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내가 9세 때의 일이다. 나는 코맨치 클럽이라는 단체에 핵심회원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학교에 가는 날 오후 3시에는, 우리 단장이 단원 25명을 165국민학교 남자전용 출입구 밖에서 태워 갔다. 이 국민학교는 암스테르담가 근처의 109번 거리에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밀고 당기며 단장의 개조된 영업버스에 탔다. 그러면 단장이 우리를 (우리 부모들과의 금전적 약정에 따라) 센트럴 파크로 데려갔다. 날씨가 좋으면 남은 오후 시간에 우리는 미식축구, 축구, 야구 등을 계절에 따라 (매우 느긋하게) 즐겼다. 비가 오는 오후에는 단장이 어김없이 우리를 국립역사박물관이나 시립미술관으로 데려갔다.
토요일과 대부분의 국경일에는, 단장이 이른 아침에 각 회원들의 아파트를 돌며 죄수호송차 같은 버스에 우리를 태워 맨해턴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은 비교적 공간이 넓은 반 코틀랜트 공원이나 팰리세이즈였다. 모두들 운동을 즐길 의향이면 우리는 반 코틀랜드를 찾았다. 그곳 운동장은 규격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고, 유모차나 지팡이를 휘두르며 화를 내는 할머니를 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 코맨치 단원들이 캠핑을 원하면 팰리세이즈로 가서 즐겼다. (어느 토요일, 리니트 광고판과 조지 워싱턴교 서쪽 끝에 있는 길이 복잡한 지역에서, 나는 길을 잃은 일이 있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길가의 큰 광고판 그늘에 앉아 눈물을 글썽이며 단장이 찾아올 것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열었다. 우리가 길을 잃어도 단장은 언제나 우리를 찾아냈다.
코맨치 클럽에 매이지 않았을 때의 단장은 존 게주드스키로 스탠튼 아일랜드에 살고 있었다. 그는 스물 두 세 살 가량의 매우 수줍음을 타는 상냥한 젊은이로 뉴욕 대학의 법과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매우 기억에 남을만한 인물이었다. 나는 그의 많은 업적이나 선행을 여기에 열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스치듯 살펴보면, 그는 보이스카우트의 21개 훈장 소유자였으며, 1926년도 전 미식축구 대클 부문의 최우수선수로 선출될 뻔 했다. 그리고 그는 뉴욕 자이언츠 야구단의 테스트를 받도록 정중한 권유를 받았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들의 열광적인 운동시합에서도 그는 항상 냉정하고 공정한 심판이었으며, 캠핑을 할 때도 불을 잘 피우고 끄는 명수였다. 그리고 우리가 다쳤을 때도 전혀 모욕주지 않고 응급조치를 취해 주었다. 최연소자부터 최고령자에 이르는 우리 단원들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1928년 당시 단장의 신체적 용모는 아직도 내 마음에 뚜렷이 남아 있다. 우리 원대로 된다면 코맨치 단원 일동은 위풍이 당당한 단장을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의 단장은 5 피트 3~4인치의 땅딸막한 키의 소유자였다. 그의 머리는 검고 착 달라붙었으며 코는 크고 광택이 났다. 그리고 그의 몸통 길이는 거의 다리 길이와 맞먹었다. 가죽잠바를 입은 그의 어깨는 힘있어 보였으나 좁고 굽어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사진을 잘 받는 버크 존즈, 켄 메이나드와 톰 믹스의 특징이 단장한테서 무리없이 혼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매일 오후, 지고 있는 팀이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떨어뜨리거나 골 앞에서의 패스 미스를 어둠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될 무렵, 우리 코맨치 단원들은 단장의 얘기솜씨에 나름대로 기대를 걸었다. 이 시간이 되면 우리는 과열되고 마음의 안정을 잃는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 안에서 단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자리를 잡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거나 큰 소리로 법석을 떨며 서로 싸웠다. (우리 버스에는 짚을 채운 좌석이 두줄로 나란히 있었다. 왼쪽 줄에는 운전수의 옆얼굴이 보이는 곳에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여분의 좌석이 있었다.) 단장은 우리가 모두 자리를 잡은 뒤에 버스로 올라왔다.
