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아침 저녁으로 선선함을 넘어 쌀쌀함을 느끼게 하는 10월 둘째 주일은 오늘은 군인주일이기도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68년부터 군 사목에 종사하고 있는 군종 사제를 비롯하여 군인 성당과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돕고자 해마다 10월 첫 주일을 ‘군인 주일’로 지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인 2023년부터는 10월 둘째 주일을 군인주일로 지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늘로 57번째 군인주일을 맞는 오늘 전국 각 본당에서는 군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 헌금을 봉헌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치는 모든 군인들을 기억하는 오늘 전례력으로 연중 제 28 주일인 오늘 이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참된 지혜를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얻게 될 구원의 상급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지혜서의 말씀은 지혜를 예찬하며 그를 갈구하는 솔로몬 임금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솔로몬은 그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와 호화로운 왕좌가 아닌 오직 참된 지혜임을 그리고 그가 그토록 지혜를 갈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합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게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 있었다.”(지혜 7,10-11)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여겨지는 솔로몬이 그토록 지혜를 갈구했던 것은 지혜야말로 삶의 참된 기쁨과 참 행복의 원천임을 알고 있었으며 끊임없는 광채가 터져 나오는 그 지혜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이 그토록 지혜를 갈구했기에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 지혜로울 수 있었으며 그 지혜를 통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혜를 이야기하는 오늘 제 1 독서의 말씀은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길을 가는 예수님께 어떤 한 청년이 달려와 그 분 앞에 무릎을 끊고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
예수님을 선하신 스승이라 부르며 그 분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을 묻는 이 청년의 모습은 마치 지혜를 갈망하는 오늘 제 1 독서의 솔로몬 왕을 연상시킵니다. 이 청년에게 삶의 참된 의미이자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며 청년은 그것을 위한 비결이나 비법이 아닌 ‘지혜’를 예수님께 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주신 율법의 계명을 충실히 지킨다면 네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해 주십니다. 이 말에 청년은 득의양양하게 다음과 같이 대꾸합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마르 10,20)
청년의 이 대답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길을 가는 예수님의 앞을 가로막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참된 지혜를 갈구하는 낮은 자세로 겸손되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던 청년이 예수님의 대답 이후 태도가 급변하여 스승님이 이야기하시는 그런 것쯤은 이미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온 것이라고 다소 건방지게 대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자신의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뻔한 원론적 대답이었다고 생각했었던지, 아니면 자신이 기대한 바와 달리 뭔가 새로운 것이 아닌 이미 다 알고 있는 식상한 대답에 실망했던 것인지 청년은 그 같은 대답으로 자신의 실망감을 내비치면서 동시에 자신은 율법의 모든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단 한순간도 소홀함 없이 충실히 지켜왔다는 사실을 자랑하듯 내세웁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다음과 같이 말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마르코 복음사가가 분명히 언급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청년의 다소 건방진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청년이 처음 자신에게 다가와 예수님을 선하신 스승님이라 부르며 지혜를 갈구하는 모습부터 예수님의 대답에 자신이 얼마나 충실히 그 모든 율법들을 지켜왔음을 의기양양 드러내는 청년의 그 모든 모습 속에서 청년의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열망을 분명하게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원론적 차원의 이야기를 넘어 그 청년에게 정말 필요한 한 가지를 꿰뚫어보시고 바로 그것을 콕 집어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실천적 행동’, 곧 율법의 계명만을 지키는 삶을 넘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고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르라는 즉각적이고도 결연한 실천적 행동이 그가 그토록 갈구하고 갈망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참 지혜임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청년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것, 곧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예수님이 콕 집어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코 복음사가가 묘사한 것처럼 청년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얻었다는 기쁨과 환희가 아닌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청년은 가진 것이 많은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이 소유한 그 모든 것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청년이 그렇게 떠나가자 예수님은 다음의 말로 당신의 제자들에게 물질적 부가 하느님 나라에게 들어가는 데에 결정적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일러주십니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게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4ㄴ-25)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그 모든 재화와 재물에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소유한 그 모든 것이 나라고 착각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그래서 그 많은 재물로 마치 내가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더,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소유한 재물과 재화는 결코 나일 수 없으며 그 모든 것은 단지 세상의 헛된 유혹일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가진 그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데에 결정적 장애 요소가 된다는 사실. 그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짐이 되어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짐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 오늘 복음 말씀은 바로 이 말씀을 통해 물질적 부와 권력이 아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가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의 마태오 복음을 인용한 다음의 말씀은 바로 오늘 복음이 말하는 가난의 참 뜻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하느님의 나라에게 들어가기 위해 세상의 재물은 필요치 않습니다. 아니 내가 소유한 그 모든 것들은 오히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결정적 방해가 될 뿐입니다. 부자 청년이 그토록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 곧 삶의 참된 지혜를 갈망하고 열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가 그토록 원하는 바를 자상히 일러주셨음에도 그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그는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그 영원한 생명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부자 청년의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을 참되게 자유롭게 하며 참 기쁨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결코 세상의 재물과 재화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은 오히려 짐이 될 뿐, 진정 우리 삶을 기쁨으로 이끄는 것은 가난한 삶, 곧 마음의 가난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마음이 가난한 삶으로 인도해 주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제 2 독서의 히브리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 갖는 참된 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특별히 오늘 입교식을 통해 가톨릭 신앙에 문을 넘어선 예비 신자분들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은 우리를 참된 지혜로 이끌어 줍니다. 세상이 이야기하는 거짓 기쁨과 거짓 행복이 아닌 참 기쁨과 참 행복의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인간적 얕은 마음의 생각과 속셈들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가르는 그 분 말씀으로 다 드러나고 만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지혜로운 왕이며 그 지혜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오늘 제 1 독서가 전하는 솔로몬 왕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참 지혜를 찾으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지혜를 통해, 곧 끊임없는 광채가 터져 나오는 당신의 지혜를 통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참 지혜로 여러분 모두가 참된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을 것뿐이리라.”(시편 34(33),11)