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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예언을 따라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시기를 기준으로 인류 역사는 B.C와 A.D로 나눕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역사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로마제국의 티베리우스황제가 인류역사에 호적을 처음 실행했습니다. 이것은 우연도 아니고 다행도 아니라 예수님의 역사성을 증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운행하고 계시며 그분의 계획에 의해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와 철학은 인간의 사유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사유는 곧 질문을 갖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신이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분인가? 진리가 무엇인가?’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사색합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찾지 못합니다.
철학과 종교는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질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하는데 즉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철학적인 질문이 하나의 종교를, 종교 사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니 철학과 종교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기독교는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기독교는 철학적인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종교라면 기독교는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인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질문을 던지지 않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찾아오셨다고 선언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을 먼저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니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으니 부모님이 계신 게 아니라 부모님이 계시니 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없어도 부모님이 계실 수 있지만 내가 있는데 부모님이 안 계실 수 없듯이 하나님이 안 계신데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은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사람이 있으니까 하나님도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니까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종교도 다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기독교는 그와 반대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나타나지 않으시고 숨으시면 인간은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욥23:4이하에 보시면 욥이 고백하기를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하고 또 욥37:23 에서도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찾아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력이 좋아서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마음이 밝아서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허블망원경이나 제임스 웹 망원경, 현미경으로 찾는다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숨으시고 나타내주지 않으시면 찾을 수 없습니다. 아이랑 숨바꼭질 해 보셨습니까. 아빠가 진짜 숨으면 아이가 못 찾습니다. 아이가 예측할 수 없는 곳에 아빠는 숨을 수 있습니다. 찾지 못할 곳에 숨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숨어 있다가도 아이가 찾지 못하여 울려고 하니까 '짠' 하고 나타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숨으시면 찾을 자가 아무도 없고 하나님이 감추시면 발견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셨고 만나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종교는 인간이 끊임없이 신을 찾아 나아가고 신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고 두려워서, 부끄러워서 하나님의 눈을 피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 숨었지만 숨어 있는 인간을 향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나님이 물으시고 부르시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것 역시 하나님이 스스로 세상에 오셔서 알려 주지 않으시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느니라', '나 외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전능하신 여호와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스스로 존재하고 전능하고 유일하신 분, 그리고 영원하신 분, 오직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생명, 호흡이 그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분이 곧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의 주이십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 만유의 주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데 전능하시진 않다든지, 전능하신데 영원하지 않다든지 하면 절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분은 영이시기에 어디나 계시지만 육으로는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그가 숨으시어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고 나타나지 않으시면 아무도 볼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주셨고 먼저 찾아오셨고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영이 육이 되어, 말씀이 육체가 되어 자기 땅에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고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셨는데!
사람이 서로 거래를 하거나 사귈 수 있는 것은 신뢰 때문입니다.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옆집에 물건 하나 맡기는 것도, 내 아이를 잠시 맡길 수 있는 것도 신뢰하기 때문에 맡기는 것입니다. 아이를 맡기면 잘 돌봐줄 거라고 믿지 못하면 절대로 안 맡깁니다. 인간이 서로 믿음을 주는 것은, 그가 한 약속을 때로는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지키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기 때문입니다. 조금 손해 본다고 약속을 파기하고, 조금 상황만 불리해도 약속을 깨버린다면 어찌 믿음을 갖고 기다리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메시야, 즉 아들을 세상에 보내기 전에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찾아와서, 내가 메시야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안 믿을 거니까, 오시기 전에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장차 이런 사람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이며 그가 무엇을 할 것이며 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에 아들에 대한 약속만도 수 백 가지가 넘습니다. 그것이 구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은 나에 대해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기로 약속한 메시야는 어떠한 방식으로, 어디에 태어나서 어떤 일을 할 것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것에 대한 처음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메시야가 남자의 씨를 통해 온다면 그도 죄인의 자손일 뿐입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만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셉을 통해 온 것이 아니라 다만 마리아의 태를 통해서 온 것입니다. 천사가 잉태 소식을 알릴 때 마리아는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천사는 그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될 아이라고 전했습니다. 그 아이만 오직 성령으로 잉태되어 온, 남자의 씨를 통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온 아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그리스도요, 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할렐루야!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합니다. 사7:14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을 징조, 징표요 표적이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9:6에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을 예언하시면서 그가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근원'이란 말입니다. 그가 곧 영존하시는 근원이시다, 영원한 생명으로 존재하는 근원이시라는 말입니다. 기묘자란 히브리어 ‘펠레’인데 신비하고 놀라운 분,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모사란 카운슬러,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신비하고 놀라운 분이며 우리의 상담자이십니다. 그리고 평강의 왕이십니다.
또한 이사야 11장 1절 이하에서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미가 선지자는 메시야가 태어나실 곳이 베들레헴인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미5:2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의 시작이 영원 전부터 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사렛에서 자라게 될 것을 예언하였고 애굽으로 잠시 피난 가 있다가 돌아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 중 유다지파를 통해 오실 것을,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세례요한이 와서 그의 길을 평탄하게 할 것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예언을 따라 오신 분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인 모든 예언을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사탄의 권세인 머리를 깨트리고 사단은 예수님의 발굼치를 상하게 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 짐을 지고 손과 발에 못 박혀 죽임당하셨고 죽음을 통해 사탄의 머리, 곧 사망의 권세를 깨트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을 다 이루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시니라” 이 예언대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예언대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곧 사람으로 오신, 우리에게 나타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성탄을 준비하고 맞이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 우리의 주님으로 오심을 기억하면서 기쁨과 감사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다시 우리에게 성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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