그런 다음 그는 운전석에 등을 돌리고 걸터앉아 높은 테너 음성을 가다듬어 '웃고 있는 사나이'의 얘기를 들려 주었다. 그가 얘기를 시작하면 우리의 관심은 절대 흐트러지는 일이 없었다. '웃고 있는 사나이'는 우리 코맨치 단원에게 안성마춤의 얘기였다. 그것은 고전적인 차원까지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 얘기는 모든 곳에 퍼져 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간직할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 이를테면 그 얘기는 집으로 돌아가서 목용탕에 들어가 앉아 물을 빼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 웃고 있는 사나이는 돈 많은 선교사 부부의 외동아들인데 어린 시절에 중국인 산적에게 유괴당했다. 돈 많은 선교사 부부가 아들을 위한 몸값 지불을 거절하자(종교적 신념 때문에), 산적들은 매우 화가 나서 목수가 사용하는 바이스에 그애의 머리를 넣고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대여섯 번 돌렸다. 남다른 경험을 한 이애는 자라 어른이 되면서 머리카락은 빠지고 피칸(북미에서 생산되는 호두-역주) 모양이 되었다. 코는 살로 덮인 두 개의 콧구멍이 있는 데 불과했다. 그 결과 이 웃고 있는 사나이가 숨을 쉬면 코 밑의 기분나쁜 구멍이 거대한 공포처럼(나는 상상할 수 있다) 부풀었다 오므라들었다 했다.
(이 웃고 있는 사나이의 숨쉬는 방법을 단장은 말로 설명하기보다 실제로 해보였다.) 이 웃고 있는 사나이의 무서운 얼굴을 처음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아는 사람들도 그를 피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산적들은 이 웃고 있는 사나이를 자기들 소굴에서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었다. 다만 그의 얼굴을 양귀비꽃잎으로 만든 연홍색 가면으로 가린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가면은 이 양자의 얼굴을 산적들이 못 보게 가려 준 것뿐만 아니라 그의 소재를 그들에게 곧 알리기도 했다. 그러니 그는 아편냄새를 맡으며 걸어다닌 셈이다.
심한 고독을 느낀 이 웃고 있는 사나이는 아침마다 산적들의 소굴을 몰래 벗어나(그의 걸음걸이는 고양이와 같이 부드러웠다) 그 주위를 둘러싼 울창한 숲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여러 가지 동물, 즉 개, 흰쥐, 독수리, 사자, 이리 등과 친해졌다. 더구나 그는 가면을 벗고 동물들의 말로 부드럽고 운율적으로 동물들과 얘기를 나우었다. 동물들은 웃고 있는 사나이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장이 여기까지 얘기하는 데는 두어 달이 걸렸다. 그때부터는 단장이 점점 고자세가 되었지만 코맨치 단원들은 매우 만족해했다.) 이 웃고 있는 사나이는 계속 주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서 단시일 안에 산적들의 가장 귀중한 거래비밀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만 크게 기대하지 않고 더 효과적인 자기 자신의 방법을 만들어 냈다. 그는 우선 소규모로 중국의 시골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도둑질을 하고 강탈하기도 했으며, 부득이한 상황에 몰릴 때는 살인도 감행했다. 곧 그의 교묘한 범죄방법과 함께 독특한 페어 플레이 정신 때문에 그는 중국 안에서 안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양부모(그의 머리를 범죄로 돌린 장본인인 산적들)는 그의 성공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그들은 미칠 정도로 질투했다. 어느 날 밤 그들은 이 웃고 있는 사나이에게 마약을 먹이고 그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 뒤 한 줄로 서서 그의 침대 곁을 지나며 이불을 쓰고 자는 그를 칼로 찔렀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불쾌감을 주며 말이 많은 그들의 어머니였다. 이 사건은 웃고 있는 사나이의 피를 요구하는 산적들의 기분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드디어 그 산적 일당을 깊지만 쾌적하게 장식된 묘(廟)안에 가둘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따금 도망쳐 나와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산적들을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이 웃고 있는 사나이에게는 묘할 만큼 자애로운 일면이 있다. 나는 그것이 미치도록 좋았다.)
