선생은 그 후 한일신협약으로 한국군대가 해산 당하자 강원도 영춘(永春)에서 큰 규모의 의병을 일으켰으며, 풍기·문경·단양·연풍·영월·죽령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하고, 소백산·일월산 일대에서 일본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큰 전과를 거뒀다. 그러나 1908년 6월 4일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돼 서울 일본군 헌병사령부로 압송, 체포된 지 4개월 만인 10월 13일 교수형으로 서거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국민장을 추서했으며, 문경시는 2002년 ‘운강기념관’을 짓고,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며 해마다 사당에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선유동천 나들길 대야산 용추계곡의 물길을 따라 조성된 4.075km코스다. 용추계곡의 시원하고 맑은 물소리와 아름다운 경관을 따라 조성되어 있으며, 대야산 용추계곡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된 계곡으로 용이 박차고 하늘로 오르면서 폐인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맑고 시원한 계곡물과 함께 잘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다운 계곡으로 사계절 사람들의 발걸음이 끝기지 않는 계곡으로 "문경 팔경" 중 한 곳이다.
용추 암수 두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때, 용트림을 하다 남긴 용비늘 흔적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용추의 장관이야 말로, 명소중의 명소, 비경중의 비경이 아닐 수 없다. 무당소 용추폭포 아래에 있는 무당소는 수심이 3m정도로, 100여년전 물 긷던 새댁이 빠져 죽은 후 그를 위해 굿을하던 무당마저 빠져 죽었다고해서 생긴 이름이다. 무당소의 물이 아주 맑고 투명하고 주위에는 산들이 둘러있어서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아자개(阿慈介) 후백제의 임금 견훤의 아버지이다. 상주 고령군(古寧郡)가선현(嘉善縣)(지금의 문경시 가은읍) 출신이다. 견훤의 후손이 지었다는 《이비가기》에 따르면 아자개는 신라 진흥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진흥왕의 증손자인 각간 작진이 왕교파리라는 여성을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을 낳았는데 바로 이가 아자개라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아자개는 원래 농민 출신이었으나 나중에 지금의 상주에 웅거하면서 세력을 키워 장군이 되었다. 918년에 고려로 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