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망’
세상살이가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의 수효가 많아질수록 그와 반대로 작게 줄여서 간직해야 하는 것이 소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망이란 달리 말해서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은 욕심이되 노력하여 이루려는 욕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소망이 턱없이 크면 허망한 꿈으로 끝나기 쉽다. 노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망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면서 상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나름의 소망을 지닌 때문이다.
제각기 자기의 소망을 이루려 노력하는데 그 순수한 노력이 인간관계에서 노출되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서로 다른 사람이 동질의 소망을 가졌을 때 그런 사례는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한 마디로 생존경쟁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소망이란 생존 그 자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러나 감정은 자제하는데 그 아름다움이 있고,, 본능은 은폐하는데 그 진가가 있듯이 소망이란 것도 자기 능력의 범위 내에서 설계되고 갖추어져야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과식이 소화불량을 초래하듯이 지나친 소망이 사람을 망치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게 본다.
무능력의 소치일는지 모르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소박하고 조촐한 소망을 지니고자 노력한다. 우선 이 세상에 있음을 소중하게 여긴다.
살아 있는 동안에 건강하기를 소망하고 치사하거나 추잡한 모습이 아니고 탈속하게 늙기를 소망한다. 남들의 눈에 저 정도라면 나도 한 번 늙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늙어가고 싶다.
번거롭거나 까다롭게 느껴지는 성품을 지니지 않고 순수하고 진정한 인간미를 지닌 여인이기를 소망한다. 어른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처럼 되기를 애쓰며 살기를 소망한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유일하게 남기게 될 자국이 될 자식이 비굴하거나 용렬하게 커 가지 않기를 소망하고, 그가 내 자식 됨을 떳떳하게 여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있어 왔다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삶의 여정에서 나와의 우정관계를 조금도 부끄럼 없이 여기는 내 이웃들에게 시름이 닥치지 않기를 소망한다.
내 삶의 언저리에 있는 유형, 무형의 것들의 의미를 파악하게 하고 나로 하여금 빛과 그림자의 자리도 선별하게 한 시작(詩作)의 조그만 능력이 항상 윤기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내 육신의 시간이 끝나고서도 그 육신이 살아낸 깊이만큼의 시간 동안 녹슬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는 시를 한 편 만이라도 쓸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앞에 열거한 소망들이 모두 자애(自愛)에 국한이 되어 있는 것들임을 잘 안다. 자애라는 것이 좀더 심해지고, 좀 더 파렴치해지면 이기가 된다. 이 세상에서 제일 추하고 역겨운 것이 이기가 아닐지 모르겠다.
나는 내 생존과 더불어 있는 자연의 모든 것들의 의미에 항상 새벽같은 감성으로 눈 떠 있고, 그 가체에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 떨기의 꽃과 하늘과, 하나의 조약돌 과 창조와, 그 깊은 의미가 무엇인지 잠시 잊지 않는 지혜를 갖추기를 소망한다.
끝으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와 마우런 연고도 없는, 그러나 언제인가 나의 모습이었을 지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누구도 모르게 내 마음의 비밀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이런 소망이 어디 작은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욕이 어느 만큼이냐의 비중이 문제가 될 것이다. 나는 과식을 두려워하 듯 과욕도 삼가는 겁쟁이 이다.
*김초혜. 시인 1943년 충북 청주 출생.
동국대학교 졸업. 시집 ‘적도의 별’ 한국문학 편집장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