얼마 후 이 웃고 있는 사나이는 중국 국경을 넘어 기적적으로 프랑스의 파리에까지 갔다. 거기서 그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탐정이며 기지가 풍부하고 결핼환자이기도 한 마르셀 뒤파르즈 앞에서 그의 천재적 수완을 자랑했다. 뒤파르즈와 그의 딸(성도착증이 있지만 상당한 미인)은 이 웃고 있는 사나이의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다. 몇 번이나 그들은 이 웃고 있는 사나이를 정원길에 유인하려 했으나 항상 이 웃고 있는 사나이는 단순히 장난삼아 중간까지 그들을 따라가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번번이 그가 도망치는 방법을 알아낼 표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가끔 그는 파리의 하수도 안에 신랄하고 짤막한 작별인사의 쪽지를 붙이기도 했다. 그러면 이것은 곧 뒤파르즈 앞으로 전달되었다. 뒤파르즈 부녀는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파리의 하수도 안을 찾아다녀야 했다.
머지않아 이 웃고 있는 사나이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그 재산의 대부분을 익명으로 지방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기부했다. 그 수도사들은 독일의 경찰견을 길러내는 데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나머지 재산을 이 웃고 있는 사나이는 다이아몬드로 바꿔 에머럴드색 금고에 넣어 아무 생각 없이 흑해에 가라앉혔다. 그 자신의 욕망은 작았다. 그는 바람이 거센 티벳 국경에 있는 작은 집에서 쌀과 독수리의 피만을 먹고 살았다. 그 집 지하에는 체육관과 사격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맹목적일 만큼 충실한 네 명의 동지들이 그와 함께 살았다. 그들은 블랙 윙이라는 이름의 입심좋은 얼룩이리, 옴바라는 이름의 귀여운 난장이, 백인들이 혀를 짓이겨 잘라냈다는 몽고의 거인 홍과 구아(歐亞) 혼혈의 멋진 아가씨 등이다. 이 아가씨는 웃고 있는 사나이에 대한 짝사랑과 신변의 안전을 위한 깊은 관심 때문에 가끔 범죄에 대해 매우 집요한 태도를 취했다. 이 웃고 있는 사나이는 검은 비단휘장을 통해 동지들에게 명령을 내렸는데 귀여운 난장이 옴바조차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꼭 그렇게 하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파리와 중국간의 왕래에 관해 필요하다면 독자를 위해 언급할 수도 있다. 나는 우연히 이 웃고 있는 사나이가 아주 뛰어난 일종의 내 조상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의 많은 덕행이 물이나 핏속에 가려진 로버트 E. 리 장군과 같이. 그리고 이 환상은 내가 1928 년에 가졌던 것에 비교하면 누그러졌을 뿐이다. 그 당시 나는 내 자신이 웃고 있는 사나이의 직계자손인 것처럼 생각했을 뿐 아니라 그의 적자출신으로 살아있는 자손은 나뿐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다. 1928 년 당시, 나는 우리 부모의 아들이 아니라 생각하고, 내 진정한 태생을 확인하기 위해, 간섭할 구실로 부모들의 사소한 실수를 기다리고 있는 악마같이 호감을 주는 사기꾼이었다. 폭력은 쓰고 싶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폭력도 불사한다는 기분이었다. 가짜 어머니의 마음을 깨는 예비책으로, 나는 어떤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법적 포용력 있는 내 흉계에 어머니를 끌어드리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내가 1928년에 해야 할 일은 발밑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즉 희극을 연출하라. 이를 닦아라. 머리를 빗어라. 어떻게 하든지 내 자연스러운 흉한 웃음을 억제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그 웃고 있는 사나이의 살아있는 유일한 적자자손이 아니었다. 코맨치 단원이 25명이나 있는 셈이다. 우리들은 모두 시내 어느 곳에나 정체를 감춘 채 나돌아다녔고, 엘리베이터 운전자들을 잠재적인 큰 적으로 평가했으며,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유창한 명령을 투계사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수학선생의 이마를 집게손가락으로 겨냥하기도 했다. 게다가 가까이에 있는 온당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공포와 찬탄을 불러 일으킬 절호의 기회를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코맨치 클럽의 야구 시즌이 개막된 직후의 2 월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단장의 버스 안에 그때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붙어 있음을 깨달았다. 앞 유리창의 백미러가 있는 위에, 대학모자에 가운을 입은 여자의 작은 사진이 든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 버스는 모두 남자전용의 실내장식이었으므로 그 여자 사진이 걸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가 누구냐고 단장에게 무뚝뚝하게 물었다. 단장은 처음에는 얼버무리더니 결국 자기 애인이라고 시인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뭐냐고 단장에게 물었다. 단장은 "메리 허드슨."이라고 우물우물 대답했다. 나는 영화나 뭐에 나오는 여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며 전에 웰레슬리 대학에 다녔다고 대답했다. 단장은 뒤늦게야 생각났다는 듯이 웰레슬리 대학은 매우 고급대학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버스 안에 그녀의 사진을 걸었느냐고 나는 또다시 단장에게 물었다. 그는 어깨를 약간 으쓱했다. 마치 그 사진은 자기가 건 것이 아니라고 하는 몸짓 같았다.
