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과 명학소 여인”
이번 서구청 주관 수상뮤지컬 “갑천” 행사에 스스로 참여하면서 보람과 긍지를 가졌던 것은 훈련기간이나 행사 기간 중 나에게는 아주 의미스러운 에피소드가
있기에 여기에 실어봅니다.
나는 공직에서 정년한다음 내 나름대로 주민센타 문화공간에서 댄스스포츠를
즐기며 건강관리를 합니다.
나의 몸무게는 2년여 전에는90kg정도에, 혈압이 140에90으로 고혈압으로의 턱거리를 하고 있어 병원을 찾은일이 있읍니다.
병원 의사말씀이 운동으로 체중을 줄이면 혈압도 내려간다 하여 이곳을 찾은것이 그 이유입니다.
배드맨턴과 댄스스포츠로 하루에 2~3벌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운동하여 이제는 80kg에 혈압132가되어 많은 효과를 봤습니다.
오늘도 다름없이 에어컨 틀어도 아랑곳없는 삼복더위에 댄스 스포츠에 여념 없이 2시간정도를 운동을 하고나니 내 몸은 땀이 뒤범벅이 되었어도 땀 씩힐시간없다.
다음반을 위하여 교실을 비워줘야 되기 때문이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복도 층층대를 내려오는데
삑~하는 문자오는소리가 아랫도리 바지주머니 에서 신호가 온다.
핸드폰을 꺼내 열어보니 바탕화면 최근 통화기록에 “문자”하나라고 표시가 되어있고 “발신번호 표시제한” 두개가 찍혀 있지않은가?
먼저 문자를 열어보니 내용이 “16시에 엑스포 남문광장에서 만나요”
그리고 특수문자 하드2개가 기분 좋게 눈에 띤다.
발송인 전화번호는 0404040이기에 이상하게 여겨졌기도하고 궁금하다. 대수롭게 생각하려 했으나 남문광장이라면 우리공연장 뒤가 아닌가?
공연연습도 오후에 있어 어짜피 가야되고 해서 통화를 하려고 신호를 보냈으나
들려오는 안내양 멘트엔“ 없는 전화번호이니 다시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이다.
당연하다는 마음이지만 의아스럽고 궁금하다.
전화번호가 4040번 이라는 것이 예감이 뮤지컬 수상“갑천”공연과 관계가 있다는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자 “사공” 역할을 하니까 말입니다.
“발신번호 표시제한”은 두 말할 나위도없이 전화 걸려온사람 정보가 없다란 말이 아닌가? 더욱더 답답하다.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
아무튼 내 머릿속은 고뇌스럽다. 18시가 공연에 참가하는사람 전원이 갑천 둔치에서 모이는 시간이기에 일단은 나가보기로 하고 서둘러서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나니 두 시간이 남았다.
뻐스를 타고 가는 동안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숙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
남문광장에 들어서니 자전거 타는 사람, 롤라 타는사람등 방학기간이라 너무나
사람이 많았다.
이곳저곳을 주시하며 찾아보아도 아는사람이없다.
그래서 그늘에서 쉬는데 주머니 전화벨소리가 또 울린다.전화를 받으니
“오빠!오시는 중이지요.한밭수목원 서원 승지원 정각으로 와요”
많이 들어본 목소리는 목소리인데 기억이 나지 않아 “누구시지요”하며 도로 물어보았더니 “와 보면 알아요”하기에 화가 나서“여보시요!여보시요! 라고 말했으나 내소리는 아랑곳 하지않고 전화를 끈었다.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한밭수목원은 남문광장을 가운데 두고 동쪽은
동원이라하고 서쪽은 서원이라 하는데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서원입구이다.
입구를 들어서니 수목원 안은 조용하며 한가롭다.
전에 언제인가 친구와 같이 한번 들려보아서 그러한지 큰 나무이며 꽃들이며
연못과 정각이 눈에 익는다.
아마도 그 연못 옆에 정각이 승지원 이겠지, 생각하며 투벅투벅 걸어가도 정각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도착해보니 정각위 앉을 터에는 묵직해 보이는 세련된 여자배낭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연못가 저쪽서 여인하나가 걸어오지않는가!
아직까지는 누구인지 알아볼수없다.조금조금 가까이오더니
“오빠!오빠! 나야! 순이~순이란 말이야”하며 빠른 걸음으로 온다.
나는 그제서야 똑똑히 순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어!순이!순이!순이가~그려 순이가 맞구나”하며 정각을 뛰어내려 한숨에 달려가 언뜻 멈추었는데...
