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1.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창 32:28
*제목; 창세기 읽기(36) 얍복강의 기도의 비밀
1.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
그 동안의 이야기.
인간적인 야곱(속이는 자).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과 축복권을 받은 야곱, 그러나 형의 복수가 무서워 ‘밧단아람’으로 피신함.(이것이 바로 “오늘은 어제의 삶의 결과”라는 이야기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가는 길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서원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부여받음.(이처럼 “기도”는 우리 삶을 바꾸는 순간이다!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무사히 돌아가게 하시면, 평생에 십일조를 드리고, 벧엘에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서원.
서원을 받으신 하나님, 그를 지키시고 인도하심. 무사히 ‘라헬’을 만나 사랑하게 됨.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하여 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을 일함. 그리고 6년을 더 속아서 일함.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사랑합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도우셔서, 그의 가축과 재산이 풍성하게 하셨음. 역시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자녀를 늘 지키시는 하나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 그는 그 길도 “여전히”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창 32: 1~2’이다.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1~2)
왜 갑자기 하나님의 사자, 군대, “마하나임”이 등장할까? 서원기도대로, 언약대로, 그를 지키시기 위해서 하늘 군대를 동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녀들을 기도한 자들을, 언약대로 서원대로 지키시는 것이다. 아멘.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셔도 현실의 어려움의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다. ‘창 32:6’을 보자.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창 32:6)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에서는 자신의 사병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치러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기도한 자를, 서원기도한 자를, 언약을 품을 자들을 지키시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라.
그런데 야곱은 이 믿음이 흔들려 인간적인 방법을 다시 동원한다. ‘창 32:7~9’을 보자.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창 32:7~9)
9절에 보면 야곱을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를 믿으면서도, 8절의 인간적인 방법은 여전히 사용하는 것이다. ‘믿음 따로, 삶 따로’이다.이것은 사실 믿음이 아니다. 야곱의 인생이 “험난한 나그네 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믿음과 삶이 같은 신앙”이 바로 은혜를 누리는 참 신앙이다. 그런데 당시의 야곱이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가지 괴리 속에서 정신분열증(조현증) 환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를 회복하라!
이를 보시고 하나님은 다시 당신의 언약을 재확인해주신다. 그야말로 아버지의 은혜이다. ‘창 32:12’을 보라!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창 332:12)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녀를 지키시고, 약속을 지키신다. 변하는 것은 우리 믿음이고 삶의 모양뿐이다. 아버지처럼 늘 변하지 않은 믿음과 삶을 지켜가라!
2. 야곱의 기도
자신의 재산을 두 떼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야곱은 세 때로 나누고, 마지막에 가족들을 얍복강을 건너가게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두려움으로 인해 건너가지 못하고 있다. ‘창 32:24’이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4)
이러한 야곱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은 주의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려 하신다. 그런데 야곱은 전혀 다르게 그를 맞이한다. ‘창 32:25~26’이다.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5~26)
죽을 각오로 그를 붙잡는다. 희망에 그 천사를 그리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기도(?)와 간절함이 하나님을 감동시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아니 야곱의 인생을 바꾸어 주신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말이다, 즉, 늘 남을 속이고 살던 보잘 것 없는 인생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능히 이기는 사람으로 말이다. ‘창 32:27~28’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7~28)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고 강조한 “선한 싸움”이다. 문제와 세상과 사탄과 싸우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것이고, 결국 실패하고 만다. 우리는 오직 모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 싸워야(?,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승리의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신다. 그리고 서원기도를 갚으신다.(기도는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순간이다!)
문제는 나이다.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지켜야 한다.
자녀란 고백과 삶이 같은 자들을 말한다.
기도하려면 하나님을 감동시키도록 하라! 당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첫댓글 이 설교는 인간의 삶에 닥치는 고난과 시련은 과거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과 믿음 없는 삶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성경 속 야곱의 인생을 돌아 보면, 비록 우리의 삶이 험난하고 인간적인 불안과 술수로 가득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성도들은 삶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대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도하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하나님은 "마하나임(하나님의 군대)"을 보내어 성도들을 지키시며, 기도를 통해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듯 우리의 미래를, 은혜 위에 은혜로 채우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