그 후 2주일 동안 그 사진은-억지로든 우연이든 단장이 걸지 않았다고 해도-버스에서 제거되지 않았다. 그것은 베이비 루드의 사진이 든 포장지나 밑바닥에 떨어진 감초껌과 함께 제거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코맨치 단원들은 그 사진에 익숙해져서 점차 속도계등과 같이 신경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들이 센트럴 파크로 갈 때, 단장은 5번가와 60몇 번 거리까지 버스를 몰았다. 야구장에서 반 마일이나 지나 온 것이다. 운전사가 된 기분으로 좌석에 앉아 있던 20여 명의 코맨치 단원이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단장은 그대로 늘 하던 것처럼 얘기하는 자세를 취하더니 일찌감치 '웃고 있는 사나이'의 새로운 토막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말았을까 하는 찰나 어떤 사람이 버스의 문을 두드렸다. 단장의 반사신경은 이날 따라 빨리 움직였다. 그는 문자 그대로 몸을 날리듯 좌석에서 돌아앉더니 문을 여닫는 손잡이를 움직였다. 그러자 비버 가죽 코트를 입은 여자 한 사람이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만난 여자 중에서 두말할 것 없이 절세미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세 사람밖에 없다. 그 중 한 사람은 존스 비치에서 오렌지색 비치 파라솔을 세우려고 무척 애쓰던 검은 수영복 차림의 마른 여자, 아마 1936년 쯤의 일일 것이다. 두번째는 1939년 카리브해의 유람선에 타고 있던 여자다. 그녀는 돌고래에게 자기 라이터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세번째는 우리 단장의 애인 메리 허드슨이다. "너무 늦었나요?" 하고 그녀는 단장에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그녀는 마치 내가 미워요, 라고 묻는 것 같았다. "아니."라고 단장이 대답했다. 그리고 가까이에 앉은 코맨치 단원들에게 약간 무서운 얼굴을 돌리고 좁혀 앉도록 신호를 했다. 메리 허드슨은 나와 에드가 뭐라는 소년 사이에 앉았다. 그애의 아저씨와 가장 친한 친구는 술 밀매업자였다. 우리들은 그녀에게 가능한 대로 공간을 제공했다. 그러자 버스는 서투른 운전수가 운전하듯 털털거리며 떠났다. 코맨치 단원들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지정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메리 허드슨은 좌석에서 몸을 앞으로 굽히고 그녀가 놓쳤던 기차와 놓치지 않은 기차 얘기를 잔장에게 열심히 들려주었다. 그녀는 동아일랜드의 더글라스톤에 살고 있다. 단장은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거들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얘기를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변속기의 손잡이가 그의 손을 벗어났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들이 버스에서 내렸을 때도 메리 허드슨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야구장에 도착할 때까지, 확실히 코맨치 단원 전원의 얼굴은 '여자는 집에 돌아갈 시간을 모르니 곤란해.' 하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나와 다른 코맨치 단원이 선공을 정하기 위해 동전을 던지고 있을 때 메리 허드슨은 자기도 시합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열심히 표시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간단명료했다. 우리 코맨치 단원들은 그녀의 여성다움을 그동안 보고만 들었으나 이제는 눈을 흘겨보게 되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단장이 일을 맡고 나섰다. 이 일은 이제까지 볼 수 없던 단장의 무기력한 단면을 폭로했다. 단장은 메리 허드슨을 데리고 코맨치 단원에게는 말이 들리지 않는 곳까지 갔다. 그는 진지하게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녀를 설득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메리 허드슨이 단장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코맨치 단원들에게까지 들여왔다. "그래도 하겠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도 시합을 하고 싶어요!" 단장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설득에 나섰다. 그는 물에 젖은데다 구멍이 패여 있는 내야를 가리켰다. 단장은 정규배트를 집어들고 그 무게를 보여 줬다. "상관없어요."라고 메리 허드슨이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일부러 뉴욕에까지 온걸요. 치과의사다 뭐다 핑계를 대고. 그러니 나도 시합하겠어요." 단장은 다시 머리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설득을 포기했다. 그는 코맨치의 두 팀인 브레이브즈와 워리오즈 팀이 기다리고 있는 홈플레이트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와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워리오즈 팀의 주장이었다. 그는 내 팀의 정규 멤버로 센터 필더를 맡고 있는 애의 이름을 댔다. 그는 병이 나서 이날 나오지 못했다. 단장은 메리 허드슨이 그 자리에 들어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나는 센터 필더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단장은 센터 필더가 필요하지 않다니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단장의 욕설을 처음 들었다. 더구나 메리 허드슨이 내게 미소짓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는 돌을 집어 나무를 향해 던졌다.