그래도 순이는 달리다 싶이 오더니 내 앞에서 역시멈춘다.
나는순간 팔을 벌리고 오라고 손짓을 무의식적으로 했나보다.
여삼초가 지나서야 내 품에는 순이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잊는다 하여도 잊혀지지않턴 여인,보고싶고 그립던 여인 아닌가?그런 마음에
한 번 더 으스러지게 힘껏 끌어안아본다.
얼마만인가! 시집간 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게없고 그리도 고운가?
주위는 한가로운 여름오후이고 주위는호수이며
꽃과 숲이 어우러진 별장정원 같아서 그런한가? 마음도 몸도 편하다.
우리는 정각위로 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며 준비해온 배낭 속에 손수 마련한 음식물을 먹으며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너무나 궁금하여 물었더니
어느동 주민센타에서 요가와 취미활동을 하다 보니 참석하게 되었고
담당 역은 명학소 여인이란다.
수상뮤지컬 “갑천” 행사요원과 공연자가 무려 1500명 정도이니까
한 장소에서 연습하기는 어렵고 해서 영역별로 다른 장소에서 연습하기
때문에 서로 부디칠일 이없었다.
비오는 날 이라던가 행사요원 전원이 집합해서 교육해야 할때는 구청 3층
대강당에서 모이기도 했다.
그럴경우 참석자 주소와 연락번호를 적은 때가 더러 있었다. 자기도 사인하려 할 때 먼저 사인한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우연찮게 알았다 한다.
순이의 말에 의하면
수화자 통회기록내용에 나타나지않게하는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직접 전화를 두 번이나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보냈다 한다.
아마도 수신기록을 확인하여보니 운동할 때다.
한밭수목원 승지원 정각으로 나오지 않으면 공연연습에는 나올 것이니
그때 연습장을 찾아보려 했다한다.
애들은 남매인데 큰애 중학교3학년 때 사업하던 남편을 사고로 사별하고 재혼하지 않고 청주에서 식당을 20여년하면서 나름대로 애들 가르치고 대전으로 이사 온 지는 7년째라 한다.
청주에서는 잘나가는 식당이었다고 하는 것이 사는데는 여유가 있는듯하게 느껴진다.나도 그렇고 순이 역시도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는가?
이곳저곳 다니며 시간 가는줄모르고 놀다보니 6시가 다되었다.
여기서 둔산 둔치 공연장은 직선으로500m쯤되며 길 건너다.우리는 공연연습장
고려성쪽으로 내려왔다.
명학소여인들이 모이는곳은 고려성 건너다.
그곳을 갈려면 돌아서 다리위로 가도되지만 좀 멀다.
나는 순이를 내 뗏목에다 태우고 강을 건네주려고 태우려하나
무섭다고 타지않으려한다.
억지로 잘 부축하여 태웠고,그러고서는 노를 젓는다.
여인은 한가롭게 앉아있고 나는 노를 저으며 강을 건너간다것 자체가
이것 또한 우리 둘의 낭만이 아닌가!
기분이 너무 좋다.
그후 오늘뿐이 아니고 공연연습이 있는날은 우리는 일찍 나와서 명학소 여인 순이를 태우고 강 가운데 정착시키고 수상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꼭 그때는오징어 한마리에 캔맥주하나 캔 음료수하나는고정메뉴로
순이가 준비해왔다.
강 저쪽에 다다를 무렵 “뮤지컬 “갑천”행사에 참석하신 여러분 수고스럽더라도 남자사공과 여자사공은 고려성쪽으로 명학소 사람들은 본부석 앞으로 모여 주시지 바랍니다"
라는 안내 방송하는 총감독님 도감독님의 세련된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안내방송소리가 무려 대여섯 번째는 되는가싶더니
양쪽 모인 인원이 5~6백 명은 되느가싶다.
나는 시골마을 열하나 나뭇한집이 옹기종기 사는 깡촌에 세습적인 유교사상을 숭배하는 가난한 동학도 집안의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남들이 다 다니는 학교도 못가고 서당에서 한문을 어릴 적부터 선비 아닌 선비인 할아버지한테 배우며 자라야만 했고.
그시절은 6.25사변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다.
해방되기전 학교에서는 일본말 일본글 아니 이름도 일본이름으로 개명해야 되고 일본 군사훈련을 가르치는 세월이 끝나고 해방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이기도 하지만 사회질서는 물론이고 교육문화정립이 안되어 아주 혼란한 격변기 였다.