우리가 먼저 수비를 맡았다. 첫회에는 공이 센터 필드로 날아가지 않았다. 내 위치인 1루에서 나는 가끔 뒤를 돌아다보았다. 돌아볼 때마다 메리 허드슨은 즐거운 듯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집으로 선택한 캐처 미트를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꼴불견 이었다. 메리 허드슨은 워리오즈 팀의 9 번 타자를 맡았다. 내가 그녀에게 이 타순을 알려주자 그녀는 약간 좋지 않은 얼굴을 했으나 "자, 그럼 빨리 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의 판단은 성급했다. 그녀가 1회말 타석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녀는 비버의 가죽 코트와 캐처 미트를 벗어버리고 짙은 갈색 드레스를 입은 채 홈 플레이트 쪽으로 다가갔다. 단장은 피처 뒤의 주심 위치를 떠나 불안한 듯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그녀의 배트 끝을 오른 어깨에 얹으라고 메리 허드슨에게 말했다.
"그러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는 배트를 너무 꼭 쥐지 말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안 그러겠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는 공을 끝까지 보라고 말했다. "그러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이제 고만하세요." 그녀는 들어오는 초구를 힘껏 휘둘러 레프트 필더의 머리 위를 넘겼다. 보통이면 2루타는 충붕했다. 그러나 메리 허드슨은 뻣뻣이 서서 3루까지 달렸다. 나는 놀라움이 사라지고 엄숙한 기분이 되었으며, 기쁨으로 가득찼다. 나는 단장을 쳐다 보았다. 단장은 피처 뒤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행복을 그린 듯한 모습이었다. 3루 위에서 메리 허드슨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손을 흔들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타력은 고사하고라도, 그녀는 3 루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일 줄 아는 여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경기에서도 그녀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진루했다. 무슨 까닭인지 그녀는 1루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를 1루에 묶어 두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적어도 세 번이나 그녀는 2루로 도루했다. 그녀의 수비는 엉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의 엉망이 수비를 느끼지 못할 만큼 많은 득점을 올리고 있었다. 캐처 미트가 아닌 것을 끼고 플라이를 쫓아간다면 그녀의 수비는 개선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캐처 미트를 벗지 않는다. 캐처 미트의 모양이 예쁘다는 것이다. 그 뒤 한 달 가량 그녀는 1주일에 두 번쯤 코맨치 단원들과 함께 야구를 했다.(그녀가 치과의사에게 갈 때는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어떤 날 오후에는 시간에 맞춰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늦기도 했다. 그녀는 버스 안에서 계속 지껄이거나 묵묵히 앉아 허버트 타레이톤 담배(코르크 필터가 달린)를 피웠다. 버스 안에서 그녀 옆에 앉으면 그녀는 늘 향기로운 향수 냄새를 풍겼다.
4월의 어느 쌀쌀한 날이었다. 단장은 여느때와 같이 109번 거리와 암스테르담가 교차로 근처에서 3시에 우리를 태우고, 버스를 110번 거리에서 동쪽으로 돌려 5번가를 달려내려갔다. 그는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가죽잠바 대신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메리 허드슨이 우리와 합류하도록 되어 있구나 하고 당연한 듯 짐작했다. 우리가 여느때처럼 센트럴 파크 입구를 주저하지 않고 지나가자,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장은 단원들이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뒤를 보고 자리에 걸터앉아 '웃고 있는 사나이'의 새로운 얘기 한 토막을 시작했다. 나는 그때의 얘기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 얘기를 간단히 기술하겠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그 웃고 있는 사나이의 절친한 친구인 얼룩이리 블랙 윙이 뒤파르즈 부녀가 파놓은 신체적, 정신적 함정에 걸려들었다. 뒤파르즈 부녀는 웃고 있는 사나이의 강한 의리감을 알기 때문에 그가 대신한다면 블랙 윙을 해방시켜 주겠다고 제의했다.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웃고 있는 사나이는 그 조건을 수락했다. (그의 정신기구는 종종 말초신경에 수수께끼 같은 고장을 일으키는 일이 있었다.) 웃고 있는 사나이는 파리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숲속의 지정된 장소에서 자정에 뒤파르즈 부녀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면 그 장소에 달빛 아래서 블랙 윙을 석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파르즈 부녀는 애당초 블랙 윙을 석방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블랙 윙을 두려워하고 싫어했기 때문이다. 교환이 약속된 날 밤, 그들은 블랙 윙처럼 보이도록 블랙 윙을 대신할 이리의 왼쪽 뒷발을 희게 염색하여 묶어 놓았다.
그러나 뒤파르즈 부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그것은 웃고 있는 사나이의 감상성과 그가 이리의 말을 자유롭게 한다는 점이다. 웃고 있는 사나이는 그의 몸을 뒤파르즈의 딸이 묶도록 맡기고 그의 친구라고 생각되는 이리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몇 마디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달빛 아래 몇 야드 떨어져 있던 대역 이리는 이 낯모를 사람의 유창한 말에 감동되어 웃고 있는 사나이가 말하는 신상의, 또는 업무상의 마지막 충고까지 얼마 동안 공손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 그 대역 이리는 견딜 수 없게 되어 체중을 이 발에서 저 발로 옮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니 오히려 불쾌하게 이 대역 이리는 웃고 있는 사나이의 말을 가로채더니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첫째, 자기 이름은 다크 윙도 블랙 윙, 그레이 렉스 같은 것도 아니며 아르망이라는 것. 둘째, 그는 생전 중국에 간 일이 없으며 또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웃고 있는 사나이는 크게 분노하여 자기 혀로 가면을 벗고, 달빛 아래 자기의 벗은 얼굴을 뒤파르즈 부녀에게 보여 주었다. 뒤파르즈의 딸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아버지는 운이 좋았다. 공교롭게 그는 때마침 기침 발작이 일어나 그 치명적인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의 기침 발작이 끝나 딸이 땅위 달빛 아래 엎드러져 있는 것을 보자 뒤파르즈는 그 전말을 알아차렸다. 한 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뒤파르즈는 웃고 있는 사나이의 거친 숨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자동권총에 장전된 탄환을 모두 쏘아버렸다. 그날 얘기는 여기서 끝났다.
단장은 1달러짜리 잉거솔 시계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 앉더니 모터의 발동을 걸었다. 나도 내 시계를 보았다. 4시 30분이 거의 되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메리 허드슨을 기다리지 않느냐고 단장에게 물었다.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질문을 되풀이하기 전에 그는 머리를 뒤로 돌려 우리 모두에게 말했다. "이 빌어먹을 버스에 타고 있는 동안 좀 조용히 하자구." 그러나 이 명령은 무슨 다른 뜻이 포함된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그때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버스 안은 전부터도 매우 조용했었다. 거의 모든 단원들은 그 웃고 있는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 대해 걱정할 단계를 오래 전에 초월해 있었다.
우리는 그런 일을 처리하는 그의 능력을 크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가장 위험한 순간을 조용히 받아들일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날 오후 우리 야구시합의 3 회인가 4회 때 나는 1루에서 메리 허드슨을 보았다. 그녀는 유모차를 끌고 온 두 부인 사이에 끼어 내 왼쪽으로 약 100야드쯤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비버가죽 코트를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시합하고 있는 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보자 흥분하여 피처 뒤에 있는 단장에게 소리쳐 알려 주었다. 그는 급히 내게로 뛰어 왔다. "어디에?" 하고 그는 내게 물었다. 나는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잠깐 동안 그쪽을 노려보더니 곧 돌아올게, 라고 말한 뒤 야구장을 떠났다. 그는 외투의 단추를 풀고 양복 뒷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야구장에서 벗어났다. 나는 1루에 앉아 보고 있었다. 단장이 메리 허드슨에게 갔을 때, 그의 외투 단추는 다시 끼워져 있었고 두 손도 양쪽 아래로 내려져 있었다.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로 약 5분 동안 서있었다. 그녀와 얘기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자 메리 허드슨이 일어나 두 사람은 야구장쪽으로 걸었다. 그들이 야구장에 도착하자 단장은 피처 뒤의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나는 큰 소리로 단장에게 물었다. "그녀는 시합하지 않는대요?" 그는 잠자코 베이스나 지키라고 말했다. 나는 내 위치를 지키면서 메리 허드슨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비버가죽 코트에 두 손을 넣고 플레이트 뒤로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3루 바로 건너편에 있는 선수용 벤치에 앉았다. 그녀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리를 꼬았다.