한문은 진서라 하고 한글은 언문이라 하여 하류계층에서나 배우는 글 이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에게도 너무 소중한 손자이기에 일본글.일본군사훈련을 배워야만되는학교를 보내는것 자체가 싫어 하셨을 것이고
그 사상이 채 벗어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몇집 안 되는 동네이기에 또래 아이들도 없지만 옆집 소꼽친구였던
순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학교 끝나고 순이가 오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순이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자랑이라고 하면 나는 배우고 따라하고 오누이같이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십여리나되는 학교에 순이 따라 갔다가 순이 선생님에게 “나도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말할수있는 기회있어 말씀드렸더니
교무실로 나를 오라 하고는 나보고 한글을 아느냐고 묻는다..
나는 선생님께 한문을 할아버지한테 배우고 있고 한글도 안다고 대답 했더니 한문과 한글로 주소이름을 적어보라 하셨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대로 써주고 집에 왔다. 나는 할아버지께 밑줄 받아 글씨연습한 솜씨로 제법 잘 쓰지않았나 지금 생각이 든다. 그 이튿날 순이로부터
“선생님께서 학교에 나오라”고 하셨다 했다.
학교에 가니까 나이에 맟워 3학년 순이와 같은 반에 다니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어머니와 아버님께 말씀드렸더니 내가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할아버님께 잘 말씀드렸는지 할아버지로부터 허락을 받고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순이와 나는 학교에서 다른동네 보다도 제일 먼 산골길을 그렇게도 즐겁게 늦거나 이르거나 기다리다 같이오곤 하며 6학년을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중하교는 국민학교보다 두배나 멀은 읍내까지 나오 다녔지만 2학년때 순이는 학교를 구만두어야 하는 사정이 있어 혼자만 다녀야만 되었다.
밤 늦게오고 일찍가야만 되는것도 어렵지만 너무 산골길이라 무서워서 아버님께서 늦은 날이면 늘!고개마루 성터까지 마중을 나와야 되는일도 하루 이틀이지…….
그리하여 읍내에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고 주말이면 집에 오곤 하였다.
집에오는 주말이면 이제 나도 사춘기가 되었는지 순이와 밤늦게까지 같이 놀고 소나무가지에 불부쳐 가재 잡으며 노는 것이 순이도 즐거웠던지 기다려진다고 했다.
지금생각하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순이도 천진난만하게 좋아하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귀엽고 예쁠까!
그러기를 3~4년지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뜬 구름 잡으로 서울로 소위 말하는 귀경을 하였다.
서울에서 먼 친척 아저씨 집에서 머무는 동안 운이 좋게도 아저씨의 인후보증으로 모회사의 수금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어 3년여를 다녔다.
그때나이 집나이22, 호적나이18세이다. 군인을 가려하나 아버님께서 군인은 철들어서가라고 호적을 네 살이나 적게 출생신고하여 군인갈날도 멀었고...
기다렸다 군인 간다해도 월남 파병 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그래서 월남 파병이 없는 공군을 가기로 작정하고 대방동 공군본부를 찾아 몇 십대일 되는 관문을 통과 입영통지를 받았다.
깊은산골 해지고 어두울무렵 산골길 오솔길을 뚜벅뚜벅 걸음걸이로 이 생각 저 생각 이산 저산 처다보며 걷는 육척장신 허멀걷게 늘씬한 청년하나가 동네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순이라도 한번보고 싶은 마음에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는 먼 집안되는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분이 살아계시는데 내가가면 아무 때나 반겨주시는 유일한 집안이다.
대전 우리집에도 종종 다녀가신다는 말씀을 어머니로부터 오늘 아침 밥상 대화중에 들었고 군인도 가고 하니까 고향 한번다녀 오라고 해서 실제로 오기로 한 것이다.
할아버지 내외분을 뵙는것은 사실은 핑계일뿐
마음은 서로 사랑했던 순이를 보기위해서다.
우리집도 내가 서울로 집나간후 대전으로 이사떠난지 무려3년이 되었고, 나도 객지생활하며 굳이 고향을 찾을 일이 별로 없어 오랜만에 오는 고향이다.
동네어귀에 도달 했을 즈음 문득 발걸음을 스스로 멈춘다.