워리오즈의 공격 차례가 되자 나는 그녀의 벤치로 가서 레프트 필드를 지켜 줄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는 감기가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다시 머리를 저었다. 나는 레프트 필드를 지킬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사람이 센터 필드와 레프트 필드를 함께 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전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1루수의 미트를 공중으로 던져 머리 위에 얹어 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흙탕 속으로 떨어졌다. 나는 미트를 바지에 닦았다. 그리고 언제 우리집에 와서 저녁을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메리 허드슨에게 물었다. 나는 단장이 자주 온다고도 말했다. "내버려둬." 하고 그녀는 말했다. "제발 내버려둬."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밀감을 꺼내어 공중으로 치켜올리면서 워리오즈의 벤치 쪽으로 걸어갔다.
3루 파울 라인 중간쯤에서 나는 뒤로 돌아 메리 허드슨을 쳐자보며 밀감을 손에 쥔 채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나는 단장과 메리 허드슨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상당히 저속하고 직감적인 의미에서 파악하지 않는한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메리 허드슨이 코맨치의 선수 명단에서 영원히 탈락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 전체와 아무리 무관하다고 해도 뒷걸음질치는 것은 보통 걸어가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 또한 불을 보듯 확실했다. 이렇게 생각하던 중 나는 거세게 유모차와 부딪쳤다.
한 회가 더 끝나자 어두워져 수비가 곤란하게 되었다. 그 시합은 콜드게임이 되어 우리는 모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메리 허드슨을 보았을 때 그녀는 멀리 3루 가까이에서 울고 있었다. 단장은 그녀의 비버가죽 코트의 소매를 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뿌리치고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야구장에서 시멘트 길로 뛰어나가 내 눈에 안 보일 때까지 계속 뛰었다. 단장은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서 홈 플레이트 쪽으로 걸어내려와 우리들의 배트 두 개를 집어들었다. 우리는 늘 그가 운반하도록 배트를 남겨 두었다. 나는 단장에게 가서 메리 허드슨과 싸웠느냐고 물었다. 그는 샤쓰 끝을 안으로 집어넣으라고 내게 말했다.
여느때와 같이 우리 코맨치 단원들은 소리지르고, 밀고, 서로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버스가 정차한 곳까지 남은 몇 백 피트를 뛰었다. 우리들은 모두 또다시 '웃고 있는 사나이'의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생기에 차 있었다. 5번가를 앞다투어 건너갈 때 누군가가 여분의, 아니면 버리려고 스웨터를 떨어뜨렸다. 나는 그것에 걸려 넘어지면서 큰 대(大)자로 쭉 뻗었다. 버스의 좌석에 대한 아귀다툼을 끝내고 보니 그때까지 좋은 좌석은 이미 점령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버스 중간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좌석 배치에 화가 나서 나는 오른쪽 좌석에 앉은 놈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그리고 얼굴을 돌려 5번가를 건너고 있는 단장을 지켜보았다. 밖은 아직 어둡지는 않았지만 5시 15분으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단장은 외투의 깃을 치켜세우고, 배트를 왼쪽 겨드랑이 밑에 낀 채 거리에 신경을 집중시키며 길을 건넜다. 오늘 이른 아침에 적셔 빗어 넘긴 검은 머리는 이제 말라서 바람에 흩어졌다. 나는 단장이 장갑을 꼈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단장이 버스 안으로 들어설 때 여느때와 같이 조용했다. 여하튼, 점점 조명이 어두워지는 극장과 같이 조금 전보다 더 조용해졌음에 틀림없다. 대화들은 급한 속삭임으로 끝나거나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러나 단장이 우리에게 말한 첫마디는 "좋아, 소음을 없애자, 아니면 얘기를 하지 말자."였다. 순식간에 조건없는 침묵이 버스 안을 채웠고, 단장은 여느때처럼 얘기하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단장은 자세를 취하자 손수건을 꺼내어 한쪽씩 차례로 코를 풀었다. 우리는 인내력과 어느 정도 구경꾼 같은 관심을 가지고 단장을 지켜보았다. 단장은 손수건으로 코푸는 일을 마치자 손수건을 넷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다음 그는 '웃고 있는 사나이'의 새로운 얘기 한 토막을 우리에게 들려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는 5분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뒤파르즈의 총알 4발이 웃고 있는 사나이에게 명중되었다. 그중 2발은 심장을 관통했다. 웃고 있는 사나이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아직도 눈을 가리고 있는 뒤파르즈는 웃고 있는 사나이 쪽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려오자 매우 기뻐했다.
그의 흉악한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의식을 잃은 딸에게 달려가 그녀의 의식을 회복시켰다. 이 두 사람은 기쁨과 비겁자의 용기에 도취하여 이제 겁없이 그 웃고 있는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웃고 있는 사나이의 머리는 죽은 것처럼 늘어져 있었고 턱은 피범벅이 된 가슴 위에 닿아 있었다. 아버지와 딸은 천천히, 그리고 탐욕스럽게 그들의 희생물을 살펴보기 위해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에게는 아주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웃고 있는 사나이는 죽기는 커녕 아무도 모르는 방법으로 자기 위의 근육을 수축시키기에 바빴다. 뒤파르즈 부녀가 적당한 거리에 다가서자. 그는 갑자기 머리를 들어 무서운 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4발의 총알을 모두 깨끗이 되뿜어냈다. 이 사건이 뒤파르즈 부녀에게 미친 충격은 엄청나게 컸다. 문자 그대로 심장이 터져 그들은 웃고 있는 사나이 발밑에 죽어 넘어졌다.
(하여튼 이 얘기가 짧은 것이라면 여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코맨치 단원들은 뒤파르즈 부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억지로 납득할 만한 주석을 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러 달이 지나도록 웃고 있는 사나이는 가시 철사로 나무에 묶인 채 계속 서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뒤파르즈 부녀의 몸이 썩고 있었다. 출혈이 심한데다 독수리 피의 공급이 끊기자, 그는 전에 없던 죽음에 임박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거칠지만 웅장한 목소리로 숲속 동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귀여운 난장이 옴바를 데려오도록 동물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일을 해냈지만 파리와 중국의 국경을 왕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옴바가 약품 상자와 신선한 독수리 피를 가지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웃고 있는 사나이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옴바가 무엇보다 먼저 한 일은 주인의 가면을 원상복귀하는 것이었다. 그 가면은 바람에 날려 구더기가 들끓는 뒤파르즈 딸의 시체에 떨어져 있었다. 옴바는 그 가면을 소중하게 웃고 있는 사나이의 무서운 얼굴에 돌려 놓고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웃고 있는 사나이의 눈이 마침내 떠지자, 옴바는 독수리 피가 든 유리병을 가면까지 열심히 들어올렸다. 그러나 웃고 있는 사나이는 그 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 대신 약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블랙 윙을 불렀다. 옴바는 그의 약간 비뚤어진 머리를 숙이고 뒤파르즈 부녀가 블랙 윙을 죽였다는 것을 주인에게 밝혔다. 웃고 있는 사나이는 가슴을 찢는 듯한 최후의 슬픈 한숨을 내뿜었다. 그는 약해진 손을 내밀어 독수리 피가 든 병을 잡더니 손 안에서 깨뜨려 버렸다. 그의 얼마 남지 않은 피가 손목을 타고 흘러내려 방울져 떨어졌다. 그는 옴바에게 시선을 돌리라고 명령했다. 옴바는 흐느껴 울면서 그의 명령을 따랐다. 웃고 있는 사나이의 마지막 행동은 그의 얼굴을 피로 얼룩진 땅으로 돌리기 전에 가면을 벗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여기서 끝났다. (이 이야기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았다.) 단장은 버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자리의 건너에 앉은 빌리 윌시는 코맨치 전체 단원 중 최연소자였는데, 그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우리들 중 누구도 그만두라고 그에게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무릎이 떨리던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몇 분 뒤에 내가 단장의 버스에서 내렸을 때, 우연히도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가로등 기둥 밑에서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붉은 휴지 조각이었다. 그것은 그 누구의 양귀비꽃잎 가면과같이 보였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이를 덜덜거리면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곧 취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