이곳 널따란 바위는 다름이 아닌 어릴 적 내숨결과 순이와 마음을 같이했든 추억이 많은 바위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오면서 전에 늘 다니든 길이였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길이 섣툴고 산중은 해가 일찍 떨어지기 때문에 주위가 무시무시하다. 무서워 땀이 온몸을 적시는 줄도 모르고 십여리 숨 가뿌게 왔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바위위에 내 몸을 맡기고
스르르 눈을 감아본다.
그러고 나서 촌음이 흐르는데 바위뒤 어디에서인지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아니 어둠속에 여인의 울음소리 소리라니?땀으로 적신몸에
소름이 확 끼친다.
나도 모르게 “누구야!” 하니까 상대방도 사람이 없는 줄 알다가 내소리에 더기겁을 하며 “엄마”하며 비명을 소리지른다.
실제로 나보다 더 놀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다소 놓인다.
언뜻 비명소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틀림없어 나도 모르게
“너 순이 아니야”라고 되물었더니.
도로 들려오는 소리가“오빠가 왜! 여기에”하며 당황한 나머지 다라나지않는가?
아마도 울고 있던 자기가 겸연쩍었겠지! 그것도 어두운 이밤에 울다가 나와 마주 치다니 나 역시도 어리둥절해서 멍하니 서있는데 순이는 달아나다 서서 뒤돌아본다.
나는 서서이 걸어가 순이 손을 잡았다.순이 손은 지금 부들 부들 떨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그래도 안심이 되는지“오~~빠”하며 주저 앉는다.
우리는 그날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그바위위에서 날을 새웠다.
순이 나이 그때 스물둘, 본인 의사 와와는 달리 어려운 살림에 식구 하나 덜려고 중신 들어오자마자 부모들이 승낙을 하여 가기 싫은 시집을 가야 하는형편이되어 마음상해서 이곳에 왔는데 도망가는 생각도 해보고 울어도 보고 하던 중에 이렇게 우연찮게 만났다한다.
내일 입대해야하는 내가 어찌하리오.나는 순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해보아도 영 대책이 안선다.겨우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부모님 설득하고 설득해도 않될때는 당사자에게 포기할 수 있게 편지쓰라고 했다.
어떻게 하든지 시집은 안가기로 하고 순이는 집으로 갔다.
나는 날이 새고 하아버지 뵙는 것조차 접고 순이가 가르쳐준 순이아빠 일하는들녁을 찾아 인사드리고 차분이 마음을 가라않치고 나서
“어르신도 순이와 내가 어릴 적부터 학교도 오누이같이 다니고 지금도 마음을 두고 지내는 것을 다 알고게시지 않으십니까?”하며 어제 저녁에 있었던일 조차 모두 말씀드리고 많은 이야기끝에 군 복무끝날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하니
“군 생활이나 잘하고 나서 찾아오라” 하시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입대시간 늦지 않게 잘 도착했다.
대전서 유성 간에 명학소 탄방골, “오줌도 명학소 탄방골 쪽으로는 누지 않는다”
는 공군기교단 훈련소.때는 1월3일 매서운 소대한 추위에 훈련을 받고 키큰 죄 때문에 군기가 제일 세다는 미8군 유엔군 사령부 의장대에 배치 받고 고된 군 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외출 나와서 순이가 시집갔다는 말을
서울에서 초등학교동기에게 들었다.
나에게는 한없는 절망과 분노가!!!
아~어찌 이럴 수가 너무나 허탈하다. 이제 나는 어떻게하랴!
절망이 나를 가로막는 것이 사회에 나가 생활하기가 싫어지고 나를 자학 자책하게 했다.그래서 단기하사로 복무전환하고 군 생활 7년이 시작됐다.
내 나이30에 제대하고 군경력 가산점을 받아서인지 운좋게 공무원생활을 하게되고 정년까지 하게됐다.
그토록 그렇게 사무쳐 그리워 하든 사람이 수상뮤지컬 “갑천” 공연에
사공과 명학소 여인으로 만날줄이야!! 그런 이유로 수상뮤지컬 갑천은
더욱 나에겐 의미가 깊다.
2009.10월 사공 춤추는 온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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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근데 이분 결혼하셔서 가족이 있지않으신가요 부인이 이글보면 괜히 기분이 그럴듯 아주 오래전이야기지만요 그쵸
가족분도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상하신 분이라 가정에는 더 잘 하실것 같은데요..
온달님 반갑습니다. 지난해 여름 더위에 고생하시면서 갑천 공연 참여하셨는데..
공연준비하시면서 소중한 추억도 만드셨네요..
소식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환절기 감기조심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